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는 사람들이 꼽은 인생 밤하늘
별 보는 사람들이 전세계 각지에서 포착한 인생 밤하늘을 소개한다.
KIM SEUL WOO
머나먼 남반구에서
올여름 두 달간 떠난 호주는 깨끗한 공기와 유난히 어두운 하늘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은하수 아치, 제단자리 용 성운, 에타 카리나 성운을 포착하면서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밤하늘을 접했다. 맨눈으로도 선명한 은하수는 별빛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듯했다. 먼 남반구인 호주까지 무거운 장비를 들고 원정 촬영을 온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촬영 계기 및 이유 어릴 때부터 밤하늘을 동경해 토성, 목성과 밝은 성운 및 성단을 찾아다녔다. 성인이 되고 나서 어릴 적 눈으로만 보던 대상을 사진으로 만들어냈을 때의 쾌감은 잊을 수 없다. 밤하늘을 관측하다 보면 그때만큼은 일상 속 걱정과 불안감이 사라진다.
관측 장소 도심 속 광해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주로 찾아다닌다. 풍경을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주변 경관은 고려하지 않지만, 밤하늘을 가리는 높은 나무나 산이 있는 곳은 되도록 피한다. 언젠가 칠레 아카타마 사막의 밤하늘을 다뤄보고 싶다. 별이 잘 보이려면 주변에 도시가 없고 습도가 낮으면서 고도가 높아야 하는데, 그 모든 요소를 충족하는 곳이다.
애용 장비 대구경 반사망원경을 선호한다. 부피가 크고 무게가 무거워 운용 자체는 어렵지만, 그만큼 많은 빛을 빠르게 모을 수 있어 좋은 퀄리티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_ 김슬우(@Through_astro)
BAE JUNG HOON
2200년 전 성운과 함께 시간을 넘다
밤하늘의 별은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보면 늘 똑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비추는 것처럼 보인다. 백조자리에 위치한 북아메리카 성운의 한 부분을 촬영했을 때 신비감이 든 이유다. 빛의 속도로 대략 2200년 정도 떨어져 있으니, 내가 촬영한 것은 촬영일 기준 약 2200년 전의 모습인 셈이다. 한편 역대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촬영한 말머리 성운은 그해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촬영하는 데만 총 100시간 넘게 소요됐다. 퀄리티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가장 고생하며 촬영한 것이다.
촬영 계기 및 이유 학창 시절 하굣길에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다. 하늘에 별이 아닌 뿌연 무언가가 빛나고 있었는데, 나중에 ‘헤일 밥’ 혜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후 밤하늘을 들여다보면 고요한 안식을 느끼곤 한다. 수십, 수백 년을 날아서 나의 눈에 들어온 별빛이나 수십, 수백만 년 동안 빛나는 성운, 성단, 은하를 보면 ‘내가 너무 작은 일로 괴로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측 장소 단양, 홍천, 인제에 자주 간다. 언젠가 ‘NGC5128’이라 불리는 센터우르스자리 전파은하를 꼭 촬영해보고 싶다. 고도가 낮은 국내에서는 촬영이 어렵기에 호주나 남반구로 떠날 생각이다.
애용 장비 샤프 스타의 SCA260을 사용하다가 최근 C14 EdgeHD를 구매했다. 초점거리 약 4000 mm의 카메라 수동렌즈라고 생각하면 된다. 총 두 가지 리듀서와 함께 사용 중이다. _ 배정훈(@im_mr.y)
LEE JAE WOO
태양계를 벗어난 우주 여행자
지난해 1월에 촬영한 C/2022 E3(ZTF) 혜성은 ‘우주의 여행자’라고도 불린다. 저 멀리 태양계 외곽에서 날아와 잠깐 아름다운 꼬리를 보여주고 금방 멀리 떠난다는 특성이 있다. 이번 지구 방문 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혜성인 만큼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의 질서를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로 운명처럼 여기는 천체 사진은 강원도 인제에서 촬영한 별똥별과 유성흔이다. 온도와 습도가 높은 대한민국 여름밤은 투명도가 높은 하늘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날은 운명처럼 은하수 위로 큰 별똥별이 하나 떨어졌고, 지나간 자리에 유성흔까지 선명히 남았다.
