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구 레이스 붐은 온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이 세계 내구 챔피언십 최상위 클래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현대와 페라리가 한 트랙 안에서 누가 더 잘 달리는지 경주한다.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이라는 이름으로 2026년부터 ‘세계 내구 챔피언십(WEC)’ 최상위 클래스 하이퍼카에 정식 출전한다. WEC 하이퍼카 클래스는 르망 24 시를 포함한 내구 레이스에서 가장 명예로운 대회다. 제네시스의 차량부터 드라이버를 비롯한 스태프 소개, 그리고 매 라운드 바뀌는 경기 룰 등 다양한 관전 요소를 아울러 살펴본다.
오형록 내구 레이스 전문 채널 ‘내구 연구소’ 운영자. 모터스포츠 사진 취재와 칼럼을 연재 중이다.
김남호 한국인 최초 F1 엔지니어. 2010년 르노 F1을 시작으로 로터스 F1, 2024년까지 알핀 F1에서 레이싱카 성능 분석과 레이스 시뮬레이션 시니어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했다. 현재 AI, 로보틱스, 자동차를 결합한 도로 복구 특수 임무 로봇-모빌리티를 개발하는 ‘로보로드(Rovoroad)’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TOPIC 1_직렬 4기통 엔진 2개를 붙여 만든 레이싱카 ‘GMR-001’
맨 노블레스(이하 M) 가장 이목을 끈 부분은 직렬 4기통 랠리 엔진을 2개로 합친 엔진이다. 전례 없는 엔진 설계로 공개 당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오형록(이하 O) 안정적 V6나 어느 정도 검증된 V8를 개발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제네시스는 현대 모 터스포츠가 랠리에서 쌓은 기술을 내구 레이스에 적용했다. 현대 모터스포츠 세계관을 확장하는 동시에 최고 마케팅 수단을 만들었다고 본다.
김남호(이하 K) 직렬 4기통 랠리 엔진 2개를 기반으로 설계한 V8 트윈 터보엔진이라는 개념은 흥미롭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했는지 공학적으로 매우 궁금하다. 기성 엔진 브랜드(OEM) 사례를 봐도 4기통 엔진 2개를 물리적으로 합쳐 V8를 제작한 전례는 없다. 제네시스 공식 사이트에 공개된 형상 역시 일반적 V8 엔진의 모습을 따르는 데, 프랑스의 하이퍼카 엔진 제작 명가 피포 모터스(Pipo Moteurs)가 이 프로젝트에 일정 부분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피포 모터스가 기존 직렬 4기통 엔진의 검증된 설계를 상당 부분 재사용(carry-over)했을지 모르지만, V8 엔진으로 확장하는 과정은 여러 엔지니어링과 전용 크랭크케이스 설계 등을 수반했을 것 같다.
M 이 엔진은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K 공개된 정보가 많지 않아 원론적 설명에 그칠 수밖에 없지만 실린더 수, 배기량, 출력 등은 일반적 V8 엔진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크랭크샤프트, 블록 구조, 윤활 및 냉각 시스템, 진동 제어 등의 설계 완성도에 따라 성능이 좌우될 텐데, 이 엔진이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프로젝트 기간 단축을 위한 일회성 엔진으로 동급 기성 엔진보다 성능이 낮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M GMR-001은 LMDh 하이퍼카로 섀시 공급사가 정해져 있기도 하다.



O 달라라, 리지에, 멀티매틱, 오레카 총 4개의 공급사 중 오레카가 섀시 디자인을 맡았다. 제네시스는 전면부에서 측면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투 라인 헤드램프가 매력인데, 브랜드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지만 성능 면에서 굉장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야간에 조명 하나 없는 어두운 서킷을 달려야 하기에 균일한 광량 확보와 내구성이 보장된, 보통은 큼지막한 단일 램프나 모듈 헤드 램프를 사용한다. 제네시스는 단 두 줄의 시그너처 램프만 삽입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K 우선 하이퍼카 규정인 LMH(Le Mans Hypercar)와 LMDh(Le Mans Daytonah)에 대한 설명이 좀 더 필요하다. LMH는 섀시, 엔진, 기어박스, 하이브리드 시스템 등 거의 모든 요소를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는 규정이다. 반면 LMDh는 반드시 정해진 기어박스, 전기 모터제너레이터, 배터리를 사용해야 하며 차체와 서스펜션을 포함한 섀시도 앞서 말한 4개 제조사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애스턴마틴과 섀시를 자체 제작해 LMH처럼 보이는 페라리, 푸조, 토요타를 제외한 나머지 팀은 LMH인지 LMDh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에 반해 제네시스는 확실한 LMDh다.
