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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앨범에 기록한 넬의 지금

넬은 늘 ‘지금’을 노래한다. 지금의 감정과 일상에서 소리와 언어를 길어 올린다. 넬의 음악은 곧 그의 삶이다.

김종완 _ 재킷 Tuesou, 이너 티셔츠와 스커트, 부츠, 벨트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경 아티스트 소장품.
이정훈 _ 팬츠 NEU_IN, 슈즈 Yase, 빈티지 셔츠, 재킷, 허리에 두른 스카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경 아티스트 소장품,
이재경 _ 반소매 셔츠 Toga by EMPTY, 레더 셔츠 재킷 Tuesou, 팬츠 Studio Nicholson, 슈즈, 허리에 두른 핑크 컬러 스카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늘 촬영한 이 연습실에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요?

김종완 여기에선 주로 공연 연습을 해요. 간단한 녹음도 진행하고요. 사실 한국에서 이 정도 컨디션을 갖춘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돈도 꽤 많이 들었고.(웃음) 이재경 이곳에서 작업한 지도 제법 오래됐어요. 정규8집 앨범 <Colors in Black>을 작업할 때부터이니 벌써 7~8년 된 것 같네요.

이틀 전(5월 11일), 10집 발매 콘서트를 마쳤습니다. 정식 발매에 앞서 라이브로 먼저 공개했죠. 공연 시간이 3시간에 달했는데, 이렇게 길었던 건 처음 아닌가요? 

종완 평소와 비슷하게 25곡 정도 불렀는데 미발표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길어졌어요. 지난 10년 동안 공연하며 한 말보다 더 많이 했을 수도 있어요. 사실 저희가 추구하는 건 여운이 남는 공연이거든요. 그래서 말이 많으면 여운이 흐려지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다행히 관객들이 좋아해주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신곡을 무사히 소화했다는 점에서 안도감이 컸고.

10집 수록곡 외 셋리스트는 어떤 기준으로 골랐어요?

종완 과거 앨범에서 최소 한 곡씩은 꼭 해보자고 했죠. 어떤 앨범은 공연에서 한 곡도 안 부를 때도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평소 공연에서 자주 하지 않던 곡 위주로 골랐어요. 재경 다 저희가 낳은 자식 같은 곡들이잖아요. 그 곡들에 대한 예의 같기도 했어요. 좋아하는 분들도 분명 계실 테고.

그중 라이브하며 새롭게 다가온 곡도 있나요?

재경 저는 ‘4’.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시절 발표한 첫 앨범 <Reflection Of> 수록곡이에요. 그때 이상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연주를 했는데, 제가 그 노래를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이번에 기타 치면서 ‘나, 이 노래 정말 좋아했지’라는 생각이 다시 떠올라 울컥했어요. 그 음악을 좋아하던 시절이 스쳐 지나기도 했고요. 종완 합주하면서 멤버들끼리 ‘4’는 편곡하면 사운드적으로 훨씬 멋지게 해석할 수 있겠다는 얘기를 했어요. 막 음악을 시작하던 때 만든 곡이라 감성만 가득한 노래였어요. 그때는 치기만 있었다면, 지금은 그 치기를 다룰 편곡이나 연주 같은 테크닉이 생긴 거죠. 재경 연륜이 생긴 거죠.(웃음) 사실 앨범에는 원하는 수준의 소리를 담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귀한 공연이었네요. 15년 전 곡을 라이브로 들을 기회가 흔치 않잖아요. 종완 씨와 정훈 씨는요?

정훈 공연할 때 어떤 곡을 부르든 긴장이 되고, 체력적으로 에너지를 막 쏟아내야 해요. 그런데 ‘연어가 되지 못한 채’는 유일하게 편안하게 느껴져 좋았어요. 관객처럼 그 무드에 편하게 빠져 즐길 수 있었거든요. 종완 저는 ‘Sing for me’. 평소 좋아하는 곡이고, 다른 곡들에 비해 라이브를 많이 하지 않았어요. ‘나만 좋아하는 곡인가? 공연에서는 별론가?’ 반신반의했는데, 다들 즐겨주시는 걸 보고 앞으로 종종 불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Track03. ONLY ONE
추억보다는 꿈이 많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추억만 먹고 살아가기에는 씁쓸하잖아요.
이재경 _ 티셔츠와 재킷, 팬츠 모두 NEU_IN.
김종완 _ 티셔츠 EENK, 아우터 NEU_IN, 팬츠와 슈즈, 안경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정훈 _ 셔츠와 팬츠 모두 Loewe, 안경 아티스트 소장품.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3년 만의 신보이고, 정규 앨범으로 치면 6년 만이에요. ‘10집을 내자’ 마음먹은 시점이 있나요?

