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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올팍의 새로운 리듬

Shall We Dance?

코트 Moschino by Dokripgoon Vintage, 셔츠 SF1OG, 쇼츠 Edward Cuming, 슈즈 Thom Browne, 삭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약 1년 2개월 만에 〈F2026〉이라는 EP로 돌아왔어요. 인생 최악의 해인 2026년을 발버둥 치는 모습이라고요. 지난 4월부터 7월 초까지 한 3개월 동안 겹겹이 안 좋은 일이 몰려왔어요.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요. 도미노처럼 한꺼번에 무너지더라고요. 당황스럽다가 화도 나고, 억울했다가 불안에 떨고. 마지막엔 그냥 웃음만 나왔어요. 그제야 주변이 조금씩 보이더군요.

인생에서 가장 큰 스케일의 고난이었군요. ‘Christian’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고 나서 음악은 취미처럼 즐기면서 만들고, 신드롬Z 사업도 계획대로 진행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올해 초까지 ‘와, 너무 평화로운데. 이제 역경은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죠.

폭풍이 오기 전 고요였네요. 역경이 없으니 노래에 쓸 말이 없는 거예요. 진짜 할 말이 없더군요. 그때 나온 노래가 ‘ADHD’예요. ‘요즘 사람들 다 ADHD구나. 어라, 나도 ADHD인데? ADHD. That’s me!’

아주 단순한 발상으로 만들어진 곡이었네요. 사실 ‘ADHD’ 이전에 ‘Sex’라는 곡을 먼저 만들었어요. 성적인 의미도, 어떤 의도도 없이 그냥 할 말이 없을 때 뱉는 말이었죠. 일종의 브레인 롯 같은 거예요. 꽤 재밌게 만들어져서 보관하고 있다가 비슷한 시기에 ‘ADHD’가 나왔고, 두 곡의 분위기가 비슷해서 하나로 합쳤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의 3개월이 시작된 거고요. ‘아무리 망해도 이 정도는 되겠지’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해온 것 같아요. 근데 그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 무너지는 게 버튼 하나 누르는 것만큼 별거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때 진정한 겸손이라는 걸 알았죠.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한 거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말할 순 없지만,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억울하게 얽히거나 제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못 견디겠다 싶은 걸 보면서, 혹시 조금이라도 죄를 짓고 그게 들킬 여지가 있다면 정말 못 견디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교만이라는 말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있잖아요. 누군가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데 직접 동조하지 않았더라도 그걸 방관하면 교만일 수 있는 거예요. 모든 인간의 마음속엔 흔히 생각하는 교만보다 더 촘촘한 교만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그런, 나만 아는 교만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게 중요한 깨달음이었어요.

그 시기를 통과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네요. 조금만 툭 쳐도 고꾸라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나약한 존재라는 걸 알았죠. 그때 신이 저한테 ‘네가 혼자서 뭘 할 수 있는데~?’ 하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부모님한테 알아서 하겠다고 큰소리쳤다가 결국 엉엉 울면서 못 하겠다고 하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었죠.

재킷 Sportmax by Dokripgoon Vintage, 셔츠 Undercover, 벨트 장식 스커트 Chopova Lowena by Dokripgoon Vintage, 네크리스 모두 Dem Project, 링 Nothingbutmini, 안경 Gentle Monster.

콘텐츠 비즈니스의 본질은 한 번의 훅이 아닌 여러 번의 잽이에요. 갈고닦은 한 방을 노릴수록 실패했을 때
타격이 크니까요. 잽을 계속 날려야 해요.

그 교훈으로부터 지금의 〈F2026〉이 만들어진 거고요? 아까 역경이 없으니 노래에 쓸 거리가 없다고 했잖아요. 청개구리가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처럼, 삶이 고달프니 다시 노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근데 그때 만든 곡은 이번 앨범엔 없어요. 전부 가스펠 성격이 짙은 곡이라, 아직 기본 작업만 해 놓은 상태죠. 어떻게 완성할지는 좀 더 지켜보려고요.

