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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을 읽다

나얼이 데뷔 24년 만에 그토록 원하던 공간을 마주했다. 자신의 첫 서브 레이블인 나음세 레코즈다. 그곳에서의 첫 음반 발매를 하루 앞둔 날, 베일에 쌓여 있는 나얼의 세계를 접했다.

앨범 커버 아트워크
Witnesses 1(LP Version), 180×136cm, Digital Collage on Paper, 2022.

마침 내일이 신보 <Soul Pop City>를 발매하는 날이네요. 서브 레이블 ‘나음세 레코즈(na’mm’se Records)’를 시작하는 기점이기도 하죠.

사실 거창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하고 싶은 음악을 꿈꾸다 보니 어느새 나음세 레코즈라는 출발점을 만들게 된 거죠. 대중성이라는 요소는 데뷔 직후 24년 동안 창작을 하며 가장 크게 고민하는 부분이었어요. 지금부터 나올 결과물은 내가 영향을 받은 음악, 깊게 탐구해온 음악의 연장선상인 만큼 품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죠. 내가 듣고 자란 음악과 현시점 대중음악과의 이질감을 없애고자 한 것이 항상 목표였으니까요.

그 이질감이라는 건 결국 한국 대중가요와 올드 팝 사운드의 장르적 경계를 의미하는 거겠죠.

맞아요. 좋아하던 올드 팝을 듣다가 요즘 가요를 들을 때 그런 느낌을 크게 받곤 해요. ‘어떤 장르가 옳다’, ‘어떤 나라의 음악이 옳다’ 이런 개념의 의견은 아니에요. 다만 내가 사랑했던 미국의 1970년대, 1990년대 음악을 우리나라 말과 정서를 바탕으로 새롭게 전개하고 싶은 거죠. 나음세 레코즈의 본질적 방향이기도 하고요.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부르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한국 사람이라면 그런 차이를 없애보는 건 어떨까 싶었어요.최고 음악을 만들 순 없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죠.

레이블을 설립하지 않고도 신곡을 공개할 수 있었을 텐데, 새로운 공간에서 도약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요?

이전에도 항상 시도는 해왔지만, 내 공간에서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드는 건 또 다른 의미니까요.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롯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고요.(웃음)

나얼이란 가수에게 ‘대중의 눈치를 본다’는 답변을 들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계속 봐왔어요(눈치를). 당연히 안 볼 수가 없죠.(웃음)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수준의 음악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저 또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창작하는 과정에서 대중과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음악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요. 24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고 싶지 않은 음악을 해온 건 아니지만, 이젠 좀 더 내 음악관에 집중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레이블 이름을 듣고 KBS 2FM에서 약 3년간 방송했던 <나얼의 음악세계>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음악 취향을 공유했던 그 시간을 정말 소중히 여기는구나 싶더라고요.

물론 소중했죠.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공부하는 시간이었지만, 과거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음악적 상징성을 계승했다는 것 또한 제게 큰 의미였어요. 그렇다고 어떤 거창한 주제 의식으로 (나얼의 음악세계를) 레이블 이름에 활용한 건 아니지만요. 로고를 직접 만들다 보니 ‘na’mm’se’라는 타이포그래피가 예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대로 쓰게 된 거예요.(웃음)

‘음악세계’라는 레이블은 결국 ‘평소 하고 싶었던 음악을 보여준다’라는 포부로 생각해도 될까요?

네. 이곳에서는 여과 없이 순수한 음악만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예전부터 꿈꿔온 그림이라고 할 수 있죠. ‘뮤지션이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음악을 계승해 창작물을 보여준다’라는 연결고리가 자연스럽고 이상적이잖아요. 신보 <Soul Pop City>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요소로만 뭉쳐진 창작물인 거죠. 스스로도 내 음악이 엄청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거든요.(웃음) 어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을 나만의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 그런 작업에 큰 흥미를 느끼곤 해요.

앞서 기획한 <Ballad Pop City>에서 후배 성시경과 태연을 낙점한 이유도 궁금했어요.

두 분 모두 각자 영역에서 대단한 아티스트지만, 콕 집어 프로젝트 협업을 제의한 건 아니에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거죠. 성시경 씨는 거의 15년 만에 봤고, 태연 씨는 10년 만에 본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대중에게 사랑받는 가수는 다 이유가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온리 원(Only One)’이라고 해야 할까요. 인간은 누구나 온리 원이잖아요. 똑같은 사람은 없으니까. 이 가수들은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탁월한 목소리를 지닌 거죠. ‘누가 더 잘한다’, ‘누가 더 못한다’ 하는 개념을 떠나서요.

운동선수들의 퍼포먼스가 나이 들수록 쇠락하듯, 가수의 가창력에도 ‘에이징 커브’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발성의 변화를 체감한 순간이 있나요?

사실 물리적 현상이다 보니 시간의 영향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웃음) 발성 또한 성대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내는 과정이니까요. 예를 들어, 가성의 경우 지금보다 훨씬 깨끗하게 잘 나온 것 같아 아쉽긴 해요.

그런데도 2019년 브라운 아이드 소울 콘서트에서 믿기지 않는 저력을 보여줘 화제가 됐어요.

나이가 드는 만큼 목소리의 힘은 떨어질 수 있지만, 연륜을 무시할 순 없죠. 가장 건강했을 때의 목소리는 결코 낼 수 없겠지만, 더 깊이 있는 목소리를 발견했다고 믿고요. 이제 저도 늙어가는 시점이고, 지금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음악이 있기에 발성의 변화가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때로는 그 향미에 질릴 때가 있잖아요. 데뷔한 지 어느덧 24년이 흘렀는데, 음악 활동이 재미없게 느껴진 때는 없는지 궁금해요.

