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THE WHISKY
part 4. 새롭게 발견한 단 한 모금

A.H. Hirsch 20Y
지난 7월 베를린의 바 ‘Becketts Kopf’를 방문했고, 첫 잔으로 윌렛 11년을 마셨다. 버번위스키를 좋아한다는 말에 오너 바텐더가 다음 잔으로 추천해준 A.H. 허시 20년을 경험했다. 20년이나 된 버번을 마셔본 것만으로도 잊지 못할 경험. 마지막 잔을 비운 손님이라며 공병을 선물해줘 한국에 고이 모셔왔다.
_ 젬마(허니젬)

Tamdhu Batch Strength No.7
지난 6월 탐두의 국내 첫 팝업스토어에서 국내에 수입된 적 없는 위스키를 한 번에 선보였다. 글렌캐런 글라스 세 잔에 각각 20ml씩 따른 후 맛을 비교하며 마시곤 했다. 1번 잔은 그대로, 2번 잔에는 물을 몇 방울 넣어서, 3번 잔은 열심히 스월링을 해보면 세 가지 위스키를 즐기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다채로운 캐릭터를 보여준다.
_ 김예연

Annandale
위스키 모임에서 신생 증류소의 위스키를 시음하던 중 만났다. 2014년 스코틀랜드 로랜드 지역에서 증류를 다시 시작한 위스키 증류소로, 지금도 싱글 캐스크 방식으로만 보틀을 출시해 더욱 특별하다. 싱글 캐스크 특성상 각 캐스크별로 미세한 맛의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적은 숙성 연도임에도 맛과 향이 좋아 앞으로가 기대되는
위스키 중 하나다.
_ 이승현

Blackadder Raw Cask Distilled at Admore Sigle Cask 2008
단 170병 한정 생산한 보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입, 코, 목에 맴도는 스모키한 여운이 마음에 들었다. 증류소에서 캐스크에 숙성 중인 위스키를 바로 뽑아 맛볼 때처럼 병 속에 작은 나무 조각 등 침전물이
보여서인지 활활 타는 장작불 근처에 머무는 느낌마저 들었다.
_ 김예연

Blanton’s SFTB
보통의 버번은 단순한 향과 맛으로 밀어붙이는 느낌이 강한데, 블랑톤 SFTB는 화려한 기교를 부린다. 모든 요소가 강렬하면서 충만하다. 잔에 따른 후 바로 마셨을 때, 5분 두고 마셨을 때, 10분 두고 마셨을 때 모두
다른 맛이라 색다르고 놀라웠다.
_ 주제도 모르는 놈들: 대라

The Westfalian 10Y ex-Port Charlotte Sherry Hogshead
도전적이고 도발적이다. 한국에는 아직 수입되지 않지만, 센서리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접했다. 독일이라는 원산지와 CS라는 정보만 주어진 블라인드 테이스팅이었는데, 이후 10년 숙성이라는 스펙을 알고 정말 놀랐다. 믿기지 않을 만큼의 성숙한 느낌이다. 당연히 피티드 원액을 사용했을 거라 생각한 강렬한 스모키함은 피티드 캐스크 숙성으로 얻은 것. 신선한 복숭아, 레몬, 베리류가 연상되는 위트 위스키로, 심지어 사케의 섬세함마저 느껴진다.
_ 김광연

PAUL JOHN Oloroso Select Cask / Peated Select Cask
수입사 대표가 냉철한 시음평을 부탁했는데, 큰 기대 없이 마셨다가 놀랐다. “우리 경쟁 상대는 암룻(인도의 인기
위스키)이 아닌 스카치위스키”라고 한 말이 이해될 정도. 기후로 인해 빠른 숙성으로 만들어진 CS급의 진한 타격감, 여섯 줄 보리에서 오는 밀도감, 보디감을 더한 인도 위스키만의 향신료 향이 인상적이다.
_ 반아트

Fettercairn 12Y
스코틀랜드 스카이섬을 여행할 때 들른 작은 펍에서 바텐더가 권해준 한 잔. 캐런 글라스의 기원이 된 이름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달콤한 과일 향이 은은하게 지속적으로 혀를 꼬시는 덕에 결국 한 병 사 들고
돌아왔다.
_ 우지경

