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MÈS
본질만 남긴 에르메스식 비움의 미학.
Hermès H08 Squelette
무(無)와 무한을 오가는 여행과 같은 시간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한 에르메스 H08은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개념을 구체화한 컬렉션이다. 2021년 첫선을 보인 뒤 원과 사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쿠션형 케이스를 통해 메종의 명실상부한 대표 모델이 되었다. 올해 새롭게 공개한 에르메스 H08 스켈레트는 컬렉션 최초의 스켈레톤 모델이자 날짜 표시를 제외한 타임 온리 버전이다. 기존 형태를 유지한 채 다이얼을 오픈워크 처리해 무브먼트를 전면에 드러냈다. 지름 39mm의 블랙 DLC 코팅 티타늄 케이스는 새틴 브러시드 마감해 질감을 강조했고, 베젤은 블랙 세라믹에 선버스트 브러시드 마감을 적용하고, 모서리에는 챔퍼링과 미러 폴리시를 더해 대비를 줬다. 다이얼은 중앙의 사각 미닛 트랙만 남기고 대부분 비워 구조를 강조했다. 외곽 링에 배치한 아라비아숫자 인덱스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효과를 만든다. 무브먼트는 보쉐 매뉴팩처와 협업해 개발한 자동 칼리버 H1978S를 탑재했다. X자 형태 브리지를 중심으로 2개의 배럴과 기어의 움직임이 드러난다. 메인 플레이트와 브리지는 블랙 PVD 코팅 티타늄으로 통일하고, 일부 주얼에는 투명 루비를 적용해 전체를 같은 톤으로 마 무리했다. 4Hz 진동수와 약 60시간의 파워리저브, 100m 방수 성능을 갖춘 것도 특징. 위빙 디테일의 러버 소재 스트랩은 블루 잔지바르 모델은 블루 또는 블랙, 그레이 모델은 블루 아비스, 듄, 베르 모옌 컬러로 구성했다.


Arceau Samarcande

화이트 골드 케이스에 블루 생-루이 크리스털 다이얼의 아쏘 사마르칸드


1978년 앙리 도리니가 디자인한 아쏘는 원형 케이스와 비대칭 등자형 러그로 정의되는 메종의 대표 컬렉션이다. 올해는 이 클래식한 구조에 미닛 리피터를 결합한 ‘아쏘 사마르칸드’ 를 선보였다. 지름 38mm 케이스는 소재에 따라 화이트 골드와 로즈 골드로 구성되며, 화이트 골드 모델은 일반과 젬 세팅 버전으로 나뉜다. 이번 모델의 핵심은 다이얼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생 루이 공방에서 제작한 크리스털을 말 형태로 오픈워크 처리해 무브먼트 일부를 드러낸 것. 화이트 골드 일반 모델은 블루 다이얼로 색 대비를 강조하고, 젬 세팅 모델은 화이트 톤으로 스톤의 반짝임을 부각했다. 다이얼 왼쪽에는 아라비아숫자 인덱스를, 오른쪽에는 말 모티브 컷아웃을 배치했다. 중앙의 리프형 핸드는 일부를 비워 구조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무브먼트는 인하우스 자동 칼리버를 기반으로 한 미닛 리피터로 케이스 측면 레버 를 통해 시간과 분을 차임으로 전달한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 백케이스를 통해 해머의 움직임과 마감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며, 미러 폴리싱과 챔퍼링, 비드 블라스팅 등 다양한 기법을 적용한 점도 눈에 띈다. 마이크로 로터에는 뒥 아틀레 모티브를 더했다. 스트랩은 앨리게이터 또는 카프스킨으로 구성되며, 전 모델에 골드 폴딩 클라스프를 적용했다.


Slim d’Hermès Pocket Roaaaaar!
위트 있는 이름의 ‘슬림 데르메스 포켓 로아아아!’에 사바나의 원초적 에너지를 품은 사자 형상을 구현했다. 영국 아티스트 앨리스 셜리가 구상한 사자 모티브는 아마란스와 메이플 등 10여 종의 목재를 정교하게 맞물리는 우드 마케트리 기법으로 완성했다. 결이 각기 다른 목재를 퍼즐처럼 조합해 털의 흐름과 표정을 세밀하게 드러낸 오픈워크 커버는 장식을 넘어 시계 전면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커버를 여는 순간 드러나는 다이얼은 800°C 이상 고온에서 여러 차례 소성한 그랑 푀 에나멜로 완성했다.
깊이감 있는 컬러 위로 헤링본 패턴이 은은하게 드러나며, 외부의 입체적 장식과 대비되는 정제된 표면을 형성한다. 지름 45mm 화이트 골드 케이스 내부에는 울트라 씬 오토매틱 칼리버 H1950이 탑재됐다. 얇은 두께임에도 안정적으로 구동하며, 장식적 요소와 기계적 완성도를 균형 있게 결합한다. 스트랩과 파우치는 악어가죽으로 제작해 메종 고유의 가죽공예와 자연스럽게 연결 지었다. 베르 시프레와 블루 사파이어 두 가지 컬러로 각각 세 점씩 한정 제작한다.

Slim d’Hermès Squelette Lune
절제의 미학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출발한 슬림 데르메스는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메종의 철학을 담은 컬렉션이다. 그중 ‘슬림 데르메스 스켈레트 룬’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달 주기를 동시에 표현하는 문페이즈가 특징이다. 올해는 티타늄과 플래티넘 모델을 추가해 라인업을 확장했다. 티타늄 모델은 앤트러사이트 톤의 매트한 질감을 바탕으로 그린 컬러 디테일을 더해 절제된 색의 대비를 형성하며, 다이얼의 레이어와 마감 차이를 통해 시각적 깊이를 더한다. 반면, 플래티넘 모델은 케이스와 베젤을 같은 소재로 구성해 금속 특유의 광택을 강 조하고 블루 메인 플레이트와 대비를 이뤄 보다 선명한 인상을 전한다.

