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미식 도시’ 르완다 키갈리
탐미할 맛이 그득한 르완다의 키갈리.

미술과 음악 등 아프리카 예술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지대하다. 음식도 다르지 않다. 호기심 충만한 미식가라면 지금, 아프리카로 향해야 한다. 프랑스 레스토랑 가이드북 <라 리스트(La Liste)>는 2021년 <가스트로노미 옵서버-아프리카>를 발행해 600개 이상 아프리카 레스토랑을 조명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셰프 알렉산더 스몰스가 집필한 <컨템퍼러리 아프리카 키친>이 저명한 요리 매체와 음식평론가로부터 ‘올해 최고 쿡북’으로 선정되었다. 최근 미식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아프리카 미식에 대한 전 세계인의 뜨거운 관심을 방증한다.
아프리카 대륙에 존재하는 55개국 중 더듬이를 세울 곳은 르완다 키갈리다. 이곳을 주목하는 이유는 ‘땅’과 ‘사람’에 있다. ‘천 개의 언덕’이라 불리는 르완다는 계단식 농장과 울창한 열대우림, 화산지대 등 다양한 지형과 기후 덕에 먹거리가 풍요롭다. 게다가 실력과 참신함을 겸비한 젊은 요리사들이 다이닝 신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콩고 출신 셰프 디외베유 말롱가(Dieuveil Malonga)다. 콩고에서 태어나 독일과 프랑스에서 자란 셰프는 아프리카 48개국을 여행한 뒤 2020년 레스토랑 ‘메자 말롱가(Meza Malonga)’를 오픈했다. 이곳엔 정해진 메뉴가 없다. 매일 구하는 신선한 재료에 따라 메뉴가 매번 달라진다. 보통 디너는 8~9코스로 구성한다. 아프리카 전통 식문화와 현지 재료를 재해석한 디시를 준비하는데, 이름도 생소한 재료를 탐험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몸바사 스타일의 새우 요리에는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에서 채집한 론델(rondelles, 육두구의 일종)을 가미하고, 스테이크에는 나이지리아의 대표 양념 수야 소스를 곁들여 매콤하면서도 스모키한 풍미를 가미하는 식이다. 술도 전통 방식으로 직접 제조한다. 다양한 과일과 곡물을 카메룬의 음봉고(mbongo, 악어 후추로도 알려짐) 같은 향신료와 함께 발효시켜 만드는데, 그 종류가 다양해지면 페어링 메뉴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메자 말롱가는 2025년 5월 새 챕터를 연다. 무산제에 자리한 셰프 소유 농장으로 레스토랑을 이전하는 것.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단 4개의 테이블만 갖추고, 레스토랑 외에도 아프리카 향신료와 발효 연구소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말롱가의 행보를 보면 덴마크 레스토랑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 페루 ‘센트럴’의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즈가 언뜻 떠오르기도 한다. 셰프 육성과 토착 재료에 대한 집요한 연구를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행지를 미식의 성지로 탈바꿈시킨 이들과 닮은 부분이 많다. 실제로 말롱가의 활동은 많은 요리사에게 영감이 되고 있다. 5성급 호텔인 원앤온리 늉웨 하우스의 총괄 셰프를 지낸 짐바브웨 출신 셰프 트레저 마크와니세(Treasure Makwanise)는 2022년 ‘안다 키갈리(Anda Kigali)’를 오픈하며 키갈리 파인다이닝 신에 합류했다. 루프톱에서 키갈리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대표 메뉴로는 레몬 소스와 바삭한 귀리를 곁들인 틸라피아 사시미, 망고와 생강 소르베를 가미한 파인애플 브륄레 등이 있다. 또 키갈리에서 나고 자란 니콜 바무쿤데(Nicole Bamukunde)는 프랑스에서 호스피탤리티를 공부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레스토랑 ‘뉴라(Nyurah)’를 열었다. 이곳은 호스피탤리티 교육 센터를 함께 운영하는데, 여기엔 키갈리의 관광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니콜의 야심 찬 포부가 담겨있다. 격상하는 키갈리의 다이닝 신에 귀가 솔깃할 사람은 미식가뿐만은 아닐 테다. 마운틴 고릴라 트레킹과 사파리를 위해 르완다의 고급 로지를 찾는 여행자에게도 분명 반가운 변화일 것이다.

