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ociety 안내

<맨 노블레스>가 '디깅 커뮤니티 M.Society'를 시작합니다.
M.Society는 초대코드가 있어야만 가입 신청이 가능합니다.

자세히보기
닫기

헤이, 헤이, 헤이 자우림

자우림은 자우림이지. 항상 거기 있지.

1990년대 후반, 홍대 라이브 클럽 블루데빌에 ‘미운 오리’라는 이름의 밴드가 있었다. 가장 사람이 적게 찾는 목요일에만 무대에 서던 이 무명 밴드는 우연한 기회로 영화 제작진의 눈에 띄어 영화 <꽃을 든 남자> 삽입곡을 만들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Hey, Hey, Hey’라는 곡은 영화보다 더 히트해 미운 오리도 덩달아 메이저에 데뷔한다. 그들은 급하게 새로운 활동명을 짓는다. 자우림. 자주색 비가 내리는 숲. 그렇게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를 오가며 28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윤아 _ 레오퍼드 퍼 재킷 Bonbom.

어디 가는 길, 버스안에서
우리 곡이 흘러나오는 걸
처음 들었어요.
형들과 “이거 우리 노래야,
아니야?” 하며
소곤거리던 순간이 떠오르네요.

‘Hey, Hey, Hey’는 자우림의 첫 히트곡이죠. 라디오에서 처음 듣던 날, 어떤 기분이었나요? 윤아 어디 가는 길,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걸 처음 들었어요. 형들과 “이거 우리 노래야, 아니야?” 하면서 소곤거리던 순간이 떠오르네요. 저도 PC통신을 많이 했으니까, 온라인에서 반응을 실시간으로 봤거든요. ‘이 밴드 누구냐’, ‘이 노래 뭐냐’ 같은 말이 올라오고, 자우림이 누구인지 사람들에게 얼른 보여주고 싶었죠.

그게 1997년인데, 벌써 열두 번째 정규 앨범이 나왔네요. 12번째 앨범 <LIFE!>는 제목 그대로 삶과 정면으로 맞붙는 것처럼 들렸어요. 자우림의 음악은 늘 같은 사람이 주인공이죠. 가슴에 폭풍을 지닌 신원 미상의 청년. 이번 앨범에 등장하는 청년은 어떤 상태인가요? 윤아 사람들 대부분 꿈도 있고 사는 것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데 막상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과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는 상태라고 할 수 있죠. 요즘 청년들은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 청년은 지금껏 희망과 패배감이 결합된 ‘낙천적 패배주의’로 살아왔어요. 그에 비해 <LIFE!>는 더 노골적인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윤아 서울이 아니면 취업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대부분 서울에 살고요.월세를 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남는 돈이 얼마없죠. 당장 먹고살기 급급한데 저축은 어떡하고, 미래는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까. 이런 상황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내 인생, 어떻게 할 거야. 대답해봐. 내가 춤추고 있는 것처럼 보여? 나 지금 몸부림치는 거야’하는 태도가 반영된 거예요.

이번 앨범은 영국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과 믹스, 마스터링까지 진행했어요. 그곳에서 작업한다는 건 어떤 의미였나요? 선규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상징적인 장소죠. 개인적으로 상징성 그 이상의 기대가 있었고요. 스튜디오로부터 견적서를 받았는데, 가격이 엄청 비싸더라고요. ‘앨범을 제작하는 데 이 정도 돈을 써도 될까’ 싶었는데 결국 잘했다는생각이 들어요.

한 인터뷰에서 단독 공연과 페스티벌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앨범의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거라 말했죠. 윤아 공연 중 ‘라이프!(LIFE!)’와 ‘아테나(ATHENA)’를 떼창하는 맛이 무척 좋았어요. 아직도 그 여운이 귀에 찡하게 남아 있거든요. 진만 지금껏 공연에서 이렇게 신곡을 많이 한 적이 없어서, 셋리스트를 짠 뒤에 걱정했어요. 그런데 관객들이 모두 좋아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고심하고, 정성을 들이면 그 에너지가 온전히 전달되는구나’ 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선규 이번 앨범은 스튜디오에서 50% 완성했고, 나머지 50%는 무대와 관객이 채워준 거라고 봅니다.

