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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리스(Timeless) EP. 1 인터뷰

부모님이 물려주신 소중한 물건들과 그 고귀한 이야기.
박서보 화백의 아들 박승호, 김창열 화백의 아들인 김오안 영화감독, 타이거 JK, 자이언티, 김동현 건축가, 에스텔 차 작가 인터뷰.

PARK SEUNG HO & PARK SEO BO

“빼곡하게 편지를 써나갈 때도, 작품 구상 스케치를 할 때도
아버지의 손에는 항상 몽블랑 만년필이 들려 있었죠.”

박승호(박서보재단 이사장)
왼쪽_박서보 화백이 사용한 몽블랑 작가 에디션 2011 카를로 콜로디 볼펜.
오른쪽_박승호 이사장이 20년간 소장한 마이스터스튁 솔리테어 146 만년필.
박서보 화백과 그의 아들 박승호.
박서보 화백.
젊은 시절 박서보 화백과 어린 박승호 이사장의 모습.
박서보 화백이 세 자녀에게 보낸 엽서.
박서보 화백이 생전 사용한 몽블랑 만년필과 볼펜.

아버지로부터
30년 넘게 아버지 가까이에 있었어요. 6년 전부터는 한 지붕 아래 살았고요. 아버지의 삶에 녹아들어 그를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만년필을 애용하셨어요. 종이가 아까워 여백도 없이 빼곡하게 이어 쓴 편지부터 작품 구상 스케치까지, 늘 몽블랑 제품을 사용하셨죠. 그런데 그 펜들을 물려받은 적은 없습니다. 저 역시 대학 시절부터 몽블랑 만년필과 펜을 썼거든요. 이우환 선생님이 대학 입학을 축하한다며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6을 선물해주셨어요. 이후 아버지처럼 조금씩 다른 모델을 장만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마이스터스튁 라인을 좋아합니다.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이죠. 절제된 선, 절제된 기능, 절제된 소재랄까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모든 면을 고루 만족시켜줍니다.

그 물건과 나
지난해 가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언으로 당신이 쓰던 모든 물건의 관리를 제게 맡기며, 한 작가의 삶을 조명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라고 했죠. 아버지가 남긴 50여 종의 펜도 제가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2025년 말, 박서보미술관이 연희동에 문을 엽니다. 이듬해에는 제주도 서귀포 바다가 내다보이는 자리에 생기고요. 어떤 작품을 어떻게 구성할까, 방문자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까, 사적 영역을 어디까지 보여줄까 등 질문과 고민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만년필은 빼놓을 수 없는 전시 소재입니다. 사용하시던 펜에서 잉크를 빼고 깨끗이 세척하며 전시가 가능하도록 준비 중입니다. 아버지의 흔적과 조우하는 유일한 시간이죠.

내 아이에게
제가 쓰던 만년필을 주진 않을 것 같네요. 아이가 대학교에 들어갈 때 몽블랑 펜을 선물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죠. 우리 아이가 허술한 건지, (웃음)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일까요. 물건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제게 의미 있는 펜은 풍월당 당주이신 박종호 선생에게 있습니다.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유학 가던 날 공항 면세점에서 고민 끝에 거금을 주고 마이스터스튁 솔리테어 146을 샀습니다. 귀국 후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을 때도 늘 사용했고요. 20년 넘게 사용한 펜인데, 조기 퇴직하면서 드렸죠. 오페라에 대한 그의 식견을 존경하는 의미로 드렸습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수학자 존 포브스 내쉬의 삶을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면 동료 교수들이 자기가 쓰던 만년필을 존의 책상 위에 하나씩 헌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TIGER JK & BENNIE SEO

“지금도 이 가방을 열 때면 아버지의 모험담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타이거 JK(뮤지션)
타이거 JK 아버지가 기자 시절에 사용하던 가방.
타이거 JK가 항상 착용하는 아버지의 액세서리.
음악평론가이자 타이거 JK의 아버지인 서병후.
서병후 평론가가 1966년에 쓴 책

아버지로부터
가방과 팔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입니다. 각각의 형태 안에서 아버지의 삶과 정신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특히 큼지막한 가방은 기자 겸 칼럼니스트였던 아버지의 지난날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방에는 늘 노트와 펜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늘 글을 쓰셨죠.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수집한 호텔 노트와 레스토랑 메뉴, 심지어 비행기 기내지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가방을 열 때면 아버지의 모험담이 살아나는 듯합니다.

