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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LF CHOI HOON

레니 크라비츠가 하늘 위로 손을 올리며 새로운 베이시스트를 선언한 날, 최훈은 다짐했다. 평생 단 한 번 전력 질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블랙 웨스턴 재킷 Birdnote, 웨스턴 해트와 네크리스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026년 레니 크라비츠와 멕시코 투어를 마친 뒤 휴식기를 보내고 있죠. 어떻게 지냈어요? 3월 중순 한국에 들어와 레니 크라비츠 밴드에 합류한 뒤 긴 휴가를 보내고 있어요. 최근 부산으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환경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죠. 글도 쓰고요.

안 그래도 수첩과 펜이 놓인 사진을 SNS에서 자주 봤어요. 어떤 글을 쓰고 있나요? 레니가 이끄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환경뿐 아니라 마음가짐도 바뀌었어요. 음악은 제 삶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니에요. 성숙한 뮤지션이라면 음악뿐 아니라 몸과 마음을 돌볼 줄 알고 주변 사람을 챙기는 덕목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기회에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쌓은 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턱시도 재킷 Husband Paris, 링 모두 Chrome Hearts, 셔츠와 팬츠,
타이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왼손 약지 링 본인 소장품.

데님 셔츠 No Dance Floor, 기하학 패턴 셔츠와 네크리스 모두 Soobaak Vintage, 데님 팬츠 Magnoliamiss, 웨스턴 벨트 Birdnote, 
검지 링 Charlotte-Kim, 약지 링 본인 소장품. 

최훈의 일대기가 궁금하긴 합니다. 고3 때까지만 해도 적당히 공부해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는, 별 목표 없는 학생이었어요. 아버지가 이러다 무색무취 인간이 되겠다 싶었는지 악기를 하나 사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음 날 친구들한테 무슨 악기가 좋을지 물어보니 “베이스가 진짜 쿨한 거야”라는 말에 아버지와 낙원상가에 가서 30만 원짜리 콜트 베이스 기타를 샀죠.

잠깐만요. 스무 살에 데뷔하지 않았어요? 당시 ‘봄여름가을겨울’, ‘정원영’, ‘한상원’ 같은 선배 뮤지션이 연주하는 음악 방송이 많았어요. TV로 선배들 손 모양을 관찰하고, 음계도 연습하고, 좋아하는 곡의 베이스라인도 쳐보는 식으로 시작했죠. 그러다 대학가요제에서 알게 된 손무현 선배의 밴드에 들어가면서 연주자로 데뷔했어요. 악보는커녕 코드도 잘 몰라 귀동냥으로 선배들 연주 따라가기 바쁘던 나날이었어요. 운이 참 좋았죠. 

서른여섯에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 봐요. 직접 보고 싶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본거지는 어떤 방식으로 향유하고, 또 어떻게 자신만의 창작으로 승화하는지. 그걸 알아야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깨달음을 얻었나요? 기술적인 비결이 따로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매일 아침 노교수가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들고 강의실에 들어오면 피아노를 치면서 같이 노래를 불러요. 그러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결국 음악은 너무 즐거운 존재라는 결론을 내리며 수업이 끝나죠.(웃음) 교수님은 항상 “넌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 “그렇구나, 그게 좋으면 열심히 해. 나머지는 네가 필요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듣는 거니까 스트레스받지 마”라는 말을 해줬어요. 그 덕분에 음악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죠.


빈티지 티셔츠 Bedford, 플레어 데님 팬츠 No Dance Floor, 빈티지 네크리스 모두 Soobaak Vintage, 오른손 검지 링과 왼손 검지 링, 왼손
소지 링 모두 Charlotte-Kim, 오른손 소지 링 Aekki, 왼손 약지 링 Chrome Hearts, 오른쪽 손목 실버 뱅글 모두 Atsa, 웨스턴 벨트와 
왼쪽 손목 브레이슬릿, 오른손 약지 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부츠와 웨스턴 해트 모두 본인 소장품. 

한날은 어느 선배가 공연 뒤풀이에서 “훈이야, 넌 너무 멋이 없다. 

음악 하는 사람 같지 않아. 동네에서 뭐 하고 놀았니?”라는 말을 해서 충격받은 적도 있어요. 

그날로 엄지손가락을 채찍 삼아 미친 듯이 연습했죠.

스무 살 최훈의 대학 전공은 무엇이었나요? 스페인어학과인데, 스페인어를 하나도 못 해요.(웃음) 그래서 어디 가서 얘기 안 해요.

저는 아직도 1년 만에 연주자 커리어를 시작한 게 신기해요. 평생을 해도 못 하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지금이야 예체능도 초중고부터 시작하는 인프라가 형성돼 있지만, 제가 음악을 할 때만 해도 저랑 비슷한 과정을 밟은 사람이 꽤 많아요. 적성에 맞는지 파악할 겨를도 없이 환경에 휩쓸린 경우라고 해야 하나. 프로듀서 형들이 “너 와서 연주 좀 해봐”라는 식으로 일자리를 줬어요.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요.

