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NDS: 위대한 손-2
소설가 김훈은 “손은 인간의 총체적 모습”이라 말한다. 빚고, 잇고, 깎고, 꿰고, 어루만지는 8인의 손.
그리고 빛나는 시계와 주얼리.
이야기 수집가
플로리스트 박준석
작업 루틴
꽃 시장에 갈 때는 클래식, 작업할 때는 디스코나 힙합으로 상반된 장르의 음악을 듣는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정리하기에 차분한 클래식이 좋고, 꽃을 다 보고 나오는 길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어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 작업할 때는 가위와 노끈 등 가까이 있어야 하는 도구가 많아 주머니 달린 워크 재킷을 입는다.
나만의 세계에 매료된 순간
꽃은 삶의 중요한 순간에 늘 함께한다.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를 다루는 일이기에 임무가 막중하다. 주고받는 이의 기쁨과 만족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선물 받는 이의 취향을 묻고 이를 바탕으로 상상을 곁들여 작업하곤 한다.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마치 사연을 듣는 라디오 DJ가 된 기분이 든다.(웃음) 플로리스트가 꽃만 다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을 거다.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이야말로 이 직업의 묘미다.
애착이 가는 오래된 도구
약 8년을 함께한 리본 가위와 포장 가위. 좋은 새 가위가 있어도 관성처럼 찾게 되는 가위들이다. 애인의 존재를 알리듯, 누군가 물어보지 않아도 나의 오래된 가위를 먼저 소개하기도 한다.
영감의 재료
가구, 음악 등 평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문화를 즐기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인테리어부터 설치 작업까지 다채로운 작업을 하기 위해 새로운 정보와 트렌드를 흡수해야 하니까.
나의 손맛
꽃은 유한하다. 오늘의 모습을 내일 볼 수 없어 최대한 아름다움을 끌어올리기 위해 예민한 손의 감각을 믿고 작업을 한다. 완벽하게 만들어도 늘 아쉽기 마련이지만, 또 새로운 꽃을 볼 때면 구상이 떠오른다. 그렇게 또 막힘없이 꽃다발이 만들어질 때는 이것이 ‘손맛’인가 싶기도 하다.
이야기를 엮는 손
완전과 불완전 사이, 그 신성한 지점
신발 디자이너 최성욱
애착이 가는 오래된 도구
칼. 처음 신발 제작을 배울 때 도구의 하나일 뿐이라 여겨 작업하는 선생님의 칼을 호기롭게 만졌다가 된통 혼난 적이 있다. 칼이 닳는 모양과 위치에 따라 칼 주인의 습관과 태도, 세월 등이 모두 담겨 있어 타인의 손이 닿는 순간 미세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그때 알았다. 칼은 사실 또 다른 손이었다.
근간 인상적이었던 것
AI 영역과 3D, 모션그래픽 영역이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입장에서 과연 이 프로그램들이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와 질을 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지만.
만약 신발을 제조하는 기계가 로봇화되고 머신러닝을 통해 AI 기능을 탑재한다면 과연 기계는 감각, 손맛 같은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그렇기에 아직은 손이 먼저다.
작업의 바탕
“여긴 안 보이잖아. 누가 알겠어?”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알잖아”라는 답을 늘 새긴다. 솔직히 신발은 완성되면 겉만 잘 보인다. 속을 허투루 만들어도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세한 문제가 생기고 틀어지기 시작한다. “요즘 누가 신발을 고쳐 신나. 몇 년 신다 버리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정성껏 만들었는지.
나의 손맛
신발의 갑피를 라스트에 붙이고 그것을 당기며 못으로 고정하는 과정은 말과 수치로 형용할 수 없는, 오로지 ‘감’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손맛이고. 어린 시절부터 유달리 예민했던 손과 발의 감각 덕에 이 손맛을 금세 깨우쳤다.