그렇다면 〈F2026〉은 어떤 곡으로 채워졌어요? 마미손 형이 “노래가 안 나오던 시절을 기록하는 의미를 가져보면 어떨까” 하고 조언을 해줬어요. 그래서 이미 만들어둔 곡을 기반으로 현재 상황을 담았죠. 2020년에 다들 ‘Fxxk2020’을 외칠 때 저는 믹스테이프 〈Thunderbird Motel〉의 반응이 좋아 오히려 행복했거든요. 2026년이 그 시기를 대신하는 최악의 해였어요. 그래서 ‘꺼져라 2026년’이라는 의미를 담아 〈F2026〉이라는 제목을 붙였죠.

이번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이별을 겪은 사랑처럼 느껴졌어요. 개인 간 사랑보다는 좀 더 큰 단위의 사랑이라고 볼 수 있어요. ‘Dead Channel’은 서로 다 끊긴 사회의 느낌이고, ‘Angel’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Dead Channel’은 신앙적인 내용이라고요. 신께 보내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바라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어요. 삶이 잘 안 풀릴 때 유독 ‘내 기도가 잘 닿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잖아요. 근데 신이 인간의 기도를 들어줄 이유는 없어요. 인간을 너무 사랑해서 가엾게 여기는 거지, 인간이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지난 3개월간 저는 신의 응답을 바라기는커녕 기도조차 할 힘이 없는 상태였어요. 주파수를 맞출 수 없는 고장 난 라디오 같은 제 모습을 담은 곡이죠.

이번 앨범은 테크노와 유로댄스 색채가 잔뜩 묻어나기도 합니다. ADHD를 지닌 사람들이 테크노를 들으면 명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실제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리듬을 타다 보면 어느 순간 깊게 몰입하게 되죠. 그 안에서 오는 희열이 있어서 직접 만들어본 거예요.

〈F2026〉이 완성되기까지 작업 방식에도 변화가 있나요? 예전엔 앨범과 관련한 작업은 직접 다 하려고 했는데, 처음으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했어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듣는 게 재밌더라고요. 애초에 이번 앨범은 특별한 이야기를 담으려 하지 않았으니, 그 방식이 적절하기도 했고요.

제 롤모델은 월트 디즈니예요. 다음 세대의 월트 디즈니가 되고 싶어요.

이번 앨범을 보면 마케팅 의도가 명확하게 느껴졌어요. 곧 멕시코 투어를 앞두고 있는 데다 앨범 티저 영상도 스페인어 버전을 따로 올렸고요. 회사에서 국가별 통계를 모니터링하는데 멕시코가 유독 높은 거예요. 진짜 인기가 있는 건지 직접 가 보면 실체를 알 수 있겠다 싶어 공연을 준비했는데, 티켓 파워가 상상 이상이었어요. 관객들이 노래를 다 따라 부르는데,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가 엄청나더군요. 근데 저를 좋아해주는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어요.(웃음)

이번에도 멕시코 투어를 앞두고 있고, ‘Angel’의 피처링으로 멕시코 싱어송라이터 소피시(Sofish)가 참여했죠. ‘Angel’의 리듬이 라틴 하우스에 많이 쓰이는 느낌이라 진짜 라틴 아티스트를 넣고 싶었어요. 부드럽고 듣기 편한 목소리의 여성 보컬이면 좋겠다 싶었는데, 멕시코 에이전시에서 소피시를 소개해주더군요. 몽환적이면서도 위로를 건네는 분위기가 좋아서 일사천리로 진행했죠.

애니메이션 기반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거듭난 신드롬Z 역시 국내보다 해외를 타깃으로 하고 있죠? 국내에서 자체 IP를 가진 애니메이션 회사는 대부분 유아용 시장 상품이에요. 신드롬Z가 하고 싶은 건 〈릭 앤 모티〉나 〈사우스 파크〉 같은 연령대가 좀 더 높고 쿨한 애니메이션인데, 이 가치를 키우려면 해외 시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죠.

〈릭 앤 모티〉의 릭과 모티처럼 신드롬Z에는 버키와 부미라는 캐릭터가 있고요. 2086년 AI 산업의 황금기가 막을 내린 뒤 자아를 지닌 지능형 휴머노이드 로봇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요. 그 최전선에 ‘Xyro Fantasy’라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이 있고요. 버키와 부미는 ‘Xyro Fantasy’에서 만든 로봇이에요. 모종의 이유로 인간 세계에 호기심을 가지며 ‘Xyro Fantasy’ 공장을 탈출해 인간이 사는 도시로 도망치죠.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풀어놓은 이야기예요. 신드롬Z 세계관의 시작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좀 더 깊은 주제를 담은 블랙코미디가 될 거예요. 이 세계관에서 나오는 음악, 패션 등을 활용해 여러 상품을 만들 계획이고요.