그래도 대충 하는 사람은 아니었죠? 당연하죠. 혼도 많이 났어요. 한날은 어느 선배가 공연 뒤풀이에서 “훈이야, 넌 너무 멋이 없다. 음악 하는 사람 같지 않아. 동네에서 뭐 하고 놀았니?”라는 말을 해서 충격받은 적도 있어요.(웃음) 그날로 엄지손가락을 채찍 삼아 미친 듯이 연습했죠. 그때 환경이 참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느 분야든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능력이 달라지니까요.

지금의 환경은 아주 치열하고요. 치열하게 사는 게 로망이기도 해요. 생존을 위해 발전해야 하는 이곳이 제게 가장 이상적인 환경이죠. 전 세계에 내로라하는 작업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플레이그라운드 속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워요.

레니 역시 누구보다 앞장서서 노력하는 사람이죠? 맞아요. 레니가 솔선수범하니 모두 따를 수밖에 없어요. 오디션에 합격하고 나서 레니와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나는 워커홀릭이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 더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일지, 나아가 이 팀을 더 끈끈하게 만들지 매일 고민하는데, 그게 즐겁다. 너는 어떻냐?”라는 물음이 저를 완전히 불태우게 만들었죠. “당연한 거 아니에요? 나 완전 그런 사람인데? 난 이미 준비됐어요”라고 말하니 미션을 하나 줬죠.

어떤 미션이죠? 한 달 뒤 바하마섬에 있는 별장에서 본격적인 합숙을 시작할 건데, 그동안 설탕과 탄수화물을 끊어보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모든 기준을 레니 크라비츠의 일거수일투족에 맞췄죠. ‘평생 단 한 번 전력 질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바로 지금이다. 내가 숨이 차서 쓰러지든 버티든, 나는 모든 걸 쏟아붓겠다’라는 각오로요.

살면서 모든 걸 바칠 만큼 결심할 기회는 흔치 않잖아요. 듣는데 제가 좀 벅차오르네요. 오디션도 쉽지 않았죠? 오디션을 두 번 봤는데, 3박 4일에 걸친 마지막 오디션은 정말 혹독했어요. 레니 크라비츠 패션스타일 알죠? 평상시에도 무대 위와 똑같은 차림새를 유지해요. 그래서 저도 최대한 멋있게 입고 호출을 기다렸어요. 다음 날 일정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5분 뒤 우버 도착 예정’ 하고 갑자기 부를 때도 있거든요. 한시도 방심할 틈 없이 이 사람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주위의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했어요. 다음 날 뭘 할지 예상하고 숙소에서 밤새 준비하면 어김없이 “너 이거 할 수 있어?”라고 물어요. 그럼 저는 “어, 당연하지” 하고 별거 아니란 듯 보여주고. 사실은 한국 가는 짐 싸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한 건데 말이죠.(웃음)

말이 쉽지, 독하네요. 솔직히 짐 싸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과 함께할 기회를 놓치는 것도 싫지만, 제 우상이기도 한 레니 크라비츠라는 사람이 수많은 스태프 앞에서 판단을 번복하는 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더군요. 제가 부족하다는 건 레니 크라비츠의 안목이 틀렸다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버텼어요. 두 번은 못 해요. 차라리 날 죽여.(웃음) 

오디션 합격의 순간은 어땠어요? 오디션 마지막 일정이 끝날 즈음 레니가 무대 중앙에 딱 서더니 오른손으로 위를 가리키며 “We have a new bass player!”라고 선언하는 거예요. 모든 스태프가 박수 치면서 축하를 건넸죠. 데이비드 보위의 베이시스트이자 제 전임자인 게일 앤 도시(Gail Ann Dorsey)도 그 자리에도 있었고요. 게일은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 3년 전부터 후임을 찾고 있었어요. 그 바통을 제가 이어받는다는 게 너무 감격스러웠죠.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레니에게 물어보진 않았어요? “나 왜 뽑았어요?”라고. 레니는 문화, 인종, 장르 등 모든 것에 마음의 문을 열어둬요. 예전에 레니가 이런 말을 하긴 했어요. “세상에 펑크를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도 있고, 오늘만 살 것처럼 모든 것을 토해내는 로커도 있다. 그런 사람은 너무 많다. 나는 한 장르만 잘하는 천재 뮤지션을 원하지 않는다. 모든 음악을 두루 이해하고 그걸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울프(훈) 네가 그렇다.” 

