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만 있던 날
가장 해사한 시간
그리고 가장 개인적인 우도환.
연기자는 혼자 힘만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는 직업이잖아요.
함께 합을 맞추는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니
더 믿을 수 있고, 그만큼 좋은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게 됐어요.
듣기론 새벽 늦게까지 촬영했다던데, 요즘 한창 바쁘죠?
요 며칠 거의 매일 촬영하는 것 같아요. 어제도 촬영차 지방에 다녀왔고요. 바쁘지만 최대한 즐기려고요.
쉴 틈이 없네요. 넷플릭스 드라마 <사냥개들>의 인기가 아직도 식지않았는데요.
에이, 괜찮아요.(웃음)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해요. 최근 제대하고 나서 처음으로 휴가를 길게 다녀왔거든요. 한 3개월정도 쉬었어요. 이 정도면 재충전하기 충분한 시간이죠.
이전까지 ‘휴가’라는 개념이 따로 없었군요.
거의 그랬죠. 어릴때는 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물론 쉴 시간도 부족했고요. 바로바로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만큼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방증이겠죠.
돌이켜보면 그런것 같아요. 특히 단역 시절에는 언제 잡힐지 모르는 오디션 일정 때문에 제대로 쉴 수가 없었거든요. ‘나는 편히 놀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늘 각인돼 있었죠. 나태해지고 싶지 않았나 봐요. 그다음 단계를 계속해서 헤쳐나가느라 쉴 틈도 없었고요. 입대를 앞두고도 그다지 많이 쉬진 못했어요.
보통 입대하기 전에는 어느 정도 휴식 시간을 갖던데요.
그런 분들도 물론 있죠. 하지만 저는 군대 가기 전에는 무조건 좋은 작품을 많이 해보고 싶었어요. 그 작품들을 소화해 더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였죠. 그렇게 된다면 정말 마음 편하게 군대를 다녀오고 작품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정도 실현된 것 같아요. 전역 후부터 MBC 드라마 <조선변호사>를 시작으로 연이어 작품을 선보이고 있잖아요.
제가 해온 노력과 별개로, 불러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죠. 연이어 작품을 하고 있지만, 요즘은 쉬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스케줄 관리하고 잘 쉬는 것도 결국 자신의 능력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은 결국 쉼으로써 나타나는 것 같아요. 작품 활동을 이어가면서 느끼는 게 많아요.
연기를 대하는 태도 혹은 가치관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요?
연기보다는 삶 자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좋은 연기자’라는 목표를 위해 삶 자체는 어느 정도 가둬두고 살았거든요. 이젠 연기 외적으로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가꿔나가려고요. 지금까지 저를 있게 한 많은 분이 있잖아요. 가족, 지인들, 팬분들 모두에게 제가 받은 것을 조금씩 갚아나가고 싶어요.
소박하면서도 겸허한 목표네요.
그게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단지 연기로 먹고사는 사람일뿐이잖아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한 명 한 명 따져보면 저뿐 아니라 모두가 특별하죠. 이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제게는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어요. 이전까지 연기 활동이 제 전부였다면, 이제는 직업이 된 거죠. 저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었고요.
그렇다면 연기할 때 부담감이 전보다 훨씬 덜할까요?
그건 또 아니에요. 물론 아직도 있죠. 혹시 일할 때 부담감 전혀 안 느끼세요?
아, 바보 같은 질문이었네요.(웃음)
저도 똑같습니다.(웃음) 부담감 자체가 사라질 순 없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이 나만 바라보는 현장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것을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거죠. 부담감이 책임감으로 고쳐질지, 아니면 중압감으로 악화될지는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경우에는 어떤 편이에요?
쉽지 않지만, 책임감으로 가져가려고 노력해요. 그런 부분에서 약간은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연기자는 혼자 힘만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는 직업이잖아요. 함께 합을 맞추는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니 더 믿을 수 있고, 그만큼 좋은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게 됐어요.
전역하고 나서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컸을 텐데, 중심을 지키는 비결이 있을까요?
처음에 전역을 하고 세상에 나왔을 때 무척 떨리던 기억이 나요. 카메라 앞에 설 때도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불안했고요. <사냥개들>대본 리딩을 할 때도 마음 한편에는 항상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정말 멋지게 소화한 작품인데, 의외의 고백이네요.
다행히 결과물이 잘 나왔죠. 물론 제가 잘해서, 잘나서가 아니에요. 이게 맞나, 저게 맞나 혼란스러울 때 김주환 감독님이 계속 중심을 잘 잡아주셨어요. 그 옆에는 (이)상이 형이 늘 함께 있었고요. 돌이켜보니, 부담이 책임감으로 바뀐 이유도 이분들 덕분인 것 같아요. ‘내 것만 잘하자’라는 마인드가 아닌 ‘현장에서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겠다’ 는 마인드로 바뀌었어요.
오른쪽_ 로고 자수 장식 집업 재킷 Callaway Apparel.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건 결국 잘 성장했다는
표식 같아요. 여러 가지 의미의
성장이 있지만, 스스로 여유가 생겨야
주변 사람을 챙길 수 있으니까요.
‘좋은 본보기’라, 결국은 ‘좋은 시너지’를 일컫는 거겠죠.
