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월드 베스트 바 50
바(Bar) 신의 중심 뉴욕부터 신성 방콕까지.
새로운 왕좌, 파라디소
바르셀로나 엘보른에 위치한 파라디소(Paradiso)가 ‘2022 월드 베스트 바 50’의 왕좌를 차지했다. 뉴욕이
나 런던이 아닌 다른 지역의 바가 1위를 차지한 건 14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파라디소라는 샌드위치 가게의 카운터 바로 옆에 있는 냉장고 문을 열면 분위기 좋은 바가 펼쳐진다(출입문을 냉장고 문 형태로 만 들었다). 비밀스러운 콘셉트의 스피크이지 바지만 늘 줄을 서는 사람들 덕에 바 출입구를 그냥 지나칠 염려는 없다.
월드 베스트 바 50의 콘텐츠 디렉터 마크 산 솜은 “파라디소는 오픈 1년 만인 지난 2017년 주목해야 할 바로 선정된 이후 매년 순위를 끌어올리며 리스트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말하며 “바의 기발한 칵테일, 지속 가능한 정신, 글로벌 바 커뮤니티에서의 역할 그리고 빛나는 유머 감각 덕분에 이 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고 전했다.
파라디소 외에도 바르셀로나에서 십스(Sips)와 투 슈먹(Two Schmucks) 두 곳이 순위에 올랐으며, 모두 10위 내 상위권에 자리해 눈길을 끈다. 특히 2021년에 오픈한 십스는 무려 34계단 상승해 3위에 올랐다. 단기간에 무서운 속도로 상승할 수 있었던 데는 칵테일을 책임지는 두 믹솔로지스트의 명성이 한몫한다. 30여 년 경력의 시모네 카포랄레와 마크 알바레스다. 시모네는 런던 랭햄 호텔 아테시안 바(Artesian Bar)의 수석 믹솔
로지스트였으며, 재임 기간 4년 연속 월드 베스트 바 50에 올랐다. 한편 마크는 전설적 셰프 페란 아드리아의 레스토랑 그룹 엘바리(elBarri)의 믹솔로지 책임자였다.
홀 한가운데 칵테일 만드는 바를 둔 것에서도 칵테일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데, 펑크와 모타운의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오트 쿠튀르처럼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하이엔드 칵테일을 경험할 수 있다.
파라디소의 칵테일. 페리에와 커피로 만든 폼을 올린 ‘더 클라우드’.
3위에 오른 십스.
피쉬 소스가 들어간 투 슈먹의 ‘톰 카’
7위에 오른 투 슈먹.
그럼에도, 뉴욕
바 신의 중심은 여전히 뉴욕인 듯하다.
이번에 가장 많은 바를 순위에 올린 도시는 뉴욕으로, 총 여섯 곳의 바가 이름을 올렸다.
토마토와 바질로 맛을 낸 더블 치킨 플리즈의 ‘콜드 피자’.
호밀과 그린 허브 리큐르로 만든 아타보이의 ‘그린포인트’.
일본계 미국인 우루시도 마사히로가 이끄는 카타나 키튼 바.
No.6 Double Chicken Please
음식을 테마로 예상 밖의 재료를 조합해 칵테일을 만든다. 감이 오지 않는다면 메뉴명을 보자. ‘프렌치토스트’, ‘콜드 피자’, ‘망고 스티키 라이스’, ‘뉴욕 비트 샐러드’, ‘재패니즈 콜드 누들’ 등 9개의 시그너처 칵테일이 그것. 실제 맛도 그 요리와 흡사한 풍미를 선사한다. 두 공간으로 나눠 운영하는데, 프런트 룸에서는 치킨 샌드위치와 탭 칵테일을, 백 룸에서는 앞서 말한 시그너처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No.22 Attaboy
오픈런을 해야 바로 착석할 만큼 뉴욕에서 가장 핫한 바. 간판도, 메뉴판도 없다. 무심코 들르는 곳임에도 인기를 끄는 데는 이유가 있다. 1999년 전설적 바텐더 사샤 페트라스케가 오픈한 밀크 앤 허니(Milk & Honey)의 명맥을 잇는 곳이기 때문. 사샤 페트라스케가 세상을 떠난 후 2013년 그와 함께 일했던 샘 로스와 마이클 맥로이가 같은 자리에 이 곳을 오픈했다.No.9 Katana Kitten
일본계 미국인 우루시도 마사히로가 바를 책임지고 있다. 내부는 일본어로 된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 포스터로 장식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칵테일도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터치를 가미한 것이 특징. 테킬라, 포카리 스웨트, 타이 칠리, 라임 제스트로 만든 하이볼 ‘슬로우피치 팔로마’나 보드카, 진, 피노 셰리, 준마이 다이긴조, 히노키 티 에센스로 만든 ‘히노키 마티니’가 대표적이다.
