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가까운 만년필’ 엘브우드의 가치
엘브우드는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한 만년필만 제작하는 방식을 고집한다.
함부르크 엘베강 인근에 만년필을 만드는 작은 공방이 있다. 이름은 엘브우드(Elbwood)다. 엘브우드는 40대 직장인 프랭크 프레센틴의 상상에서 시작됐다. 20년간 교육자이자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그는 이사직을 맡게 되자 책상 앞에 앉아 엑셀을 만지는 게 일상이었다. 직장에서의 지루함은 집을 수리하거나 가족과 함께 탈 배를 제작하며 보상받았다. 하루는 강가에서 배를 만들다 생각에 잠겼다. 코스모폴리탄적 삶을 누리는 함부르크 사람들, 엘베강을 떠나 세계 곳곳을 항해하는 배, 수필로 항해 일지를 쓰는 선장. 그러다 뭔가에 이끌리듯 ‘선박 재료로 펜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고, 엉뚱한 상상과 호기심은 현실로 이어졌다. 이후 퇴근 시간만 되면 목공예가를 찾아가 목공과 금속공예 수업을 듣는가 하면, 기술 문헌을 정독하며 만년필을 탐구했다. 그렇게 3년을 보낸 뒤 틈틈이 만들어둔 펜을 전시하기 위해 쇼룸을 꾸렸다. 만년필을 향한 열정에 불을 지핀 공간이다. 이웃 공방의 바이올린 제작자의 제안으로 엘프 필하모닉 음악가들과 함께 작은 콘서트를 열었는데 공연 당일 바이올린 공방은 무대가, 자신의 쇼룸은 샴페인 리셉션장이 되어 자연스럽게 문인·예술가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를 계기로 쇼룸은 독서 모임, 북 사인회 등이 열리는 문화 행사가 열리는 장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사벨 보그단과 디미트리 카피텔만 같은 문학가들도 드나들었다. 그의 꿈은 현실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파이
프나 시가를 입에 물고 럼주와 포트와인을 마시며 글을 써 내려가는 문인들, 그 손에 쥐어진 만년필. 이 모든 행위가 글쓰기의 미학이라 여기며 그 시절을 동경하기 시작했고, 글을 쓰는 행위와 문화를 과거로 돌려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더 이상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없다고 깨달은 그는 2021년 집 한편에 공방을 차렸고, 이때부터 그의 만년필에는 ‘엘브우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공방만 쓱 훑어봐도 엘브우드의 감성이 느껴진다. 손때 묻은 나무 서랍장과 낡은 가죽 소파를 간결한 구조로 배치하고, CNC(컴퓨터 수치 제어)와 3D 모델링 컴퓨터 등 디지털 장비는 찾아볼 수 없다. ‘천연 소재와 간결한 디자인의 결합’을 철칙으로 삼는 엘브우드의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준다. 프랭크는 자연 소재 중에서도 마호가니·흑단·황동 등 배를 만드는 데 쓰는 재료를 선호한다. “선박 재료는 펜 제작에 탁월한 소재예요. 내구성이 좋은 데다 방수성도 뛰어나죠. 유일한 단점은 작업하기 까다로운 재료라는 것입니다.” 프랭크는 만년필을 통해 자연을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라고 말한다. 고무나무 껍질에서 얻은 재료 에보나이트,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녹청이 생기는 구리 등 천연 재료를 고집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목재를 안정시키는 화학약품 작업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소재뿐 아니라 제작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의 단조 기술인 모쿠메가네(목금 기법)를 적용하는데, 다양한 귀금속 재료를 융합해 자연스러운 나뭇결을 표현한다. 그의 작업 과정 중 가장 큰 사치는 시간이다. 한 개의 만년필을 만드는 데 짧게는 4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소요된다. 나무를 베고 완성하기까지 400단계가 넘는다는 걸 감안하면 납득이 간다. “사람들은 기다림의 시간이 길수록 손에 쥔 물건을 더 소중히 합니다. 저는 그 시간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죠” 프랭크는 자신의 만년필이 면세점이나 백화점에서 쉽게 ‘테이크아웃’ 하는 제품이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한 만년필만 제작하는 방식을 고집하며 엘브우드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