종완 앨범을 내자는 얘기는 늘 했어요. 녹음까지 마쳤다가 한 번 다 엎었죠. 다시 시작하고 보니 어느새 3년이 흘렀더라고요. 재경 그 역시 과정 같아요. 저희는 곡을 고르는 일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지는 않거든요. 노래가 쌓이다 보니 고민이 많기도 하고, 심리 상태도 중요하고요. 그때, 하고 싶은 음악이 있잖아요. 아마 종완이는 더 심할거예요. 정훈 ‘느낌’이라는 게 있어요. 은연중에 생각대로 되지 않겠다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종완이가 “아무래도 좀 길어질 것 같은데”라고 말하더라고요.(웃음)

엎은 이유는요?

종완 ‘이 곡들이 넬의 다음 정규 앨범이 되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어요. 앨범을 내면 당분간 그 음악으로 페스티벌과 콘서트를 하고, 한동안 그 앨범이 지금 넬의 색깔이 되거든요. 물론 저희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작업하기는 하지만, 현시점에서 넬의 음악이 무엇인지 오래 고민했어요. 또 무조건 이번 앨범에 털어내야 하는 곡들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 성격상 지금 발표하지 않으면 계속 생각나고 찜찜할 걸 분명 알고 있거든요.

현시점의 넬이 하고 싶은 음악은 뭔가요?

종완 음, 음악을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데… 저희는 항상 ‘지금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가’가 먼저예요. 소리는 감정의 질감과 분위기를 표현하는 장치고요. 이번엔 두 가지 정도가 있었어요. 제3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 있는데, 어떤 현상을 보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또 공감이 가기도 하잖아요. 그런 시선과 생각을 노래하고 싶었어요. 수록곡 중 반 정도를 차지해요. 한편으로는 관계나 상실의 경험 속에서, 새로울 것까지는 아니지만 예전보다 더 깊게 느끼게 된 감정이 있어요. 초반 작업 때는 후보군에 없었지만, 꼭 담고 싶은 곡들이었죠.

아마 팬들은 선공개한 ‘상실의 관성’을 듣고 어느 정도 짐작했을 거예요. 2~3년 전 가족을 떠나보낸 종완 씨와 정훈 씨의 감정이 이입됐을 것도 같고. 

종완 마음속 아픔은 잘 풀어내면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상실의 관성’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는 곡이에요. 인간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게 이별인 것 같아요.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가족일 수도, 내가 꿈꿔온 미래일 수도 있고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별은 우리 모두가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보컬 김종완의 노보 기타.
밴드 넬 작업실에 놓인 악보와 기타 피크.
지난 5월에 열린 10집 발매 기념 콘서트 셋리스트.
넬의 작업실에 놓인 기타 피크.
밴드 넬의 작업실

콘서트에서 공개한 ‘Only One’도 그 선상에 있는 곡인가요? 

종완 맞아요. 앞에서 말한 ‘이번 앨범에 털어내야 했던 곡이 ‘Only One’과 선공개한 네 곡(‘상실의 관성’, ‘I Will Always Be’, ‘FarewellSong’, ‘Deep Inside’)이에요. 어떻게 보면 털어내야 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가를 항상 고민해왔지만 어느 날 그게 조금씩 정리되더군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집착하며, 정작 소중한 걸 뒷전에 두고 챙기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죠. 소중한 것을 지켜나가고 싶다는 내용의 곡이에요.

촬영 할 때 떠오르는 문구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더니 ‘Sweet Delusion’을 적었죠. 아무래도 수록곡 제목 같은데, 이 곡을 떠올린 이유는요? 

종완 저희 음악에서 소리의 질감이나 멜로 무드를 위해 관악기를 사용하곤 하지만, 리듬을 살리기 위해 브라스를 쓴 적은 거의 없어요. 이번엔 ‘Sweet Delusion’에서 브라스로 리듬감을 살려봤어요. 사운드적으로 흥미롭게 느껴진 곡이에요.