보드카 베이스에 유자와 코코넛을 넣은 오버스토리의 ‘이지 머니’.
‘네그로니’를 간판 메뉴로 내세운 단테.
뉴욕 칵테일 신의 중심에 있는 임플로이즈 온리 바.
No.34 Overstory
올해 처음 순위에 등장한 신상 바. 월스트리스 고층 빌딩의 64층에 자리해 드라마틱한 전망을 자랑한다. 특히 야외 덱 공간이 명당인데, 반짝이는 뉴욕 야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술 맛을 한껏 끌어올려준다. 뉴욕 미쉐린 레스토랑 크라운 샤이의 오너 셰프인 제임스 켄트와 제프 카츠가 운영하며, 바 디렉터 해리슨 긴스버그는 뉴욕을 테마로 한 칵테일을 소개한다.No.46 Dante
2019년 1위에 오르며, 이미 정상 자리를 한 번 찍었다. 이곳의 상징적 메뉴는 네그로니. 별도의 ‘네그로니 세션’ 메뉴를 갖추고, ‘빈티지 네그로니’, ‘네그로니 비앙코’, ‘초콜릿 네그로니’, ‘카페 네그로니’ 등 10여 가지 네그로니 칵테일을 제공한다. 이 외에도 오렌지 주스와 캄파리로 만든 ‘가리발디’, 캄파리와 비터 오렌지로 만든 ‘캄파리 사케라토’ 등 이탈리아 풍미가 느껴지는 칵테일이 시그너처다.No.47 Employees Only
줄여서 EO라고 부른다. 20년 가까이 뉴욕 칵테일 신의 중심에 있던 전설적 바다. 화이트 재킷을 입은 바텐더들이 바에 늘어선 모습이 인상적인 곳. 차이를 우려낸 베르무트와 석류 주스로 만든 브랜디 칵테일 ‘마타 하비’, 메즈칼과 프레시 라임 주스, 홈메이드 허니 파인애플 시럽에 스파이시한 향미를 더한 ‘레디 파이어 에임’ 같은 모던 클래식 칵테일을 제공한다.
아시아의 떠오르는 지역, 방콕
옛날의 방콕이 아니다. 방콕의 여행 트렌드도 급변했다. 이젠 리조트에서 늘어지게 휴양하고, 근처 로컬 음식점에서 창 맥주에 똠얌꿍을 즐기는 게 다가 아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바와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려면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이번 월드 베스트바 50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순위 중 아시안 바는 총 다섯 곳인데 그중 싱가포르가 세 곳, 홍콩과 방콕이 두 곳, 도쿄가 한 곳을 차지했다. 이 순위만으로 우열을 가늠하는 건 무리지만, 방콕이 이제 싱가포르나 홍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방콕의 바가 50위 이내 순위에 오른 적은 2019년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만 두 곳이라니. 방콕의 바 문화가 심상치 않다.
No. 14 BKK Social Club
싱가포르의 지거 앤 포니(Jigger & Pony) 다음 으로 높은 순위에 오른 아시안 바. 지난해 문을 연 포시즌스 호텔 방콕 앳 짜오프라야 리버에 위치한 이곳은 단숨에 14위에 안착했다. 세계 유수의 바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독일 출신 필립 비숍 바텐더가 이끄는데, 남미에서 영감을 받은 칵테일 을 선보인다. 파인애플 풍미의 럼과 캄파리에 시트러스와 시나몬 시럽을 떨어뜨린 ‘에비타’가 시그너처 칵테일. 바 한편에는 시가 라운지가 있다.
