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 김 병 철
켜켜이 쌓아온 찰나의 장면들.
오늘 화보 촬영은 어땠어요? 평소 TV로 보던 스타일보다 과감한 의상을 준비했는데.
옷이라도 좋아야죠.(웃음) 옷 스타일이 다채로워 즐기면서 했어요. 촬영장 분위기를 리드하는 모습이 새롭게 보였어요.
지난 인터뷰 영상을 보고 내향적 타입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뭔가를 규정하는 건 위험한 것 같아요. 요즘 MBTI로 사람들을 내향인·외향인으로 분류하잖아요. 그런 틀이 다른 가능성을 없애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평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삽니다.(웃음)
그래서 오늘 촬영도 배우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했어요.(웃음)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해볼게요. 얼마 전 종영한 <닥터 차정숙>이 크게 사랑받았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인터뷰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습니다. JTBC에서 새로 시작하는 <짠당포>에도 출연했는데
<닥터 차정숙>출연자 네 명이 모여 드라마를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촬영한 프로그램이에요.
작품도 호평받았지만, 맡은 캐릭터가 주목받아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서인호는 차정숙만큼 돋보인 인물이죠. 그건 사람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정숙이의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인 만큼 변해가는 정숙이의 모습을 훨씬 더 인상적으로 본 분도 많을 거예요.
<닥터 차정숙>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서인호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나요?
비난받을 인물인 건 확실했습니다. 그런데 허술하고 우스꽝스러운 면도 있었죠. 이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잘 드러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재미있는 장면, 비난받을 장면만 잔뜩 있었으면 선뜻 선택할 수 없었을 거예요.
연기할 맛이 나는 캐릭터였네요. 현실에도 존재할 법한 남편상인데, 혹시 레퍼런스로 삼은 인물이나 경험이 있었나요?
딱히 그렇진 않았어요. 캐릭터의 중요한 정보는 대본에 모두 들어 있거든요.
대본에 충실한 배우군요.
그렇죠. ‘충실’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죠? 대본에는 늘 인물에 대한 힌트가 있어요.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간접경험이나 주변 사람을 참고하지만,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아요. 그래서 대본을 여러 번 보면서 상황을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하는 편이죠.
배우들을 보면 공부하듯 줄을 쳐가며 대본을 읽던데, 배우님의 대본도 그런가요?
배우마다 다를 텐데, 여러 이유로 메모를 하겠죠. 저는 메모를 잘 안 해서 대본이 깨끗해요. 어차피 연기할 때 대본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흥미로운 시나리오 위주로 작품을 선택한다는 인터뷰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흥미의 기준은 뭘까요?
이야기 전개나 구성을 유심히 보는편이에요.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전개됐을 때 변곡점을 맞아야 시청자도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구성이 좋으면 계속 몰입하게 되죠. 그런 부분을 제가 맡을 캐릭터보다 더 눈여겨봐요. 그렇다고 꼭 구성만 보는 건 아니고, 흥미로운 지점이 있으면 관심이 가요. 예를 들면 공감되는 내용이거나, 실험적 구성이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장르라든가.
그렇다면 <닥터 차정숙>은 어떤 면에 끌렸나요?
일단 상황 설정이 재미있었어요. 정숙이 레지던트로 병원에 들어오잖아요. 같은 병원에 아들, 내연녀, 아내가 모두 모이지 않습니까? 인호 입장에서 절대 모이면 안 되는 사람들인데, 이런 상황 설정이 흥미로웠어요.
나쁜 남자 서인호에게서 대중들은 큐티, 찌질함, 측은함을 발견했어요. 본인도 서인호에게 측은지심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처음 듣는 질문인데, 재밌네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생각했어요. 불륜을 저지르려면 되게 부지런해야겠다.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습니다. 이 사람을 신경 쓰면, 저 사람에게 미안하니 저 사람 부탁도 들어줘야 하고. 승희에게 선물한 팔찌와 똑같은 걸 정숙이에게 사줘야 하는 상황 같은 거죠. 계속되는 그런 상황에서 압박감이 좀 느껴지더라고요. 고난의 연속이랄까. 훨씬 더 힘든 상황에 처해도 할말이 없는 인물입니다만, 그가 처한 상황과 행동을 보면 ‘인생 참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듣고 보니 서인호는 거절할 줄 모르는 남자였네요.
