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연결의 건축
“건축물은 짓는 행위를 통해 완성된 일련의 관계”라 말하는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
그가 캐나다 밴쿠버에 새로운 연결 고리를 빚어냈다.
작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과 도시를 엮다, 알베르니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구마 겐고. 그는 서양 건축을 통해 현대적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선보이는 단게 겐조, 안도 다다오 등 선배 건축가들과 달리 일본식 목조 건축을 기반으로 설계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칸살이 이어지는 세로 격자, 양쪽에 번갈아 홈을 판 목재를 엮은 지고쿠구미 등 기법을 활용해 자연과 소통하는 건축물을 선보였다. 2009년 책 <약한건축>을 통해 ‘뭔가를 배척하는 건축이 아니라 다양한 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건축 철학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는 20세기 물질적이고 시각적인 건축을 넘어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약하고 작은 건축을 지향해왔다. 최근에는 “건축이라는 것은 앞으로 부드러운 것을 향해갈 것”이라며 근현대 건축을 이끌어온 콘크리트의 단단하고 무거운 물성 대신 인체와 정신의 부드러움을 전할 수 있는 나무, 패브릭 등이 건축물에 적극 활용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구마 겐고의 이러한 건축 철학이 십분 녹아든 고층 주거 빌딩 알베르니(Alberni)가 최근 캐나다 밴쿠버에 들어섰다. 구마 겐고의 첫 북미 프로젝트이기도 한 알베르니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캐나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던 그의 꿈을 현실화했다. 캐나다의 하이엔드 빌딩 디벨로퍼 웨스트뱅크(Westbank)와 피터슨(Peterson)이 협업한 건축물은 밴쿠버의 역동성을 엿볼 수 있는 알베르니 스트리트에 43층 규모로 완공되었다. 2016년 설계도를 공개한 후 6년여 준비 끝에 완성한 빌딩은 캐나다에서 가장 큰 공원 스탠리 파크(Stanley Park), 도심 선착장 콜 하버(Coal Harbour)와 인접해 초고층 빌딩이 늘어선 도시와 자연 모두를 품고 있다. 자연적 건축을 지향하는 구마 겐고에게는 최고 입지였다고. 빌딩은 넓은 테라스와 발코니가 딸린 181개의 주거 공간과 레스토랑을 비롯한 상업 공간, 편의 시설로 구성돼 있다. 인간과 자연, 환경의 관계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구마 겐고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이러한 철학을 형태, 소재, 설계 등을 통해 긴밀히 녹여냈다. 먼저 전면부에 깊이 파인듯한 캔틸레버(cantilever)의 실루엣을 더했는데, 빌딩은 하늘 높이 솟은 나무처럼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드러낸다. 또 파사드의 굴절된 부분은 자연, 환경과의 연결성을 위해 패널, 대들보 등 구조로 섬세하게 층을 나누고, 목재・유리・금속 소재를 교차로 사용해 부드러운 흐름을 일궈냈다. 빌딩 사이로 공기와 빛 등이 관통하면서 건축물의 거대한 볼륨감을 도시에 부드럽게 융화시킨 것. 또 건물 1층 야외 공간은 일본식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환경을 새로이 조성했으며, 중앙부에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피아노 ‘파지올리(Fazioli)’를 놓은 작은 아트리움을 완성했다.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를 통해 도시의 공명에 균열을 냄으로써 빌딩 내 거주자는 물론 지역 주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공간을 의도했다.
실내 역시 구마 겐고의 건축적 아이덴티티를 담아 목재를 활용했다. 가구와 패널, 마감재는 물론 작은 오브제까지 모두 목재로 구성했는데, 일본 전통 목공예 방식인 기구미를 적용해 장인정신을 드러냈다. 음악 감상실과 실내 수영장은 화재 위험으로 일부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했다. 구마 겐고의 건축 스튜디오 KKAA의 프로젝트 담당 발라즈 보그나르(Balazs Bognar)는 “본래 모든 공간에 목재를 사용하길 원했으나 법과 현실 사이에서 대안적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마음의 큰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대신 알루미늄 소재에 결을 더해 나무처럼 보이도록 최선을 다해 작은 것 하나에도 그의 건축적 철학을 놓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구마 겐고는 프로젝트를 끝낸 뒤 “일련의 작은 조각, 구조로 얼마나 큰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지 확인했다”고 소감을 덧붙이며 자신의 건축적 철학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