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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감상

배우 이진욱의 노스탤지어와 로망.

뉴욕이다. 5년 만에 온 것 같다. 예전에는 뉴욕에 오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다. 허드슨강 변을 따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브루클린 다리를 넘어 윌리엄스버그까지 달리곤 했다. 그런 때가 있었다.
아까 영상 인터뷰에서 2014년 2월의 뉴욕이 인상적이었다고 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즈음 뉴욕에 자주 왔는데 눈 쌓인 뉴욕이 정말 예쁘더라. 도로에 제설차가 다니고… 영화에서 보던 뉴욕의 모습이었다.
오늘 촬영 내내 ‘참 소탈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감정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고. 원래 굉장히 예민한 편인데, 일할 때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걸 선호한다.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건가? 친구끼리 여행을 온 거면 몰라도 이건 일이니까. 나의 예민함을 드러내 일에 지장을 주는 게 더 불편하고 싫다. 현장에 있는 사람 모두 빨리 잘 끝내는 게 목표인데, 개인적 감정이 방해되면 안 되니까. 실제로 일하는 게 즐겁기도 하고.(웃음)
그 덕에 촬영장 분위기가 좋았다. 촬영장에서 뉴욕 하면 떠오르는 영화를 물으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라고 답했다. 풀 버전(251분)으로 본 건가? 물론이다. 20대였을 거다. 그게 명작인지도 모르고 봤다. 심지어 <대부> 같은 갱스터 영화의 유사작 쯤으로 여겼다. 제니퍼 코넬리가 너무 예쁘게 나오더라.
같은 여자가 봐도 반할 만하다. 특히 데보라가 발레하는 장면! 아, 그걸 보고 또 한 번 사랑에 빠졌지.
그 작품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한 ‘누들스’, 제임스 우즈의 ‘맥스’. 배우로서 어떤 역할에 더 욕심나나? 글쎄, 로버트 드니로?
갑자기 이진욱이 연기하는 ‘맥스’가 궁금해 물어봤다. ‘악’을 표현하기엔 난 너무 착하게 생긴 얼굴이지 않나? 그런데 배우들은 사실 악역에 대한 로망이 있다.
선과 악이 모두 드러나는 눈을 가진 것 같다. 강렬한 눈빛이 보이다가도 웃으면 무장해제되는. 본인은 어떤 얼굴이 마음에 드나? 특별하게 봐줘서 감사하다. 난 그냥 자연 속에 있을 때 내 모습이 좋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보다.
그런 것 같더라. 보통 작품을 하지 않을 때 수염을 기르던데, 수염이 있는 얼굴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수염, 그거 되게 귀찮다. 깎으면 아프고 트러블도 많이 생기고. 그 모습이 좋아서 기르는 게 아니라 안 깎는 거다.(웃음)
이야기가 잠시 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언급한 건 뉴욕 배경의 수많은 영화 중 그 영화를 고른 이유가 궁금해서였다.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 시대 사람은 아닌데 왠지 모르게 그때의 향수를 간직한 사람. 내가 그렇다. 그 영화의 시대나 상황, 배경, 그 어느 것도 접점이 없는데 그렇게 향수에 젖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영화를 봐도 왠지 가슴이 뭉클하다.
어떤 느낌일까?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 궁금하다. 이 기분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런 느낌을 받는 게 되게 흥미롭기도 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초반부에 뉴욕 뒷골목에서 아이들끼리 막 몰려다니는, 그런 장면을 보면 그 시절 뉴욕이라는 곳에 살았던 내가 과거를 보는 것 같은 묘한 향수가 있다. 사실 향수도 아니지. 그때를 살지 않았으니까.(웃음)
몰입을 잘 해서 그런가. 영화를 볼 때 극도로 집중하는 타입이긴 하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군대를 전역하고 30대 초반까지인가, 영화를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 푹 빠져 살던 시기가 있었다. 감정 소모를 많이 해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기운이 빠지는데도 즐겼다. 개봉한 영화는 물론 독립 영화 같은 것도 일부러 찾아서 볼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본 영화를 다시 찾아 보고 있다.
공감한다. 같은 영화라도 언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지 않나. 완전 다르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인 줄 몰랐다. 어릴 때는 왜 이게 명작이지 싶었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해 다시 보게 된 <패밀리 맨>도 그랬다. 지금 보면 젊은 시절의 니콜라스 케이지와 돈 치들을 보는 재미도 있고. 또 마지막 장면이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

