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DS UNSPOKEN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서강준은 자신을 새로이 조율한다.

스트라이프 벨벳 슈트와 다크 그린 레더 셔츠, 타이 모두 Amiri.
예전엔 말을 그냥 소리로 들었다면, 이제는 헤아리게 된 거죠. ‘말’을 가만히 보는 거예요. 말을 주고받을 때, 오가는 감정의 티키타카를 보는 것도 좋은 자극이 되고요.
오늘 유심히 뜯어본 것들이 있나요? 흠, 뭐가 있었을까요?
꼭 촬영장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이 한옥에 조금 생뚱맞은 장식품이 중간중간 보이더라고요. 재미있었어요. 계단을 올라가는데 커다란 황동 펜던트 조명이 달려 있길래 ‘어떤 의도로 저기에 달았을까’ 잠시 생각했어요. 지금 기자님 머리 위에도 말발굽 같은 오브제가 있잖아요.
그렇네요. 촛대 같은데요? 제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강준 씨의 ‘습관’ 때문이에요. 과거 인터뷰를 보면 ‘뜯어본다’는 표현을 자주 쓰더라고요. 오늘은 또 뭘 뜯어봤을까 궁금했죠. 매 순간 그렇지는 않아요. 오히려 무심할 때가 더 많을 거예요.
그래도 그 말이 강준 씨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어요. 2년 전 인터뷰를 하면서 진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가요. 관심 가는 게 있으면 하나하나 뜯어보고, 그걸 가지고 오래 사유하는 편이에요.
연기를 하며 생긴 버릇일까요? 그런 것도 같네요. 연기할 때 꼭 필요하거든요. 본능이라기보다 필요해서 하는 거예요. 알아야 하니까.


그레이 더블브레스트 코트 Tonywack, 그레이 터틀넥 스웨터 Man on the Boon, 그레이 헤링본 팬츠 Savage.
그럼 요즘은 무엇을 유심히 보나요? 올해 <언더커버 하이스쿨> 이후로 반년 정도 연기를 쉬었어요. 쉬면 아무래도 불안해지죠. 그래서 책을 많이 보는 편이에요. 제가 ‘바이블’처럼 여기는 연기 기초 서적이 딱 한 권 있는데, 작품 들어가기 전에 꼭 한 번씩 보는 책이죠. 요즘은 틈날 때마다 반복해서 보고 있어요. 군데군데 적어둔 제 메모도 있고.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요.
그 외에도 꾸준히 하는 것이 있다면? 웨이트, 러닝. 계속 하고 있죠.
여전히 야행성이고요? 아, 그럼요. 점심 즈음 눈뜨는 것도, 일어나서 첫 끼로 무조건 샐러드 먹는 것도 그대로예요.
반대로 그만둔 건 없어요? 그러고 보니 테니스를 끊었네요. 테니스는 꾸준히 해야 하는 운동이거든요. 제 일이 불규칙하다 보니 끊고 다시 시작하기를 서너 번 반복하다가 이제 완전히 놓았어요.

브라운 브이넥 스웨터와 스트라이프 셔츠 모두 Zegna, 브라운 팬츠 Recto, 브라운 스웨이드 앵클부츠 Dior Men.

연기를 대하는 마음도 늘 같나요? 커지진 않았지만, 더 굳어지는 느낌이에요. 과거에는 오히려 뜨겁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식은 적도 있어요? 아휴, 물론 있죠. 연기가 마음처럼 안 풀리는 순간이 많거든요. 데뷔 초엔 연기력에 대한 말이 들리면 마음이 확 식었어요. 여러 선생님 찾아다니며 배우고, 밤낮으로 고민해도 안 되는 걸 느낄 때도 있었고요. 한계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울분이죠. 이보다 더 얼마나 해야 해?라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그럴 때 어떻게 다시 끌어올려요? 결국 답은 ‘시간’이더라고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 일도 있는 법인데, 조급함이 컸죠. 욕심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 편해졌어요.
2년 전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 “첫 런웨이는 피날레 같았고, 첫 연기는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고 했죠. 지금은 어때요? 하면 할수록 더 작아지는 것 같아요. 저는 누가 “직업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배우입니다”라고 답하는 게 부끄럽지 않았으면 해요. 아직 당당하진 않아요.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부끄럽지 않을까요? 아직은 제가 알 파치노처럼 연기할 순 없잖아요. 언젠가는 영화를 보며 내가 감탄했던 배우처럼 연기하고 싶어요. 그 간극을 느끼기에 작품을 할 때마다 너무 처참하죠.
그 처참한 기분을 계속 느끼며 일한다는 건 괴롭지 않나요? 그런데 가끔 흐린 눈도 해요. 이따금 엄청난 희열도 느끼죠. 촬영장에서 원하는 그림이 나왔을 때, 내가 생각하는 대로 표현이 됐을 때 행복합니다. 특히 중요한 장면이었고, 내가 꼭 해내고 싶었던 장면이면 그 희열은 배가되죠. 그러면 갑자기 텐션이 높아져서 뛰쳐나가요.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요.(웃음)
어딜 나가요? 현장 밖으로? 네. 숨이 가벼워져요. 가벼운 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봐요. 그러다 보면 “아, 너무 행복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죠. 그 충만한 기분을 오롯이 느낀 다음에 다시 들어가요. 촬영장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갑니다.


