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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물건 – 빈티지 워치

THE TIMEPIECE LIFE

1940년대 14K 화이트 골드 미스터리 다이얼. 12개의 다이아몬드 인덱스와 2개의 미스터리 핸즈로 시간을 표시한다. 시계 학자들은 ‘우주의 갤럭시’로 부르기도 한다. 예거 르쿨트르가 미주 시장에 진출하면서 상표권 이슈로 인해 풀 네임을 쓰지 못하던 시절의 시계다.

LECOULTRE MYSTERY DIAL

2006년 시계에 관심이 생기면서 종로 예지동 시계 골목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는데, 그때 노신사가 작은 다이얼 속에 별처럼 보이는 장식이 박힌 시계를 차고 있었다. 무슨 시계인지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는데, 시침과 분침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 묘한 다이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챗GPT도, 이미지 검색 엔진도 없던 시절이라 야후와 구글을 무작정 뒤졌다. ‘floating hands watch’, ‘invisible hands watch’, ‘diamond dial vintage watch’. 엉뚱한 키워드지만, 몇 시간씩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시계를 찾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 비슷한 시계를 발견했다. 다이얼에 작은 다이아몬드가 별처럼 박혀 있고, 중앙에는 방사형 기요셰가 은은하게 빛났다. 원리를 알고 나니 더 신기했다. 바늘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디스크 위에 붙어 있고, 그 디스크가 가장자리에서 회전하는 구조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기계와 착시 효과에 매력을 느낀 뒤 빈티지 시계를 보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 노신사를 다시 만난다면 어디서 시계를 구했는지, 그리고 그 시계가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 물어보고 싶다.

1940년대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추얼 버블백. 초기 자동 무브먼트를 탑재하기 위해 백케이스가 둥글게 부풀어 오른 것이 특징이다. 큼직한 아라비아숫자 인덱스와 블루 스틸 핸즈, 크림색으로 바랜 다이얼에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ROLEX BUBBLEBACK

롤렉스의 버블백은 동경하는 사람을 닮고 싶어 갖게 된 시계다.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시카고 오크 파크에 있는 그의 생가와 박물관에 다녀오기도 했다. 전쟁과 모험, 낚시와 여행을 오갔던 그의 삶은 거칠지만 글 속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좋은 인간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할 때면 자연스럽게 그의 문장을 떠올린다. 그런 헤밍웨이의 손목에는 항상 버블백이 자리했다. 다이얼의 생김새는 다르지만, 같은 Ref.2940을 어느 젊은 시계 수집가로부터 구할 수 있었다. 버블백은 360도 회전 방식 무브먼트를 탑재한 첫 번째 시계로, 당시 작은 몸통에 무브먼트를 탑재하기 위해 백케이스를 둥글게 부풀어 오른 형태로 디자인했다. 마치 작은 거품이 붙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버블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늘날의 자동 시계는 얇고 정교하지만, 당시에는 로터와 무브먼트를 수용하기 위해 이런 구조가 필요했다. 완벽하게 정제된 결과물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던 시대의 흔적 같은 디자인이다. 그래서인지 버블백을 볼 때면 헤밍웨이의 문장이 떠오른다. 완벽하고 정제된 삶이 아닌 조금 거칠고 불완전하더라도 스스로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 이 작은 시계에는 그런 시대의 공기와 태도가 담긴 것처럼 느껴진다.

당장의 가치는 낮을지 몰라도 숨겨진 지역 보석상의 시계를 연구하고 탐구한다. 에타블리사주(각 부품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제작자에게 주문받아 제작하는 시스템)라는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각 보석상의 취향과 개성을 더듬다 보면 그 도시와 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공장 생산형 시계가 아닌 근대 시계사 속 어딘가 존재했던, 숨겨진 시계를 소개하는 것은 수집가의 의무이기도 하니까. by 마카오 조

마카오 조는 공업 자재 수출을 중개하는 포지티브 JC 쇼룸 대표로, 20여 년간 세계 각국의 여러 가지 시계를 모으며 공부하고 있다.

20세기 초 독일 포르츠하임의 주얼리 하우스 K&L이 제작한 시계. 925 스털링 실버 케이스 위에 니엘로 기법으로 흑금 장식을 더해 체스 패턴을 표현했다. 프랑스어로 오크통을 칭하는 토노(tonneau) 모양에서 유래한 디자인이다.

KORDES & LICHTENFELS(K&L)

시계사는 금이 아닌 은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에서 금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지만 은은 중산층 생활에 널리 쓰였고, 산업 기반이었다. 식기와 장신구, 시계 케이스 등 은세공 산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금 역시 현재 가치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느 시대든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서민의 소비와 산업이고, 소수의 사치 역시 그 토대 위에서 성립할 수 있다.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포르츠하임은 은세공 산업의 중심지 중 한 곳이었다. 1884년에 설립한 K&L은 포르츠하임에서 주얼리를 제작하는 동시에 독립 시계 제작사에 시계 케이스를 납품했다. 이 시계는 20세기 초 제작한 모델로, 실버 케이스 위에 니엘로(Niello) 기법으로 장식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니엘로는 은 표면에 음각을 새긴 뒤 검은 합금을 채워 넣는 장식 기법으로, 이 시계에는 체스판 패턴으로 표현되어 있다. 빛에 따라 은과 흑금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대비가 묘한 깊이를 만든다. 아르누보와 아르데코가 교차하던 시대의 장식미도 느껴진다. 장식적 패턴과 금속 세공의 디테일은 주얼리 하우스가 만든 시계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브랜드 중심의 시계 산업이 아니라 케이스와 무브먼트 제작자가 협업하는 에타블리사주 방식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모리스 게르다의 오벌 셰이프 워치. 타원형 케이스와 2개의 핸드만으로 시간을 표시하는 디자인이 마치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을 보는 것 같다.