최훈이라는 뮤지션도 20년 이상 커리어를 이어온 베테랑이잖아요. 미세한 박자 감각이나 사소한 주법까지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레니 크라비츠의 그루브는 심플한 연주에서 나오는데, 그 맛을 내기가 참 어려워요. 그래서 계속 묻고 귀찮게 하게 되고요. 레니는 그 자리에서 보여주고 또 보여줘요. 그런 리더니까 저는 더 바뀌고 싶었죠. 어느 순간 “울프, 연습 말고 공부해 와”라고 하더군요. 숙제 검사를 맡듯 반복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라는 말이었죠. 바하마에서 처음 합숙하고 2~3주 지났을 때 저한테 처음으로 “You sounding great”이라고 했는데 그날 일기에 썼어요. “레니 크라비츠가 처음으로 ‘Great’이라는 말을 했다”라고. 하하.

최훈이라는 인간도 참 우직하네요. 여전히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워요. 레니가 은근히 판을 잘 깔아주기도 하고요. 제가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울프 운동하는 거 봤어?”, “얘 식단 관리 장난 아니야”, “연습 정말 부지런하게 해” 이런 말을 은연중에 툭툭 던져요. ‘내가 데리고 온 사람이니 친하게 잘 지내라’라는 의미이자 제 자신감을 북돋운 거죠.


오른손 약지 링 Aekki, 오른손 소지 실버 링 Atsa, 레더 팬츠와 왼손
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베레와 레더 재킷 모두 본인 소장품.

블랙 슬리브리스 Dolce&Gabbana, 부츠 Enfants Riches De’prime’s, 네크리스와 왼손 검지 링 모두 Atsa, 오른쪽 손목 
실버 뱅글 North Works, 오른쪽 손목 실버 브레이슬릿과 약지 링 모두 Chrome Hearts, 팬츠와 오른손 실버 링, 왼손 실버 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공연 시작하기 딱 1분 전 무대 앞에 도착하면 테크니션이 악기를 몸에 걸어주는데, 
그 행위가 되게 아름다워요.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에게 총을 안겨주는 기분이랄까. 
그 순간 연주자들은 ‘동료들을 위해 모든 걸 쏟아내겠다’라는 각오로 무대에 오르죠. 
이건 정말 경건한 감정이에요.

그런 말을 들으면 더 잘할 수밖에 없겠어요. 맞아요. 그리고 어떻게 가자마자 식구가 되겠어요. 제가 먼저 저 무리에 다가가지 않으면 주도권을 못 가질 것 같아 안 친해도 일단 먼저 가서 주먹 인사하고, 가장 먼저 리허설장 도착해 준비하고, 남들 밥 먹을 때 동선이 어떻게 되는지 둘러봤죠. 그랬더니 고맙게도 모두가 저를 반겨주더군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동료들이 지켜줄 것 같은 느낌이 드나요? 보통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고 잘못을 따지잖아요. 여긴 뭐가 잘못될 것 같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가서 수습해요. 밴드의 의상을 담당하는 책임자는 프린스의 스타일리스트였고, 회계 담당자는 티나 터너가 전성기였던 시절의 매니저예요.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공연 안무 감독, 한스 짐머의 공연 사운드 엔지니어. 여기서는 프로필을 논하는 게 의미 없어요.(웃음) 그 누구도 상대의 과오를 따지지 않고 최고 수준을 만들기 위해 움직일 뿐이죠.

그럴수록 팀워크는 더욱 단단해지겠네요. 그렇게 한 번 도움 받으면 어느 누가 모른 척하겠어요. 서로 경쟁하듯 도우려 하죠.(웃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를 위한 해결사가 주위에 수십 명 있다는 게 든든하고 고마워요. 공연 시작하기 딱 1분 전 무대 앞에 도착하면 테크니션이 악기를 몸에 걸어주는데, 그 행위가 되게 아름답거든요.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에게 총을 안겨주는 기분이랄까. 그 순간 연주자들은 ‘동료들을 위해 모든 걸 쏟아내겠다’라는 각오로 무대에 오르죠. 이건 정말 경건한 감정이에요.

좋아하는 일로 모인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뭉친다는 게 감동적이기도 하고, 솔직히 질투도 조금 나네요. 한마음 한뜻이라는 표현 자주 쓰잖아요. ‘나 잘하고 있는 건가?’ 종종 흔들릴 때가 있는데 주위 동료들을 보고 다시 확신을 가져요. 저는 ‘전설적인 뮤지션이 되고 싶다’ 같은 거창한 꿈은 없어요. 무대 위와 아래가 일치하는 모습으로 살고 싶을 뿐이죠.

다들 이른 나이에 성공을 좇잖아요. 청춘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저 그런 인생이구나 실망하고. 속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존재 같아서 위로가 됩니다. 저도 조바심에 찌들어 살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고요. 근데 성공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나요.(웃음) 인간의 진짜 척추라고 믿는 귀한 가치를 놓지 않고 내실을 다지다 보면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할 때가 오지 않겠어요?

에디터 강승엽 사진 윤송이 헤어 & 메이크업 윤혜정 스타일링 박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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