비단 연기뿐 아니라 모든 직업에서 현장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갑자기 현장에서 연기를 잘하고 싶다고 해서 (연기가) 잘 나타나는 건 아니잖아요. 올림픽 대표 선수가 그날만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것처럼요. 평소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고 노력했느냐에 따라 현장에서 본모습을 발휘하는 거겠죠. 결국 지금 당장 현장 앞에 나섰다고 해서 예민하고 불안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에요. 항상 최고 연기를 선보이기보다는, 평소에 준비한 모습을 긴장하지 말고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사냥개들>이 엄청난 호응을 받은 이유가 여기 있었네요.
감사합니다.(웃음) 하지만 <사냥개들>은 모두가 정말 뜨거운 노력으로 일궈낸 작품이에요. 그래서인지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을 때도 마음이 뭉클했어요. 우리끼리는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무 잘 아니까요. 그리고 시청자들도 그 노력을 알아주신 것 같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스스로 작품의 인기 요인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사냥개들>은 꼬지 않고 정공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품이에요. 그렇기에 ‘주인공이 나오면 해결해줄 거다’라는 대중의 믿음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죠. 간단한 스토리 안에서도 화려하고 직관적 액션이 촘촘히 갖춰져 있고요. 주인공 ‘김건우’가 ‘흑화’하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해요. 대부분의 복수극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어느 정도 인간성을 잃어가잖아요. 하지만 김건우는 그렇지 않죠. 화가 나서 적을 처단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결코 선한 마음과 정의로움을 저버리진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김건우’는 비현실적이기에 오히려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모두에게 끝까지 희망을 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주고 싶었거든요. 최근에 제가 본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PART ONE>속 톰 크루즈처럼요. 그 작품에서 ‘이단 헌트’는 몇십 년 동안 정의로움을 잃지 않고 등장하잖아요. 대중들이 ‘이단’에게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는 시간이 흘러도 정의로움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냥개들>속 김건우도 비슷한 매력의 캐릭터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 삶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모두가 꿈꾸는, 어딘가에 있어줬으면 하는 그런 캐릭터요.
스파이크리스 골프화
모두 Callaway Apparel.
오른쪽_ 바서티 재킷과 빅 아가일 풀오버,
정말 멋지게 소화한 작품인데, 의외의 고백이네요. 아이보리 팬츠 모두 Callaway Apparel.
넷플릭스로 <사냥개들>을 보는데, 연관 작품으로 영화 <마스터>가 뜨더군요. 그 날 선 얼굴이 동일한 배우 안에서 나타났다는 게 새삼 놀라웠어요.
정말 어릴 때죠.(웃음) 지금 그 모습을 보면 또 신기하기도 해요.
<마스터>의 냉혹한 얼굴과의 <사냥개들>의 선한 얼굴 등 다양한 모습을 소화하고 있는데, 스스로는 어떤 게 가장 몸에 잘 맞는다고 느끼나요?
예전에는 자신 있게 하나만 꼽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떤 게 더 편하다고 말하기가 어렵네요. 연기를 수행하는 스펙트럼이 넓어진 만큼 도달해야 하는 목표치도 높아진 거죠. 나 속의 냉철한 연기를 보여줄 때 크게 고민했던 적은 없었거든요. 하지만 이젠 연기 하나를 보여줄 때도 더 어렵고 신중해지는 것 같아요.(웃음) 더 다양한 역할과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차기작 넷플릭스 <Mr.플랑크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Mr.플랑크톤>은 가족을 찾아다니는 이야기예요. 아빠를 찾아다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품이죠. 로맨틱코미디와 로드 무비를 반반 섞은 느낌이랄까. 우리나라에서 많이 접하지 못한 장르인 만큼 보는 내내 신선한 느낌일 거예요.
코듀로이 팬츠 모두 Callaway Apparel.
배역에 몰입하는 루틴이 있다면 소개해줄 수 있나요?
일단 감독님과 자주 소통하는 편이에요. 제가 보지 못한 부분을 감독님은 세심하게 짚어주시거든요. 그러고 나선 대본을 보면서 캐릭터 분석을 시작하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현장에 나가 직접 부딪혀보는 거예요. 혼자 백날 생각하고 고심하는 것보다 현장에 나가 하나씩 부딪혀보면 쌓아가야 할 것이 나타나더라고요. 작품과 캐릭터는 저 혼자 만들어나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매 순간 느끼고 있어요.
KBS 드라마 <매드독>으로 신인상을 수상한 지 5년 정도 지났더군요. 당시 수상 소감으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냄새 가득한 배우가 되겠다”고 한 말 기억해요?
그랬죠. 지금은 그 목표가 더 확고해졌어요. 좀 더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배우이자 ‘사람 우도환’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물론 부족한 부분이 많은 만큼 쉽지 않겠지만, 그때의 마음가짐을 잃고 싶지는 않아요. 더 성장해야죠.
스스로 세운 ‘성장의 기준’ 같은 게 있을까요?
마음의 여유가 커졌다는 게 결국 잘 성장했다는 표식 같아요. 여러 가지 의미의 성장이 있지만, 스스로 여유가 생겨야 주변 사람을 챙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죠.
오늘 대화하면서 느낀 건데, 대답 하나하나에 확신을 갖고 말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요? 내가 믿는 것에 대해서는 꾸밈없이 전달하는 편이에요. 나 자신을 돌이켜 볼 때 그런 느낌이 들어요. 평범하지만 떳떳한 사람, 그게 저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