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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즐거움에 이르는 김우빈의 방향

LIVING RIGHT.

블랙 리넨 풀오버 셔츠와 화이트 팬츠, 가죽을 엮어 완성한
슬립온 슈즈 모두 Ralph Lauren Purple Label. 

오늘 야외 촬영인데, 다행히 날씨가 화창하네요. 어제 홍성 야구장에서 촬영했는데, 근처에 개나리가 활짝 피었더라고요. 꽃이 다 떨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봐야겠어요.

드라마 <기프트>를 촬영 중인가 봐요. 야구 좋아하나요? 사실 야구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극본이 워낙 재미있어서 선택했죠.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야구 드라마인데, 원작과 또 다른 새로움이 있을 거예요. 대본이 나올 때마다 챗GPT로 찾아가며 공부하고 있어요. 

배우들도 AI를 활용하는군요. 그렇죠.(웃음)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도 열심히 보고요. 제가 맡은 역할이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인데, 실제 경기에서는 감독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최강야구>는 감독의 시선에 따른 흐름을 볼 수 있고, 선수와 코치 사이에 오가는 대화도 확인할 수 있으니 많은 참고가 됩니다. 넷플릭스의 야구 다큐멘터리도 챙겨 보고 있어요.

말하는 표정이 신나 보여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건 항상 즐겁죠. 촬영 현장도 재미있고요. 이번 작품에 함께하는 친한 배우도 많고. 야구팀 학생들도 다 예쁘고 착한 동생들이에요. 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잊고 있던 초심이 생각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이던 친구도 있고, 실제로 야구 선수를 하다 연기자로 전향한 친구도 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또래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예요.(웃음) 

우빈 씨의 <스물> 같은 작품이 되겠죠? 맞아요. 그때 (강)하늘이, 준호도 또래인 데다 상황도 비슷했으니 나눌 수 있는 게 더 많았죠. 

그럼, 요즘 연기하면서 떠오른 옛날 기억이 있나요?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출연할 때 선배님들이 많아 정말 많이 긴장했거든요. 이 친구들을 보면 그때의 마음이 떠올라 농담도 던지면서 편하게 해주려고 해요. 

조언도 많이 해주는 선배인가요? 후배들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은 하지 않아요. 물어보면 알려주지만, 묻기 전에는 말하지 않죠. 감독님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마 선배님들도 그럴 거예요. 


크레스트 자수 장식 네이비 스웨터와 필립 릴랙스드 스포트 셔츠, 글렌 핸드 테일러드 리넨 팬츠, 알론조 플레이드 울 트위드 슬리퍼 모두 Ralph Lauren Purple Label. 

글렌 더블브레스트 재킷과 캐시미어 스웨터, 화이트 리넨 팬츠, 
해롤드 태슬 드라이빙 슈즈 모두 Ralph Lauren Purple Label. 

결국 촬영하는 기간이 제 삶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데, 왜 결과에 집착했을까 하는 걸 깨달았어요. 

공백기 이후 맡은 인물을 보면 <기프트>나 영화 〈무도실무관〉처럼 직업적 특징이 뚜렷하거나 개성 강한 캐릭터가 많아요. 장발의 지니를 보여준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와 영화 〈외계+인〉에서는 외형적으로도 파격적 변신을 선보였고요. 어느 정도는 의도한 선택이었나요? 모아놓으니 그렇게 보이네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어요. 그러다 보니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는 것 같고요. 무엇보다 이야기가 흥미로운 작품이죠.

본인이 생각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떤 건가요?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이야기요. 관객 입장에서 ‘이게 재미있을까’도 고려하고,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게 제 생각과 맞으면 더 흥미롭게 느껴져요. 따뜻하고 유쾌한, 정의로운 인물을 선택한다는 인상도 있어요. 이번 <기프트>에서 맡은 정민용 감독도 ‘답답할 정도로 착한 인간’이라고 설명되어 있더군요. 사람 김우빈의 변화와도 맞닿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글쎄요. 〈무도실무관〉은 직업이 흥미로워 선택한 게 맞아요. 〈외계+인〉에서 제가 지구를 구했지만, 현실의 진짜 영웅은 무도실무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저 역시 시나리오를 통해 그 존재를 알게 된 것처럼, 더 많은 사람이 그들의 노고를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처우가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그건 제 영역이 아니니까요. 〈다 이루어질지니〉는 지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니 흔쾌히 했죠.(웃음) 우리가 아는 알라딘의 지니는 아니지만, 양면성에 끌리기도 했고요. 또 김은숙 작가님과 다시 호흡을 맞추는 만큼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김우빈 씨의 선 굵은 마스크를 보면 악역을 탐내는 감독도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안이 안 들어와요? 제안은 들어오지만, 아직 인연이 닿은 작품이 없네요. 작품도 인연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캐릭터의 영향일 수 있지만, 지금의 김우빈은 잔잔한 호수 같은 느낌이에요. 반면 영화 <스물>이나 <친구 2>의 강렬한 연기 때문인지, 과거의 김우빈은 몰아치는 파도처럼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연기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나요? 아무래도 캐릭터의 영향으로 그렇게 비치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20대의 저는 확실히 에너지가 폭발했던 것 같아요.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평온해진 것 같고요.


크림 컬러 니트 재킷과 크루넥 티셔츠, 테일러드 스트레치 치노 쇼츠, 
웰링턴 페린 로퍼 모두 Ralph Lauren Purple Label.

