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속 책 읽기? 민규동, 이영주 등 유명인들이 도전하고 싶은 책 4
글 쓰고 활자를 사랑하는 이들이 2025년 펼치고 싶은 책과 그 이유.

민규동(영화감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책 세상 펴냄 성경과 불경, 코란을 넘어서는 궁극의 예언서일지 모른다고 믿고 있다. SF 마니아로서 삶과 우주,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라는 ‘42’의 미스터리에 낚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 20여 년 전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시골로 숨어들었을 때 같이 있던 친구는 “이 책을 읽어야 진짜 SF를 안다”고 설파했다. 이후 영화가 막힐 때마다 정답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책을 노려 보곤 했지만, 끝내 페이지를 넘기지는 못했다. 그 유명한 ‘42’라는 답이 정말 출구일지, 한심한 수수께끼의 허탈한 해답에 불과할지, 아니면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처럼 여는 순간 정답이 달라져 버리는 양자 상태일지도 모르니까. 부담감에 언제나 ‘아직은 읽을 때가 아니’라며 미뤄왔다. 하지만 하루하루 삶이 버거운 내게 철학적인 SF의 유머는 청량제가 되어줄 것이다. 지구상 모든 난제가 우주적 관점에서 소소한 무의미로 요리되고 일상적 해탈을 체험하면, 힘겹게 찾던 정답의 뜻 자체가 바뀌어버릴지도 모른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 지음, 새물결 펴냄 파리 유학 시절 한 중고 서점에서 발견했다. 서점 주인은 “파리를 제대로 이 해하려는 이에게 ‘바이블’ 같은 책”이라며 열변을 토했다. 그래서 샀다. 흘려만 듣던 벤야민을 알고 싶다는 허영도 있었다. 문제는 사고 나서야 책이 독일어 원서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한참 뒤 한국어 번역본을 구하고 원서와 나란히 책장에 두고 있지만, 두 권을 동시에 읽어야 오롯이 이해할 거라는 강박에 아직도 첫 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1~5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황금가지 펴냄 처음 만난 건 대학 입시 직후 서점에 들렀을 때다. 내키는 대로 뽑은 책이 , 마치 모든 살인 사건의 기초를 다룰 것 같은 제목이었다. 읽고 나서야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쓴 작가의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누가 범인인지 추리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단 한 번도 맞히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전집을 사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 ‘영화감독이 되었으니 조금 달라졌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완독하는 순간 내 영화도 그만큼 흥미진 진하고 예측 불허의 플롯을 능수능란하게 펼칠 수 있겠지?’라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50권을 쳐다보는 순간 어떤 책부터 뽑아 들어야 할지 주저하는 심약한 독자가 되어버린다. 그래도 심기일전해 재도전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캐릭터의 입체적 내면을 엮고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방법을 갈구하는 영화감독에게 지대한 영감을 줄 거라 믿기에. 일단 한 권만 뽑아들 수 있다면!
나의 독서 방식 소설과 비소설을 번갈아가며 읽는다. 소설도 국내와 국외를 교차하고, 비소설 중에는 과학, 역사, 에세이 등 분류가 경쟁한다. 집에서는 종이책으로 읽고, 차에서는 밀리의 서재로 듣는다.

유고(모델)
<치프 시크: 큰돈 들이지 않고 세련되게 입는 법>, 카트린 밀리네 르 & 캐럴 트로이 지음, 소시샤 펴냄 1977년 발행된 책을 일본 잡지 <뽀빠이>에서 소개하면서 다시 유명해졌다. 한국판이 없어 고민했지만 ‘정말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골랐다. ‘베이식, 클래식, 스포츠웨어부터 개성 있는 룩까지, 이 한 권으로 충분’하다는 설명처럼 1970년대 사람들이 어떻게 멋을 냈는지 호기심이 생긴다. 특히 첫 번째 줄에 “패션 브랜드의 명령을 받고 옷을 입는 시대는 이제 끝입니다”라는 글이 있는데, 한 치 의 망설임도 없이 날카롭게 말하는 어조에 이끌렸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잡지 형식이지만, 내가 속한 분야인 만큼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고 싶어 그동안 미뤄뒀다.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릭 루빈 지음, 진 북스 펴냄 작년 런던에서 활동할 때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녔다. 그때 만난 친구와 문화와 패션, 음악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이 책을 알게 됐다. 미국에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런디엠씨, 비스티 보이즈 등을 프로듀싱한 릭 루빈이 7년에 걸쳐 쓴 책이다. 크리에이터는 일상에서 뭘 바라보고, 그걸 어떻게 느끼고 무엇으로 만들어내는지 등 ‘창조적 행위’가 친절하게 담겨 있다는 말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7년 이상 겪으며 해석한 예술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내게 신선한 자극과 영감이 되어줄 거라 믿기에 꼭 완독해보려 한다.
나의 독서 방식 내게 책은 그저 읽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독서는 나로 하여금 무언가 깨닫게 해주고, 생각과 행동도 진일보하게 한다. 촬영 대기 시간이나 외부 촬영을 갈 때 틈틈이 책을 읽는다. 장르는 가리지 않지만, 생각해보니 SF 장르를 많이 읽었다. 주로 책을 읽을 때 그 속에 등장하는 책,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나오는 책이나 궁금해지는 분야에 대한 책을 사서 읽는다.