각별한 작업물
디자인의 초안이 되는 참고 자료를 받고, 그 자료를 토대로 나의 방식을 투영해 의상과 어떤 시너지를 이룰지 디자인을 상상하고 구현하며 현실적인 생산 단가까지 고려했던, 그 지난한 과정을 거친 준태킴 컬렉션 신발. 힘들었던 만큼 많은 사람에게 받은 칭찬과 관심은 원동력이 되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상생의 손
있는 그대로 나
아티스트 부원
나의 손맛
올해 목표 중 하나가 ‘그림에 깊은 맛을 내자’는 거였다. 작년 11월 세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앞으로 작업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기존 그림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더 회화적인 느낌을 내고 싶었다. 아직 연구 중이지만, 최근 작품에는 붓 터치를 가미한 것이 많다. 계속 하다 보면 나만의 ‘맛’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손의 의미
내 손가락은 굵고 짧다. 어릴 때부터 손을 드러내기 부끄러울 정도였는데, 누군가 재주 많은 손이라고 말해줘서 그렇게 믿기로 했다. 실제로도 손이 빠른 데다 재주가 있는 편이고.(웃음) 덕분에 그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매너리즘 탈피
너무 생각이 많아도 문제다. 최근 작업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오히려 멍하니 누워 짧은 콘텐츠를 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웃긴 사진을 모아둔 폴더를 열어보거나 최대한 별생각 없이 살려고 노력한다. 나는 대단하지 않은 사람인데 대단한 것을 그리고 싶어 하니 작업하는 것도, 마음도 힘들었다. 이 일을 계속 하려면 좀 더 생각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게 낫다.
작업의 바탕
지금 내가 보고 느끼는 것, 그로 인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표현한다. 그림에서는 주로 ‘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평소 염세적이고 냉소적인 편인데, 이러한 감정을 작품에 건조하게 녹여낸다. 좀 더 긍정적 메시지를 줘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었지만, 나 자신의 성향을 받아들여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공감을 바라기보다는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억에 남는 작업
2018년에 아식스와 협업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피겨 만드는 회사에 다니며 작품 활동을 병행했는데, 작품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스포츠 브랜드와 또 한 번 협업했다. 바로 나이키 × 피스마이너원 프로젝트였다. 이때 500피스의 피겨를 만들었고, 여전히 나이키 팬들에게 회자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 올 6월 말에는 LA에서 전시가 열린다. 올 초부터 계획했던 전시라 쉼 없이 달려왔는데, 이제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되었다.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손
정돈된 혼돈
사르토 전병하
일의 매력
좋아하는 옷을 만들기 위해 나를 찾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는 것. 쉽게 만나기 어려운 분도 있고 좋은 분도 많이 만났다. 가봉과 완성을 위해 무조건 두 번 이상은 만나고, 과정에 동참해야 하기에 여기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일이 있다.
새로운 꿈
삼각지에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니 인 서울’ 문을 연 지 어느덧 10년째다. 새로운 공간을 하나 더 준비 중이다. 광화문의 어느 빌딩 상층부에 자리한 곳으로, 이름은 ‘룸(Room)’이라 지었다. 옷을 맞출 수 있는 공간이지만, 사교와 낭만이 있던 과거 살롱 문화를 다시금 회귀시키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작업의 시작
옷을 좋아하기도 했고, 제대 후 4년간 소공동에서 본격적으로 옷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당시 <맨즈 EX>라는 일본 잡지를 즐겨 읽었는데, 이탈리아 슈트에 관한 특집 기사가 내 삶에 큰 변화를 주었다. 잡지에 실린 사르토리아 주소를 모두 적어 이탈리아 비행기에 올랐고, 밀라노부터 나폴리까지 주소를 따라 이동하며 사르토들의 문을 두드린 것. 사실 아름다움이라는 게 뭔지 잘 몰랐는데, 그 여정에서 비로소 눈을 떴다. 그러다 끝자락에서 스승 안토니오 파스카리엘로를 만났다. 그때가 서른 살 무렵이다.
나의 손맛
기술은 숙련을 의미한다. 매일 연습하다 보면 늘기 마련이다. 손맛은 기술보다 추구하는 정신과 철학에 가까운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같은 스승에게 사사받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사르토 치치오와 나를 예로 들면,
작업의 바탕
그림과 영화 등 내가 끌리는 것은 대개 날것이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워야 한다. 하지만 늘 이 안에는 만드는 이의 계산이 철저히 숨어 있다. 나는 이를 정돈된 혼돈이라 말한다. 내 작업 역시 이를 투영하고 싶고.
영감의 재료
슈트는 틀 안에서 만들어내는 옷이다. 기민하게 유행이 변하는 패션과는 조금 다르다. 소재를 통해 옷의 유형, 실루엣 등을 떠올리는 거다. 옷의 맛과 멋을 어떻게 잘 표현할까하는 고민의 시작은 늘 소재가 주축이 된다. 역으로 요즘은 울이 아닌 소재로 슈트를 만드는 일도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슈트를 즐기지 않는
추세가 길어지고 있으니, 접근성을 높이는 비스포크 슈트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