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니 크라비츠와 예거 르쿨트르, 두 존재의 창조적 공명.
The Hour Before LENNY KRAVITZ
탁월한 성과는 숱한 헌신과 훈련의 시간이 빚어낸 결과다. 예거 르쿨트르는 레니 크라비츠의 삶을 비추며 그의 인생을 변화시킨 창조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문득 떠오른 생각과 가벼운 메모가 끝내 영원한 노래로 남듯, 위대한 창조란 결코 우연이 아닌 시간의 결실임을 전한다.

2024년 5월에 발매한 12집 <Blue Electric Light>는 당신의 음악 커리어에서 중요한 챕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Raise Vibration> 이후 6년 만의 정규 앨범인 점도 의미 있고요. 팬데믹 기간 바하마 자택에서 만든 이 앨범을 ‘삶의 축제(It’a celebration of life)’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Blue Electric Light>는 축제처럼 희망적이며, 아름다운 에너지가 넘치는 앨범이죠. 강렬한 힘이 느껴져요. 그리고 제 앨범이 모두 그렇듯이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저는 음악을 통해 사랑을 더욱 크고 넓게 울려 퍼지도록 하고 싶거든요.
앨범 발매 후 2024년 6월부터 지금까지 콘서트 투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는 6월 12일부터는 유럽 투어를 앞두고 있는데, 수많은 무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곡이나 특별했던 경험이 있나요? 솔직히 말하면, 곡의 의미는 매일 달라집니다. 같은 곡을 연주해도 그날의 공간과 관객, 분위기, 에너지가 모두 다르니까요. 음악은 같지만 그 음악이 흐르는 공기는 매번 새롭거든요. 사람들이 음악에 몸을 맡기고, 즐기고, 에너지를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특별하고도 감사한 경험이죠. 이번 <Blue Electric Light> 투어는 제 인생에서 가장 기쁨으로 가득한 공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도를 기다릴 때는 아무것도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 파도가 찾아오죠.
그때 그것을 붙잡고 그 흐름이 이끄는 곳까지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랜 시간 활동을 이어오면서 음악인으로서 가장 크게 체감한 변화가 있다면요? 지난 몇 년간 객석을 보면서 정말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일곱 살 아이부터 일흔일곱 살 관객까지 모두 같은 공간에 있죠. 젊은 팬들은 신곡을 통해 저를 처음 알게 되고, 이후 과거 음악을 찾아 듣습니다. 누군가는 부모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제 음악을 접하기도 하죠. 그런 연결 고리가 제게 끊임없이 에너지와 영감을 줍니다.
37년 넘는 커리어를 돌아볼 때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언제였나요? 하나만 꼽자면 첫 앨범을 완성했을 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일이었거든요. 다섯 살 때부터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음악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무엇을, 어디서 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음악을 하고 싶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어요. 10대 시절 내내 저는 음반을 계약할 수 있길 바랐고, 저만의 사운드를 찾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습니다. 제 스타일이 아닌 것도 해봤지만 그 역시 저를 찾아가는 과정이죠.
한 인터뷰에서 ‘록이지만 펑키하고, R&B지만 너무 록’이라는 식의 평가 때문에 항상 어딘가에 끼인 존재였다고 했죠. 음악을 수정하면 계약해주겠다는 제안이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는데, 뮤지션이 되길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신념은 어디서 비롯한 걸까요? 그들은 제가 다른 사람이 되길 원했어요. 만약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을 거예요. 저는 유행을 따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겠죠. 그건 저라는 사람과 맞지 않아요. 저는 열다섯 살 때부터 길거리와 차 안, 누군가의 집 바닥과 소파를 전전하며 지냈습니다. 돈도 필요하고 음반 계약도 절실했어요. 그럼에도 저 자신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버진 레코드 담당자와 단 5분의 미팅으로 계약을 성사시킨 일화는 유명하죠. 자신을 증명한 짜릿한 순간이었을 것 같은데요. 첫 앨범 <Let Love Rule>(1989)은 저를 새로 태어나게 했습니다. 음악적으로도, 창작자로서도, 그리고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처음으로 온전히 보여준 작품이죠. 그때의 경험이 오늘날의 레니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나요? 그 앨범을 통해 비로소 저 자신을 믿고, 제 방식대로 음악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믿음으로 작업하고요.
지금의 당신을 있게 한, 첫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 ‘Let Love Rule’의 탄생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 곡을 만들기 직전의 시간을 떠올리면 어떤 장면이 그려지나요? ‘Let Love Rule’은 제가 스물두 살 무렵 소호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옆 벽에 써 있던 문구예요. 꽤 오랫동안 그곳에 살며 그 문구를 보곤 했습니다. 그저 괜찮은 말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 문구를 보다가 곧장 집에 들어가 소파 위에 있던 어쿠스틱 기타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곡이 나왔어요. 다음 날 뉴저지 호보켄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했죠. 그 노래가 저를 대변하는 메시지이자 대표곡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let’, ‘love’, ‘rule’ 그 세 단어는 제가 오늘날까지 믿는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 앨범 <Let Love Rule>(1989)은 저를 새로 태어나게 했습니다.
음악적으로도, 창작자로서도, 그리고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처음으로 온전히 보여준 작품이죠.”