O GMR-001은 LMH 레이싱카보다 한 단계 낮은 체급에 속해 단거리 퍼포먼스에서 뒤처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는 내구 레이스 특성상 성능 차이가 결과를 절대적으로 좌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네시스가 현재 단계를 LMH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로 설정한 것인지, LMDh 차량을 기반으로 IMSA 진출까지 염두에 둔 전략인지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M 8개 팀 중 제네시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O 지난 시즌 챔피언인 페라리나 페라리 복귀 전까지 챔피언이던 토요타를 당장 이기기는 힘들겠지만, 깜짝 포디엄 정도는 노릴 수 있는 전력으로 본다. 애스턴마틴이나 BMW처럼 하위권에 머무를 것 같진 않고, 알핀과 푸조를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K LMH 레이싱카와 순수 LMDh인 GMR-001을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튜닝차와 순정차가 경주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이론상 제네시스는 꼴찌여야 한다. 하지만 레이싱카 엔진 파워와 무게 규정이 같고, 예외와 이례가 다반사인 내구 레이스에서 GMR-001이 LMH 레이싱카보다 뒤처진다고 장담할 순 없다. 결국 달려봐야 알 수 있다.
M 그렇다면 제네시스는 어떤 강점을 가진 팀인가?
K 신생 팀임에도 불구하고 LMDh 규정이 제공하는 기술적 이점을 영리하게 활용한 팀이다. 검증된 오레카 섀시와 피포 모터스의 엔진 기술력, 그리고 프랑스 레이싱의 우수한 인적 인프라를 결합해 신생 팀이 마주할 기술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했다. 현재 제네시스는 브랜딩을 제외한 ‘프랑스 기술 연합체’에 가깝다.
O 명확한 강점은 드라이버 라인업이다. 다른 팀과 비교해도 커리어나 실력이 전혀 밀리지 않는 클래스 최고 라인업을 갖추었다. GMR-001이 어느 정도 퍼포먼스를 보장한다면 충분히 우승까지 노려볼 수 있다.
TOPIC 2_드라이버는 누구인가
안드레 로테러 & 피포 데라니 차량 개발의 주축이자 초기 멤버.
마티외 자미네 & 폴루 샤탕 하이퍼카 클래스 경쟁 팀에서 온 즉시 전력 멤버.
다니 훈카데야 & 마티스 조베르 하이퍼카 클래스가 처음인 GT3 베테랑과 루키.

M 17번 차량(피포 데라니, 안드레 로테러, 마티스 조베르)과 19번 차량(폴루 샤탕, 마티외 자미네, 다니 훈카데야)으로 3인 1조 구성 2개 팀이 출전한다.
O 먼저 언급할 드라이버는 안드레 로테러다. 차량 개발 초기부터 함께했고, 팀에서 가장 큰 축이 되는 선수다. 아우디 소속으로 르망 24시에서 3회의 우승을 거머쥔 데다 포르쉐에서도 챔피언십 우승을 한 베테랑이다. 그를 눈여겨보는 이유는 단순히 우승 경험이 많은 드라이버가 아닌 LMP1 시절부터 하이퍼카 클래스로 바뀐 지금까지 모두 최상 위팀 소속으로 우승 경쟁을 다퉜기 때문이다.
M 피포 데라니도 개발 초기에 합류한 선수 아닌가?
K 데라니는 커리어 대부분을 미국판 WEC라 할 수 있는 웨더텍 스포츠카 챔피언십(IMSA)에서 쌓았다. 차량에 많은 손상을 주는 서킷인 세브링 인터내셔널 레이스웨이에서만 네 번 우승한 선수라 내구 레이스에 대한 이해도가 몸에 밴 드라이버다. 2027년을 목표로 준비 중인 IMSA 데뷔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네시스 차량 개발의 큰 축을 맡고 있다.
