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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에게 공백을 묻다

돌고 돌아 다시 이희준의 세계로.

오버사이즈 재킷 Off-White™,
볼드한 실루엣의 실버 네크리스 Heradi,
블랙 파베 세팅 링 Marsmark,
실버 이어 커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젯밤 당신이 ‘창욱’으로 분한 영화 <해무>를 다시 봤다. 이전에 본 서늘한 연기가 자꾸 생각나서.
꽤 오래된 작품인데. 당시 작중 선원처럼 촬영만 끝나면 연거푸 술 마시던 기억이 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 모여서.(웃음) 다시 만난 ‘창욱’은 어땠나?

여전히 새로웠다. 기존의 소시오패스적 영화 캐릭터와는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서글서글하게 웃다가도, 욕망에 눈이 멀어 오랜 시간 함께한 동료도 손쉽게 죽이는 인물이다.
그래 보이긴 할 거다. 오죽하면 제작 담당이던 봉준호 감독님도 “희준 씨, 이 배역 맡으면 이제 CF 못 찍을걸?” 하고 말씀하셨으니까. 당시 KBS2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출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꽤 (광고 제의가) 많이 들어올 때였다.

이번에 <살인자ㅇ난감>에서 맡은 ‘송촌’은 또 다른 방식의 악역일 듯한데. 커뮤니티를 돌아보니 당신의 캐스팅을 환영하는 댓글이 가장 많았다.
그런가? 부디 그 기대감에 부응해야 할 텐데.(웃음) 혹시 웹툰 원작을 접한 적이 있나?

물론이다. 명작 반열에 드는 웹툰이지 않나.
그러면 내가 원작 속 ‘송촌’보다 훨씬 어리다는 것도 알 거다. 작중 65세 노인을 연기했으니 거의 스무 살 차이다. 꽤 깜짝 캐스팅인 셈이다. (손)석구나 (최)우식이는 딱 봐도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지 않나. 그저 큰 기회를 주신 감독님께 감사할 뿐이다.

작품의 분위기를 생각해볼 때 tvN 드라마 <마우스>에서 열연한 모습이 언뜻 겹친다. 비슷하게 느낀 점은 없었나?
분위기를 보면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더 힘든 건 역시 <마우스> 촬영이라. 물론 <살인자ㅇ난감>도 열심히 임한 작품이지만, 그 부담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아, 단순히 겉모습을 준비하는 걸로만 따지면 <마우스>가 편했다. 65세인 ‘송촌’으로 분장하는 데 2시간, 분장을 지우는 데 1시간 30분 소요됐다. 매일 도합 3시간 반이 걸렸어도 즐겁게 임한 거다. 보통 화학 분장을 하면 꼭 한 번쯤 피부 트러블이 난다고 하던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더라. 2시간 만에 내가 노인 역할로 변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고.

늘 머리를 식히고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연기만큼 나를 강하게 몰입시키는 요소는 아직 못 찾았다.

피크트라펠 롱 코트와 블랙 더비 슈즈
모두 Dolce&Gabbana,
스트라이프 패턴 블루 셔츠 Acne Studios,
유틸리티 카고 팬츠 EENK,
골드 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의외다. <마우스> 촬영에서 힘든 부분은 뭐였나?
무엇보다 내 배역인 ‘고무치’가 소화하기 힘든 캐릭터였다. 그를 간단히 소개하면, 어린 시절 부모님
이 살해당한 뒤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형사다. 처음에는 그 배역을 소화하기 힘들 것 같아 한사코 거절했는데, (이)승기가 “희준이 형이 작품 안 하면 나도 안 한다”고 했다더라. 그때는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이였는데. 그로 인해 제작이 무산될 상황에까지 놓였다. 승기의 말을 접한 뒤 ‘누군가 날 이렇게 필요로 한다면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제의를 수락했다. 그러고 나선 정말 열심히 한 기억밖에 없다. 승기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과도 금방 친해져 분위기도 좋았다.

<살인자ㅇ난감>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작품을 연출한 이창희 감독과는 첫 만남인데, 서로 호흡이 잘 맞던가?
물론이다. 감독님과 함께 작업한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늘 배우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시고, 아이디어를 내면 매끄럽게 수용해주셨다. 배우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줬다고 해야 할까. 작품 촬영이 공동 창작의 영역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해줬다. 아, 말하다 보니 나도 그런 감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깨달음을 안겨줘서 고맙다.(웃음)

그러고 보니 이전에 단편영화 <병훈의 하루>를 연출한 적이 있더라.
맞다. 3월에 단편영화 하나를 새롭게 연출해보려고 한다. 하나 써놓은 게 있다.

