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RECOLLECTIVE MOTIF
여전히 한국에서 찾을 수 없는, 그때 그곳.
Route66, Sydney
최주연 / WPP GroupM 디지털 마케터
추억 시드니에서 유학할 당시 뉴타운에 위치한 루트66이라는 빈티지 숍을 자주 방문했다. 라이더들은 미국 국도 제66호선을 ‘마더 로드’라고 부르며 모터사이클 투어를 하기도 한다. 미국의 웨스턴 문화를 향한 이 숍의 애정과 아이덴티티를 체감할 수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품격 있게 워싱한, 1960~1970년대에 만든 카우보이·모터사이클 아이템이 시선을 끈다. 주말마다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서 카우보이 해트와 부츠, 라우드한 벨트 등 아이템을 서로 스타일링해주던 기억이 난다.
구매 제품 본 조비 같은 1980년대 팝 메탈 밴드 티셔츠부터 엘튼 존이 연상되는 아이웨어까지 다양한 제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빈티지 할리데이비슨 제품을 주로 구매했다. 숍에서 크롭트, 슬리브리스 톱 등 원하는 형태로 직접 수선할 수 있다. 구매한 티셔츠를 크롭트 슬리브리스 톱으로 수선한 뒤 한여름에 즐겨 입곤 한다.
그리워지는 순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덜 튀는 옷을 찾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 곳 아이템을 떠올린다. 보는 것만으로도 묵직하고 아이코닉한 웨스턴 빈티지 피스를 다시 한번 접해보고 싶다. 국내에도 웨스턴 빈티지 숍이 있지만, 제품의 희소성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가끔 입고되는 제품 중에는 잘 손질한 1940~1950년대 제품도 있으니!
Donlon Books, London
박성배 / 패션 포토그래퍼
추억 사진학을 공부하기 위해 떠난 영국. 살던 집 근처에는 입구에서부터 눈길이 가는 서점이 있었다. 독립형 서점이자 작은 규모의 출판사까지 병행하는 던런북스다. 런던 필드와 브로드웨이 마켓 사이에 위치한 이 서점에는 아트 관련 서적이 많았다. 유스 컬처, 카운터 컬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레어 북 컬렉션을 선보인다. 당시 집 앞에서 산책을 하다 부담 없이 들르던 서점이다. 한국에 귀국한 지 꽤 됐지만, 지금도 ‘이번에는 어떤 책이 들어왔을까?’ 기대하며 서점으로 향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구매 제품 많은 사진집을 구매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만족한 책은 전설의 사진가 헬무트 뉴튼의 빈티지 사진집이다. 그는 50여 년간 포트레이트, 누드,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 작업물을 선보였다. 사진학을 공부하면서 꼭 구매하고 싶었던 사진집이었기에 인상 깊게 남았다.
그리워지는 순간 관심 있는 해외 사진작가의 서적을 구매하고 싶을 때. 한국에서 아트 서적을 구매하려면 서촌 혹은 한남동의 서점을 방문해야 한다. 전문 아트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이 적은 탓에 방문객이 몰리기도 한다. 반면, 던런북스는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어 좋았다. 가끔은 잔잔한 마음으로 서점에 가고 사진가의 꿈을 키우던 그때 그곳이 그리워진다.
Phenomenon & Swagger, Tokyo
페노메코(정동욱) / 래퍼
추억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지냈다. 친구들과 하라주쿠에 놀러 갈 때면 스트리트 브랜드 매장을 순회하곤 했다. 스와거와 페노메논 매장도 그중 하나였다. 베이프, BBC, 스투시, 슈프림에 들른 뒤에는 일종의 루틴처럼 그곳을 찾았다. 지금은 사라진 스와거와 페노메논 매장은 한 건물 안에 각각 1·2층으로 들어서 있었다. 진열된 시즌 제품을 구경하고 나면 동행한 친구와 함께 길가의 군고구마와 콜라를 사서 나눠 먹던 기억이 난다.하라주쿠에서의 가장 즐거웠던 추억이다.
구매 제품 성인이 되어 다시 그곳을 찾아갔지만, 다른 브랜드 매장이 들어서 있었다. 스와거와 페노메논을 설립한 디자이너 다케시 오스미가 패혈증으로 별세한 직후 상품 발매가 멈췄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크게 남던 와중에 최근 다시 브랜드의 신상 발매 소식을 접했고, 추억의 아이템인 마원 보머 재킷을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비록 오른쪽 주머니 내부 마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늘 라이터를 잃어버리곤 하지만, 별문제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럽다.
VEB Orange, Berlin
이상훈 / 마세라티 세일즈 파트 팀장
추억 10년간 독일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다니던 학교 근처에 위치한 VEB 오렌지는 단순히 중고거래 장터가 아닌, 독일인의 삶과 생활 방식을 가장 깊숙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1960~1970년대 리빙 아이템을 주로 다루는 이곳은 작은 핸드 드라이기부터 소파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인다. 그중 가장 특별한 부분은 더 이상 제작되지 않는 동독 양식 디자인의 아이템을 다룬다는 점이다. 이곳을 접한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꼭 들르곤 했다. 어머니는 천편 일률적인 서울의 숍보다는 베를린만의 고고한 문화를 좋아했다. 이곳에서 구매한 제품을 볼 때면 어머니가 종종 생각난다.
구매 제품 에스닉한 색감의 전등과 티포트 세트, 카펫 등 다양한 리빙 아이템을 구매했다. 어머니는 구매한 제품을 수하물 무게를 초과하면서까지 택배로 부치곤 했다.
그리워지는 순간 사실 한국에도 유럽제 제품을 다루는 세컨핸드 숍이있지만, 패션 아이템을 취급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가격대 또한 합리적이지 않아 가끔 이곳이 생각난다.
Murano Vitrum, Venezia
윤현기 / 필름 디렉터 겸 브랜드 디자이너
추억 유년 시절 8년간 살았던 이탈리아 치비타노바 마르케. 이따금 가족과 함께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중에서도 한 달간 떠난 베네치아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종차별이라는 모멸감 속에서 한 줄기 햇살을 느꼈기 때문이다. 관광객에게 조롱당하던 와중에 우연히 만난 한 백인 부부는 피부색이 다른 우리를 친구처럼 보호해줬다. 이후 함께 방문한 유리 공방인 무라노 비트룸에서는 직접 머그잔을 제작하며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그 부부에게는 내 나이 또래의 딸이 있었는데, 그녀의 다정하고 세심한 성격 덕분에 더 설렜다.
구매 제품 유리 제품을 직접 제작하는 것 외에도 다채롭고 섬세한 양식의 수제 유리 장식품을 판매한다. 화병, 거울, 샹들리에부터 손가락만 한 크기의 조그만 세공품까지 모두 용광로에서 직접 제작한 수제품으로 그중 작은 동물 조형물과 화병을 구매해 소중하게 지니고 있다. 공장 제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오묘한 색감을 자랑한다.
그리워지는 순간 유니크하면서도 부담 없는 선물을 사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의미를 담은 세공품을 선물할 때 이 유리 공방 제품만 한 게 없다.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을 구매하고 싶을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이만한 유리 공방이 없는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