선규 _ 레오퍼드 퍼 버킷 해트 Atiissu, 아우터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라이브 클럽은 자우림의 뿌리이기도 하잖아요. 1990년대 홍대에는 밴드가 오를 무대가 많았죠. 선규 클럽은 보통 사장의 취향이 반영되거든요. 자우림이 탄생할 수 있도록 무대를 내어준 블루데빌은 다른 클럽보다 기준이 좀 더 높았어요. 뮤지션을 선별해 세우는 곳이었고, 유앤미블루처럼 유명한 팀이 무대에 올랐죠. 윤아 그때는 드럭을 중심으로 펑크 신이 홍대에 널리 퍼져 있었어요. 그래서 블루데빌은 메인스트림 클럽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죠. 또 뭐가 있었지? 진만 잼머스. 그때 인디 신 자체가 ‘C코드 잡을 줄 알면 와서 연주해’ 이런 느낌이었어요. 근데 블루데빌은 ‘C코드만 잡아서는 우리 클럽에 설 수 없어’ 하는, 좀 더 도도한 편이었지. 선규 당시 인디 신에서도 펑크나 얼터너티브 록이 유행했는데, 블루데빌은 장르적으로 더 다양했던 것 같아요. 블루스랑 포크뿐 아니라 펑크도 있었고, 재즈 하는 분도 있었죠.

자우림은 시대마다 대표곡이 있는 밴드예요. 그 중 의외로 ‘살아남은’ 노래가 있다면요? 윤아 9집 <Goodbye, grief.>에 들어 있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요. 곡을 쓸 때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시간이 더 흘러 이 곡의 제목을 딴 드라마가 만들어지더라고요. 그 덕분에 더 많은 분에게 알려졌고요. 정말 생명력이 강한 노래라고 느꼈어요.

반대로, ‘이건 더 알려져야 했는데’ 싶은 곡도 많을 것 같아요. 선규 너무 많죠. 우리가 앨범 작업을 하면 보통 10곡 이상을 내는데요. 이게 너무 소모적이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12곡을 모아서 내면 한두 곡 외에는 대부분 잊히는 느낌이니까요. 싱글이나 EP 위주로 낼까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그건 우리가 재미없을 것 같더라고요. 앨범 하나를 만들고, 그 안에서 서사를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거든요.

진만 _ 스트라이프 후드 집업 Kimaura, 이너 톱 Champion, 선글라스 Gentle Monster,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집 <Purple Heart> 시절의 청년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진만 앞길이 조금 막막한 사람.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일 수도, 먹고살기 힘든 사람일 수 있어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괴롭지만, 포기할 수도 없잖아요. 청년은 우리이기도 하고, 당시 PC통신이나 뉴스를 통해 만난 사람이기도 해요. 우리는 세상을 보는 창이 필요하거든요. 음악만 하는 우리인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요.

1집 <Purple Heart>, 2집 <연인>, 3집 <Jaurim,The Wonderland>는 IMF 시기였어요. 그 불안한 공기가 음악에도 스며들었다고 느끼나요? 윤아 IMF 전부터 작업한 곡을 수록한 건데, 그럼에도 불안한 주인공이 많이 등장한 것 같아요. ‘안녕, 미미’, ‘일탈’도 사실 굉장히 불안한 사람이 폭발하기 직전의 이야기고요. ‘이틀 전에 죽은 그녀와의 채팅은’은 좀 섬뜩하죠. 막 성인이 돼 감당할 수 없는 자유와 책임감에 대한 긴장이 자연스럽게 담긴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신림동 옥탑방에서 미디로 데모를 만든 뒤 스튜디오에서 사운드를 완성했다고 들었어요. 지금처럼 시스템이 정교하지 않았을 텐데,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진만 미디로 데모를 만드는 방식은 11집까지 해왔어요. 옥탑방에서 작업하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녹음실에 갔는데, 장비가 너무 많아 당황했죠. 윤아 저는 노래하는 사람이잖아요. 헤드폰으로 듣는 목소리가 제가 생각한 것처럼 들리지 않으면 노래 하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당시에는 스튜디오 환경에 익숙지 않다 보니 답답한 상황이 자주 있었어요. 흉성과 두성을 오가며 노래하는 편이라 소리 차이가 큰데 그럴 때마다 리미터(소리가 일정 수준 이상 커지지 않게 막는 장치)가 걸리면 목소리가 갑자기 막히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러면 모니터링이 잘 안 되고, 제대로 노래할 수 없었어요. 지금 1집, 2집을 들으면 민망한 부분이 많아요. 톤도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게 노래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 다시 녹음하라고 해도 안 할 것 같아요. 어색하지만, 그때만 낼 수 있는 보컬이니까요.

