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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CUT’ 히트 트랙과 히든 트랙

지금, 당신의 플레이리스트 큐레이터는 누구인가.

지금 음악은 확실히 메인스트림이 아니다. 음악을 하드웨어(음반)에 담아 판매해 부가가치를 내던 시절에는 ‘음악이 곧 돈’이라는 공식이 존재했다. 그 시절 가수의 위상은 높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우린 지금 1위 곡, 메가 히트곡이라는 개념이 딱히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작년만 보더라도 전 세대가 들어봤음 직한 메가 히트곡은 로제와 브루노마스의 ‘아파트’ 한 곡뿐이다. 그러나 그 곡조차 이벤트성 히트로 느껴지는 부분이 크고, 실제로 두 월드스타의 빅뱅을 성공시킨 기획 자체의 공을 더 높이 산다. ‘라떼적’ 푸념은 아니다. 더 이상 예전 같은 부가가치를 내지 못하는 ‘대중음악’이라는 장르의 위기가 일련의 대중문화적 기근 현상을 낳고 있고, 그 결과 리스너들의 아카이브가 유례없이 빈약해진 건 아닌지 하는 우려에 대한 이야기다. “K-팝의 위상이 세계를 호령하는 시대에 웬 시대착오적 발상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신곡은 ‘새로운 세계관과 비주얼’이 우선시되고, 정작 ‘음악’은 거기에 맞추느라 허덕이며 비슷비슷하게 BG 용도로 재생산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음악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이다.

라디오가 있지 않느냐고? 맞다. 라디오는 원래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축이었다. 라디오라는 매체 자체가 새로운 음악을 추천하고 리스너의 집중을 모을 수 있는 최적의 미디어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핵심 역할을 스트리밍 서비스에 빼앗긴 지 오래인 지금의 라디오는 24시간 ‘수다’가 주요 콘텐츠다. 생존 이유를 ‘실시간성’ 외 다른 곳에서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디오는 오랫동안 군림해온 신곡 큐레이터의 왕좌를 스트리밍 서비스에 힘없이 넘겨줬고, 그 자리를 되찾으려는 의지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그 헤게모니를 앗아간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가 큐레이팅을 올바르게 인계했느냐는 것이다.

오로지 자본주의적 로직에 의해 작동하는 알고리즘의 폐해를 지리멸렬하게 다시 논하기 앞서, 알고리즘 자체의 태생적 한계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알고리즘은 나의 과거와 상관없는 것을, 내게 ‘생뚱맞은 것’을 내 앞에 뻔뻔하게 들이밀 수 있도록 고안한 시스템이 아니다. 문화적 외연을 넓히는 과정에는 반드시 ‘우연’과 ‘일탈’, ‘낯섦의 미덕’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

학창 시절 내내 ‘음악통’이라는 말을 들으며, 결국 음악 예능 PD라는 커리어를 만들어간 내가 그렇게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말마다 대형 음반 매장 디깅하느라 갖다 바친 수많은 시간, 카세트테이프나 LP 뒤집기가 귀찮아 그냥 앨범의 모든 트랙을 통으로 쭉 들어 버릇하던 패턴에 그 공이 있다. 그리고 내가 코 묻은 용돈을 모아 큰맘 먹고 플렉스한 앨범 하나하나의 소장 가치, 그 앨범을 만든 뮤지션 한 명 한 명에 대한 애착 덕이기도 하다. 그렇게 삼각주에 모래 쌓이듯 나의 음악 아카이브는 수십 년간 늘어갔고, 그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내 인생의 문화적 재산이 되어 남아 있다. 그런데 만 몇천 원 주고 검색어 몇 개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을 내 앞으로 바로 갖다놓을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자, 역설적으로 그 순간 나의 음악적 아카이브는 성장을 멈춰버렸다. 새로운 음악을 위해 시간도, 돈도 투자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파리지앵 중 에펠탑에 올라가본 사람이 드물고, 서울 토박이 중 남산타워에 올라가본 사람이 별로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 미지근하고 권태로운 완벽 시스템이 확보되면서부터 나는 왠지 예전에 좋아했던 곡만을 부지런히 묶어 엮은 플레이리스트만 무한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질의 새 음악을 계속 제대로 수혈받기 위해 각자 도생해야 하는 이상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작금의 디지털 큐레이팅이나 알고리즘은 단언컨대 1도 믿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눈물겹게 다행인 점은,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많은 뮤지션이 계속 새롭고 좋은 음악을 직조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그들이 산업구조가 어떻게 변했든 뮤즈 여신의 축복, 혹은 저주에 씌어 음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엾은 팔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눈물겨운 창작물을 디깅해 찾아 들어주고, 인정해주고, 입소문 내주는 것은 이제 우리 각자의 몫이 되어버렸다. ‘음악 자체’만으로는 돈이 되지 않는 세상에선 아무도 제대로 된 추천 행위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엉망진창으로 타락한 알고리즘의 여신은 뮤즈 여신과 시너지를 낼 의향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렇게 보면 디지털 디깅 혹은 셀프 큐레이션 행위가 이 세대의 또 다른 ‘노블레스 오블리제’일지도 모르겠다.

급한 마음에 한 가지만 추천하자면, 음악을 트랙 단위가 아닌 앨범 단위로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는 패턴을 권한다. 싱글 하나 내고 뮤직비디오 찍느라 시간을 더 많이 쓰는 뮤지션과 그래도 어떻게든 정규 앨범을 발매하려는 뮤지션의 음악은 비교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진정성 있는 뮤지션의 음반에는 반드시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내러티브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조탁한 내러티브 안에는 반드시 들어볼 만한 메시지도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히트 트랙’이 아닌 나만의 ‘히든 트랙’이 쌓여가는 재미를 다시 느끼게 되는 순간, 나의 아카이브에 걸려 있던 빗장이 다시 풀리는 기분이었다는 최근 경험담을 이 칼럼을 통해 간증하고 싶었을 뿐이다.

연례행사처럼 직장에서 의무로 실시하는 종합검진을 받아보면 자주 ‘비타민 D 부족’이라는 결과를 받아보게 된다. 애당초 비타민 D 합성 능력이 다른 민족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떨어는 게 우리 민족인데다 늘 건강검진을 연말로 미루다 보니 그때는 이미 동절기라 일조량마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비타민 D 결핍은 당장 신체에 불편감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핍이 만성화되면 결국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다행히 봄이 되고 여름이 오면 우리는 반소매, 반바지, 샌들을 신으면서 다시 풍부한 비타민 D 합성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꾸준히 새 음악을 통해 문화적 합성을 해오던 리스너에게 자연스레 그 문화적 일조량이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보충제를 챙겨 먹지 않으면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가 어느 순간 버석거리며 부실해질 것이다.

김영욱 SBS 예능국 PD, <피아노 홀릭>을 발간했으며, 유튜브 채널 ‘피아노홀릭’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에디터 이도연 일러스트 최익견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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