에르메스 워치 CEO 로랑 도르데(LAURENT DORDET)

Q 워치스앤원더스 2026에서 선보인 컬렉션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A 고객과 함께 특별한 여정을 떠나고 싶었다. 올해의 테마 ‘미지의 세계로(Venture Beyond)’ 는 더 멀리 나아가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태도를 담고 있다. 이 여정은 물리적 이동이 아닌 시계의 내부로 향한다. 아득한 지평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 안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스켈레톤 무브먼트와 오픈 다이얼, 메티에 다르, 미닛 리피터에 이르기까지 구조를 드러내는 다양한 방식을 전개했다. 이러한 개념은 부스 연출에서도 이어진다. 이 중 핵심 모델은 에르메스 H08 스켈레트다. 스켈레톤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스포티한 워치로서 내구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고, 이를 위해 상당한 테스트 과정을 거쳤다. 구조를 드러 내면서도 충격에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금속 프레임 형태의 컨템퍼러리한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또 새로운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처음 적용한 모델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보쉐 매뉴팩처에서 생산되는 이 무브먼트는 향후 더 긴 파워리저브와 개선된 구조로 확장될 예정이다.
Q 올해 워치스앤원더스 부스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시노그래피에 대해 설명해달라.
A 극장에서 착안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패널을 통해 장면을 드러내거나 감추며 그 너머를 암시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스카프 디자인을 여러 개 패널로 나눠 구성했는데 어떤 순간에는 말 형상이 선명하게 보이고, 또 어떤 순간에는 패턴만 남는다. 이처럼 드러남과 숨김을 반복 하는 연출은 시계 내부를 탐구하는 이번 테마와 맞닿아 있다.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 구조를 상상하게 된다.
Q 에르메스의 컴플리케이션은 기능의 확장보다 시간을 경험하게 하는 방식에 가깝게 느껴진다.
A 우리의 역할은 시계 산업 안에서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978년 당시 회장이었던 장 루이 뒤마가 시계 부문 자회사인 라 몽트르 에르메스를 설립하며 강조한 것도 이와 같다. 기술적 기준은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되 스타일과 색채, 소재, 그리고 아이디어에서는 가능한 한 멀리 나아가라는 것이었다. 에르메스 워치는 파리 메종의 문화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컴플리케이션 역시 기능의 추가를 넘어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르 땅 서스팡뒤’처럼 흐름을 유예하거나 메티에 다르 시계에서 유머와 서사를 더하는 방식이 그렇다. 고객은 단순히 기능적 완성도를 넘어 에르메스의 감각과 상상력을 함께 선택한다고 본다. 우리가 늘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가 충분히 다른가’.
Q 현재 에르메스 워치메이킹의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이며, 이러한 확장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A 1980~1990년대에는 디자인 중심의 쿼츠 시계가 많았지만 2000년대 이후 케이스, 다이얼, 무브먼트, 스트랩까지 수직 계열화를 구축하며 기계식 워치로 확장되었다. 2010년대 이후에는 기술적 완성도를 갖춘 모델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현재 부품은 대부분 스위스와 프랑스 인근에서 생산하며, 내·외부 공정을 모두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일부 부품은 외부에서 제작하지만, 품질을 엄격히 통제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역할이다. 워치메이킹은 에르메스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분야이자 장인정신과 기술이 만나는 영역이다. 우리는 매년 새로운 영역을 탐구한다. 올해 스켈레톤에 접근했다면, 내년에는 또 다른 방향이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시계를 통해 어떤 차별성을 보여주는가다.


Q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코드가 메커니즘 구조에도 반영된다. 이 경우 디자인과 기능 중 무엇이 먼저 출발점이 되는가?
A 대부분 디자인에서 시작하지만, 미닛 리피터처럼 특정 기능이 전제되는 경우 무브먼트 개발이 먼저다. 다만 두 과정은 분리되지 않는다. 무브먼트는 다이얼이 표현하려는 개념을 구현해야 하고, 디자인은 그 구조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무브먼트를 개발하는 데에는 3~5년이 소요되기에 비교적 이른 단계에서 디자인과 함께 논의가 시작된다. 결국 두 요소는 긴밀하게 병행되며 하나의 오브제로 완성된다.
Q 새로운 컬렉션 개발 과정에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
A 미닛 리피터다. 구조적으로도 복잡하지만, 무엇보다 소리를 다루는 작업이 매우 까다롭다. 케이스 형태나 소재가 조금만 달라져도 음색이 변하고, 이를 조정하면 다시 다른 요소에 영향을 미친다. 형태, 소재, 엔지니어링, 그리고 우리가 기대하는 음질 등 모든 요소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완성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조율이 필요하다. 이러한 차임 컴플리케이션은 높은 난도가 요구되는 영역이다.
Q 좋은 시계가 갖춰야 할 요소를 세 가지로 꼽는다면?
A 신뢰성, 우아함, 그리고 교감이다. 시계는 오랜 시간 사용하는 물건인 만큼 안정적 내구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동시에 착용자와 감각적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사람들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값비싼 오브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과 맞닿는 무언가를 발견하기 때문에 시계를 선택한다. 어떤 디테일이 자신의 취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순간 그 시계는 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결국 시계는 오랜 시간 함께하는 동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