진만 _ 레드 스트라이프 후드 Main Booth, 레더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윤아 _ 체크 원피스 Yilee, 펌프스 Jimmy Choo. 네크리스와 브레이슬릿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선규 _ 블랙 레더 셔츠 Calvin Klein, 사파리 해트 Genzero, 스트라이프 톱과 팬츠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 청년은 우리이기도 하고,
당시 PC통신이나 뉴스를 통해
만난 사람이기도 해요.
우리는 세상을 보는 창이
필요하거든요. 음악만 하는
우리 인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요.

1집부터 3집까지는 사운드를 더해가며 만들었다고 했죠. 당시에는 어떤 지점이 신경 쓰였나요? 윤아 사운드가 너무 비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지금 들어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처음이라 더 잘하고 싶어 욕심을 낸 것 같아요. 선규 당시 우리가 좋아하던 음악이 보통 굉장히 풍성한 소리를 냈어요. 기술적으로나 힘으로 뭔가 압도하는 느낌이었죠. 그런 곡과 우리 음악을 비교하면 빈약하게 들리는 것 같은 거예요. 그 착각 때문에 기타를 한 번이라도 더 치거나, 뭔가 더하는 과정에 시간을 많이 쓴 것 같아요. 진만 샘플러라는 기계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시기라 재밌었어요. 지금은 컴퓨터로 2분이면 가능한 작업인데, 그때는 하루 종일 소리를 찾아 헤맸죠.

4집 <Jaurim 04>부터는 오히려 사운드를 덜어내는 방향으로 선회했고요. 윤아 3집의 ‘매직 카펫 라이드’를 들어보면 트랙이 엄청 많거든요. 한 50개 되나? 샘플도 많이 들어 있고요. 꽉 채우는 걸 실컷했더니, 정작 라이브 할 때 아쉽더라고요. 그걸 다 구현할 수 없으니까요. 지금처럼 간단히 MTR을 들고 다니던 때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라이브에 적합한 구성으로 만들자는 게 4집의 시작이었죠.

9집 <Goodbye, grief.>부터는 작업 방식이 확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윤아 지금은 멀쩡하지만, 8집을 만들고 나서 제가 많이 아팠어요. 8집이 자우림의 마지막 앨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소리도 잘 안 들리고, 얼굴도 잘 안 움직였거든요. 의사도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다행히 노래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어요. 한번 건강을 잃고 나니 ‘내가 언제까지 음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껏 형들이 “이 정도면 됐지. 난 이게 좋다”고 하면 조금 아쉬워도 그냥 넘어 갔는데, 9집부터는 모든 걸 더 꼼꼼하게 만들기 시작했어요. 형들이 쓴 곡도 “후반부 4마디 다시 해볼까요?”, “여기 아르페지오 없으면 좋겠어요”, “이 편곡 여기가 비니까 더 해오세요”라면서 괴롭히고 있습니다.(웃음)

