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킷을 벗어난 F1의 남자들. 그들이 선택한 네 척의 요트
TRACK TO SEA
모나코의 에르퀼 항구는 1년에 두 번 크게 들썩인다. 6월에는 F1 모나코 그랑프리가, 9월에는 세계 슈퍼 요트 업계의 주요 행사인 모나코 요트 쇼가 열리기 때문. 특히 그랑프리 기간이면 서킷을 낀 항구는 호화 요트로 빼곡해진다. 물론 그 자리를 얻으려면 값이 만만치 않다. 계류료는 요트 크기와 정박 위치에 따라 1만 유로에서 15만8000유로까지 다양하게 책정된다. 올해는 F1 드라이버의 새 요트가 유독 화제를 모았다. 샤를 르클레르가 홈 레이스를 한 달 앞둔 지난 5월 새 요트를 물에 띄운 것. 사실 F1 드라이버의 요트 취향은 오래전부터 서킷 밖의 또 다른 관심거리였다. 대회 기간이면 요트는 드라이버와 관계자들의 베이스캠프가 되고, 레이스가 끝난 뒤에는 파티와 비즈니스가 이어지는 또 하나의 패독으로 변한다. 속도를 업으로 삼은 이들이 바다에서 어떤 배를 골랐는지 들여다보면, 서킷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던 면모가 드러난다.
샤를 르클레르
주니어 포뮬러 무대인 GP3와 F2에서 연이어 챔피언에 오른 모나코 출신 드라이버. 2018년 자우버에서 F1에 데뷔해 이듬해 페라리로 이적했으며, 2022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를 기록했다. 2024년 모나코 GP에서 우승하며 1950년 월드 챔피언십 출범 이후 이 대회 정상에 오른 최초의 모나코 출신 드라이버가 됐다. 지금도 페라리에서 활약 중이다.

RIVA 102′ CORSARO SUPER 과거 리바 82′ 디바(Riva 82′ Diva)를 소유했던 샤를 르클레르가 새롭게 선택한 요트는 길이 30.24m의 리바 102′ 코르사로 수페르다. 이름은 자신의 레이싱 넘버 16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세디치(SEDICI)’. 앞서 소유했던 82′ 디바에도 같은 이름을 붙일 만큼 르클레르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세디치는 코르사로 수페르의 20번째 선체로, 미노티와 폴리폼의 가구부터 세부 마감재까지 직접 고르며 자신의 취향을 반영했다. 성능 역시 레이서의 선택답다. 넉넉한 생활 공간을 갖춘 30m급 요트지만, 16기통 MTU 디젤엔진 두 기를 탑재해 최고 28노트의 속도를 낸다. 선미에는 수면가까이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35m² 규모의 비치 클럽을 마련했고, 상부 갑판인 플라이브리지에는 바와 그릴, 야외 다이닝 공간을 갖췄다. 요트는 르클레르가 여름을 보내는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아내 알렉산드라 생 믈뢰, 반려견 레오와 함께 사르데냐에서 보낸 요트 휴가의 한때를 SNS에 공개하기도 했다.
RIVA 리바는 1842년 피에트로 리바가 이탈리아 이세오 호숫가 사르니코에 조선소를 세우며 시작됐
다. 브랜드의 황금기를 연 인물은 그의 증손자 카를로 리바다. 1950년대부터 디자이너 조르지오 바릴
라니와 협업하며 목재 런어바웃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1962년에는 리바의 상징과도 같은 아쿠아라마
(Aquarama)를 선보였다. 윤기 나는 마호가니 선체와 강력한 엔진, 유려한 디자인을 앞세운 아쿠아라마
는 소피아 로렌과 브리지트 바르도, 숀 코네리 등 당대 스타들이 즐겨 타며 리바라는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
켰다. 1969년 미국 휘태커에 매각된 뒤 1980년대 영국 비커스를 거쳐 2000년 페레티 그룹에 편입됐지
만, 클래식 런어바웃에서 현대적 플라이브리지 요트까지 이어지는 우아한 실루엣은 여전히 리바를 상징하
는 디자인 언어다. 지난 6월, 리바는 브랜드 역사상 가장 큰 모델인 리바 54메트리(Riva 54Metri)를 공개
했다. 전장 54.83m의 새로운 플래그십으로 선체와 상부 구조를 모두 알루미늄으로 제작했으며, 총톤수는
