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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남자의 공백에 대한 고백

긴 공백기를 딛고 2025년을 여는 다섯 남자, 그들이 새롭게 쓸 이야기.

아프로 DPR 라이브의 ‘Right Here Right Now(feat. 로꼬 & 박재범)’, 다이나믹 듀오의 ‘맵고짜고단거(Feat. 페노메코)’ 등을 프로듀싱한 DJ이자 프로듀서. 자신이 직접 설립한 크리에이티브 컴퍼니 ‘이즈 디프런트(IS DIFFERENT)’, 창작 집단 ‘스튜디오 콘크리트(Studio Concrete)’를 통해 다양한 예술 작업을 펼펼쳐왔다. 이를 기반으로 2022년 첫 정규 앨범 를 발매하고 뮤지션 활동을 잠시 멈췄던 그가 다시 음악에 주파수를 맞춘다.

SAME OTHER | 2022년 ‘이즈 디프런트’를 설립하고, 이곳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공연, 전시, 광고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창작 활동을 펼치는 크리에이티브 컴퍼니다. 음악을 할 때와 비교하면 만나는 사람, 쓰는 언어가 달라져 적응하고 안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또 다음 앨범에 쓸 새로운 이야기를 축적할 시간도 필요했고.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다. 1월에 시작을 알릴 뭔가를 공개할 예정이다. 전처럼 영화관에서 음감회나 뮤직비디오 시사회를 열든, 미술관에서 음악과 미술을 전시하든, 이번에도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만나고 싶다. 새 챕터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sameOTHER’다. 최근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중 하나가 ‘모순적 조화’다. 나의 시그니처 사운드 ‘APRO IS DIFFERENT’라는 문장에 한창 빠져 살던 때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해 늘 곱씹게 되었다. 그 사유의 끝에서 발견한 단어가 ‘세임 아더’다. 음악, 전시 등 어떤 형태로든 ‘세임 아더’를 표현해보고 싶다. 2025년을 앞둔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이냐면… 이사한 집에 인테리어가 끝났다는 문자를 받고 그곳으로 가는 중인 것 같다. 기대감과 설렘을 안은 채.

두 번째 챕터 | 춤에 빠져 살던 때도 있었고, 아이돌 연습생 시절도 있었다. 방황도 많이 했다. 그러다 프로듀서로 전향해 여러 아티스트의 곡을 만들며 물 흐르듯 여기까지 왔다. 친한 동료인 콜드와 함께 레이블 ‘웨이비’를 론칭하고, 거기서 첫 정규 앨범 도 발매했다. 앨범을 내는 건 프로듀서인 내게는 큰 모험이었다. 게다가 나는 미디어에 노출된 적도 없었기에 내 이름으로 음반을 낸다 한들 관심받지 못할 거라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래도 일단 ‘좋은 음반을 만들어보자’, ‘세상에 나의 기록물을 남겨보자’ 는 생각에 앨범을 냈다. 돌이켜보면 건설적 방황이었다. 딱, 여기까지 나의 첫 챕터다. 이제는 방황했던 그때와 경험을 디딤돌 삼아 두 번째 챕터를 시작하려 한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재미있는 조각을 더하고 빼며 사람들에게 잔향을 남길 수 있는 뭔가를 창조해보고 싶다.

황병국 영화 <부당거래>, <내부자들>, <돈> 등을 통해 ‘신스틸러’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본업은 영화감독이다.
대표작으로는 국제결혼을 소재로 한 <나의 결혼 원정기>가 있다. 2011년 <특수본> 이후 13년이라는 오랜 공백기를 걸어온 그가 2025년 <야당>으로 복귀한다.

야당 | 2025년 개봉을 앞둔 작품이다. 영화 제목 ‘야당’은 본래 소매치기에게 기생해 상납금을 받는 사람들을 일컫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 야당이 정보를 팔아 마약 관련 범죄자를 감형시키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획 계기는 마약 수사에 관한 신문 기사였다. 그 내용을 읽고 흥미가 생겨 야당에 대해 조사하게 된 거다. 작품을 촬영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어둡고 뻔한 범죄극으로 그려내고 싶지 않았다. 속도감 있는 전개를 위해 배우들에게도 대사 사이의 여백을 최소화해달라고 디렉팅했고, 그 과정에서 배우 강하 늘과 유해진, 박해준은 ‘도사’급으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긴 연출 공백기 동안 영화 제작 환경도 많이 바뀌었지만, 많은 동료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칠수 있었다. 그간 복귀를 시도한 작품이 여러 번 엎어졌기에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다’라는 간절한 생각으로 임했다. 영화사 사무실에 편집 기계를 갖다 놓고 1년간 매일매일 편집만 했다. 그러다 보니 꿈에 작품 내용이 나올 때도 많았다. ‘신 또한 이런 간절함을 알아주지 않을까’ 고대한다.