진만 _ 스트라이프 후드 집업과 트랙 팬츠 모두 Heretic.
윤아 _ 블루 코트 Emilee F, 이너 톱 Acne Studios, 데님 팬츠 Warr.
선규 _ 이너 톱 Diesel, 체크 팬츠 Milo Women, 사파리 해트 Atiissu, 아우터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자우림은 2000년대 초 K-팝과 한류가 자리 잡기 전부터 일본에서 공연한 개척자이기도 해요. 초창기와 지금을 비교할 때 체감되는 변화가 있나요? 진만 일본에서 공연을 하든 레코딩을 하든 스태프가 프로페셔널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일본에서 공연하다 한국에 오면 한숨을 자주 쉬었죠. 근데 지금은 우리나라 스태프도 일본에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아요. 선규 일본은 일찍이 로컬 문화가 성숙한 단계였죠. 도쿄, 오사카 외에도 지역마다 클럽이나 소규모 공연장이 많은 게 부럽더라고요. 윤아 지난해 1월 일본에서 공연했는데,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팬이던 분들이 많이 찾아왔어요. 그분들이 눈물을 흘리는데, 감동적이더라고요. ‘아, 이 가까운 곳을 왜 좀 더 자주 찾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컸죠.

일본에서의 경험이 자우림의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윤아 일본 투어 이후 작업한 5집은 4집보다 더 원초적으로 접근했어요. 일본 밴드 신의 아티스트와 교류하고, 클럽 투어를 한 영향이 컸죠. 관객과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받은 경험 덕분에 지금 느끼는 메시지를 더 과감히 담게 됐어요. ‘하하하쏭’은 비겁한 자들의 눈초리에 쫄지 말고 너는 너의 길을 가라는 이야기의 가사잖아요. 일본 투어 경험이 없었다면 그런 가사가 안 나왔을 거예요. ‘曠野(광야)’도 되게 원시적이거든요. 지금까지 하지 않던 스타일인데 ‘해버려!’라는 마음을 갖게 된 거죠.

윤아 님은 솔로로, 진만 님과 선규 님은 초코크림롤스로 각자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자우림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나요? 선규 윤아가 솔로 공연을 하면 저랑 진만이가 보러 가거든요. 그때 윤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요. 같이 음악을 할 때는 윤아가 얼마나 훌륭한 보컬인지 잘 몰랐거든요. 그냥 나보다 노래 좀 잘하는 애 정도로 생각했는데, 무대에 선 모습을 보면서 ‘나는 노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웃음) 윤아 자우림으로 풀 수 없는 얘기가 있어요. 제 솔로 5집 <관능소설> 같은 앨범을 자우림으로 만들기는 어렵거든요. 개인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자우림 활동을 덜 열심히 했을 거예요. 솔로 활동으로 팀 이름에 먹칠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형들이 없는 무대에서 자우림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저만의 신념이 있었기에 팀 활동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자우림이 한국 대중음악에서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요? 윤아 ‘자우림은 자우림이지. 항상 거기 있지’ 라고 생각되는 팀이었으면 해요. 진만 밴드 음악이 주류가 아니던 한국 음악 신에서 밴드 음악이 존재한다는 걸 꾸준히 보여주는 사람 정도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선규 지금이 딱 좋아요. 방금 생각났는데, 최장수 밴드는 정말 해보고 싶어요. 최장수 밴드가 아마 크라잉넛일 텐데, 크라잉넛이 해체된 다음 해까지 하겠습니다.

이제 30주년도 멀지 않았네요. 자우림이 현재 가장 중요하게 지키고 싶은 건 뭔가요? 윤아 전작보다 마음에 드는 다음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아마 형들도 비슷할 거예요. 팬데믹 때는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죄송했어요. ‘세상이 이 지경인데, 나는 음악이나 하고 있네’라는 자책을 많이 했거든요. 창작하는 직업을 가진 많은 분이 그런 자괴감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봤어요. 그래서 개인이든 사회든 무사히 잘 굴러가길 바라며, 죽을 때까지 신보를 내고 싶습니다.

에디터 강승엽 최승인 사진 애니 정 헤어 오지혜 메이크업 이나겸 스타일링 이우민
LUXURIOUS BOLDNESS ARCHIVE CHIC BOLDNESS AND W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