그보다는 힘이 빠질 때가 있죠. 전혀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성의 없이 평가할 때. ‘내가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나?’ 싶을 때처럼요.주로 온라인상의 댓글을 읽다가 그런 감정에 빠질 때가 많아요.

댓글을 읽어보는 줄은 몰랐어요. 무심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요.

힘을 얻기 위해 보곤 해요. 개인적으로 듣고 싶은 말들이 있어요. 연애할 때도 상대방이 작은 부분을 공감해줄 때 큰 호감을 느끼잖아요. 그런 것처럼 교감할 수 있는 리스너를 댓글로 접하고 싶은데, 사실 많지는 않죠.

그러면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음악 활동이 재밌는 거예요? 에너지가 엄청나네요.

그렇지도 않아요.(웃음) 일이 되면 뭐든 힘들죠. 저는 공연 보는 걸 무지 싫어해요. 관객의 입장에서 보는데도 스트레스를 그대로 받아요. 공연하는 사람에게 나를 대입하는 거죠. 얼마나 힘들고 부담이 될지 아니까.

가수로서 매 순간 공연장에 올라갈 때마다 쉽지 않겠어요.

그냥 어떻게든 하는 거예요. 사실 가능하다면 안 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팬들이 공연장에서의 내 모습을 기대해주는 건 물론 감사한 부분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무대에 서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체질이에요. 제 MBTI가 INFP잖아요.(웃음) 공연하다 보면 좋은 순간도 있지만, 무대에 오르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제게는.

앨범 내지 이미지
1985, 25.5×18.5cm, Conte and Permanent Marker Mixed on Paper, 2021.

음악을 듣는 것과 만드는 것, 둘 중 어떤 것에서 더 행복을 느끼나요?

둘 다 비슷하지만, 행복감의 종류가 달라요. (음악을) 만드는 게 더 힘든 일이긴 하죠. 그만큼 창작하는 기쁨이 엄청나지만요. 사람마다 인생의 목적이 다르다고 하잖아요. 저는 뭔가를 창작해야 인생에 대한 값어치와 목적을 비로소 느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는 거죠.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나얼은 작업할 때 완벽주의자로 꼽히곤 해요.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느낌이 오히려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 때가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느낀 곡도 있나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다른 분들의 편곡을 거친 후 새롭게 탄생하는 곡도 많죠. 어느 한 곡을 꼽을 수는 없어요. 모든 곡이 그런 건 아니지만요.

‘같은 시간 속의 너’의 경우에는 어땠나요?

그 곡은 생각한 느낌 그대로 나온 것 같아요. 편곡가에게 맡기는 시점부터 의도하던 부분이 확실했죠.

1990년대에 대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같은 시간 속의 너’를 썼다고 들었어요. 과거의 음악을 좋아하고 선망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좀 더 예전에 태어나 데뷔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도 하나요?

음, 1980년대에 성인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은 있었어요. 당시 아직 초등학생인 만큼 음악을 찾아 감상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요. 시대가 내뿜는 그런 로맨틱함을 느끼지 못한 거죠. 만약 그때 내가 성인이고 외국어에 능통해 해외 생활을 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워낙 좋아하는 시대인 만큼 다양한 상상을 해요.

경제적으로 풍족한 환경에서 음악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고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풍족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어요. 그냥 의정부 시골 애죠 뭐.(웃음) 돈을 벌기 시작한 건 서른 살 이후, 브라운 아이드 소울 3집 <BROWNEYED SOUL>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부터예요. 소속사와 문제도 많았고, 우리 집 빚도 갚아야 해서 여유가 없었죠. 예로 스물아홉 살 때쯤 논문 쓸 일이 있었는데, 컴퓨터 살 돈이 없어 PC방에 간 적도 있어요. 수중에 30만 원 정도 있었던 게 기억나네요.

시대에 대한 열망 때문인지 몰라도 나얼의 음악은 항상 같은 공간, 같은 공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람은 사춘기 때 들은 음악을 죽을 때까지 듣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게 솔직한 거라고 생각해요. 굳이 귀에 안 들어오는 음악을 트렌드라고 해서 억지로 소화할 마음은 없어요. 물론 그런 음악을 만들어낼 능력도 없고 만들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서 저는 사춘기 때 들은 이 음악을 생이 마감할 때까지 하고 싶어요. 누가 뭐라든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게 좋아요.

올드 R&B 넘버, 매니악한 세션을 꺼내 들었지만 근래의 행보를 보면 활동 반경을 훨씬 확장한 느낌이에요. 아이유의 ‘봄 안녕 봄’을 작곡한 데 이어,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MSG워너비의 ‘나를 아는 사람’을 작업했어요. 대중매체에서 더 자주 접하게 돼 행복해하는 팬이 많더군요.

성향이 변한 건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긍정적으로 임하는 편이에요. <놀면 뭐하니>의 경우 중창단 곡을 만들어달라는 내용으로 섭외가 들어왔어요. 제게는 ‘중창단’이라는 소재가 정말 소중한 가치거든요. 대중적 프로그램인 만큼 그 매력을 널리 알릴 수 있겠다 싶었죠. 방송에 출연할 줄은 몰랐지만요.(웃음)

그러고 보니 나얼이 속한 중창단,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신보를 기다리는 팬도 많아요. 팀의 하모니와 화음은 솔로 활동으로 메우기는 어려운 부분이니까요.

그렇죠. 복귀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멤버들과 논의하고 있는 중이에요. 팀 활동이다 보니 내 일정만 가능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곡 작업도 솔로 활동과 다르게 준비할 것이 많고요.

(인터뷰 전문은 <맨 노블레스> 3월 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video poster
에디터 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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