O 마티외 자미네와 폴루 샤탕의 영입도 꽤 놀라운 소식이었다. 작년까지 자미네는 포르쉐에서, 샤탕은 알핀에서 하이퍼카를 몬 즉시 전력이다. 경쟁 팀 의 현역 드라이버를 영입했다는 건 제네시스의 미래가 탄탄하다는 신뢰가 있기에 가능하다.
K 다니 훈카데야와 마티스 조베르는 하이퍼카 경력이 없는 드라이버다. 훈카데야는 LMGT3에서 경험을 축적해 노련한 운영 능력을 갖췄고, 조베르는 차세대 루키라고 볼 수 있다.
O LMGT3는 다른 클래스에 비해 거친 레이스가 특징이다. 지난해 LMGT3 마지막 라운드인 바레인에서 훈카데야가 코너를 추월하며 날린 손가락 욕이 밈으로 화제가 될 만큼 팀 내에서 화끈한 캐릭터를 맡을 것 같다.
M 조베르는 어떤가?
K 유러피언 르망 시리즈(ELMS)에서 IDEC 스포츠 소속으로 뛰는 동시에 제네시스 트래젝토리 프로그램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이번 시즌부터 제네시스에 본격 합류했다. 2005년생 프랑스 국적으로 포르셰 카레라 컵과 ELMS에서 증명했기에 매우 기대되는 드라이버다. 베테랑 선배들과 함께 제네시스를 이끌어갈 미래다.
M 17번과 19번 2개의 팀. 분명 차이도 있을 것 같은데.
O 제네시스가 처음 구상한 드라이버 라인업은 지금과 달랐다. 2024년 12월 영입한 로테러와 데라니는 서로 다른 차량을 운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차량 개발 단계에서 두 사람이 엄청난 시너지를 보이자 스포팅 디렉터 가브리엘레 타르퀴니가 17번 팀에 함께 넣은 듯하다. 두 베테랑이 차를 발전시켜 얻은 노하우를 젊은 피 조베르가 흡수하는 형식인 셈이다.
K 19번은 WEC에 익숙한 세 드라이버의 조합이다. 하이퍼카 클래스 외에도 다양한 레이스를 두루 섭렵한 세 드라이버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현장에 적응하는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M 두 팀의 성격이 비슷한 듯 다르다. 어떤 팀이 우세할 것 같나?
O 19번이 좀 더 우세할 것 같다. 17번의 조베르는 ELMS에서 내구 레이스 적응을 마친 드라이버지만, 세 명이 함께하는 내구 레이스 특성상 리스크가 전혀 없진 않다고 본다. 그에 비해 19번의 자미네는 IMSA에서 활동했지만 르망 24시, 데이토나 24시 등 큰 라운드에 꾸준히 출전했고 포디엄 경험도 있어 WEC가 처음이라 해도 훨씬 안정적이다.
K 현역 드라이버 중 하이퍼카 시스템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로테러의 17번에 한 표를 던지겠다. 신생 레이싱팀 내 우열은 드라이버의 기량보다 경험의 밀도에서 갈린다. 팀워크가 만족스러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드라이버의 노련한 트러블 슈팅과 레이스 운영 능력으로 채워야 한다.
TOPIC 3_프랑스 인재로 똘똘 뭉친 스태프 군단

M 스태프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시릴 아비테불과 FX 드메종은 현대 입사 기간도 비슷한 데다 둘 다 랠리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O 아비테불은 르노 F1팀에서 성공적 팀 프린시펄 역할을 했고, 현대 WRC 랠리팀 경력으로 현대자동차와 제네시스에 익숙한 인물이다. 자미네가 “팀 내 프랑스인이 이렇게 많다는 점이 놀랍다”고 말했는데, 아비테불의 존재가 강력한 이유로 보인다. 테크니컬 디렉터 FX 드메종도 2022년 윌리엄스 F1팀을 떠나 2023년 5월 현대 모터스포츠로 이직했다. 아비테불이 ‘기술 측면의 리더’를 원한다는 말을 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드메종이 온 걸 보면 그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다.