No. 24 Tropic City
올해 처음 순위에 등장한 곳. 태국 최초의 트로피컬 칵테일 바인 이곳은 상호 그대로 우거진 나무로 내부를 장식해 트로피컬 숲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칵테일 메뉴도 콘셉트가 확실하다. 럼주 중심으로 칵테일을 제조하며, 동남아시아, 카리브해, 남태평양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들로 구성했다. 디플로마티코 만투아노 럼에 코코넛과 패션프루트를 더한 ‘크로닉 아이스티’, 아바나 클럽 7년산 럼에 파인애플과 고추를 넣은 ‘웰컴 투 정글’ 등이 대표 칵테일이다.
유칼립투스와 허니를 넣은 ‘라 팜파’.
트로피컬 숲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의 트로픽 시티.
트로픽 시티의 트로피컬 콘셉트 칵테일.
바업계의 화두는 지속 가능성
‘지속 가능성’은 바업계에서도 중요한 화두다.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며 칵테일 메뉴를 창조하는가 하면, 지역
생산자들과 긴밀히 협업해 로컬 식재료를 적극 활용하는 등 지속 가능성을 위한 아이디어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월드 베스트 바 50 역시 2018년 ‘서스테이너블 바’상을 신설했으며, 그 외 특별상 수상자나 순위에 오른 곳 역시
지속 가능한 바 문화를 위해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의 바텐더 장 트린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 위치한 바 알키미코(AlquÍmico)의 장 트린이 ‘바텐더들의 바텐더’ 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 바텐더들이 직접 투표해 더욱 의미 있는 상이다. 3층 저택을 개조해 만든 알키미코에는 70명이 넘는 직원들이 상주하며, 매일 850명 이상의 손님이 방문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바다. 이곳을 진두지휘하는 장 트린은 베트남계 프랑스인으로, 2013년부터 카르타헤나에 정착했다.
그는 혁신적 칵테일 레시피로만 이 상을 수여한 게 아니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그의 행보가 동료 바텐더들에게 큰 영감이 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 트린의 무대는 자신의 업장만이 아니다. 콜롬비아 정부가 옥수수 재배를 위해 소규모 농장의 작물을 태우도록 장려할 때 장 트린은 직접 그 지역을 방문해 멸종 위기에 처한 토착 작물을 잿더미로부터 구해냈다. 그 작물을 자신의 바에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것. 그 덕에 알키미코에서는 그 지역만의 식재료로 만든, 유일무이한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또 2018년에는 콜롬비아 시골에 있는 25ac(약 10만m2)의 농장에 투자해 칵테일 제조에 필요한 식재료를 직접 관리하고 있다. 팬데믹 시기에는 지역 소규모 생산자와 협업해 지속 가능한 농업법에 대해 공부하는가 하면, 설탕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양봉장을 만드는 등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올해의 서스테이너블 바 리틀 레드 도어
5위에 오른 파리의 리틀 레드 도어(이하LRD)는 ‘올해의 서스테이너블 바’로 지명되었다. 2021년 오픈한 이후 아홉 차례에 걸쳐 월드 베스트 바 50에 이름을 올린 세계적 바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 콘셉트는 ‘팜 투 글라스(Farm to Glass)’. 즉 농장의 작물을 한 잔에 담아내겠다는 의지인데, 이를 위해 프랑스 지역 생산자들과 협력해 유니크한 칵테일을 창조하고 있다.
이들의 인스타그램을 가득 채운 생산자와 식재료, 칵테일 사진만 봐도 그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메뉴는 수시로 바뀌고, 매번 테마가 있다. 최근에 공개한 신메뉴는 ‘플로리시(Flourish)’로, 한 가지 식재료를 가지고 칵테일 메뉴를 고안해낸다. ‘당근’, ‘라즈베리’, ‘사프런’ 등 식재료 이름을 메뉴명으로 사용하는데, 메뉴명은 단순하지만 한 잔에는 믹솔로지스트의 마법이 담겨 있다.
당근을 예로 들면, LRD에서 계약한 당근 농장의 보라색 당근을 술로 빚은 다음 농장에서 만든 당근 주스를 블렌딩해 칵테일을 만든다. 술 한 잔을 마셔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 앞서 2021년 업장 오픈 당시에는 ‘그라운디드(Grounded)’라는 메뉴를 선보였다. 딸기, 호두, 토마토, 붉은 키위, 올리브, 라벤더, 메밀, 노란 비트 뿌리 등 10가지 재료의 생산자 10명과 협업해 만든 10가지 칵테일을 제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