MAURICE GUERDAT

20세기 초 시계 디자인은 아르누보와 아르데코라는 2개의 큰 흐름을 지나왔다. 장식적 곡선과 기하학적 패턴이 시계를 하나의 장신구처럼 만들던 시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디자인은 점점 장식을 덜어내기 시작한다. 형태와 기능 자체에 집중하는 새로운 미학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바우하우스가 그 변화를 상징한다. 모리스 게르다는 스위스 쥐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 시계 제작 가문 출신의 브랜드다. 대량생산이 아닌 소규모로 정제된 드레스 워치를 만들던 가문이었다. 이 시계 역시 복잡한 기능보다는 형태 자체에 의미를 둔 모델이다. 타원형 케이스에 단 2개의 핸드가 놓여 있고, 인덱스도 장식도 없다. 케이스의 곡선은 하나의 선이 부드럽게 흐른다. 시계라기보다는 작은 조형물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디자인은 바우하우스 이후의 미니멀리즘뿐 아니라 1960년대 유럽 디자인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당시 산업디자인에 타원형과 유선형이 자주 등장했는데, 이는 이른바 ‘스페이스 에이지’ 디자인의 영향이었다. 인공위성과 우주선이 등장하던 시대였고, 사람들은 미래의 형태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원이나 직선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타원형이 그 상징처럼 사용되었다. 모리스 게르다 제품을 보면 장식이 없는 디자인이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바우하우스가 말했듯이, 형태 자체가 이미 충분한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1940년대 르쿨트르의 그래스호퍼 워치. 메뚜기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곡선형 러그 디자인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아래 1960년대 아베크롬비 & 피치의 더블 네임 드레스 워치. 당시 호이어의 무브먼트 지원과 미니멀한 다이얼 구성이 특징이다.

LECOULTRE ARISTOCRAT

예거 르쿨트르가 1940년대 미국에서 유통한 아리스토크랫(Aristocrat)은 이름보다 형태로 기억되는 시계다. 케이스 양쪽의 둥글게 돌출된 러그 구조가 메뚜기 다리 같다고 해서 수집가들 사이에 그래스호퍼(Grasshopper)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뉴욕이나 파리,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빈티지 워치 컬렉터들 사이에는 이런 1940년대 디자인에 대한 수집과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생산량이 많지 않은 데다 아르데코 특유의 조형적 요소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ABERCROMBIE & FITCH CO. shipMATE

지금의 아베크롬비 & 피치는 캐주얼 패션 브랜드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 고급 아웃도어 장비와 탐험 장비를 판매하던 뉴욕의 상점이었다. 20세기 중반에는 스위스 시계 제작사(호이어, 티쏘, 올레크 앤드 와이즈 등)와 협업해 더블 네임 워치를 판매하기도 했다. 이 시계 역시 그 시대의 산물이다. 단정한 바 인덱스와 날짜 창, 그리고 얇은 자동 무브먼트를 갖춘 전형적인 1960년대 드레스 워치다. 화려한 요소는 없지만, 아베크롬비 & 피치가 만든 시계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왼쪽 1930년대 메다나 네잎클로버 케이스 워치. 네잎클로버 형태로 커팅한 글라스와 레드 컬러 12시 인덱스가 포인트다.
오른쪽 1940년대 주베니아 레이디 네잎클로버 워치. 네잎클로버 형태 케이스 안에 애로우와 스터드 인덱스를 배치해 장식적 균형미가 도드라진다.

MEDANA FOUR LEAF CLOVER

‘레가는 광고를 하지 않습니다.’ 레가의 캐치프레이즈다. 그럼에도 레가는 전 세계 턴테이블 판매량 톱 5를 자랑한다. 어떤 광고도 없이 이 자리에 오른 이면에는 철저한 설계가 있었다. 화려한 외관, 탱크 같은 무게의 하이엔드 턴테이블과 달리 레가는 극도로 심플한 디자인과 가벼운 무게를 추구한다. 플래너 10은 레가의 모든 진동 제어·설계 기술과 철학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최상위 모델 나이아(Naia)가 나왔지만, 플래너 10은 레가의 실질적 플래그십으로서 여전히 건재하다. 턴테이블을 뒤집어놓아도 LP에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최고급 RB3000 톤암의 정밀한 그루브 추적 능력과 분리형 전원부는 플래너 10에 독보적 성능을 부여했다. 여기에 레가 아펠리온(Aphelion) 2 카트리지를 장착하면 톤암과 영혼의 콤비를 이룬다.

JUVENIA FOUR LEAF CLOVER

1910년대 파텍필립과 비슷한 시기, 주베니아는 자체 울트라 슬림 무브먼트를 개발할 정도로 제작 능력이 뛰어났고,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장식을 시계 디자인에 적극 반영했다. 쿼츠 시계가 세계를 장악하던 1970년대에도 장식적 미학을 버리지 않았다. 이 시계는 주베니아의 철학을 보여주는 1940년대 레이디 워치다. 네잎클로버 모양 케이스는 보기에 단순하지만, 상당히 정교한 금속가공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케이스 제작이 자동화된 시대라면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당시에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 4개의 곡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케이스를 다듬고 글라스를 맞추는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작업이다.

에디터 강승엽 김흥수
LUXURIOUS BOLDNESS ARCHIVE CHIC BOLDNESS AND W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