앞서 말한 신드롬Z 세계관 에피소드가 지난 1월에 나왔고, 후속 에피소드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당장 매출을 내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 유치가 조금만 어긋나도 프로젝트 전체가 밀려요. 이번에 그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졌지만, 지금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그사이 애니메이션의 룩과 퀄리티를 글로벌 제작사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본격적으로 재가동하는 건 내년 초가 될 것 같아요.

신드롬Z 초창기엔 지올팍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덕분에 영상 작업 의뢰도 많이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영상 프로덕션을 병행할 생각은 없었나요? 당장 돈을 벌려면 그랬겠죠. 하지만 그런 고민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비즈니스에 대한 신뢰가 팀 전체에 확고한 데다 투자 회사들도 우리를 믿어줬거든요. 이 또한 교만일 수 있지만, ‘이건 된다’는 확신이 있어요.

신드롬Z를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그림이 있다면요? 제 롤모델은 월트 디즈니예요. 다음 세대의 월트 디즈니가 되고 싶어요. 매출을 단순히 펌핑해 회사를 매각하거나, 돈만을 좇고 싶지는 않아요. 회사를 통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갈래를 제시하고 싶어요.

10여 년 전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에 도전하던 박지원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네요. 스타트업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라기보다 내 청춘을 바쳐 함께 커가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Christian’으로 수많은 제의가 들어왔는데, 신드롬Z를 위해서 대부분 거절했어요. 제 인생에 ‘Christian’처럼 메가 히트곡을 또 만들 확률은 굉장히 희박해요. 그 수혜를 포기할 만큼 신드롬Z는 저에게 소중한 존재예요.

뮤지션 지올팍과 신드롬Z 대표 박지원은 어떤 미래를 그리나요? 크리스천의 삶을 추구하고 싶어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같은 무게로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실천하는 게 항상 어려워요. 쉽게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교만해져서 무시하는 행동도 하고요. 성공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도 소외된 이웃을 돕고 싶어서예요. 꼭 부자여야 도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돈으로 돕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지만, 또 제일 쉬운 방법이거든요. 진짜 어려운 건 마음을 내주는 거예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회사를 이끄는 대표로서도 그런 태도가 이어질 것 같은데요? 신드롬Z 팀원이 그걸 연습하는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팀원이 힘들어하거나 엇나가는 걸 못 보겠더라고요. 다 제 일처럼 여기게 되는데,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힘을 빼느냐고 하죠. 그래도 저는 이게 맞다고 생각해요. 남의 일을 내 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다고 봐요. 신드롬Z를 통해 그런 점을 배웠고, 그 울타리를 조금씩 더 넓혀가야죠.

뮤지션과 사업가의 자아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없어요? 매번 있어요. 사업적으로 봐야 한다는 자아와 창작자로서의 고집이 늘 부딪히죠. ‘이건 퀄리티가 조악하다’, ‘재미가 없다’, ‘메시지가 부족하다’라면서요.

지난 3개월을 통과하면서 오히려 삶에 새롭게 들어온 것도 있을 것 같아요. 뭔가가 추가됐다기보다 늘 있던 것에 비로소 눈을 뜬 느낌이에요. 그동안 넋 나간 사람처럼 미래만 보고 달렸거든요. 시야가 좁을수록 목적지까지 빠르게 갈 수 있겠지만, 시야를 넓히니 그동안 놓친 것이 참 많더라고요. 이제는 주위를 둘러보고, 그 과정을 기억하려 해요.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는 믿음은 여전하니까요.

올해 남은 목표가 있다면요? 신드롬Z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야죠. 그러다 보면 올해가 다 갈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앨범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대로 되니 허무하기도 해요. 근데 그 허무함이 몰려올 때마다 콘텐츠 비즈니스의 본질은 한 번의 훅이 아닌 여러 번의 잽이라는 점을 떠올려요. 갈고닦은 한 방을 노릴수록 실패했을 때 타격이 더 크니까요. 잽을 계속 날려야 해요. 래리 홈스처럼 끈질기게요.(웃음)

에디터 강승엽 사진 방규형 헤어&메이크업 윤혜정 스타일링 김성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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