달콤한 망상, 20대 시절 넬의 냉소적인 음악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종완 가사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각자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저마다의 망상 안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싶었어요. 요즘은 원하는 정보만 취하는 시대잖아요. 비단 정보뿐 아니라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내 입맛에 맞는 것만 편식하는 거죠. 설령 진실이 아니더라도 내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도 하고. 예전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했지만, 요즘에는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연기가 나와 무관하면 가볍게 넘기거나 즐기며 소비하기도 하고요. 이런 생각들을 가사에 담았어요.

10집 작업에서 시간을 가장 오래 붙잡은 곡은 뭐였나요? 

종완 어떤 곡이 있는데 하, 숙원 같은 곡이라.(웃음) 거의 18년 묵힌 곡이네요. ‘무조건 되게 하자’ 작정하고 만들었죠.

항상 궁금했어요. 창작자들은 ‘완성’의 지점을 어떻게 알아차리나요? 

종완 사실 완성이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함께 작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해요. 저희는 이렇게 셋이 있고, 1집 <Let It Rain> 때부터 같이 작업해온 엔지니어 형도 있죠. 예를 들어 정훈이가 “이 부분이 좀 거슬린다” 하면 재경이는 “괜찮은 것 같은데?” 하거나 그 반대일 때도 있어요. 엔지니어 형한테도 많이 물어보는데, “이건 다시 수정해야지” 할 때도 있고, 반대로 “이 정도면 다 된 것 같은데 왜 너만 계속 그러는 거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 서로의 말을 믿고 가는 거예요.(웃음) 재경 믹싱 작업하면서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어요. 95점까지 가는 것도 어렵겠지만 그다음부터는 아주 미세한 차이라 거장이 아닌 이상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제가 볼 때는 종완이는 거장이거든요. 97점까지는 갈 거예요. 종완 노장이지.(웃음)

몇 년 전 SNS 라이브에서 음원을 소비하는 방식에대한 고민을 길게 이야기한 적이 있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찾았나요? 

종완 ‘과연 CD라는 매체가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고민을 꽤 오래 했어요. 예전에는 MP3보다 음질이 좋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스트리밍으로 CD 이상의 음질을 들을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CD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싶어요. 팬들 입장에서는 소장 가치가 있겠죠. 하지만 CD를 사고도 99%의 사람은 스트리밍으로 듣지 않을까요? 그런데 스트리밍마저도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스트리밍 플랫폼마다 음질 차이가 있거든요.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 항상 아쉬움이 있어요. 마스터링에서 받은 사운드와 차이가 크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생각하는 최선은 우리가 최종 컨펌한 소리를 그대로 들려주는 거였어요. 음식도 만들자마자 바로 먹어주는 게 요리사 입장에서 만족도가 제일 큰 것처럼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USB 형태로 발매하는 거예요. 바람이 있다면 USB 파일을 바로 휴대폰에 넣어 들어주셨으면 하지만, 번거롭긴 하겠죠.(웃음) 그래서 ‘이 USB가 앨범으로서 더 가치를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고민도 있었어요.

그 답은요? 

종완 제가 <태양의 서커스(Cirque duSoleil)>를 되게 좋아해서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그런 공연을 몰아서 봤어요. 그때마다 팸플릿을 꼭 샀죠. 배우 소개나 제작 과정을 읽다 보면 작품이 훨씬 깊이 있게 와닿더라고요. 그것처럼 앨범을 만들기까지의 시간과 멤버들의 생각을 기록한 책을 함께 담았어요. 저희가 아이돌도 아니니 포토 카드를 만들어봤자 의미도 없을 테고.(웃음)

SWEET DELUSION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각자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저마다의 망상 안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싶었어요.
이정훈 _ 셋업 재킷과 팬츠 모두 Maison Margiela, 타탄체크 스커트 Undercover by EMPTY, 화이트 티셔츠와 블랙 셔츠, 슈즈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경 아티스트 소장품.
김종완 _ 니트 Tanya Tan, 팬츠 NEU_IN, 셔츠 칼라 피스와 블랙 셔츠, 부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경 아티스트 소장품.
이재경 _ 셔츠 S/E/O, 셋업 재킷과팬츠 모두 NEU_IN,
타이와 슈즈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앨범 만들 때 중간중간 여행을 떠난다고 했어요. 이번에도 여행을 갔나요? 