스트라이프 크로셰 니트 폴로셔츠와 화이트 리넨 테일러드 팬츠, 스웨이드 소재 피셔먼 샌들 Ralph Lauren Purple Label. 

20대에는 어땠나요? 가만히 있지 못했어요. 잠깐이라도 시간이 비면 하루를 잘 못 보낸 것 같았죠. 몸이 피곤해야 제대로 산 느낌이었어요. 운동하고, 사람 만나고, 연기 연습하고, 아르바이트하고 나서 또 연기하고. 잠을 거의 안 잤어요. 쉬면서도 일 생각뿐이었거든요. 그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일과 삶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껴요. 요즘은 아무것도 안 하고 밥 먹거나 넷플릭스 보는 게 전부인 날도 많아요. 

그렇게 치열한 시간이 있었기에 <스물>의 치호와 <친구 2>의 성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요?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임에도 강렬한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잖아요. 모델 일을 하다 연기 수업을 받으면서 ‘이거다!’라고 직감했다고 했는데, 그 순간의 기억을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뭔가 특별한 순간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연기 수업을 받을 때 매일 혼났죠.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는데,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모델로 무대에 설 때 디자이너 선생님들에게 “이거 무슨 콘셉트예요?”라고 항상 물어봤어요. 옷만 바꿔 입고 걷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설정한 뒤 연기를 하며 걷는다고 생각했죠.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모델의 연장선처럼 느껴져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혼나면서도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는요? 전 오히려 선생님한테 “그럼, 숙제 더 내주세요”라고 해서 다른 친구보다 과제를 더 받곤 했어요.

데뷔 초 한 인터뷰에서 캐릭터에 대한 질문 100가지를 만든다고 했죠. 그 집념이 느껴지네요. 많은 배우가 하는 방식일 거예요. 저를 혼내던 그 선생님이 과제로 캐릭터에 대한 100개의 질문을 만들라고 했어요.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하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깊어지니 100가지도 부족하더라고요. 그러다 자서전 수준으로 인물의 서사를 만들게 됐고요. 그런데 이게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만의 상상으로 너무 깊어지면 매몰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이후로는 작가님이나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하고, 여지를 좀 열어두기 시작했어요.

그걸 깨달은 시점이 언제인가요? 2016년 영화 <마스터>와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를 할 때인 것 같아요. 특히 <함부로 애틋하게>의 이경희 작가님은 개인적으로 만나 밥도 먹던 사이라 편안하게 질문할 수 있었죠. 

김은숙 작가가 〈신사의 품격〉 당시 우빈 씨에게 “이 장면을 왜 썼는지 알고 연기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에요. 앞서 매일 혼났다고 했지만, 떡잎부터 남달랐던 건 아닐까요? 정말 감사한 말이죠. 김은숙 작가님뿐 아니라 의도가 자연스럽게 읽히는 작품이 있어요. 많은 설명이 없어도 이해되고, 의도가 보이거든요. 김은숙 작가님의 대본이 그랬어요. 저와 결이 맞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즐겁게 연기한 것 같아요.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정말 재미있게 연기했어요. 

그런 걸 합이 좋다고 하죠. 그래서인지 김은숙 작가님을 비롯해 오래되고 반복된 인연이 많아요. 많죠. <기프트>를 연출하고 있는 김규태 감독님과도 인연이 깊어요. <우리들의 블루스> 이후 두 번째 작품이고, 데뷔 초 오디션을 보던 시절부터 알았어요. 그때는 무서운 감독님이 많았는데, 늘 천사처럼 따뜻하게 말씀해주셔서 감동받은 기억이 납니다. 제가 복이 많아요.


실크 리넨 혼방 소재의 필드 재킷과 크루넥 스웨터, 블랙 쇼츠 모두 
Ralph Lauren Purple Label.
화이트 셔츠와 화이트 테일러드 팬츠, 알론조 플레이드 울 트위드 슬리퍼 모두 Ralph Lauren Purple Label.

의식적으로 좀 더 나은 행동과 선택을 하려고 해요. 그런 시간이 하루하루 쌓이면 어제보다는 좋은 사람, 좋은 배우가 되어 있겠죠. 

살면서 들은 조언 중 가장 인상 깊은 말은? 명절에 세배를 드릴 때 아버지가 항상 하는 말씀이 있어요. “즐겁게 일하고 재미나게 살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연기의 재미를 어디에서 찾으세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건 몇 주만 지나면 잊히잖아요. 영화관에 걸리는 시간도 길어야 한 달이고. 그러면 결국 촬영하는 기간이 제 삶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데, 왜 결과에 집착했을까 하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촬영 현장을 더 온전히 즐기려고 해요. 요즘은 동료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현장에서 밥 먹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아요. 

김우빈이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지금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요. 20대에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려 했다면, 지금은 정말 중요한 사람들만 곁에 남아 있습니다.

김우빈의 꿈은 ‘좋은 배우, 좋은 사람’이 되는 거죠. 의식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나요? 제가 도움을 받은 선배들에게 배운 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그렇게 행동하려 하죠. 후배들을 편하게 해주고, 현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다 챙길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소통하려고 노력합니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순간도 많잖아요. 매일이 그렇죠. 하지만 의식적으로 좀 더 나은 행동과 선택을 하려고 해요. 그런 시간이 하루하루 쌓이면 어제보다는 좋은 사람, 좋은 배우가 되어 있겠죠.

에디터 정유민, 이도연 사진 김희준 헤어 임철우 메이크업 이봄 스타일링 이혜영 어시스턴트 류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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