Signatory Glenturret 1988 29Y
시부야의 바 ‘스가하라’ 바텐더 시라야마와 대화를 나누다 문득 ‘위스키에도 딸기 맛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는 레이블부터 딸기색인 보틀을 꺼내더니 “위스키의 위대함을 알 수 있을 거다”라고 했다. 향을 맡는 순간 마치 위스키의 신이 나타나 “더 이상 의심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위스키인지 딸기 요거트인지 헷갈릴 정도의 딸기 노트와 바나나, 파인애플이 어우러진 트로피컬한 한 잔이었다.
_ 주제도 모르는 놈들: 준짱

Barrell Seagrass
다채로운 열대 과일 노트를 지닌 신선하고 재미있는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데, 양조장 생산량도 넉넉해 직구로 쉽게 구할 수 있다. _ 위스키 세줄
파도가 적절한 높이에서 추진력을 받으며 서퍼들은 배럴 안으로 들어가 서핑하면서 파도 벽을 손으로 긁으며
보드를 타곤 한다. 나도 언젠가 파도 벽을 긁고 나와 마실 위스키로 정해뒀다. 살구를 중심으로 한 과일 향과 직관적 달달함은 딱 한적한 바닷가에서 마시고 싶은 맛이다. 풍선껌에 가까운 풍미도 느낄 수 있다.
_ 조봉현

Springbank 30Y
2023년 릴리즈된 스프링뱅크 30년은 국내에 단 네 병 수입되었다. 이전 배치 대비 훨씬 더 화려해졌다. 스프링뱅크 특유의 분향, 흰 꽃, 피트함과 함께 열대 과일 뉘앙스, 바닐라 터치로 긴 여운을 더한다. 최근 릴리즈되는 오피셜 위스키 중 드물게 다음 버전이 기대된다.
_ 최환

Akkeshi
일본 위스키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나서 궁금했다. 증류소 문턱이 상당히 높았는데, 운 좋게 홋카이도 위스키 페스티벌에서 앗케시 6종을 테이스팅할 수 있었다. 피트와 논피트 모두 훌륭하지만, 특히 피트 위스키의 밸런스가 상당히 좋다. 일본 현지에서도 지치부 증류소만큼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다.
_ 정보연

Westward American Single Malt CS
주류 박람회에서 처음 맛보고 충격을 받았다. 62.5도의 높은 도수에도 알코올 향이 강하지 않고, 아몬드의 고소함, 후추의 매콤함, 카카오의 달콤함까지 복합적 풍미를 느낄 수 있다.
_ 밤낮으로 위스키

Michel Couvreur Blossoming Auld Sherried
셰리 위스키도 도수가 생명이라고 믿는데, 45%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다채로운 향과 풍미에 놀랐다. 아니나 다를까. 50년 이상, 100년까지도 사용한 셰리 오크통, 그것도 퍼스트 필이었다. 고풍스러운 밀랍 봉인과 프랑스 특유의 절제된 라벨은 ‘역시 미식은 프랑스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_ 주제도 모르는 놈들: 닥처

Gordon & MacPhail Tormore distillery CS
위스키를 처음 배운 단골 바에 오랜만에 방문한 날 추천받았다. 1999년에 증류해 2014년 병입된 보틀로, 평소 독립 병입자에 대한 불신을 지워줬다. 세월을 거쳐 멋지게 숙성되어 충격적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 최근 도쿄와 오사카를 여행하면서 한국에선 쉽게 보기 어려운 희귀 보틀과 올드 보틀을 많이 접했지만, 이렇게 강한 인상을 받은 위스키는 오랜만이었다.
_ 손정필

Bowmore 21Y Aston Martin
바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리미티드 보틀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 취향을 잘 알고 있는 바 ‘장생건강원’에서 추천받았다. 달달한 풍미 덕인지 도수에 비해 목 넘김이 좋고, 끝에서는 인상적인 스파이스를 뿜어낸다.
애스턴마틴을 탈 수 없다면 위스키로라도 대리 만족을!
_ 에릭 배

Armorik Sherry Cask
프랑스 싱글 몰트위스키에 대한 기대감이 없기 때문에 ‘WWG’ 김신우 셰프의 서비스가 아니었다면 놓쳤을 경험. 10~20년 전 스카치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가 지니고 있던 그리운 맛이 난다. 스카치위스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시점에 제3국 싱글 몰트위스키에 대한 시각이 조금 바뀌는 계기가 됐다.
_ 정재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