500GT 미만이다. 54m급 슈퍼 요트까지 건조한다는 건 오늘날 리바의 위상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맥스 페르스타펜
2015년 17세에 F1 역대 최연소 드라이버로 데뷔한 뒤 이듬해 레드불에 합류해 첫 경기인 스페인 GP에서 우승하며 역대 최연소 그랑프리 우승 기록을 세웠다. 2021년에는 첫 월드챔피언을 거머쥐었고, 2024년까지 4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특히 2023년에는 22경기 중 19승을 거두며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MANGUSTA GRANSPORT 33 맥스 페르스타펜이 2025년 초 인도받은 망구스타 그란스포르트 33은 길이
33.3m의 고성능 모터 요트다. 오버마린이 건조한 그란스포르트 33 시리즈의 10번째 선체로, 페르스타펜은 자신을 상징하는 사자에서 착안해 ‘언리시 더 라이언(Unleash the L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외관은 이탈리아 요트 디자이너 알베르토 만치니가 맡았다. 망구스타 특유의 스포티한 성능도 놓치지 않았다. 1000마력의 볼보 펜타 D13 엔진 네 기와 볼보 펜타 IPS 1350 추진 시스템을 조합해 최고 약 25노트의 속도를 낸다. IPS는 선체 아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포드에 프로펠러를 결합한 추진 시스템으로, 효율적인 동력 전달과 정교한 조종을 돕는다. 페르스타펜이 F1 데뷔 때부터 2021년까지 사용한 레이싱 넘버 역시 33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델명도 묘하게 그와 어울린다.
MANGUSTA 망구스타는 1985년 발두치 가문이 설립한 이탈리아 오버마린 그룹에서 출발했다. ‘망구스타’는 이탈리아어로 몽구스를 뜻한다. 코브라를 상대하는 몽구스처럼, 당시 고속 오픈 요트 시장의 강자였던 테크노 마린의 ‘코브라’에 맞서겠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브랜드의 전환점은 스테파노 리기니가 디자인한 망구스타 80이다. 이전까지 오픈 요트는 속도를 위해 실내 공간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했지만, 망구스타는 큰 선체와 넉넉한 공간에 스포츠 보트 성능을 결합하며 ‘맥시 오픈’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현재는 맥시 오픈 요트를 비롯해 속도와 장거리 항해 능력을 결합한 그란스포르트, 넓은 공간과 장거리 항해에 초점을 맞춘 오셔노까지 3개의 라인을 전개한다.
에이드리언 뉴이
영국 출신의 F1 엔지니어. 공기역학에 대한 독보적 이해를 바탕으로 윌리엄스와 맥라렌, 레드불 세 팀에서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다. 세 팀에서 챔피언 머신을 설계한 디자이너는 그가 유일하다. 2025년 애스턴 마틴 아람코에 매니징 테크니컬 파트너로 합류했고, 2026 시즌부터 팀 대표를 겸하고 있다.

OYSTER 885 수십 년간 정상급 F1 머신을 설계해온 에이드리언 뉴이가 바다에서 원한 것은 속도가 아니었다. 레드불 레이싱의 최고 기술 책임자였던 그가 선택한 요트는 길이 27.1m의 오이스터 885 시리즈 II다. 요트를 타고 세계를 일주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2023년 주문한 배다. 레이싱카 설계자답게 건조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조종석과 휴식 공간에 그늘을 만드는 하드톱 비미니에 태양광 패널을 적용하고, 선미에는 맞춤형 접이식 스윔 플랫폼을 더하는 등 사양을 세심하게 조율했다. 뉴이는 2024년 모나코 요트 클럽에서 열린 대담에서 오이스터에 매료된 이유 중 하나로 ‘항해의 순수함’을 꼽았다. 바람과 자연의 힘으로 움직이는 항해 자체에 끌렸다는 이야기다. 수십 년간 속도를 좇아온 레이싱카 엔지니어가 바다에서 택한 것은 더 큰 엔진이 아니라 돛이었다.
