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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우주

노정의가 삶과 연기를 나누는 법.

하이넥 니트 톱 Margarin Fingers.

쉴 틈 없이 지내고 있다고 들었어요. tvN 드라마 <우주를 줄게> 촬영을 마치자마자 바로 홍보 활동이 이어져 정신이 없었어요. 내일부터는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서 오늘 일정이 끝나면 바다로 가려고요.

혼자 가나요? 직접 차를 몰고? 혼자 떠나는 걸 좋아해요. 운전하는 것도 즐기고. 텅 빈 도로를 달리면 홀가분한 기분이 들거든요. 그런 감각이 저를 새롭게 만들어줘요. 전 항상 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환경에서 지내잖아요. 주목받는 직업이기도 하고요.

작품을 끝내면 여행을 떠나는 편인가요? 여행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마친 내게 주는 작은 선물이에요. 작품의 여운을 배웅하는 시간이죠.

일종의 의식 같아요. 노정의로 회귀하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스케줄이 있을 때면 항상 스태프들과 함께 움직이며, 여러 케어를 받고, 연기에 대한 주문을 소화하는 배우의 일상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생활로 되돌아가는 거죠.

얼마 전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냈나요? MBC 드라마 <바니와 오빠들>에 함께 출연한 최지수 언니와 우리집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냈어요. 케이크에 초도 꽂고, 캐럴도 듣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베이지 슬리브리스 톱 Courre’ ges, 블루 스웨이드 스커트 Joy Gryson, 스트랩 하이힐 슈즈 Shoe by Choi, 스타킹 Romantic Tiger.

텅 빈 도로를 달리다 보면 홀가분한 기분이 들거든요. 그런 감각이 저를 새롭게 만들어줘요.

<우주를 줄게>에 너무 이입했나 봐요. 당연히 조카와 함께한 줄 알았어요. 주로 그랬죠. 그런데 2025년엔 혼자 있거나 지인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조카가 제법 컸죠? 벌써 아홉 살이에요. 이젠 말싸움을 하면 제가 못 당해요. 말을 너무 똑 부러지게 잘해요. 요새는 메신저를 해서 뜬금없이 연락도 오고요. 그래도 좀 크니 친구들과 논다고 바쁜 것 같아요.(웃음)

<우주를 줄게>는 사돈 남녀가 갑자기 20개월 조카 우주를 키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조카와 사이가 돈독한 노정의로선 탐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을 것 같아요. 대본이 재미있었어요. 아이가 주인공이지만, 아이를 돌보며 어른들도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가 따듯하게 느껴졌죠. 사람 냄새가 난다고 할까요. 대본을 읽다 보니 무조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채널A 드라마 <마녀>의 ‘박미정’이 노정의라는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라고 한다면, <우주를 줄게>의 ‘우현진’ 은 노정의라는 사람을 위한 역 같아요. 배역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인생을 열심히 사는 친구?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그런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많은 공감을 느꼈어요. 저도 조카가 태어날 때부터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우주를 줄게>에서 우주는 두 주인공의 가족이라는 관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성장하면서 저마다 아픔을 겪게 되잖아요. 우주는 어른의 그런 트라우마를 치유해주는 존재예요. 우현진 역시 언니를 잃은 슬픔을 결국 조카를 통해 극복하죠.

케이블 니트 톱 Etmon, 레이어드 슬립 드레스 Le Fame, 웨스턴 부츠 Salt & Chocolate.

많은 질문을 받는 직업이에요. 반대로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순간도 많을 것 같아요. 요새 궁금한 것이 있나요? 프리 다이빙을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전 수영을 못해요.(웃음) 온전히 숨소리에 집중해보고 싶거든요. 저처럼 물을 무서워하는데도 다이빙을 배우는 사람이 꽤 많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프리 다이빙을 하는 분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어요. 어떻게 시작하고, 어디서 배우고, 무엇을 연습해야 하는지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요.

배우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죠. 다양한 삶을 살아야 하는 배우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일상의 여러 부분에서 배우게 되죠. 스스로에게서도 찾으려 하고요. 한번은 호흡 조절이 안 될 만큼 화가 났는데, ‘진짜 화나면 이렇게 호흡이 가빠지는구나’라고 본능적으로 학습하더라고요.(웃음) 가끔은 감정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고 싶은데, 계속 관찰하고 분석하려고 하니 가끔 제가 징그럽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내려놓는 방법도 터득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에 노정의를 기쁘게 한 순간이 있나요? <우주를 줄게> 촬영이 끝나고 스태프 언니들이 편지를 써줬어요. 그때 기쁘기도 했지만, 안심이 됐어요. ‘내가 잘 살고 있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 다행이다’ 같은 안도감이 들더군요. 저도 깨닫지 못한 불안이 있었나 봐요.