그 물건과 나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나 여행을 갈 때는 이 가방을 사용하곤 합니다. 주얼리는 특별한 날 착용해 그 의미를 기리죠. 물건이 손에 닿을 때마다 아버지가 항상 제 곁에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가방과 팔찌에는 아버지의 긍정적이고 영적인 삶의 방식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기애와 마음의 힘을 중요시하는 분이었죠. 이 물건들을 보고 만질 때 그분의 깊은 가르침과 사랑을 느끼곤 합니다.

내 아이에게
두 물건이 가족의 유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대를 거쳐 물건에 깃든 삶의 자세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이 시대에 너무 낭만적인 말일 수 있지만, 짧은 인생에는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고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아이가 ‘생각의 자세’에서 더 크고 위대한 가치를 찾기를 희망하며.

KIM OAN & KIM TSCHANG YEUL

“아버지가 물방울을 작품의 강박적 모티브로 삼으면서
집 안 곳곳에 물방울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김오안(영화감독)
김창열 화백이 사용하던 유리잔.
김창열 화백과 그의 둘째 아들 김오안 영화감독.
김창열 화백과 그의 아내 김 마르틴.
김창열 화백과 그를 둘러싼 물방울 작품.

아버지로부터
1980년대 만들어진, 유리 속 기포가 영롱한 빛을 발하는 잔. 아버지가 40년 정도 사용하신 물건입니다. 같은 모양의 잔을 여러 개 갖고 계셨죠. 이 기사를 위해 오랜만에 사진첩을 넘겨보다 부모님이 저녁 식사하는 사진에서 이 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물방울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으면서 집 안 곳곳에 물방울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현관문에 물방울 그림을 그렸고, 물방울이 맺힌 듯한 이 유리잔도 사 모으셨죠. 아버지가 물방울에 집착하는 모습은 이상해 보였지만, 어린 시절엔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어떤 아버지는 빵을 만들고, 또 어떤 아버지는 컴퓨터를 수리하고, 나의 아버지는 물방울을 그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야 물방울에 대한 강박, 그 이상함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평생 ‘물방울’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전념하는 일, 아버지는 그게 왜 중요했을까요?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지만, 추측하자면 물방울은 어떤 의미를 넘어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기자들이 대답을 재촉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 의미에 대해 논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수천 개 물방울로 이루어진, 무한하게 풍부하고 변화하는 그 우주를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물건과 나
아버지의 흔적은 제 일상에 여전히 머물러 있습니다. 이 잔이 그중 하나입니다. 202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몇 개의 잔을 제가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일상에서 물잔으로, 와인잔으로 사용하고 있죠. 세련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소박해 보이는 게 마음에 듭니다. 물방울이 맺힌 듯한 이 잔을 볼 때면 자연스레 아버지와 아버지의 작품을 떠올리게 됩니다.

내 아이에게
물건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 사랑 그리고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딱히 물려주고 싶은 건 없지만, 나를 떠올리며 기분이 좋아지는 뭔가를 그들이 찾아내기를 바랍니다. 그 물건의 의미와 가치는 그들의 손에서 다시 쓰여지겠죠.

ZION.T & KIM KI CHANG

“아버지의 선글라스는 ‘나’ 라는 브랜드를 완성할 수 있게 만들어준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자이언티(뮤지션)
자이언티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레이밴 선글라스.
어린 시절의 자이언티와 그의 아버지 김기창.
자이언티의 손.
자이언티의 귀.