OYSTER 영국 기반의 오이스터는 1973년부터 장거리 대양 항해를 위한 세일링 요트를 전문적으로 만들어왔다. 오이스터의 가장 큰 매력은 2년마다 열리는 오이스터 월드 랠리(Oyster World Rally)다. 오이스터 오너들이 약 16개월 동안 2만7000해리, 약 5만km를 항해하며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프로그램으로, 정원은 30척이다. 지난 1월 안티과에서 출발한 2026-2027 랠리에는 50피트부터 90피트까지 23척이 함께했다. 조선소가 항해 준비부터 물류, 기술 지원, 기항지 계획까지 전 과정을 지원해 장거리 항해 경험이 많지 않은 오너도 세계일주에 도전할 수 있다. 최근에는 참가선의 절반 이상이 이 여정을 목적으로 새로 건조될 만큼 세계일주 자체가 오이스터를 택하는 강력한 이유가 되고 있다. 지난 7월에 공개한 신형 오이스터 515(Oyster 515)에도 오랜 대양 항해에서 쌓은 노하우가 반영됐다. 오너들이 수백만 해리를 항해하며 남긴 의견을 설계에 반영한 차세대 50피트급 모델로, 돛 면적과 생활 공간을 넓히고 선미에는 비치 클럽에서 영감받은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다.
페르난도 알론소
F1 현역 최고령 드라이버이자 역대 최다 그랑프리 출전 기록을 보유한 스페인 출신 레이서. 르노 시절인 2005·2006년 연속 월드 챔피언에 오르며 미하엘 슈마허와 페라리의 독주를 끝낸 주인공이다. 통산 32승을 기록했고, 르망 24시에서도 두 차례 정상에 섰다. 지금도 애스턴 마틴 아람코 F1팀 소속으로 현역을 이어가고 있다.

60 SUNREEF POWER ECO 애스턴 마틴 아람코 F1팀의 페르난도 알론소와 선리프의 인연은 80 선리프에서 시작됐다. 차터(charter)로 이 요트를 경험하며 브랜드에 매료된 그는 2021년 모나코 요트 클럽에서 60 선리프 파워 에코를 주문했다. 알론소가 특히 높이 평가한 것은 친환경 기술을 구현하는 방식이었다. 선체와 상부 구조에 최대 68.6m²의 태양광 패널을 일체형으로 적용해 최대 13kWp의 전력을 생산하고, 초경량 배터리가 전기 모터에 전력을 공급해 소음과 진동을 줄인다. 무엇보다 태양광 패널을 별도의 구조물처럼 얹지 않고 선체에 자연스럽게 통합한 디자인이 그의 마음을 끌었다. 다른 방식으로도 요트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있지만 미관상 만족스럽지 않다며, 기술과 디자인을 함께 해결한 선리프의 접근법에 매력을 느꼈다고 밝혔다. F1과 선리프의 인연은 알론소에 그치지 않는다. 2016년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소속으로 F1 월드 챔피언에 오른 니코 로스베르그는 은퇴 후전기 모빌리티 분야로 활동 반경을 넓혔고, 2020년 선리프 요츠에코의 브랜드 앰배서더로 합류했다. 그린테크 페스티벌을 공동 창립하고 전기차 레이싱 시리즈 포뮬러 E 주주로 참여해온 만큼 선리프와의 만남은 그의 행보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선리프를 택한 스포츠 스타는 이들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테니스 선수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길이 26.8m의 선리프 울티마 88(Sunreef Ultima 88) 건조 계약을 맺으며 새로운 선리프 오너 대열에 합류했다.
SUNREEF 프랑스 출신 사업가이자 랠리 드라이버였던 프랑시스 라프가 2002년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시작한 브랜드다. 이듬해 첫 요트인 74피트급 세일링 카타마란 ‘체(CHE)’를 선보이며 대형 럭셔리 카타마란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기술은 자체 개발한 솔라 스킨(Solar Skin)이다. 일반적 태양광 패널을 갑판 위에 별도 구조물처럼 얹는 대신 선체와 상부 구조, 비미니(bimini) 같은 곡면에 얇은 태양전지를 통합한다. 태양광 적용 면적을 넓히면서도 요트 본래의 실루엣을 유지해 친환경 기술과 디자인을 동시에 챙겼다. 최근에는 고성능 영역으로도 보폭을 넓혔다. 지난 7월 독일의 고성능 자동차 브랜드 브라부스와 함께 양사의 첫 협업 모델인 카타마란 브라부스 울티마 55를 공개한 것. 전장 17m의 선체에 725마력 6기통 엔진 두 기를 얹어 합계 1450마력, 최고 40노트 이상의 속도를 낸다. 여기에 선체를 들어 올려 물의 저항을 줄이는 포일 시스템을 적용해 고속에서 안정성과 효율을 높였다. 노출형 카본파이버와 브라부스 특유의 그래파이트 블랙 마감에서는 브라부스의 디자인 색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