영화에 대한 욕심이 엄청나 보인다.
배우로든, 감독으로든. 물론 욕심도 욕심이지만,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안 만들 것 같아서.(웃음) 내가 만들어서라도 보고 싶은 영화인 거다.

시간 여유는 충분한가?
물론 바쁘다. 3월부터 8월까지 연극 <그때도 오늘>, <꽃, 별이지나> 무대를 연달아 선보인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인데, 어떻게든 (일정을) 만들어봐야 하지 않겠나.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영화 <황야>, <보고타>, 드라마 <지배종>,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포함해 공개할 작품이 여섯 편가량
남았다고 들었다. 긴 시간 준비해온 걸 한꺼번에 꺼내놓는 느낌이겠다.

아무래도 그렇다. 작년에는 회사와 상의 후 1년을 쉬었다. 이미 공개할 작품이많은 상황에서 무리하기보다는 또 다른 경험을 해보는 편이 더 좋을 듯싶었다. 그러고 나서는 주로 여행을 다녔다. 미국, 인도, 네팔, 튀르키예, 베트
남까지 다 가보고 싶던 곳들이다.

그곳에서 새롭게 느낀 것이 있나?
일상의 소중함을 가장 절실하게 느꼈다. 결국 내게 일상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뜻한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악연>을 촬영하고 있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드라마 한 작품을 위해 100명가량 모여 준비하고 만들어가는 점이 경이롭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연기 자체도 전보다 더 신나게 즐기며 임하는 중이다. 1년의 휴식이 없었다면 아마 이런 감정을 느끼기 힘들었겠지.

나와 거리가 먼 캐릭터인 만큼 더 재밌는 것 같다.
악인을 연기할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사람이 저렇게 말해도 돼?’라는 질문을 스스로 품어보다가도,
그 배역을 연기하다 보면 처음 겪는 놀이처럼 새롭다.

사실 이전에도 충분히 연기를 즐기는 듯 보였는데. ‘연기 중독자’라는 말도 자주 듣지 않나.
그런가?(웃음) 원체 소처럼 계속 일하는 편이라 그래 보일 수 있겠다. 이전에도 물론 즐거웠지만, 지금은 부담을 한결 내려놓은 느낌이다. 그저 잘 해내고 싶었던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러면 다시 작품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번에 선보일 영화 <황야>에서는 의사 역을 맡았다. OCN 드라
마 <키마이라> 이후 3년 만이다.

같은 의사 역할이지만, 성격에서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키마이라> 속 ‘이중엽’이 깔끔한 엘리트 의사의 모습이라면, <황야> 속 ‘양기수’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을 위해 비도덕적 실험까지 구상하는 의사다. 그 양면적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

<황야>에서 기대할 만한 포인트는 무엇인가?
허명행 무술감독님의 입봉작인 만큼 액션 하나는 말할 것이 없다. 최상위 수준의 액션일 테니 다들 깜짝 놀라지 않을까 싶다. 모니터링하다 나조차도 놀랐으니까.(웃음)

돌이켜보면 참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이희준’ 하면 영화 <마약왕>, <1987>에서 털털하고 남성적인 캐
릭터가 먼저 생각나지만, 영화 <결혼전야>와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능글맞은 연기도 잘 어울렸다. 스스로는 어떤 스타일이 몸에 더 맞다고 생각하는지.

몸에 더 잘 맞다기보다는 실제 성격이 후자 쪽에 가깝다. 그중 <넝쿨째 굴러온 당신> 속 ‘천재용’은 나와 싱크로율이 가장 잘 맞는 캐릭터다. 그래서 다들 그 캐릭터를 더 재밌게 봐주신 것 같다.

연기 생활을 돌아볼 때 그 작품 덕을 많이 봤다고 느끼는지.
물론이다. 그래서 당시 극본 담당이던 박지은 작가님을 평생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이후에도 드라마 출연 제의 건으로 직접 연락을 주신 적이 있는데, 그 작품이 바로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이다. 대본도 안 보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민호 씨 역할인 줄 알았지만 그래도 뭐, 감사히 촬영했다. 아, 오해하지 마라. 농담이다.(웃음)