갈망 | 오랜 연출 공백기를 딛고 다시 도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갈망’이었다. 그간 최선을 다한 연출 작품이 끝에 가서 엎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영화 <부당거래>, <서울의 봄> 같은 카메오 촬영 현장은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다. 오랜 동료와의 만남인 만큼 (카메오로 섭외받아) 현장에 나서면 처음은 늘 즐겁다. 하지만 연기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나는 연출하는 사람인데 왜 연기를 하고 있을까’라며 어김없이 무력감과 비애를 느낀다. 그리고 그때 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한 갈망이 다시금 생긴다. 지난 연출 공백기는 내가 왜 이 현장을 사랑하고, 다시 도전하고 싶은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요즘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꾼 꿈을 다시 추억한다. 당시 8mm 카메라를 구매해 고등학교 친구들을 대상으로 단편영화를 촬영하곤 했다. 극장에서 <E.T.>를 보고 귀가하던 길도 생각난다. 그때의 순수한 열정과 지금의 갈망으로 이제는 뜨겁게 달릴 준비가 됐다. 새로운 시작이다.

민규동 영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내 아내의 모든 것>, <허스토리>, <간신> 등 어디로 튈지 모를 필모그래피를 통해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왔다. 그의 필모는 2022년 <간호중>을 끝으로 멈췄다. 그간 그는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로서 얼어붙은 영화계를 살피고, 저작권법 개정에 힘쓰는 등 늘 영화와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개인 작업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2024년을 쏟아부은그 작품이 베일을 벗는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파과>다.

파과 | 큰 도전이었다. 소설 <파과>를 영화로 제작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섬세한 심리 묘사가 많은 작품이기에 2시간 가량 서사로 각색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넘어야 할 허들이 많았지만, 장르물에 대한 관심이 컸던 터라 주저하지 않았다. <파과>는 하드보일드 액션 누아르다. 이런 장르의 중심에는 보통 멋지고 건장한 남성이 있지만, <파과>는 60대 여성 킬러가 극을 이끈다.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도달했을 때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요즘 젊은 친구들도 살다가 한 번쯤 이렇게 자문하지 않을까? 장르적 색채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60대 여성의 캐릭터로 재미를 더하면서 사유할 여지를 남길 수 있는 작품으로 각색해보고 싶었다. ‘조각’ 역은 실제로 60대인 이혜영 배우가 맡았다. 조각은 소유하지도 욕망하 지도 않으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주어진 일만 하는 아주 외로운 인간이다. 레옹 같은 인물이다. 그렇기에 기존 이혜영 배우의 도회적 이미지는 완전히 지워야 했다. 여러모로 배우에게도 큰 도전이었을 거다. 영화가 세상에 공개되면 관객의 것이 되겠지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하나의 이미지라도 뇌리에 남았으면 한다. ‘그 사람, 한번 만나보고 싶다’, ‘실제로 그곳에 가면 그 인물이 있을 것 같아’라는 느낌이 들면 좋겠다. 지금은 한창 후반 작업 중이다. 이 친구의 운명은 정해졌다. 2025년, <파과>는 이제 관객의 손에 쥐여주고,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위해 떠나볼 참이다.

MEMENTO MORI | 초등학생 때부터 ‘소년소녀세계 문학전집’을 수십·수백 번은 읽었다. 내가 쓰는 이야기의 자양분이다. 물론, 내가 만든 영화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다. 고전적 서사가 짙게 담긴 이야기는 영화가 되지 못했다. 많은 영화를 기획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온 영화는 자본과 시대와 관객이 선택한 거다. 만들어지는 것과 만들고자 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러 이야기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드러낸 것 같다. 터부시하는 것을 과감 하게 다루는 재미를 꽤 즐겼다. 내가 만든 첫번째 영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영어 제목이 Memento Mori였다. ‘죽음을 생각하라’라는 라틴어로,16~17세기 프랑스 수도사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인사였다. 결국 우리는 죽음에 이르니 분노할 필요도, 집착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난 삶이 유한 하기에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을 가로막는 것이 너무 많다. 억압이나 편견처럼, 우리를 가두는 것을 영화적 힘과 에너지로 깨고 싶었다. 굳은살을 하나하나 떼어 내고 깨어날 때의 쾌감을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김바다 시나위, 아트오브파티스, 레이시오스 등 록 밴드 출신 보컬리스트. 2025년 4월, 데뷔 30년 만의 첫 정규 앨범 <바다가 시작되는 곳>을 발매하며 대중음악에 도전한다. 팬들과의 만남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계획 중이며, 6월에는 정통 록 장르 앨범도 발매를 준비하고 있다.

