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 더 매워지는 이유
변화의 소용돌이 속 날카롭고 묵직한 시선.
놀이공원에 새로운 롤러코스터가 들어오면 타보고 싶은 마음과
MZ세대가 신상 매운맛 라면에 열광하는 현상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매운맛 경쟁이 뜨겁다. 이제껏 매운맛의 기준은 신라면이었다. 떡볶이, 짬뽕, 불닭, 매운 냉면을 먹으러 가도 마찬가지다. 매운맛 정도는 신라면의 1·2·3배로 표시된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신라면보다 두 배 이상 매운 신라면 더 레드가 나왔다. 스코빌지수로 신라면은 3400SHU, 신라면 더 레드는 7500SHU, 맵탱은 6000SHU, 마열라면은 5000SHU다. 나열한 순서대로 농심, 삼양, 오뚜기 3사에서 내놓은 신제품이 모두 기존 신라면보다 맵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이 라면들이 실제로 더 매운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진다.
대체 왜 매운 라면이 인기인가? 불황이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불황이 아닌 적이 있었나. 과학 연구에 따르면, 매운맛을 좋아하는 것은 감각 추구 성향과 관련이 있다. 새로운 감각이나 더 강렬한 감각을 추구하는 성향일수록 매운맛을 즐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거나 유튜브에서 자동차 사고 동영상을 자주 보는 사람, 낯선 도시를 탐험할 때 가슴 설레는 사람이라면 매운맛 라면의 팬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2015년 한 연구에서는 성별에 따라 매운맛을 좋아하는 성향의 연관성도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 감각 추구 성향에 따라 매운 음식을 즐기지만, 남성은 보상 민감도에 따라 매운 음식에 도전한다. 즉 여성은 맛있어서 신상 매운맛 라면을 먹는다면 남성은 ‘내가 이렇게 매운 걸 먹는다’고 자랑하기 위해 먹을 수 있다는 추측이다. 요는 매운맛 챌린지에 도전하려고 더 매운맛 라면을 찾는 이도 있고, 새로운 매운맛 라면을 감각해보려고 찾는 이도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가 매운맛을 즐기는 이유에 대한 연구를 선도한 심리학자 폴 로진은 고추를 먹는 것이 공포영화를 보거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 행위라고 설명했다. 공포영화를 봐도 실제로 그런 무서운 상황을 겪는 게 아니고 롤러코스터를 탄다고 해도 정말 죽을 위험에 처하는 게 아니다. 엄청 매운 음식을 먹으면 입안이 온통 불이 날듯 화끈거리고 눈물이 나지만, 이내 그런 고통은 사라지고 즐거움만 남는다. 그런 관점에서 놀이공원에 새로운 롤러코스터가 들어오면 타보고 싶은 마음과 MZ세대가 신상 매운맛 라면에 열광하는 현상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모두가 매운맛 라면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맵고 자극적인 맛으로 혀가 마비되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며 불평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실제로 매운맛 자극이 단맛, 쓴맛, 감칠맛의 강도를 조금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효과가 그리 크진 않다. 매운맛이 너무 강하다고 느끼면 그로 인해 주의가 분산되어 다른 맛을 느끼는데 방해받을 수 있는 정도다. 어느 정도가 매운맛이냐 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은 다른 맛을 느끼는 데 불편함이 없지만, ‘맵찔’이라면 매운맛에 압도되어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런 맵찔이 중 한 명이다. 그래도 어느 날은 그런 매운맛 라면을 먹고 싶은 날이 있다. 롤러코스터 대신에라도.
정재훈 약사이자 푸드라이터. 마트와 편의점, 노포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숨어 있는 요리와 먹기의 과학에 대한 글을 쓴다. 저서로는 <누구나 알지만 아 무도 모르는 소식의 과학>, <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