고릴라 트레킹을 제공하는 숙소

BISATE RESERVE
2024년 9월에 오픈한 로지. 건축가 닉플루먼이 설계를 맡았으며, 초가지붕, 화산암, 공예품 등을 활용해 르완다의 색채를 담아냈다. 단 4개의 객실만 운영하며, 각 빌라에는 온수 욕조를 갖춘 덱, 다이닝과 스파 트리트먼트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6개 휴화산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어 전망도 탁월하다.
Price 약 674만 원부터.
Web wildernessdestinations.com

SINGITA KWITONDA LODGE
화산 국립공원과 맞닿은 178에이커 (약 72만m2)의 대지에 지은 로지다. 통창으로 펼쳐진 평원의 풍경이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총 9개 객실은 지역 장인의 수공예품으로 장식해 이국적 분위기가 흐른다. 드라이버와 전용 트레킹 차량을 제공하고, 식사도 투숙객의 취향에 맞춰 준비한다.
Price 약 510만 원부터.
Web singita.com

ONE & ONLY GORILLA’S NEST
비룽가 산맥 기슭에 자리 잡은 곳. 21개의 독립된 빌라는 유칼립투스 숲에 자리해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며, 힐링하기에도 더없이 좋다. 고릴라 트레킹 외에도 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식물 성분을 활용한 스파, 요가, 야외 수영 등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Price 약 427만 원부터.
Web oneandonlyresorts.com
DRINK
확장하는 키갈리의 음료 문화

대부분의 르완다 호텔이 커피 농장 투어와 커피 시음 액티비티를 갖췄을 만큼 커피는 르완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95%는 아라비카 버번(Arabica Bourbon)으로, 풍부한 과일 풍미와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유기물이 풍부한 화산토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미다. 사실 르완다 현지인은 커피보다 차를 마시는 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커피를 즐기는 젊은 세대와 비즈니스맨이 늘면서 현지 카페 문화가 급부상하고 있다. 퀘스천 커피(Question Coffee)와 루비아 커피 로스터스(Rubia Coffee Roasters), 키부 누아르(Kivu Noir) 같은 현지 브랜드 카페는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필수 방문지로 꼽힌다.
특히 키갈리의 고급 주택지 키미후루라에 위치한 키부 누아르는 대를 이어 커피를 재배해온 케빈 음분두(Kevin Mbundu)가 운영하는 곳으로, 원두 품질에 대한 호평이 자자하다. 키부 호수의 해안가에서 재배한 원두만을 사용하며, 그가 소유한 농장은 세계 상위 1% 품질로 평가받고 있다. 음분두는 커피 문화를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지난해 10월 레스토랑 겸 칵테일 바 루아(Rua¨)를 오픈했다. 이곳은 커피 와인 소스를 뿌린 스테이크, 세이지와 녹색 고추로 만든 칵테일 등 커피와 토착 재료를 활용해 실험적 음료와 요리를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아프리카 생태계의 다양성은 요리뿐 아니라 음료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예로는 럼을 들 수 있겠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개발경제학을 전공한 싱카포르 출신의 로한 샤(Rohan Shah)는 르완다의 풍부한 식재료에 매료되어 지난해 아프로-보태니컬 럼 브랜드 ‘이미지(Imizi)’를 론칭했다. 사탕수수, 아보카도잎 같은 천연 식물로 만든 이 럼은 첫 생산한 해에 각종 국제 주류 대회를 휩쓸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2025년에는 ‘이미지’라는 이름을 걸고 바 공간을 오픈한다고 한다. 럼을 통해 르완다의 다채로운 식물종을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몰입형 공간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레스토랑부터 바까지, 새로운 선택지가 풍부해지는 2025년이야말로 키갈리를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