차콜 그레이 스웨터와 레드 스웨터, 벨트 디테일 톤업 팬츠 모두 Recto.
그럼, 마지막 신이 하루의 기분을 결정짓겠네요. 맞아요. 차에 타면 고통의 시간이 시작돼요. ‘왜 이렇게 했지? 문제가 뭐지?’하면서 계속 뜯어봐요. 스트레스가 크죠.
떨쳐내야죠. 잠깐 차 세우고 머리 식히는 정도? 못 떨쳐요. 그냥 그 상태로 가는 거죠.
다음 희열이 올 때까지? 그렇죠. 그때까지.
지금 가장 큰 갈증은 무엇인가요? 삶의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더 다양한 장르나 소재를 경험하고 싶고요. 그런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면 제게도 기회가 오겠죠. 배우는 선택받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원하는 연기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도 “여러 삶을 경험해보고 싶어서”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최근 인상적이던 장면이나 인물이 있나요? 요즘은 주변 어른들을 봐요. 어머니, 아버지, 고모, 고모부가 대화하는 모습이 흥미롭더라고요. 그 안에 휴머니즘이 다 들어 있어요. 예전엔 말을 그냥 소리로 들었다면, 이제는 헤아리게 된 거죠. ‘말’을 가만히 보는 거예요. 말을 주고받을 때, 오가는 감정의 티키타카를 보는 것도 좋은 자극이 되고요.

카키 브라운 블루종 Recto, 화이트 터틀넥 스웨터 TNGT, 브라운 벨벳 팬츠 Savage, 브라운 스웨이드 더비 슈즈 Dior Men.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내면이 드러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굳이 표정을 짓지 않아도,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제 안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면 좋겠어요.
연기 이야기를 할 때는 수다스러운데, 평소엔 어때요? 굉장히 차분해요. 표현이 크지 않아요. 감정이 요동쳐도 겉으로 잘 안 드러내죠.
그래서 연기에 재미를 느끼나 봐요. 표출할 수 있으니까. 그런가요? 그런데 저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내면이 드러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굳이 표정을 짓지 않아도,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제 안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면 좋겠어요.
12월입니다. 몇 개의 단어로 2025년을 기록한다면? 복귀, 더위.
담백하네요. 복귀했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1도 거짓 없이 촬영 장비를 하나하나 다 뜯어봤어요. 그 순간이 너무 감격스러웠거든요. 군 복무 중 현장이 정말 많이 그리웠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스태프가 마이크 장비를 끌고 가는데, 그걸 넋 놓고 보고 있었어요. 옷에 단추를 채우면서도 의상 차를 보며 ‘여기 드라마 현장이구나’라며 감동했죠. 날짜도 정확히 기억해요. 7월 15일이었어요.

카키 브라운 블루종 Recto, 화이트 터틀넥 스웨터 TNGT.
더위는요? 무더운 여름은 어땠나요? 소설 <이방인>을 유난히 많이 떠올렸어요. 책에 쓰여 있던 태양에 관한 표현, 막연하게 상상했던 장면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죠.
칩거는요? 포근함, 행복감, 충만함.(웃음)
연말 계획은 세웠어요? 사실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요. 여느 날과 똑같이 일어나서 밥 먹고 운동 가고 그러지 않을까요.
연기 외에는 아주 무던한 사람이군요. 그래도 2026년의 서강준에게 한마디 남긴다면. 영상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고. (웃음) 일단, 건강하고. 내년에는 꼭 네가 원하는 작품으로 나오면 좋겠고. 부디 연기적으로 성장하면 좋겠다. 그리고 테니스도 다시 시작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