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의 바람은 이루어진다
정우에게 ‘괜찮은 어른이란 어떤 건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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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에 이어 정우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짱구>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개봉 날이 다가오니 긴장된다. <바람>은 우연한 계기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 제작까지 해서 사람들이 좋아해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짱구>는 <바람> 덕분에 탄생한 작품이니 17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너무 궁금하다.
마음가짐이 확실히 다를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도 그렇고 사람들이 바라는 건 <바람>에서 느낀 향수라고 생각한다. 당시를 떠올리면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기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그런 기분으로 만들고자 최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
부산 촌놈 짱구가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에서 사투를 벌이는 자전적 이야기다. 과거의 나를 연기하는 건 어떤 기분인가? 연기니까 특별히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실존 인물 짱구와 영화 속 짱구는 다르다. 영화는 각색이 필요한 만큼 실제 짱구보다 자극적인 요소가 많다. 그 과정에서 짱구라는 캐릭터의 중심점을 잃지 않기 위해 오성호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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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짱구는 어떤 편인가? 학창 시절이 궁금하다. 영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진 못했다. 학교 끝나면 바로 학원 갔다가 집에 와서 과외 수업을 들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재밌는 학창 시절을 보내진 않았다.
영화 짱구와 실제 짱구의 자아가 충돌하는 부분도 많았을 것 같은데. 촬영 내내 부딪혔다. 후반부에 짱구의 진심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비로소 하나가 된다.
어떤 장면인가? 장항준 감독이 “김정국(짱구) 씨는 연기를 왜 하는 겁니까?”라는 대사를 던지는데, 그 순간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합쳐지는 기분이 들어 묘한 감정을 느꼈다. 영화 흐름상 진지한 게 어울리지 않아 유머러스하게 풀었는데, 배우로서 막연한 시기에 기회를 준 은인과 함께하니 의미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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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 그러니까 배우 정우의 커리어를 논할 때 장항준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인생 첫 영화 오디션이 장항준 감독의 <불타는 우리 집>이다. 장항준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데, 투자 문제로 무산됐다. 그 인연으로 1년에 한두 번씩 연락하고 지내다 새롭게 준비한 작품이 <라이터를 켜라>였고, 나는 부하 7을 맡았다.(웃음)
장항준 감독은 이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짱구>에 특별 출연할 당시 한창 <왕과 사는 남자> 촬영 중이라 분주해 보였다. 감사의 마음으로 커피차를 보냈는데, 이렇게 잘될 줄 알았으면 더 잘할 걸 싶더라.(웃음)
짱구는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아니다. 작은 단역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대기만성형이다. <짱구>는 성공담이 아니다. 모든 무명 배우처럼 오디션 낙방이 일상이고, 처음엔 무슨 역할이라도 맡는 것이 소원이었다. ‘찌질한’ 사회 초년생이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현실에 발 딛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래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혹은 청춘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 기억 남는 오디션이 궁금하다. 영화 <실미도> 오디션을 본 적 있다. 수영이 필수 조건이었는데, 일단 할 줄 안다고 거짓말하고 3일 만에 자유형을 마스터했다. 최종 합격 후 알고 보니 실미도에 끌려가는 대원 50인 중 한 명이었고, 대사가 한마디도 없었다. 그 역할 하나를 위해 1년의 촬영 기간 동안 삭발을 유지할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 그때 나도 천만 배우가 될 수 있었는데, 조금 아쉽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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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타이밍이다. 되돌아가거나 그리운 순간은 없나? 너무 힘들어서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얼마 전부터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는가 보다. 남편이, 아빠가 되어보니 항상 나보다 큰 어른이라 여겼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됐다. 아빠와 아들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얼마나 어깨가 무거웠을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애틋했을지 알 것 같다.
아버지도 배우를 꿈꾼 걸로 안다. 맞다. 아버지가 항상 도와주신다고 생각하며 산다. 얼마 전 아버지 묘를 이장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아버지가 지금 중앙대학교에 합쳐진 서라벌예술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이더라. 마침 중앙대의 협조로 3, 4일 정도 <짱구>를 촬영했다. 아까 말한 장항준 감독과 오디션 보는 장면도 거기서 찍었고. <짱구> 제작사 대표님도 중앙대 출신이다. 우연치고는 신기했다.
알게 모르게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의 중심에는 늘 아버지가 존재한다. 아버지와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가. 더 재밌는 작품을 만나고 싶고, 도전해보지 못한 역할을 소화하고 싶은 배우로서 원동력이기도 하다.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을 기억하나? 막연하게 배우를 꿈꾸었는데, 당시 아버지가 아프셨다. 아버지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머니에게 “정우는 배우를 시켜야 할 것 같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냐. 신중히 판단해서 서울에 보내자”라고 말씀하신 듯하다.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처음 마주한 서울 풍경이 배우로 마음먹은 순간의 첫 장면이다.
서울의 첫인상은 어땠나? 연기 학원이 많은 강남 압구정과 신사동에 갔는데, 휘황찬란한 차림의 사람도 많고 건물도 높으니까 다른 세상 같았다. 아는 사람도 없는 데다 너무 크고 넓은 곳이라 마치 유학 온 기분이었다.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하숙집에서 혼자 지낸 걸로 안다. 혼자 잠을 자는데, 세상에 홀로 떨어진 기분을 처음 느꼈다. 부산에 살 때도 친구 집에서조차 잔 적이 없었으니까. 이제부터 모든 것이 실전이구나. 어리바리한 순간 난 죽는다고 생각하며 잠든 것 같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었기에 사연이 있는 연기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평온하고 따뜻한 감정 이면에는 반드시 불안함과 슬픔 같은 감정이 뒤따른다. 그런 것들을 느껴야 어느 순간이든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로 연기할 수 있다. 어릴 때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사랑도 받았고, 홀로 치열하게 발버둥 쳐봤기에 내 연기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연기에 정해진 답은 없다. 타인에게 의견을 구하기보다 혼자 고민하고 찾아가는 편일 것 같다. 예전에는 몰라서 많이 물어봤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연기에 대한 나의 확신과 추진력 있게 끌고 가는 힘이다. 내가 어떤 연기를 했는지 모니터링하면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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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보낼 때 나만의 집중법 혹은 장소가 있나? 아무도 없는 공간에 있어야 집중이 잘되는 건 아니다. 단역 생활을 할 때는 대사가 한두 마디밖에 없어 몇백 번, 몇천 번 곱씹으며 날을 세웠는데, 지금은 러닝머신 위에서 가볍게 걸으며 대사를 숙지한다. 각각의 상황에서 어떤 감정일지 고민하면서 폭넓게 보려 한다.
‘내 얼굴이지만 나도 처음 보는 얼굴이다’ 싶은 장면이 있다면? 영화 <뜨거운 피>와 <이웃사촌>을 찍을 때 내 얼굴에서 다른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이건 내가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고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좋은 연출자를 만났을 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을 꺼내는 것 같다. 배우 혼자 그런 영역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서른 마흔다섯 살’ 같은 대사는 도대체 어떻게 탄생하는 건가. 따발총처럼 ‘서른 마흔다섯 살이다. 와?’라고 뱉는 장면은 종종 찾아보게 된다. 부산 사람들은 다 쓰는 말이다.(웃음)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살아 있네~”라는 대사처럼.
<짱구> 예고편을 보니 괜찮은 어른이 되겠다는 약속을 했더라. 괜찮은 어른이란 어떤 건지 고민해봤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적어도 그걸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괜찮은 어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