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CUT 세 남자의 예술적 오라
2025년 가장 기대되는 클래식 공연의 주인공 임윤찬과 클라우스 메켈레, 과감한 퍼포먼스로 주목받고 있는 카운터테너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 세 남자가 무대에서 뿜어내는 예술적 오라에 대한 고찰.

유튜브 영상 하나로 스타덤에 오른 클래식 음악가가 있다. 폴란드 출신 카운터테너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 스키(Jakub Jo′zef Orlin′ski)다. 2017년 업로드된 이 영상은 <프랑스 뮤직 콘서트(France Musique Concerts)>에서 주최한 특집 방송의 일환이었다. 당시 오를린스키와 반주자 알퐁스 세맹(Alphonse Cemin)은 이 공연이 라디오로만 방송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더할 나위 없이 캐주얼한 복장을 한 채 비발디의 바로크 오페라 ‘일 지우스티노(Il Giustino)’ 중 ‘나의 사랑하는 님 만나리(Vedro con mio diletto)’를 불렀다. 그런데 예고한 것과 달리 이 공연은 유튜브에 그대로 업로드되었고, 현재 1200만 뷰를 돌파했다. 영상 속 로데옹 광장의 중세 배경과 대비되는 오를린스키의 차림새는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반바지에 소매를 걷어 붙인 체크 셔츠를 입었고, 반주자는 샌들을 신은 발로 피아노 페달을 밟았다. 이 장면은 최근 클래식 신에서 가장 ‘힙한’ 해프닝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이 생경한 장면에서 화룡점정은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의 눈부신 외모였다. 댓글창에는 ‘다비드 상이 살아 움직이며 노래를 하고 있다’는 반응으로 도배되기도 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이 클래식 스타의 공연을 지난 1월 드디어 직관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근 관람한 클래식 공연 중 단연 최고였다. 1시간 20분 동안 한 사람이 낯선 바로크 아리아를 노래하는 공연이니 솔직히 단조로움을 감수할 각오는 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세 곡의 앙코르가 끝나고 기립박수가 터져 나오는 순간까지 지루할 틈 없이 공연에 빠져들었다. 오를린스키의 내한 공연은 단순히 콘서트로만 보기 어려웠다. 공연 전 인터미션이 없고 중간 박수를 금지하는 안내 방송이 황당하게 느껴졌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니 그 이유가 선명하게 보였다. 오를린스키는 다양한 바로크 아리아와 신포니아를 면밀히 배열해 1시간 20분짜리 모노드라마를 무대 위에 올렸다. 그러니 중간에 끊을 수도, 박수를 칠 수도 없는 게 당연했다. 그는 무대 바닥에 드러눕기도 하고, 공연 초・중반에는 아예 구두와 양말을 벗어 던졌다. 암전된 극장 안에서는 객석 맨 뒤로 이동해 경광등을 들고 관객 사이를 거닐며 노래를 불렀다. 탁월한 퍼포먼스와 뛰어난 피지컬을 지닌 그가 명배우의 명대사 같은 아리아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노래하는 다비드 상’이라는 별명이 더욱 실감 났다. 또 비트감이 있는 바로크 신포니아에 고난도 브레이크댄스를 매시업했는데(참고로 그의 또 다른 직업은 브레이크댄서다), 그것이 전혀 우스꽝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모든 행위와 퍼포먼스는 공연 전체 내러티브 안에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오를린스키는 바로크음악의 범주 밖에서 레퍼토리를 찾기 쉽지 않은 카운터테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장점인 외모를 십분 활용하는 전략을 가자미눈을 뜨고 바라봐야 할까? 내가 그날 목격한 내러티브는 넷플릭스에 업로드된 어떤 자극적인 시리즈보다 훨씬 더 관능적이었다.