배우를 앞에 두고 너무 다른 작품만 이야기했다. 그래도 영화 이야기할 때 되게 신나 보인다. 배우니까.
보는 입장에서 말고, 배우로서 자신에게 들어온 작품은 어떤 시선으로 보나? 매번 다른 것 같다. 그런데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작품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 보통 섭외가 들어온 작품 중 주어진 조건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다.
<스위트홈>과 <오징어 게임> 시즌 2 등 넷플릭스 화제작에 모두 출연한다. 특히 <스위트홈>의 ‘편상욱’은 그간 이진욱의 필모에서 볼 수 없던 역할이라 신선했는데, 배우로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서 선택한 건가? 한때는 뭇 여성의 연애 세포를 깨워주는 로맨스 가이였는데.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전략적으로 세팅하는 배우도 있겠지만, 일단 난 그런 타입이 아니다. 이미지가 고착화될까 봐 연기 변신을 한다? 사실 그러기 어렵다. 99.99%의 배우들은 들어오는 작품에 한해서 선택을 하는 입장이다. 어떤 시기에는 한 작품을 계기로 비슷한 류의 작품만 계속 들어온다.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배우는 극히 드물거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정도 되면 모를까.(웃음)
편상욱은 이진욱의 필모에서 확실히 변곡점이 될 만한 캐릭터인데, 그럼 이 역할은 어떻게 맡게 됐나? 배우는 캐스팅이 돼야 도전도 가능한데, 편상욱을 연기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이응복 감독님이 나의 이전 작품 <나인>을 보고 제안하셨는데, 편상욱을 뻔하지 않은 새로운 캐릭터로 잘 살려낼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캐스팅 제안에 흔쾌히 수락했나? 캐스팅 과정에는 사연이 좀 있다. 원래 김성철 배우가 했던 역할에 관심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편상욱 역할을 제안하더라. 원작에서 편상욱은 누가 봐도 마동석 형을 모델로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상상도 못 했던 역이다. 감독님은 “그거야말로 고정관념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 사실 내게도 도전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재밌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일단 작품이 무척 흥미롭고. 욕망이 괴물로 발현된다는 설정이 드라마틱하고 들려줄 이야기가 많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움을 꼭 찾아야 되는 건 아니니까.
정말 요즘 느끼는 건 행복한 구석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 같다.
하루에 그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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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CG 작업인 작품은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배우들의 고충이 상당할 것 같다. 현장에서 연기하는 건 어땠나? 배우나 감독조차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 많아서, 솔직히 어떤 그림이 나올지 그려지지 않았다. 시즌 2도 마찬가지고. 유튜브에 보면 <어벤져스> 같은 마블 작품의 촬영 현장 영상이 있다. 할리우드 배우들도 버거울 것 같은 장면이 더러 보인다. 녹색 배경지 앞에서 쫄쫄이 입고 허공에 막 창을 날려야 하니. 사실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럽다. 감정 연기도 힘들고. 우린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생소한 경험이었던 건 확실하다.
20년 차 배우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겠다. 이 정도 경력의 배우들은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하다. 아직도 갈증 같은 게 있나? 갈증을 20년 이상 유지한다는 건 정말 장인이다. 갈증은 너무 긍정적인 말이다. 그런데 물음표는 늘 품고 있다. 연기는 언제 어느 순간 열어봐도 어렵다. 연기 자체도 어려운데, 공감받기는 더 어렵고. 배우는 어쨌든 자신의 캐릭터를 대중에게 설득시켜야 하는 일이니. 갈증 대신 수많은 고민을 한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같은 생각도 들고.
그럼, 연기 외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 있나? 항상 한다. 추진력이 없어서 행동으로 못 옮길 뿐.(웃음) 한때는 진짜 트럭 운전을 하고 싶었다. 트러커! 내 로망이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다. 그냥 취향이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한국의 트럭 운전자와 달리 대륙에서 동서부를 오가는 트러커를 보면 며칠 동안 16시간씩 운전만 한다. 여행과는 또 다르다. 트러커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많다. 트러커만의 문화도 있고.
언젠가 그런 역할도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연기로 접하는 것과 직접 살아보는 건 다르니.
혹시 영화를 통해 경험해보고 싶은 삶이 있나? 20년 동안 연기를 해왔으니 다양한 인생을 살아본 것 같다… 이제는 딱 ‘하고 싶다’는 욕심보다 주어진 것, 안해본 것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경험하며 살아가고 싶다.
새롭거나 하고 싶은 게 딱히 없는 삶은 무료하지 않나? 새로움을 꼭 찾아야 되는 건 아니니까. 정말 요즘 느끼는 건 행복한 구석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 같다. 하루에 그 하나면 충분하다. 이를테면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고기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는데, 너무 맛있었다. 그럼 성공한 거다. 그걸 느끼며 살아가다 보면 인생에 재밌는 구석이 많다. 그리고 안 좋은 일은 누구에게나 매일매일 생기고, 그런 데 집중하면 한도 끝도 없는 데다 바뀌지도 않으니 좋은 것에 집중하려 한다. 내가 노력해서 더 좋게 만든다고 한들 희비는 51 대 49 정도다.

에디터 정유민, 이도연 사진 JDZ 헤어 & 메이크업 구현미 스타일링 이하정, 손민지 프로덕션 트웰브식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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