K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르노 스포트 레이싱 F1팀 퍼포먼스 엔지니어로 있으면서 아비테불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 그는 주로 경영에 참여해 업무적으로 부딪힐 일은 없었지만, 식당이나 복도에서 마주치면 항상 프랑스인 특유의 다정한 매너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드메종은 2021년 윌리엄스 F1의 새로운 테크니컬 디렉터로 발탁되었을 때 대부분 ‘누구지?’ 하는 반응이었다. 그의 WRC 이력을 다루는 뉴스가 보도되며 나 또한 그를 알게 되었다. 드메종 역시 랠리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보냈기에 랠리 엔진 2개를 붙여 만든 제네시스의 차량 콘셉트는 이 둘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O 치프 엔지니어 저스틴 테일러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과거 WEC 최상위 클래스였던 LMP1에서 최강으로 불리던 아우디의 엔지니어로 활동했으며, 2023년 페라리의 WEC 복귀도 성공적으로 도왔다. ‘미국인 엔지니어’ 특유의 빠른 의사 수용이 특징으로 제네시스 드라이버의 피드백 또한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TOPIC 4_다양한 경기 룰로 이루어진 8개 라운드

M 총 8개의 라운드가 펼쳐진다. 라운드마다 매번 바뀌는 경기 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O 올해 카타르 개막전이 현지 상황 때문에 7라운드로 연기되었는데, 제네시스로서는 오히려 잘 된 편이다. 지금까지 인터뷰를 살펴보면 카타르 1812km(7R)보다 이몰라 6시(1R)가 중요하다고 언급했고, GMR-001 개발의 초점도 이몰라 6시를 중심으로 진행했다. 두 번째 라운드였던 이몰라 6시가 1라운드로 바뀌며,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울지 기대된다.
K 르망 24시(3R)와 상파울루 6시(4R)를 소화한 후 한 달간 휴식기를 보낸 뒤 첫 경기인 론스타 르망(5R)과 후지 6시(6R)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도 지켜봐야 한다. 상위권은 항상 유럽 라운드에서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반기에 겪은 시행착오를 대폭 줄여왔다. 개인적으로 이몰라 6시가 가장 기대된다. 모든 신생 팀에 데뷔 무대는 설렘보다는 극도의 긴장과 고통이 수반되는 시간이니까.(웃음) 제네시스가 첫 라운드를 치명적 사 고나 기계적 결함 없이 마무리한다면, 완주 이상의 강력한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O 후지 6시(6R)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가 2014년부터 WRC에 도전하면서 토요타와 라이벌리로 큰 주목을 받았다. 2022년 토요타의 홈과 같은 랠리 재팬 라운드에서 현대가 원투 피니시를 달성하기도 했던 것처럼 후지 6시도 토요타와 라이벌 구도, 일본 라운드에서 한국 브랜드의 도전 같은 서사가 만들어질 거다.
M 반대로 우려되는 라운드도 있을 텐데.
O 르망 24시(3R)는 성적보다 완주를 목표로 해야 한다. 레이스에 관심이 없는 대중도 르망 24시에 첫 출전한 한국 브랜드를 눈여겨볼 테니 말이다.
K 맞다. 2025년 르망 24시에서의 DNF(Did Not Finish)는 쓰라린 기억으로 남았을 거다. 당시 레이싱카는 과도기적 모델이었을 뿐 지금의 GMR-001과 다르지만, 대다수 신생 레이싱팀은 외부 경쟁보다 ‘내구성’이라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쓰러진다. 이러한 점에서 검증된 섀시와 공용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활용하는 LMDh 규정이 큰 구세주가 될지도 모른다.
M 챗GPT는 제네시스를 7위로 예상했다. 현실적으로 몇 위까지 가능할 것 같나?
O 신생 팀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애스턴마틴보다는 낫지 않을까. 지난 시즌 5·6·7위의 싸움이 치열했기에 제네시스, BMW, 알핀, 푸조의 4파전이 예상된다. 지난 시즌 1·2라운드 외 페이스가 좋지 않았던 BMW와 2026 시즌 전 주요 전력 이탈이 큰 알핀을 아래로 두면, 푸조와 5·6위 싸움을 할 것 같다.
K 한국 브랜드에 대한 애정과 아비테불의 옛정을 생각하면 1위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