오를린스키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클라우스 메켈레와 임윤찬이다. 두 사람은 오는 6월 메켈레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한다. 이 공연은 예상대로 치열한 피케팅이 벌어졌고, 티켓 오픈 30초 만에 1200여 석이 매진됐다. 두 청년은 ‘최연소’라는 형용사가 붙는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다. 일단 메켈레(29세)는 21세에 스웨덴 라디오 교향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이듬해 오슬로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었고 스물세 살 되던 해 파리 오케스트라와 5년 계약을 맺었다. 심지어 세계 최정상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은 2027년부터 5년간 상임지휘자로 모시겠다며 선금을 걸어둔 상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21세)의 최연소 기록은 익히 알려져 있듯, 열다섯 살 때 윤이상 국제 콩쿠르 최연소 우승, 열여덟 살에 반 클라이번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었다. 또 작년에는 불과 약관의 나이로 클래식계 양대 어워즈인 그라모폰상과 디아파종상을 모두 휩쓸었다. 실력만 충격적인 게 아니다. 그들의 축복받은 외모가 팬덤을 ‘신드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촉매가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사실 임윤찬은 전형적 미남형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외모가 지닌 최대 강점은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과 똑 닮았다’는 거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주변인이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을 던진 적이 있다. “저 친구는 세상사에 초연한 젊은 바둑 기사 같아. TV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박보검이 연기한 ‘최택’ 같은 이미지가 있네.” 철저히 객관적인 발언이라 더 이상 적확할 수가 없었다. 메켈레는 또 어떤가? 전형적인 엘리트 미남의 풍모를 지닌 그가 몰아의 경지로 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의 전신에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이쯤 되니 무대에 서는 사람들의 숙명은 클래식 음악가에게도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을 극에 몰입시켜야 하는 오페라 가수는 말할 것도 없고, 피아니스트나 지휘자 같은 기악 음악가에게도 이 숙명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100% 분리해 감상할 수 있을 만큼 고매한 존재가 아니다. 푸치니 <라보엠>의 여주인공 ‘미미’를 두고 최고 성악가가 누구인가를 논할 때, 그것이 몽셰라 카바예(Montserrat Caballe′)일 수 없고 미렐라 프레니(Mirella Freni)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폐병을 앓다 죽어가는 미미를 120kg의 카바예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원작대로 폐병이 아니라 다른 질환으로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소리로만 따지자면 카바예의 미미가 프레니를 가뿐히 앞선다. 그러나 가냘픈 프레니의 모습이 극 중 미미의 이미지와 더 맞닿아 있다. 무대라는 공간에는 이러한 치사하고도 비극적인, 냉엄한 현실 조건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기악 연주자는 성악가만큼 외모가 절대적 요소는 아니지만, 촉매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역사속에도 이러한 사례가 있다. 새하얗고 병약하면서 신경질적인 쇼팽보다 키 크고 잘생긴 동유럽 훈남 리스트(Liszt)가 훨씬 더 거센, 지금으로 따지면 슈퍼스타급 영예를 누렸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입에 올리는 ‘마니아’라는 단어가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 리스트가 연주할 때마다 대중이 보인 광적인 반응을 표현하기 위해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처음 사용한 용어)에서 유래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물론 아무리 비주얼이 뛰어나도 실력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오를린스키의 유튜브 영상은 그저 일회성 헤프닝으로 끝났을 테고, 임윤찬 역시 여느 콩쿠르 우승자처럼 반짝 신드롬을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며, 메켈레 또한 그 많은 유수 관현악단의 러브콜을 받았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허심탄회하게 반추해 보건대, 그들의 용모가 출중하지 않았다면 피케팅을 동반하는 ‘페노메논(Phenomenon)’급 인기가 단기간에 가능했을까? 좀 더 즉물적으로 표현하면, ‘3점 먹고 들어갈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3점 먹고 들어가도 꼭 난다는 보장은 없다. 실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초반에 들뜨고 말 일이란 건 명절 때 밤 좀 새본 이라면 알 것이다. 필자가 올해 가장 잘한 일은 3점 먹고 들어간 이 두 명의 젊은 타짜 임윤찬과 메켈레의 협연 피케팅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6월까지 기다리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김영욱 SBS예능국 PD, <피아노홀릭>을 발간했으며, 유튜브 채널 ‘피아노홀릭’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