<Let Love Rule>처럼 음악적 영감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오나요? 커리어 초반의 고민은 결국 제 음악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억지로 찾으려 하지 않자 어느 순간 제 안에서 뭔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지만, 저는 그 감각을 믿었습니다. 그때 알게 됐죠. 저는 뭔가를 만들어내기보다 제게 전달되는 것을 받아내는 안테나 같은 존재에 가깝다는 사실을. 그래서 저는 뭔가를 억지로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제 안에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면 아직 할말이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저 기다리는 거죠. 파도를 타는 것과 비슷해요.
말씀하신 ‘파도를 타는 것’ 같은 감각에 대해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파도를 기다릴 때는 아무것도 오지않을 것 같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 파도가 찾아오죠. 그때 그것을 붙잡고 그 흐름이 이끄는 곳까지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시간과 경험을 충분히 쌓은 뮤지션이 아니라면, 그 기다림이 조바심으로 이어질 법도 할 텐데요. 첫 앨범을 만들 때 처음에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2주 동안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시기가 있었어요. 너무 무서웠죠. ‘끝났구나, 나는 더 이상 음악을 못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당시 제 머릿속은 그랬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Be’라는 곡이 나왔어요. 제겐 굉장히 뜻깊은 곡입니다. ‘무언가가 되려 애쓰기보다, 그저 존재하라(Be)’. 그 곡이 가진 의미와 존재감에 저 자신도 압도됐습니다. 무언가 바로 오지 않는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죠. 창작에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내 안의 것이 제때 나올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합니다.
당신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 뮤지션으로 익히 알려져 있죠. 데뷔 앨범 <Let Love Rule>부터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퍼커션까지 대부분의 악기를 혼자 연주하며 원하는 사운드를 직접 만들어왔습니다. 완벽을 향한 집념은 장인정신에서 비롯한 것이겠죠? 아티스트로서 기술을 갈고닦는 과정은 하나의 긴 여정입니다. 완전한 마스터라는 건 없을지 몰라도, 어느 순간 자신이 가장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영역, 자기다움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자리에 도달하죠. 그리고 그 안에서도 계속 배우고 더 나아지려 합니다.
한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최고의 결과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예거 르쿨트르와 ‘The Hour Before’ 캠페인을 함께한 건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보입니다. 당신의 창작 여정과 예거 르쿨트르의 장인정신은 어떤 지점에서 맞닿아 있나요? 예거 르쿨트르는 아름다운 디자인과 깊은 역사를 품은 메종입니다. 사실 함께하기 전까지 예거 르쿨트르 시계를 소유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리베르소만큼은 늘 갖고 싶던 시계였죠. 메종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갈수록 이 협업이 저와 잘 맞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저는 퀄리티와 장인정신, 헌신, 규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 가치들은 예거 르쿨트르와 제 안에 모두 존재합니다. 여기에 열정까지 더해질 때, 비로소 궁극의 뭔가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뿐 아니라 당신의 스타일은 강렬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매력을 지녔죠.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점프슈트에 리베르소를 매치한 스타일링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예거 르쿨트르 시계를 선택할 때 기준이 있나요? 상황과 분위기, 색감에 맞게 시계를 착용합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좋은 점은 캐주얼하게도, 격식을 갖춘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거예요. 우아한 형태가 어떤 스타일과도 조화를 이루거든요. 2025년 MTV 뮤직 어워즈에서 슈트에 뱅글 여러 개와 리베르소, 반지를 함께 착용했는데, 오래전부터 이 시계를 갖고 싶어 하던 친구가 그 사진 속 제 손목 부분을 동그라미로 표시해 보내 왔어요. “네가 이렇게 스타일링하는 걸 보니 더 갖고 싶어졌다”고 하더군요.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패션도 본능적으로 그날의 감각에 맡기는 편인가요? 그렇습니다. 본능적인 편입니다. 무대의상도 마찬가지예요. 미리 고른 의상을 걸어두고 ‘오늘 밤은 이걸로’라고 정하지만, 막상입으려면 느낌이 오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의 감각이 중요합니다. 굉장히 즉흥적이죠.
어린 시절 아버지의 크로노그래프를 보며 시계에 처음 관심이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절의 기억을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카메라와 시계를 갖고 계셨는데, 신기하게도 저는 훗날 그 두 가지에 깊이 빠졌어요. 어린 시절에는 그저 장난감처럼 만져보곤 했습니다. 시계의 형태와 바늘, 다이얼이 참 흥미롭더군요. 작은 크로노그래프를 작동시키는 게 특히 재미있었고요. 버튼을 누르면 바늘이 돌고 1분, 2분, 5분, 그러다 한 시간이 지나가죠. 어린 제게는 아주 멋진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실 때 몰래 만지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봤다면 그리 좋아하지 않았을 거예요.
음악, 패션, 디자인.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타임리스(timeless)’일 것 같습니다. 창작자로서 그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앞서 말했듯, 첫 앨범을 만들 때 유행을 좇아 트렌디한 방식으로 녹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음악을 원하지 않았어요. 사용한 기술이나 장비, 스타일만으로 언제 녹음됐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음악은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더 자연스럽고 오래 남는 음악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Let Love Rule>은 지금 들어도 1979년, 1989년, 1999년, 2009년, 2019년, 아니면 오늘 녹음된 것인지 알아차릴 수 없게 작업했습니다. ‘타임리스’는 제 안에 늘 살아 숨 쉬는 감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