촬영 계기 및 이유 중학생 때 첫 천체망원경을 장만했고, 그 관심이 장래 희망까지 닿아 천문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밤하늘을 촬영하면서 가장 행복한 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둡고 먼 천2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번 첫 셔터를 누르고 컴퓨터 모니터에 천체의 모습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약 2~3분이 늘 즐겁고 신선하다.
관측 장소 일기예보를 통해 구름이 들어올 확률이 가장 낮은 지역을 선정한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나 경상북도 북부 오지를 주로 찾는 편이지만, 가끔 경북 의성 달빛공원으로 떠나기도 한다.
애용 장비 구경 10인치(250mm) 및 1000mm의 초점거리를 갖춘 뉴턴식 반사망원경 스카이와처 콰트로 250CF,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활용하는 적도의인 스카이와처 NEQ6-프로, 센서 냉각 기능을 갖춘 천체사진용 냉각 카메라. _ 이재우(@leewoos98)
KIM SEUNG JUN
캘리포니아 사막 위 황홀한 은하단
한국은 관측 장소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내가 거주하는 미국은 여전히 천체를 기록할 만한 좋은 장소가 많은 편이다. 캘리포니아 안자보레고 사막에서 마주한 아벨 426 은하단 사진이 대표적 기록물이다. 매년 11월 그믐 무렵 이곳에서는 ‘나이트폴(Nightfall)’이라는 대규모 스타파티가 열리는데, 200~300명의 별지기가 모여 수백 대의 망원경을 설치하고 관측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오리건주에서 관측한 개기일식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태양의 코로나와 홍염을 관측할 수 있었으며, 대낮에 하늘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신비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한편 8인치 돕소니언 망원경으로 관측한 M81 보데은하는 인생에서 처음 관측한 천체 대상이다.
촬영 계기 및 이유 밤하늘을 촬영할 때만큼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우주의 한 부분이 되어본다.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나를 이끈다.
관측 장소 가장 자주 찾는 곳은 GMARS(Goat Mountain Astronomical Research Station)다. 모하비 사막에 땅을 구매해 천체 관측용 돔과 망원경을 설치할 수 있는 콘크리트 패드, 숙소까지 갖춰져 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대마젤란성운과 소마젤란성운을 촬영해보고 싶다.
애용 장비 GMARS에 개인 슬라이드 돔을 분양받아 개인 천문대 ‘부엉이천문대’를 운영 중이다. GSO 10인치 트러스 리치크레티앙 망원경, 파라마운트 MX+ 마운트 등을 설치했다. _ 김승준(@seung.jun_kim)
LEE SEONG MO
천왕성이 달 위를 올라섰을 때
월식을 촬영할 때 잊지 못할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달이 점점 어두워지자, 평소 달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천왕성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하늘이 잠시 우주를 들여다보게 허락해준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마주한 화구 또한 인상 깊다. 별을 촬영하던 중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비추듯 갑자기 하늘이 온통 환하게 빛났다. 우주의 한 역사를 직접 목도한 듯 경외심마저 들었다. 한편 71년 만에 떠오른 폰스 브룩스 혜성을 기록하기 위해 혹한 속을 누비기도 했다. 오랜 기다림과 눈밭 속에서 폰스 브룩스 혜성을 담아낼 수 있었다.
촬영 계기 및 이유 밤하늘을 촬영한다는 건 단순히 예쁜 장면이 아닌 경이로움과 안정감을 담아내는 행위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우주와 별, 성운과 성단이 밤하늘에 펼쳐지면 작은 빛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큰 별이라는 걸 깨닫고, 그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실감하게 된다.
관측 장소 강원도 양구군, 인제군, 양양군처럼 도심 속 빛 공해가 거의 없고 지대가 높은 지역을 찾는다. 경상도의 보현산천문대와 영양군, 전라도 신안군, 고흥군에서도 종종 관측한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남반구의 은하수를 꼭 촬영해보고 싶다. 남십자성부터 마젤란은하, 그리고 용골자리의 거대한 별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나의 오랜 꿈이다.
애용 장비 넓고 깊이 있는 하늘을 담을 수 있는 14mm, 35mm 렌즈. 달이나 멀리 있는 성단과 성운, 은하, 혜성을 촬영할 때는 200~500mm 줌렌즈를 활용한다. 장시간 노출 촬영 시에는 적도의를 통해 지구의 자전 속도에 맞춰 별을 추적할 수 있다. _ 이성모(@seongm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