아버지로부터
데뷔 전, 공연 스케줄이 생기면 가끔 아버지가 공연장까지 태워다주셨어요. 이 선글라스는 아버지의 차에 있던 물건이에요. 무대에서 쓰려고 아버지에게 이 선글라스를 빌려달라고 했죠. 그때 저는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거든요. 돌이켜보면 그날부터 공식적인 자리에서 선글라스를 벗어본 적이 없네요.(웃음)

그 물건과 나
누군가에게 ‘자이언티’로 스무고개를 한다면 선글라스는 아마 가장 중요한 힌트일 거예요. 아버지의 선글라스는 ‘나’라는 브랜드를 완성해준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부모님이 이 인터뷰를 보면 마음 아파하실 수도 있어요. 사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물건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처음엔 ‘몸뚱이’라고 답했어요. 그 어떤 물건보다 값지고 제일 근사한 건 ‘나’인 것 같아서, 내 몸의 부분부분을 폴라로이드로 찍어 보내려고 했죠. 물려받은 물건이라면, 글쎄 초등학생 때 생일 선물로 받은 무당벌레 모양 연필깎이, 성경책 정도가 생각났지만 이 기획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요.(웃음) 그나마 선글라스가 생각나서 다행이었죠.

내 아이에게
나중에 부자 아빠가 되더라도 돈이나 값진 물건보다는 어떠한 ‘능력’을 물려주고 싶어요. 또는 그 능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저희 부모님이 제게 가르쳐준 것처럼요.

KIM DONG HYUN & JUNG MI OK

“길운을 위해 거는 달마도 대신
어머니의 그림을 걸었습니다.”

김동현(건축가)
김동현 건축가의 어머니가 1990년대 초 구매한 여행 가방.
어머니가 대학생 시절에 그린 그림.
어린 시절의 김동현 건축가와 그의 어머니.

어머니로부터
건축은 미적 감각이 요구되는 일입니다. 특히 저는 건축뿐 아니라 공간에 가구를 놓고, 소품을 배치하는 등 스타일링까지 하기에 종종 ‘내가 미대생인 어머니의 독특한 감각을 물려받았구나’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림 제목은 어머니가 따로 짓진 않았지만, 제가 ‘여인의 누드’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1983년쯤 미대 재학 시절 누드 모델을 그리는 수업 때 완성한 작품이라고 해요. 당시 10여 명 중 다른 사람은 모두 실사화를 그리는데, 어머니 혼자만 추상화를 그렸다고 하더군요. 그날의 기분이 다소 우울해 일부러 피부와 배경색도 강렬하게 표현했다고 해요. 그래서 더 특별하지만요.(웃음)

그 물건과
이 그림은 40년이 훌쩍 지난 작품이지만 시대를 초월한 미감이 있어 좋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을 오픈할 때 선물로 달라고 했죠. 건축이라는 일이 사람을 설득해야 하고, 큰 비용이 드는 작업이기에 쉽게 예민해져요. 가끔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제 얼굴만 봐도 어떻게 살았는지 보이시나 봐요. “너무 애쓰지 말고, 늘 편안하게 해라”라고 말씀하시죠. 그림을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도 나고 편안함을 느낍니다. 가방은 어머니가 1990년대 초 골동품 상점에서 구매한 거예요. 크기가 넉넉하고 견고해 동유럽이나 중동 등 장거리 여행 때 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우연히 그걸 발견하고 세월의 흔적을 지닌 게 멋스러워 제가 쓰고 있어요. 저 역시 긴 출장을 갈 때, 인테리어를 위한 고가의 소품을 옮길 때 쓰곤 해요.

내 아이에게
어머니는 서양화를 전공한 후 작가 활동과 미술 학원 운영을 병행하셨어요. 또 민화를 그리다 지금은 그만두셨지만, 뭐든 허투루 하지를 않으세요. 심지어 집을 꾸밀 때도 취미로 하기보다는 완성도를 중요시하죠. 제가 아이를 낳는다면 어머니께 물려받은 미적 감각과 섬세함, 성실함 등을 물려주고 싶네요. 어머니의 미술 작품과 제 건축물도 보여주고 싶고요.