본인이 좋은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이 있었나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편지를 읽는 순간 그런 마음에서 해방된 거죠.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편해졌어요.

어떤 배우는 작품 고르는 기준을 “그 시기의 내 상태를 건드리는 작품”이라고 했어요. 배우 노정의의 기준은 어떤가요? 작품을 만나는 건 여러 인연이 작용해야 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좋은 배역이 들어와도 손에 잡히지 않는 작품도 있고,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캐릭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결국엔 마음 가는 대로 하려고 해요.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요샌 코미디를 해보고 싶어요.

웃음을 주는 연기는 어렵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아무리 대본이 재미있어도 그대로 연기하면 웃기지 않거든요. 그 신 안에서 순간적 기질을 발휘해야 하는데, 연습보다는 현장에서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그래서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온 선배들처럼 여유를 갖고 싶어요.

베이지 벌룬 드레스 White Abyss.

한때는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했는데, 오히려 연기에 방해가 되더라고요. 이미 지난 건 빨리 잊고 순간에 집중하려고 해요.

노정의도 어느덧 15년 차 배우예요. 지금 목표로 하는 다음 단계가 있어요? 없어요. 그냥 30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죠.

서른의 노정의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보다 단단하고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보통의 20대는 30대를 두려워해요. 20대의 마지막을 아쉬워하고. 전 항상 현재의 제게 충실하려 해요. 그래서 서른이 너무 기대돼요.

요새 노정의의 고민은 무엇인가요?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이죠. 잘해내고 싶은데 쉬는 틈이 짧다 보니 다음 캐릭터를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돼요.

캐릭터는 배우에게 분신 같은 존재예요. 배역과 하나가 됐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아쉽지만, 작품이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느끼게 돼요. 어느 순간 내가 캐릭터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걸 발견하게 되죠.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느끼게 되어 야속해요.

그러면 여운도 길게 남을 것 같아요. 다행인 점은, 전 스위치가 확실히 작동해요. 아쉽지만, 그래도 잘 이별하죠. 배우로서 건강하게 연기하려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와 삶에 대한 경계는 어떤 편인가요? 어떤 배우는 캐릭터에 따라 과하게 영향을 받아 일상생활을 힘들어하기도 해요. 저는 연기와 일상을 완벽하게 분리하려고 노력해요. 타인의 삶을 표현하는 일이다 보니 분리하지 않으면 감정에 휩쓸리게 되죠. 한때는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했는데, 오히려 연기에 방해가 되더라고요. 이미 지난 건 빨리 잊고 순간에 집중하려고 해요.

연기를 하면서 알게 된 자신의 모습도 있나요? <우주를 줄게> 촬영 당시 감독님이 컷을 천천히 하셨어요. 배우들이 어떤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본 거죠. 저는 애드리브가 어색한데, 다른 배우들은 능청스럽게 잘하더라고요. 저도 자극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려놓고 연기한 것 같아요. 내가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힘을 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어요.

계획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편이죠. 바다로 떠나기 위한 짐도 어젯밤에 미리 다 챙겼어요. 이제 집에 가서 씻고 바로 출발하면 돼요.(웃음) 가서 입을 옷도 준비했고, 도로가 얼었을 때를 대비해 타이어에 뿌릴 스노 스프레이도 준비했어요.

2026년 목표도 정했나요? 매년 같아요. 꾸준히 활동하고 싶다. 이런 질문에 왜 사랑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저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떳떳하게 축하받고 싶은 마음이에요. 아직은 부족해서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순간이 언제 올까요? 쉽지 않겠죠. 아마 죽을 때까지 만족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웃음) 그런데 닿을 듯 말 듯한 기준을 두고 계속 성장하는 거, 그게 제 목표예요. 딱 닿을 듯 말 듯한 기준을 두고 계속 성장하는 거죠.

에디터 강승엽 사진 김선혜 헤어 조다미 메이크업 이나겸 스타일링 성선영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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