실제 성격이 ‘천재용’에 가깝다면 강렬하고 호전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때 쉽지 않겠다. 정반대 성격이지 않나. 물론 쉽지는 않지만, 나와 거리가 먼 캐릭터인 만큼 더 재밌는 것 같다. 악인을 연기할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사람이 저렇게 말해도 돼?’라는 질문을 스스로 품어보다가도, 직접 그 배역으로 연기하다 보면 처음 겪는 놀이처럼 새롭다. 또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거니까.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일을 경험해보는 것이지 않나.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자연스레 <남산의 부장들>에서 경호실장 ‘곽상천’ 역이 생각난다. 당시 우민호 감독은 당신의 어떤 부분에서 신뢰를 느낀 걸까? 실존 인물과의 외양 차이가 꽤 날 텐데.
좋은 답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캐스팅 비화가 있다. 당시 우민호 감독님과 <마약왕>을 촬영 중이었는데, 끝나고 나서 단둘이 맥주 한잔하자고 하시더라. 그때 <남산의 부장들> 속 어느 ‘멋진 남자’ 역할을 맡아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게 ‘곽상천’이다.(웃음) 나중에 감독님께 캐스팅한 이유를 여쭤보니, <마약왕>에서 작중 송강호 선배와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셨다.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이)병헌이 형이랑 소위 ‘맞짱’을 뜰 후배 배우가 필요했던 거다. 그 부분에서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셨고.

여담이지만, 그때 체중을 25kg이나 불린 건 엄청난 선구안이었다. 그 덕분에 몰입감이 엄청났다.
고맙다. 감독님께 먼저 증량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리니 해보라고 하시더라. 먼저 제안한 만큼 살을 찌우지 않을 수 없었다.(웃음) 이후로 체격도 다소 커졌다.

이 작품으로 중견 배우로서 입지를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필요했던 폭발적 저력 같은데.
이 작품을 찍은 뒤 부일영화제에서 오랜만에 연기 관련 상을 받았다. 기분이 참 좋더라. 부모님은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닐 정도로 좋아하셨다. 앞으로 한 40개는 더 가져온다고 말해놓았는데, 최근 뜸해져서 큰일이다.(웃음)

오버사이즈 더블브레스트 재킷 Neu_In,
핑크 유틸리티 카고 팬츠 Instantfunk.

이전처럼 평범한 듯 재치 있는 역할에 다시 욕심이 생기진 않나? 최근 ‘센’ 역할을 많이 맡았으니까.
물론 다양한 연기를 많이 보여주면 좋겠지. 앞으로 공개할 작품 중 멜로 장르도 있다. 이상하게 감독님들은 멀쩡한 내 얼굴에서 악역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 같다. 뻔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강렬한 역할을 맡다 보면 촬영이 끝나고 공허함도 남겠다.
물론이다. 역할에 몰입한 직후 집에 가면 껍데기가 확 벗겨진 느낌이다. 작품이 아닌 일상 속 나는 초라하고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이지만, 거기서 공허함을 발견하는 거다. 일종의 정신 질환이라고 생각한다. 자극적인 순간을 극 중에서 너무 자주 체감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명상을 하거나 108배를 수행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자 노력한다. 배우가 아닌, 사람 이희준도 중요하니까.

언제부터 그런 감정을 느꼈나?
데뷔한 지 10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그래도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

결국 그만큼 연기에만 빠져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런 것 같다. 연기만큼 좋아하는 게 없다. 아니, 연기 말고는 좋아하는 게 없다고 해야 하나. 그게 문제다. 늘 머리를 식히고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골프도 치고 그림도 그려봤지만, 연기만큼 나를 강하게 몰입시키는 요소는 아직 찾지 못했다.

이만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배우들 중 연기 중독자가 아닌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맞다. 주위의 선배님들 중에도 본 적이 없다. 사실 중독되지 않고는 그 자리까지 올라설 수 없을 거다.(웃음)

그러고 보니 늘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작품을 소화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이병헌과 이성민, <해무>에서는 김윤석, <마약왕>에서는 송강호와 함께하지 않았나.
정말 운이 좋았다. 선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으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이전에 문성근 선배님께 “너희는 좋겠다. 좋은 선배들이 많아서”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이전과 다르게 지금은 따르고 싶은 선배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연기든, 인간 됨됨이든 말이다.

데뷔 16주년이라고 들었다. 이제 누군가에게는 롤모델이 될 만한 경력이다. ‘꼰대’가 아닌 롤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선 뭘 해야 할까?
글쎄, 연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후배들과 스태프들을 잘 챙기는 것 역시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느낀다. 후배들을 위해 어떤 연기자가 되어야 할지는 아직 내게 남은 숙제다. 한번 잘 풀어봐야지.

에디터 박찬 사진 강혜원 헤어 박재경 메이크업 김정남 스타일링 박선용 디지털 에디터 손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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