ESTELLE TCHA & SUL SOO YOUNG

이 옷을 걸칠 때면 “우리 때는 저버가 최고였지”, “미국에서 귀국한 아빠가 위아래 저버를 입고 나타났는데 말이야” 등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부모님의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듣게 됩니다.

에스텔 차(화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마리떼 프랑소아 저버 데님 재킷.
어머니와 아버지의 추억이 깃든 까르띠에 방돔 머스트 시계.
에스텔 차 작가의 부모님.
마리떼 프랑소아 저버 데님 재킷을 착용한 에스텔 작가의 어머니.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마리떼 프랑소아 저버 데님 재킷을 착용한 에스텔 차 작가.
작가가 직접 테일러링한 데님 재킷(작가의 웨어러블 아트 프로젝트 ‘Art Framed by Function’)

어머니로부터
뉴욕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졸업 선물을 하나 건넸어요. 빳빳한 쇼핑백에 담긴 건 옥스 블러드 컬러 박스. 단번에 알아봤죠. 그 안에 든 물건은 까르띠에 방돔 머스트 시계였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목에서 본, 사파이어 크라운이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 같아 기억 속에 작은 점으로 남아 있던 물건입니다. 신혼 시절 대학원생이던 아버지가 시카고 다운타운의 까르띠에 매장을 지나다 그 시계를 보고 반했는데, 조교 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어머니에게 선물했다고 해요. 부모님의 기억 속 첫 시계를 물려받는 건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물건 외에도 스타일링 팁부터 장소에 적합한 옷차림 등 감각을 물려주셨어요. 제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카디건 단추는 하나로 여며 레이어가 보이는 게 좋고, 비니를 쓸 땐 옆머리를 얼마큼 빼는 게 좋은지 등을 알려주셨죠. 어머니는 제게 유일한 스타일 아이콘입니다.

그 물건과 나
이 시계에는 오랜 서사가 깃들어 있어, 혹여 그 가치를 흐릴까 봐 특별한 날에만 바람을 쐬어주곤 합니다. 화려하지만 겸손하고, 여성스럽지만 연약하지 않은 어머니의 매력이 온전히 스며든 시계 같아요. 그래서 이 시계를 차면 저도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옷도 꽤 많이 물려받았어요. 그중 손이 자주 가는 건 마리떼 프랑소아 저버 데님 재킷이에요. 이 옷을 걸칠 때면 “우리 때는 저버가 최고였지”, “미국에서 귀국한 아빠가 위아래 저버를 입고 나타났는데 말이야” 등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부모님의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듣게 됩니다. 이 재킷은 여러모로 의미 있습니다. 빈티지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준 옷이고, 제 브랜드 eee의 ‘Art Framed by FunctionTM’ 프로젝트의 영감이 되어줬거든요. 이 작업으로 미국 등 매체의 주목을 받기도 했어요. 빈티지 재킷 뒷면에 제 그림을 끼워 넣을 수 있게 테일러링한, 지속 가능한 웨어러블 아트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지금은 빈티지 디올 제품으로만 작업하지만, 초반에는 빈티지 데님으로도 작업했어요. 사실 저버가 첫 실험 대상이었는데, 어머니가 경악하시는 바람에 배제되었어요.(웃음)

내 아이에게
직업이 화가라 그런지, 물건에도 의미를 부여하곤 해요. 어떤 시간을 지나온 물건인지, 그 물건에 애정을 쏟은 사람이 누구인지 등이 가치를 불어넣는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착용감이 생기면서 물건도 사람처럼 저마다 성격과 매력이 생기는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쇼핑할 때도 스스로에게 “Does this speak to me!(마음에 울림이 있느냐!)”를 생각하게 돼요. 제 자녀에게도 이야기가 녹아 있는 물건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훗날 아이가 대학원에 진학하면 졸업할 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선물했던, 그리고 제가 어머니에게 받은 이 시계를 물려주면 딱 좋겠네요.

에디터 <맨 노블레스>피처팀 사진 신선혜 디지털 에디터 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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