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얀이 바라보는 것
운명과 운동 사이, <야구여왕> 속 박하얀이 바라보는 것.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 속 축구화, 〈피지컬:100 – 언 더그라운드〉(이하 ‘피지컬: 100’) 속 덤벨과 이제 곧 방영할 <야구 여왕> 속 야구공까지. 박하얀 선수가 도전해온 다양한 운동 종목을 소품으로 풀어봤어요. 그러니까요. 오랜만에 지난 경험을 되돌아본 것 같아요. 아직 <야구 여왕>은 막바지 촬영 중이지만요.(웃음)
새로운 운동에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은 뭐라고 생각해요? 항상 운동할 때마다 ‘가장 나답다’는 느낌을 받아요. 종목을 접할 때마다 재밌고, 흥미롭고, 운동하는 동안 스트레스가 풀리거든요. 그게 제 안에서 에너지로 다시 차오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또 도전하게 되고요.
지금껏 해온 운동 중 입문할 때 가장 어려웠던 건 뭔가요? 지금 배우고 있는 야구요. 압도적으로.(웃음)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배팅, 타격, 캐치, 송구는 기본이고, 그 외에 경기 운영하는 센스, 포지션별 역할, 세세한 룰까지 다 숙지해야 하잖아요. 무엇보다 저는 핸드볼·축구처럼 계속 뛰는 리듬에 익숙했는데, 야구는 서 있는 시간이 많다가 갑자기 전력 질주를 해야 하니까 몸이 적응을 잘 못 했어요. 처음엔 그 낯섦 때문에 부상도 입었고요.

<야구 여왕>에서 포지션은 뭐예요? 내야수 1루요. 투수는 아직은 보류 상태고요. 지금은 1루수에 집중하고 있어요.
종목 특성상 대기 시간이 길다 보니 적응 기간이 필요했겠어요. 맞아요. 처음엔 핸드볼이나 축구를 할 때처럼 계속 긴장했는데, 금방 지치더라고요. 코치님들이 그걸 보고 “야구는 그렇게 하는 운동이 아니다. 그냥 편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너무 긴장하지 말고 힘 빼고 재밌게 즐기라는 거죠.
전·현역 레전드 선수들이 한 팀이 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잖아요. 임하는 소감은 어때요? 은퇴한 지 3년이 됐는데, 다시 현역 선수가 된 기분이에요. 말로는 예능 프로그램인데, 안에 있으면 그냥 스포츠 그 자체거든요. 긴장도 되고, 선수들이 모이다 보니 승부욕도 엄청나요. <골때녀> 때와는 정말 달라요. 그곳에 선 ‘다 같이 재밌게 해보자, 열심히 해보자’ 이런 즐거운 분위기가 더 강하다면, <야구 여왕>은 진짜 운동선수들 사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죠. 많이 기대해주셔도 좋아요.
처음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함께하는 출연진 중 가장 놀라웠던 이름은요? 박세리 단장님이요! 예전부터 언젠가 같이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에 같은 팀으로 함께하게 돼서 영광이고 신기했어요. 실제로 만나면 카리스마가 엄청나요.
어떤 시너지가 발휘될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볼게요. 원래 육상을 하다가 핸드볼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종목을 변경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선수가 되고 싶어 육상을 한 건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체육대회에서 이어달리기, 50m 달리기를 하면 항상 1등 했거든요. 그래서 육상 대회에 몇 번 나가본 게 전부죠. 그러던 중 체육 선생님이 핸드볼팀이 있는 학교 선생님께 저를 추천하셨어요. 그때는 핸드볼이 뭔지도 몰랐고, 그냥 ‘운동이면 다 좋다’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온 거고요.
처음 핸드볼 선수를 준비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 반응은 어땠어요? 아빠는 처음부터 응원해주셨어요. 원래 저를 축구 선수로 키우고 싶어 하셨거든요. 여섯 살 때부터 조기 축구에 데려가 공을 차게 하기도 했고요. 그 당시엔 여자 축구가 대중적이지 않아 기회를 엿보던 참에 마침 핸드볼 쪽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고, 그걸 계기로 (핸드볼을) 시작하게 됐어요. 반대로 엄마는 처음에 엄청 반대하셨어요. 저를 공주처럼 키우고 싶어 하셨거든요. 저는 밖에서 뛰어노는 게 좋은데, 엄마는 드레스를 입히려 하고. 그러다 마지못해 허락하셨죠. 지금은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응원해주세요. 예전엔 핸드볼도 못 그만두게 하시더니, 지금은 〈골때녀〉, 〈야구 여왕〉에 출연하는 것도 자랑스러워하세요.
아까 답했던 내용 중 ‘운동이면 다 좋다’고 말한 부분이 인상 깊어요. 운동이 좋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요. 희열감, 성취감, 그리고 팀과 함께 이뤄냈을 때 오는 기쁨이요. 저는 개인 종목이 아니라 팀 스포츠를 했잖아요. 같이 땀 흘리고, 같이 힘든 걸 견디고, 같이 이뤄낼 때 오는 그 감각이 있어요. 그걸 느끼면 ‘아, 내가 진짜 이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승부욕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고요.