맞아요. 참 우유부단한 사람이죠. 그래서 불륜도 상황에 몰려 오랜 시간 이어간 것 같아요. 맺고 끊는 걸 못하는 인물이죠.
단역 배우의 시간도 꽤 길었는데, 지금처럼 대중에게 크게 관심받는 날을 그려본 적이 있었나요? 배우의 길을 걸으면서 목표 지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딱히 목표가 있진 않았어요. 다만 아쉬움이 남지 않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은 항상 있어요. 그게 목표라면 목표죠. 제 연기를 보면서 ‘아! 저건 좀 다르게 해보면 어땠을까’ 하는생각은 늘 해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연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있습니다.
잘한 것보다 부족한 게 눈에 먼저 들어오나 봐요.
그 아쉬움이 제 선입견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요. 내가 나를 봐서 아쉬운 거지, 다른사람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래서 ‘아쉬움을 안느끼면 좋겠다’의 또 다른 의미는 ‘시야를 넓히고 싶다’인 것 같아요. 예전엔 내 생각이 완벽하게 반영된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요새는 예상치 못한 모습에도 익숙해지려고 해요
그나마 아쉬움이 덜한 캐릭터가 있다면?
서인호(?).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100% 만족하진 않지만, 좋은 점이 더 눈에 들어온 것 같아요.
인호의 다양한 모습만큼 변화무쌍한 표정 연기를 보는 재미도 컸어요. 개인적으로 얼굴을 정말 잘 쓰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의 마스크를 고찰해본 적이 있나요?
출연한 작품을 모니터링하거나 사진 찍힌 걸 볼 때면 아무래도 생각하게 되죠. 얼굴 윤곽이나 주름때문에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인상이 달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한없이 해맑은 모습과 악랄하고 매서운 모습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얼굴 같아요. 오늘 화보에서도 그 얼굴을 담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웃음)
드라마 에서는 “파국이다”라는 명대사와 함께 강렬한 인상을 남겼죠. 명대사를 탄생시키는 건 배우의 몫이 8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혹시 고심한 대사가 있었나요?
그런 거야 많죠. 최근작을 예로들면 병원에 입원한 정숙이 전화 와서 “와줄 수 있느냐”고 물을 때“내가 꼭 가야 되는 거냐?”라고 말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어요. 작품 속 상황이지만 그런 말을 내뱉는 게 어렵죠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왔지만, 배우 김병철을 수면 위로 올린 작품은 <도깨비>나 <태양의 후예>가 아닐까 싶네요. 배우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일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론 시청자의 반응이 뜨거웠던 작품이죠. 지금도 ‘파국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후 작업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변화가 조금씩 한 겹 한 겹 쌓여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러면 모든 작품이 터닝포인트였다고 말씀드릴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데뷔 18년 만에 첫 주연을 맡은 <닥터 프리즈너>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점진적 변화일 뿐,첫 주연이라고 특별하게 체감되는 건 없었어요. <닥터 프리즈너>의 선민식이 후반부에 급격히 무너지며 역할의 무게감이 좀 가벼워졌죠.(웃음) <닥터 프리즈너>가 <SKY 캐슬>의 차민혁과 비교해 역할 비중이 더 크긴 했지만, 주연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지점이 있는 것 같고. 그다음이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정복동이었죠.그때도 주연이지만, 체감은 잘 못한 것 같아요. 제 말이 좀 애매하죠?(웃음)
(웃음) 크레딧에 주연으로 이름을 올리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겠죠? 은 주연배우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요?
