갓생(God生)을 찾아서
우린 가끔 영화에서 길을 찾는다.
허남훈(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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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 74분
감독: 개리 허스트윗 주연: 디터 람스
오로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세계는
절대 디지털화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THE MOVIE
뇌 피로를 풀고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 고 싶을 때 게리 허스트윗(Gary Hustwit)의 작품을 꺼내 본다. <람스>는 독일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디터 람스(Dieter Rams)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앰비언트 장르 창시자인 브라이언 이노가 음악을 맡은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나에게 이 다큐멘터리는 좀 특별하다. 게리 허스트윗과 브라이언 이노, 내 작업에 영향을 준 두 인물의 합작품이다. 게리 허스트윗은 롤모델이 없던 때 혜성처럼 등장한 감독이다. 1인 체제로 산업디자인 시리즈 다큐멘터리 <헬베 티카>·<오브젝티파이드>·<어버나이즈드>를 남겼고, 이 작품을 통해 개념과 대상을 확장하 며 기존 영화 제작·유통 방식의 틀을 깼다. 생애 첫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감독 중인 요즘도 그에게 자극받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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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NE
영화 후반부, 디터 람스가 집 정원을 손질하고 가꾸면서 이런 말을 한다. “오로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세계는 절대 디지털화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점점 디지털 세상에 빠져들고 있지만, 난 요즘 스마트폰과 메타버스에서 의식적으로 빠져나와 자연과 실존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려 한다. 디터람스의 대사는 이런 내 철학을 더욱 단단하게 지탱해준다. 그가 아내와 함께 정원에 머무는 평온하면서 아름다운 분위기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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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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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여정에 있는 거예요,
생이 끝나면 우리 모두 같은 곳에서 만나겠죠.
우리가 존재하고 우리가 우주예요.
THE MOVIE
짐 캐리는 <에이스 벤츄라>, <마스크>, <덤 앤 더머> 등을 히트시킨 후 <맨 온 더 문>에서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을 연기한다. 짐 캐리가 처음으로 실존 인물을 연기한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짐과 앤디>(2017)
는 <맨 온 더 문> 촬영 당시 비하인드 영상과 그때를 회고하는 짐 캐리의 인터뷰를 교차해 보여준다. 짐은 카메라 밖에서도 앤디가 되었다. 짐 캐리를 지우고 철저히 앤디 카우프만으로 빙의된 삶을 산 것. 그는 다큐멘터리에서 그 역을 소화하는 동안 정의할 수 없던 감정을 회고하며 표류하는 자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우로서 짐 캐리의 삶을 조명한 작품으로만 볼 수 있지만, 실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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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NE
살아가면서 처음 느끼는 감정과 상황, 경험의 혼란 속에서 늘 고민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들 때도 늘 자문한다. ‘나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던 때, 나이 지긋한 짐 캐
리가 독백하듯 하는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뭔가를 잡으려고 하죠. 나라나 종교나. 모든 게 추상적이에요. 내가 왜 미국인이죠? 내가 왜 캐나다인이죠? 무슨 의미예요? 누군가 정의해놓은 거잖아요. 우린
그 이상인데 말이에요. (중략) ‘이름에 걸맞게 살아라’, ‘너만 믿으니 실망시키지 말아라’, ‘하버드에 가서’, ‘의사가 되고’, ‘가톨릭 신자니까’, 아니면 ‘유대인이니까’. 이 모든 게 추상적인 것이에요. 이걸로 어떻게 잘 조합해서 살아가래요. 전 그걸 놓았어요. 앤디처럼 우주 공간을 떠돌아도 괜찮아요.” 이어서 짐 캐리가 출연한 영화
<트루먼 쇼> 엔딩 장면이 흐르면서 독백하듯 마지막 말을 남긴다. “영혼의 여정에 있는 거예요, 생이 끝나면 우리 모두 같은 곳에서 만나겠죠. 우리가 존재하고 우리가 우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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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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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 175분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주연: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제임스 칸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THE MOVIE
살아가면서 인생이라는 운동장에는 사랑과 존중, 배려, 이해, 연민보다는 시기와 질투, 폭력, 협잡, 배신이 난무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인생은 고난과 불행이 디폴트고, 우리는 가끔 행복하다. 아주 오래전 20, 30대 시절 <대부>를 보면서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 말론 브란도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에 반했을 뿐이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영화를 다시 본다. 그리고 알게 됐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비정한지 말해준다. 또 얼마나 허무한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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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NE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삶과 비즈니스의 기본 원칙은 거래와 교환이다. 인생은 비정해서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목숨을 담보로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니, 이보다 더 무
시무시한 협박이 또 있을까. 살면서 이 말을 듣지도, 하지도 않기 바란다.
김도훈(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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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 142분
감독: 스탠리 큐브릭
주연: 케어 둘리, 게리 록우드, 윌리엄 실베스터
THE MOVIE
아마도 내 인생에 가장 거대한 깨달음을 준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68)일 것이다. 삶의 목표를 정하고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겨날 때마다 다시 보곤 한다. 압도적 우주의 거대함과 고요함을 느릿느릿하게 담은 영화를 142분 동안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지구라는 작은 행성의 표면에 잠시 붙어 있다 사라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아, 혹시 이건 동기부여가 아니라 동기 제거용 영화인가? ‘공인된 걸작’이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이 영화를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SF 소설가 아서 클라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우주를 소재로 한 일종의 서정시다. 내용은 간단하다. 인류에게 지혜를 가져다준 외계 존재와 접촉하기 위해 목성으로 향하는 우주선 승무원들의 여정을 다룬다. 1968년 개봉할 때 많은 히피(거기에는 존 레논도 있다!)가 단체로 극장에 모여 마리화나를 피우며 이 영화를 봤다는 이야기는 꼭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건 감상이 아니라 ‘체험’하는 영화다. 올해 구찌 캠페인 화보에도 이 영화에 바치는 오마주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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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NE
이 영화에는 대사가 거의 없다. 나는 그게 너무 마음에 든다. 이 기사의 의도에 가장 적절한 답변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나는 울림을 주는 영화 대사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말로 넘치는 세상에서 영화까지 말로 날 가르치려 들면 좀 곤란하다(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대사도 거의 없는 이 영화를 꼭 보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삶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시끄럽다고 생각될 때 그냥 멍하니 틀어놓고 있으면 된다. 새해 목표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당신을 위한 우주적 힐링이라고 해야 할까. 마침 넷플릭스로 언제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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