팀워크는 좋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날도 있었을 텐데요. 그런 날은 어때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쉽지만, 받아들일 수 있죠. 더 속상한 날은, 연습 때는 충분히 잘했는데 본경기에서 못 보여줬을 때예요. 긴장해서 실수를 많이 하거나, 준비한 대로 못 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었는데, 그걸 못 했다는 감정이 남으면 그때는 정말 많이 아쉽고 화도 나요.
이런 것도 궁금해요.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선수’의 기준은 무엇인지. 누군가는 기록과 결과로 선수를 기억하기도 하잖아요. 단체 종목은 모두가 빛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 능력이 뛰어난 에이스도 멋있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니까요. 근데 실제로 경기를 해보면, 티가 많이 나지 않는 살림꾼 같은 선수들이 있어요. 기록에선 잘 드러나지 않는데, 그 선수 덕분에 팀이 살아나는 경우도 많거든요. 저는 그런 역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골때녀〉 시청자들이 제 플레이를 보고 “이타적인 플레이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개인적으로 그 말이 가장 와닿더군요. 누구 하나만 돋보이는 경기가 아닌, 모두가 빛나는 경기를 만들고 싶거든요. 상대 입장에서도 한 명만 잘하는 팀보다는 여러 명이 잘하는 팀을 상대하는 게 훨씬 어렵잖아요.

핸드볼부터 시작해 축구, 야구까지. 종목은 계속 바뀌는데, 제 안에서 움직이는 동력은 언제나 같았던 듯싶어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해요. 나는 운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구나. 지금은 그 운명을 꽤 마음에 들어하면서 살고 있어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많았나요? 그럼요.(웃음) 학생 때는 운동부 분위기가 지금보다 훨씬 거칠었어요. 그 안에서 너무 힘들었지만, 나라는 사람이 운동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알았기에 버틴 것 같아요. 성인이 돼서도 20대 초반에 번아웃이 크게 왔어요.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마음처럼 풀리지 않고, 다른 선수들은 계속 성장하는 것 같고. 그때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어요. 마지막 3년은 은퇴를 고민하던 시기였고요.
결국 은퇴를 결정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요?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몰려왔어요. 집안 사정, 팀 이적 후 적응 문제. 여기에 부상까지 겹쳤죠. 특히 부상이 컸어요. 발목 수술을 한 번 했는데, 같은 부위를 또 수술하게 된 거예요. 나이가 들수록 회복 속도가 더디고, 몸도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체감했어요. 그때 몸도 마음도 바닥을 찍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은퇴한 지 이제 3년이 됐죠. 지금의 생활 루틴은 어때요? 핸드볼 선수로 약 20년을 살았잖아요. 은퇴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렇게 편할 수도 있구나’였어요.(웃음) 처음 1년 정도는 그래도 운동 선수 때 습관이 남아 있어 규칙적으로 살려고 했어요. 몸 관리에도 신경 썼고요. 근데 시간이 지나니 생활 패턴이 바뀌더라고요. 스케줄이 있으면 일찍 일어나고, 쉬는 날엔 마음 놓고 늦게까지 자고요. 그래도 야식은 여전히 잘 안 먹어요. 누군가에게 잘 드러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기본적인 관리는 계속 해야죠.
만약 운동선수가 아니었다면 어떤 직업을 갖고 있을까요? 늘 상상해요. ‘내가 운동을 안 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림이 잘 안 그려져요.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도, 어떻게든 운동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었을 것 같아요. 더 확실히 느끼게 된 건 은퇴하고 나서예요. 핸드볼을 그만두고 운동 쪽 일을 전혀 안 했으면 또 몰랐겠죠. 근데 은퇴하자마자 〈피지컬: 100〉 출연 제안을 받았고,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 출연이 이어졌잖아요. 결국 운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더라고요. 참 감사한 일이죠.
운동 말고 꼭 해보고 싶은 건 뭐예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요. 은퇴하면 쉽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훈련 때문에 스페인·이탈리아·일본 등을 다녀오긴 했는데, 말 그대로 훈련이랑 시합하러 간 거라 자유 시간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3일만 바람 쐬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다른 종목도 있나요? 뭐든 다 해보고 싶어요. 체력과 몸이 허락하는 한, 다양한 스포츠를 계속 접해보고 싶어요. 특히 구기 종목을 좋아해요. 요즘 가장 해보고 싶은 건 골프랑 테니스고요. 이미 조금 맛보기로 배운 주짓수와 킥복싱도 있어요. (김)동현 오빠한테 배워봤는데, 생각보다 재밌더라고요. 제대로 배우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운동 이야기를 할 때는 눈빛이 확 달라지네요.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죠? 네, 어떤 분이 제게 ‘약간의 광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평소엔 잘 안 드러나는데, 경기나 훈련에 들어가면 눈빛이 바뀐대요. 내가 운동할 때 정말 많이 몰입하는구나 싶었어요.
지금의 박하얀에게 운동이란 어떤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제 인생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요. 힘들 때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다시 일어나게 만드는 게 항상 운동이었어요. 핸드볼부터 시작해 축구, 야구까지. 종목은 계속 바뀌어도 제 안에서 움직이는 동력은 늘 같았던 듯싶어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해요. 나는 운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구나. 지금은 그 운명을 꽤 마음에 들어하면서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