결과물이란 게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 평가할 수도, 대중성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겠죠. 이를테면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정복동도 극 중 존재감이 컸고, 작품에 대한 평가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에 비해 일주일에 1회 방영하는 드라마라 대중에게 각인되지 못한 작품 같아 아쉬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닥터 차정숙>은 전작보다 좀 더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고, 제가 해야 하는 것이많은 작품이라 확실히 의미 있었어요. 결과도 좋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무명의 시간이 더 길어졌어도 계속 배우 생활을 했을까요?
주연과 조연을 의식하고 조바심을 내는 성격이라면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치열하기보다는 주어진 역할을 해내다 보니 여기까지 올 수있었다고 생각해요.
언제부터 배우의 꿈을 키운 건가요?
고등학교 3학년,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었어요. 문제집을 풀다가 한쪽 구석에 적힌 문장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내 갈 길은 내가 스스로 개척해야 된다’였어요. 그걸 보는 순간 연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저와 연기의 접점은 드라마나 영화 보는 걸 좋아했고, 주말 명화를 즐겨 본 게 다니까. 부모님 눈치 보느라 마음 놓고 보진 못했지만. 그런 경험과 기억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어요
연극반 같은 데서 활동한 적도 없고요?
없었어요. 어린 시절 성당에 다니며 성극을 한 적은 있지만, 제대로 된 연기 경험은 아니었죠.연극반, 예고 출신 같은 배경도 없었고요. 주변 사람 중 제가 연기를 전공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입시를 위해 실기 시험을 준비하면서 제대로 된 연기를 처음 접한 것 같아요.
그러다 2003년 <황산벌>로 데뷔한 거죠?
대중에게 공개된 영상 작업은 이 첫 번째 작품인데, 사실 캐스팅된 건 영화 <알 포 인트>가 먼저였어요.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을 받으며 한참 준비했는데, 제작이 밀리면서 <황산벌>이 먼저 개봉한 거죠.
<황산벌>을 가장 애정한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가요?
좋은 작품이고 좋은 경험이었지만 제게 ‘가장’, ‘최고’는 없어요. 우유부단해보일 수도 있는데, 뭔가를 선택하는 걸 좀 어려워해요. 제 성향이 그래요. ‘중남자’여서 중간이라도 하자라는 마인드고, 튀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웃음)
우유부단하다지만, 보여주는 연기에서는 확신과 자신감이 넘쳐 보여요.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돌변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에디터님도 지금 하는 일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 아닌가요? 제겐 연기가 그래요. 내성적이라고 해서 에디터 일을 하면서 만들고 싶은 콘텐츠를 못 만들거나 안 만들지는 않잖아요. 힘들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이 일을 통해 표출하고 싶은 뭔가가 있는 거잖아요. 분야만 다를 뿐이죠. 뭔가를 표출하고 싶은 욕구가 저를 움직이게합니다
요즘 큰 관심 덕에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할 것 같아요.
오늘 인터뷰요.솔직했던 인터뷰인 것 같고,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하듯 인터뷰하는 자리가 많지 않거든요. 최근 JTBC 뉴스에 출연한 것도 새롭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뉴스 매체는 말하는 방식이나 옷 입는 스타일에서도 정해진 틀이 있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편했어요.
작품을 쉴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는지.
콘솔게임이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도 하고, 드라마·영화·소설 같은 걸 찾아서 보곤 합니다. 직업이 연기자이다 보니 이야기가 있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이일도 하는 거겠죠.
현재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요?
다음 작품을 고민하고 있어요. 다음 작업에서는 어떤 걸 바꿔야 할지, 무엇을 새롭게 시도하면 좋을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지냅니다. 시청자 입장에서 드라마도 보고요.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고 있나요?
감사하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과 좀 다른 캐릭터를 만나고 싶은데, 그게 또 마음 같지 않아서… 내용은 재미있는데 캐릭터에 대한 신선함이 적거나, 캐릭터는 새로운데 내용이 와닿지 않는다면 저는 전자를 택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