바다가 시작되는 곳 | 이름 그대로 나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앨범이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이전에는 급하게 앨범을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규 앨범은 인내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신곡보다는 그동안 쌓아둔 곡이 주를 이루는데, 이를테면 타이틀곡 ‘길끝’은 2013년에 선보인 ‘베인’을 재구성한 곡이다. 수록곡 ‘소란’, ‘늦비’의 경우 시티팝 장인 (김)현철이 형이 흔쾌히 편곡해주셨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더 깊이 있고 세밀하게 음악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사운드 디자인, 곡의 구조와 감정선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고, 결과물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단지 하나의 앨범을 완성하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명확하게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돈이 되는 음악은 아니겠지만, 내가 보여준 앨범이 한 명의 리스너에게라도 진심이 닿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밴드 | 밴드 음악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요소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밴드 음악이 자아내는 ‘사운드’가 날 살아 있게 한다. 처음 (밴드 음악을) 시작하게된 계기도 일렉 기타 특유의 톤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에서 내게 음악은 사운드를 계속 발굴하고, 실험하고, 조합하는 과정이다. 내 목소리와 악기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소리를 발견하고, 그 소리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은 아티스트로서 지대한 동기부여가 된다. 시나위로 데뷔한 이후 다양한 밴드를 거쳐왔고, 그 과정에서 늘 나만의 색깔을 찾고자 노력했다. 록 장르와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도 많았지만, 이제는 내가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 요즘 ‘밴드 붐’이 돌아왔다는 걸 새삼 느낀다. 실리카겔 등 다양한 밴드가 좋은 음악을 보여주고 있지만, 진득하고 깊숙한 록 음악에 대한 니즈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름을 걸고 시작한 김바다 밴드는 그런 니즈를 가감 없이 풀어낼 공간이다. 이제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증명할 일만 남았다.

박지원 수원 KT 소닉붐 소속 가드. 2020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입단한 유망주였지만, 슛 약점으로 출전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그런 그가 최근 상무 농구단 전역 후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올 시즌 6경기에서 10.0점, 3.2리바운드, 4.2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2024년 12월 16일 기준). 표본은 적지만 지표상으로는 프로 데뷔 후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어가고 있다.

상무 농구단 | 군 입대(상무 농구단 입단) 전,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위축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자책하곤 했다. 100%의 나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돌입한 상무 농구단 생활은 공백기인 동시에 내 생각을 지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전 에는 치열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농구를 했다면, 이제 한 발짝 물러서 경기 상황을 두루 볼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줄곧 농구만 해왔기에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도 필요했다. 복귀하면서 가장 고심한 부분은 무엇보다 ‘지금 팀에 나를 전력으로 내세울 수 있느냐’였다. 시즌 중간에 복귀하는 만큼 팀 컬러에 녹아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팀이 내게 필요로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팀의 일원으로서 승리를 가져다줄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코트 위에서 서포터즈를 마주할 때마다 ‘더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다짐한다.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건 특권이다.

| 2020-21 KBL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지명된 후 “KBL의 별이 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전에는 그 ‘별’을 가장 빛나고 눈길을 끄는 스타 선수로 생각했지만, 공백기를 거치면서 ‘팀을 위해 헌신하고 경기를 즐길 줄 아는 선수’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때는 ‘슛 성공률이 낮다’는 꼬리표를 의식하고 던질 기회가 찾아와도 그 자리를 피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멋있게 (공을) 넣든, 어렵게 넣든 중요하지 않다. 화려하지 않더라도 팀을 위해 유유히 빛나는 선수, 그게 가장 별다운 선수가 아닐까.

에디터 이도연, 박찬 사진 신선혜 헤어 & 메이크업 이담은 스타일링 이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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