이영주(시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지음, 섬과 달 펴냄 시인이지만 편혜영 소설가의 팬이다. 꽉 짜인 세계와 그 배면에 도사리는 서늘한 진실.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는 날카로운 작가의 사유. ‘편혜영 월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소설의 캐릭터가 지닌 생생함을 느끼고 싶다면 한번 정독해보라고 그가 권한 책인데, 아직 펼치지 못해 올해는 꼭 읽어보려 한다. 캐릭터의 생동감을 느끼고 싶어서.
<르 몽스트르>,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제철소 펴냄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작품집은 전부 구입한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난민 생활을 거쳐, 모국어 대신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는 작가의 깊이가 남다르다고 느끼기 때문. 그중에서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좋아한다. <르 몽스트르>는 세계적 작가인 그가 생전에 쓴 유일한 희곡집이라 골랐다. 희곡 작품에서도 작가 특유의 폐부를 찌르는 블랙 유머가 돋보인다. 총 여덟 편의 작품이 들어 있는데, 아껴 읽고 싶어 올해부터 한 밤에 한 편씩 읽기 시작했다.
<피아노 이야기>, 러셀 셔먼 지음, 은행나무 펴냄 30대 초반, 친구가 “이 책을 읽으니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추천해줬다. 그때는 굳이 피아노와 관련한 책을 읽어야 할까 싶어 무심코 넘겼는데, 살면서 문득 친구의 말이 생각나곤 했다. 다른 책을 사느라 뒤로 미루다가 개정판이 출간된 것을 보고 지난 해 구입했다. 음악과 문학은 예술이라는 한 토양에서 자라는 서로 다른 가지라고 생각한다. <르 몽스트르>처럼 마음이 어두워질 때 야금야금 읽고 있다.
나의 독서 방식 문학・예술 창작 공간 ‘포에트리 앤’ 운영자로 소설가, 시인 등 다양한 작가의 낭독회, 북 토크, 클래스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그때그때 작가들의 책을 선정해 읽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 누군가에게 추천받은 책을 읽는다. 나는 여전히 읽고 쓰는 게 재미있다.

오상진(아나운서)
<일론 머스크 전기>, 월터 아이작슨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이 시대 최고 ‘구루’인 일론 머스크.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세상을 움직인다.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그의 모습과 관련한 소식 또한 쏟아지듯 들린다. 많은 비평이 오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해한다는 건 미래를 해석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구매한 뒤 아내에게 선수를 빼앗기긴 했지만, 그가 가진 비전이 세상을 더 밝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어보려 한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표도로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민음사 펴냄 이름 자체로 소설이자 하나의 장르인 톨스토이가 눈을 감을 때 그의 침대 머리 맡에 놓여 있던 책이다. <안나 카레니나>, <부활>이 내게 ‘인생책’인 만큼 묵직한 두께의 버거움도 이겨내고 세트로 구매했다. 가볍게 한 권만 샀어야 했을까. 1권을 펼쳤을 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갈리는 시기에 러시아 문학을 읽는 게 한가해 보인다는 생각에 미처 더 읽어나가지 못했다. 비록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마음속에 치열함과 격렬함이 무뎌진 탓에 다시금 이 책을 잡고 싶어졌다. 큰 과제를 시작해보는 마음으로.
나의 독서 방식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는 없다. ‘INTP’ 성향답게 꽂히는 주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파고든다. 마음먹고 시간을 내기보다는 항상 들고 다니면서 짬짬이 읽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