종완 이번에는 여행이 아니라 아예 태국에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어 28일 정도 합숙하며 작업했어요. 가장 집중도가 높았죠. 다른 환경에 놓임으로써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더 솔직해질 수도 있거든요.

넬을 높이 사는 이유에는 꾸준함도 있어요. 

종완 그런가요? (멤버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언제 이렇게 성실의 아이콘이 된 거야.(웃음)

매년 연말 콘서트 <크리스마스 인 넬스 룸>을 이어오고, 페스티벌과 공연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그런 꾸준함의 원동력은 뭔가요? 

종완 음악 작업을 건너뛴 날은 찜찜해요. 노력보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사는 거예요. 때가 되면 공연을 하고 싶고, 음악을 만들고 싶고요. 저희끼리 “1~2년 쉬자” 하고 결정해도 며칠 지나면 “공연할까?”, “음악 만들까?” 하고 있을 거예요. 때 되면 밥 먹듯 자연스러운 패턴이죠.

넬의 골수 팬들은 언더그라운드 시절의 정규 앨범 두장과 서태지컴퍼니(괴수 인디진) 에서 발매한 1~2집을 넬의 정수로 꼽을 테지만, 3집 <Healing Process>역시 부정할 수 없는 명반입니다.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작품이고, 둘 다 갖춘다는 건 뮤지션에게 큰 역량이기도 하고. 언더에서 메이저로 무대를 확장해오면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게 있나요? 

종완 그 앨범을 만들 당시엔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서태지컴퍼니에서 울림으로 회사를 옮기던 때였죠. 또 20대 중반은 누구에게나 혼란스러운 시기잖아요. 어른도 청년도 아닌, 여러모로 과도기를 지나던 시절이에요. 회사를 옮기고 보니, 그전까지는 마냥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음악을 하는 꿈나무였다면 그때부터는 ‘이게 일이고 사회구나’ 라는 걸 체감했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아졌고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오히려 작업에만 몰두했어요. 결과적으로 2CD가 될 정도로 곡이 쌓였고, 다행히 많은 분이 좋아해주셨죠. 돌이켜보면 ‘우리는 결국 음악만 치열하게 하면 된다’는 걸 증명한 시기이기도 했어요.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작업에 오롯이 매진할 수 있게 됐죠.

넬의 방향을 바꿔준 앨범이 또 있나요? 

종완 방향을 바꿨다기보다 ‘우리가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믿음이 앨범을 낼 때마다 조금씩 쌓였어요. <Separation Anxiety> 때도 회사의 반대가 있었지만 ‘기억을 걷는 시간’을 타이틀곡으로 밀어붙였고, 다행히 대중의 반응이 좋았어요. ‘처음 꽂힌 방향대로 가는 게 맞구나’라는 확신이 그때 들었죠. <Slip Away> 때는 저희가 좀 무리를 해 뉴욕의 ‘아바타 스튜디오’(현재 명칭은 파워 스테이션 앳 버클리 NYC, 브루스 스프링스틴·데이비드 보위·롤링 스톤스 등 세계적 뮤지션들이 작업한 곳)에서 녹음했어요. 한국에도 훌륭한 연주자가 많지만, 머릿속에 그린 오케스트레이션의 질감을 구현하고 싶은 욕심에 미국으로 갔죠. ‘되든 안 되든 일단 질러보자’라는 마음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만족도가 높았어요. 그 시간들을 지나면서 저희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더 단단해졌죠. 재경 종완이의 작업 과정을 보면 결국 처음 생각한 방향으로 가더라고요. 억지로 이게 좋다고 우기는 게 아니라 처음 직감한 게 결국엔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어요. 종완 작업하다 보면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 여러 선택지가 생기거든요. 그럴 때 흔들리지 않고 처음 생각한 걸 마지막까지 끌고 가려고 해요

상실의 관성
관계나 상실의 경험 속에서, 새로울 것까지는 아니지만 예전보다 더 깊게 느끼게 된 감정이 있어요. 인간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게 이별인 것 같아요.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가족일 수도, 내가 꿈꿔온 미래일 수도 있고요.

뮤지션의 음악 취향은 늘 궁금한 법이죠. 평소 어떤 음악을 듣나요? 

