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NDS: 위대한 손-1
소설가 김훈은 “손은 인간의 총체적 모습”이라 말한다. 빚고, 잇고, 깎고, 꿰고, 어루만지는 8인의 손.
그리고 빛나는 시계와 주얼리.
꿈을 담은 금박,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김기호
작업의 시작
고조부 김완형 1대손을 시작으로 150여 년간 금박 공예를 가업으로 잇고 있다. 첫 시작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소소하게 가족의 금박 작업을 도우며 자랐다. 어린 시절 내 방도 낮에는 작업실의 일부였고, 나무 조각칼 중에는 5대를 이으며 긴 세월을 함께해온 것도 있다. 같은 도구를 사용했던 조상의 정성과 숨결을 늘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 내가 쓰는 조각칼 또한 후대가 사용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작업의 바탕
작품은 각각 달라도 한 가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소망’. 각각의 금박 문양은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는 소망의 뜻을 담고 있다.
영감의 재료
여행을 하며 사색할 때 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언젠가 오지에서 어린 시절 밤하늘에서 봤을 법한 별을 보니 가슴이 뛰더라. 무수히 많은 별을 금박으로 표현해 이러한 감동의 순간을 재현하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작업한 것이 국보로 지정된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본의 별자리를 금박 문양과 함께 표현한 작품이다. 요즘은 이를 작은 보석함으로 만드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한자가 아닌 한글로 문양을 만드는 것을 고민 중이다.
완전함과 불완전함의 간극
자연에 존재하는 만물은 제각각 다른 매력을 뽐낸다. 인위적 대칭을 추구하지 않고 비대칭이면 비대칭인 대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문양을 깎고 배치할 때 절대적 대칭보다는 보기에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려고 한다. 손으로 하는 작업은 기계만큼 완벽하지는 않다.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기에. 하지만 더 나은 것을 꾸준히 찾아가는 과정이 쌓이다 보면 그 흔적이 작품에 묻어나 아름다움으로 탄생한다.
영원을 새기는 손
삶의 미세한 변화를
예술로 승화하는 아티스트 노상호
애착이 가는 오래된 도구
작은 수채화 팔레트를 늘 들고 다닌다. 부적 같은 존재다. 지금은 온전한 내 작업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지만, 작업실이 없을 땐 아담한 팔레트 하나 가방에 넣어 다니며 작업하곤 했다. 이제는 다양한 재료를 늘어뜨린 채 편안하게 작업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작은 수채화 팔레트 하나면 충분하다.
기억에 남는 작업
최근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총 3m 크기의 신작 ‘Holy’를 공개했다.
이 작품은 불이 나도 절대 녹지 않고, 사람보다 거대한 크기의 눈사람을 통해
현실과 다른 모습을 역설적 기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층고가 높은 건물에 대형 회화를 걸고 싶은 소망을 이루게 해준 작업물이다.
첫 작업
약 한 달간 작업 기간을 거쳐 4m 크기의 벽화를 완성한 적이 있다. 학교에 허가받지 않고 잠시 점유한 터라 지금은 사진 한 장으로 남았지만. 그 벽화가 이후 작업에 영감을 주었기에 애정이 남다르다.
영감의 재료
최근에는 글리칭(glitching)을 소재로 작업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이미지에 나타나는 오류를 일시적으로 세계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처럼 설정해 ‘Holy’라는 제목의 연작을 만들고 있다.
작업의 계기
졸업을 앞두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매일 그림을 그렸다. “아무도 내 작품을 궁금해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다 오기가 생겨 개인전을 열었다. 감사하게도 전시 이후 많은 분이 연락을 주셔서 꾸준히 작업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역설적 기적을 그리는 손
반복하는 해체와 조립
아티스트 연누리
탐나는 손
반복적 행위를 통해 손기술을 경이로운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사람을 보면 절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단순한 동작의 정교한 반복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으니까. 개념적으로 새롭지 않아도 손으로 표현하는 기술의 완성도가 어떤 경지를 넘으면 그것 또한 예술이다.
영감의 재료
소리에 대한 구조를 흥미롭게 생각한다. 소리는 물리적 파동으로 생성해 여러 단계를 거쳐 사람의 귀와 피부로 느끼는 것인데, 같은 소리라도 스피커의 유닛과 구조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이처럼 소리의 생성 과정과 사람이 고유성을 지니는 단계가 비슷하다고 생각해 작업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 중이다.
나만의 세계에 매료된 순간
내가 만든 작업물을 불특정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갖가지 방식이 흥미로웠다. 누군가는 새로운 발상의 시작이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 작업물과 자신의 공통점을 발견해 공유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반응이 모여 다른 사람의 세계는 어떤지 들여다보고, 또 받아들이고, 내 것과 합쳐져 더 새로운 것이 나오더라.
작업의 시작과 종착지
지층처럼 쌓인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는 건 ‘수집’뿐이었다. 어떤 종류의 물건에 관심이 생기면 그것을 병적으로 모았다. 그러던 중 이를 재료 삼아 작업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기에 지금 하는 작업의 시작점에는 큰 의의가 없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뿐. 그래서 작업엔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싶다. 종점도, 완성도 없는 것이 지금의 삶이다.
매너리즘 탈피
창작에 대한 불확실성이 원동력이 되는 만큼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가 드물다. 이제껏 작업하면서 만족한 적이 별로 없었기에 계속 작업을 이어간다. 여러 확률과 나의 지극히 주관적 결정이 모여 최종 형태를 만들어내지만,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기에 항상 다음이 존재한다. 결국 지나고 보면 다 옳은 결정이다.
소리를 내는 손
결합의 미학
도예가 강민성
오래된 도구
도자기를 빚을 때 대부분 손을 사용하게 된다. 손이 닿아야 달항아리 고유의 온기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구 대신 과감하게 손을 더 사용하는 것도 있고. 자주 쓰는 도구 역시 학생 때 만든 나무 조각도다. 갖고 있는 도구 중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고, 그만큼 손에 익어 혹여 망가질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나만의 세계에 매료된 순간
도예를 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달항아리 제작 방식이었다. 달항아리는 2개의 발 형태를 접합하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이는 부정형의 조형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달항아리의 제작 방식에서 영감받아 흙을 베이스로 상반된 재료의 치환을 통해 결합하고 색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이질적 아름다움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자 고집이다.
기억에 남는 작업
‘블루 문’이라는 작품이 가장 애정이 깊고 각별하다. 첫 번째 작품 시리즈이자 ‘강민성’이라는 작가를 만들어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기존 쓰임에서 벗어난 소재에 새로운 역할을 의도적으로 부여하고 구성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작업을 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생계를 고민하다가도 좋은 작품의 결과에 웃음 지을 수 있는 나날을 보내는 게 작가의 삶 같다. 먼 미래에 지금과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고 또 다른 삶을 살게 되더라도 치열함으로 빚어낸 지금 순간이 즐겁고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일 테다.
작업대로 이끄는 원동력
다작을 하는 것. 많은 실험과 결과물이 나의 작업 세계를 넓히고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영감도 마찬가지다. 작업하면서 취향이 조금씩 바뀐다. 지금도 변화하고 있고.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좋은 전시나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모든 것에 정답은 없고, 내 방식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늘 배우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남는 것이 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