종완 최근엔 계속 작업했고, 이동 중에도 작업물을 듣는 편이라 다른 음악을 거의 듣지 못했어요. 장시간 이동할 때는 1990년대, 2000년대 초반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어릴 때 좋아한, 라디오헤드나 스매싱 펌킨스, 뮤즈, 비요크 정도를 꼽을 수 있겠네요. 재경 요즘 긴 음악을 찾아 들어요. 데이비드 보위나 핑크 플로이드 같은 거장의 10분이 넘는 곡 위주로. 정훈 저도 요즘은 어릴 때 듣던 음악이 좋더라고요. 뮤즈가 6월에 정규 앨범을 내는데, 최근에 선공개한 ‘Cryogen’을 들으니, 어릴 적 뮤즈 앨범이 나올 때마다 느낀 로킹한 감흥이 되살아나 좋더라고요.

지금까지 발매한 곡이 100곡이 훌쩍 넘어요.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감정과 상황이 넬의 앨범을 뒤져보면 다 있어요. 고독, 상실, 슬픔, 분노, 한계, 희망. 그런 의미에서 넬의 음악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곡의 의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황별로 음악을 추천받고 싶어요. 무겁지 않게. 지금,밤 10시예요. 야근 후 퇴근길에는 어떤 곡이 어울릴까요? 

재경 ‘Slow Motion’. 그냥 확 가라앉아봐야 그 고통이 싹 정화되는 법이거든요.(웃음)

실제로 퇴근길에 가끔 듣는데, 인생의 민낯을 보여주 는 현실적인 조언이라 다른 방식으로 위로가 되긴 해요.

재경 개인적으로 힘들 때 더 침울한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해요. 종완 맞아, 그런 게 있지. 저는 청춘연가가 좋겠네 요. 어느 미래에는 지금 이 힘든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힘든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정훈 앞에서 감성적인 곡을 골랐으니 저는 ‘기생충’.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리라고. 종원 진짜 가라앉고 싶으면 ‘한계’를 듣는 게 좋죠.

넬의 음악을 말할 때 연상되는 단어들이 몇 개 있어요. ‘꿈’, ‘현실’, ‘위로’… 

종완 저에게 꿈은 되게 중요하거든요. 꿈을 꾸고 이뤄가는 과정에서 분명히 현실 에 부딪힐 거고. 현실에서 꿈을 이룬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말이잖아요. 이런 생각들이 깔려 있으니 가사에 자연스럽게 나온 게 아닐까요.

신곡 0nly One’도 이렇게 시작하더군요. “꿈보다 추억이 많아질 때”

종완 추억보다는 꿈이 많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친한 친구를 만나면, 미래에 대한 이야기보다 추억을 더 많이 곱씹잖아요. 나쁜 건 아니죠. 좋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하지만 추억만 먹고 살아가기 에는 씁쓸하잖아요.

그렇다면, 세 분의 꿈을 들어보고 싶네요.

종완 새 앨범 에 대한 만족도가 전작보다 높고, 객관적으로 볼 때 도 더 잘 만든 앨범이면 좋겠어요. 뮤지션으로서 하 루하루 더 나아지는 게 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훌륭한 까지는 아니어도, 정체하거나 퇴보하지 않고 어제보다 나은 뮤지션이 되는 것. 계속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에요.

정체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게 있나요?

종완 새로운 인풋을 위해 악기나 장비를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에요.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매일 거르지 않고 음악 작업을 하는 거죠. 퍼포 머로서는 목 관리나 보컬 레슨도 꾸준히 해야 하고.

재경 씨와 정훈 씨의 꿈은요?

재경 꿈을 이룬 상태로 살고 있어요. 음악을 좋아하다가 멤버를 만나 앨범 을 내고 공연을 하고, 저희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까 지 있죠. 그게 꿈이었거든요. 물론 더 큰 꿈도 있죠. 좋은 음악을 만들고, 그 좋은 것을 더 오랫동안 하 면 좋겠고. 그리고 더 잘됐으면 좋겠고. (웃음) 아직 욕심이 많습니다. 정훈 저는 연륜만 쌓인 채 나이 들고 싶지 않아요. 20 대, 30대 때는 치기 어렸죠. 멍청했을 수도 있지만 순수했고요. 그런데 저도 모르는 새 그걸 조금씩 잃 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최대한 그 에너지를 더 오래 가져가고 싶은 꿈이 있죠. 무뎌지고 싶지 않아요

에디터 이도연 사진 박정우 헤어 & 메이크업 신효정, 정수진 스타일링 이윤호(이백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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