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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방학

늘어지게 쉴 수 있고,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자유 일곱 남자가 갈망하는 꿈 같은 방학에 대하여.

카메라를 메고,
바이크로 유라시아를 건너

고교 시절 사진학과 입시를 시작하며 내게 방학은 다른 세상의 것이 되었다. 수능이 끝난 뒤 수험증을 들고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비던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새빨갛고 어두운 암실에서 겨울을 보냈다. ‘워라밸’이라고 했던가. 일과 삶의 균형을 주장하기란 사치스럽고 오만하다고 느껴졌다. 매체에서 보던 자유분방한 포토그래퍼의 삶은 직접 살아보니 그리 녹록지 않았다.

방학, 꿈에 그리던 단어다. 막상 그 꿈이 무엇인지 말하자면, 도무지 정리하기 쉽지 않다. 어릴 적 누렸던 두 달 남짓한 방학이 이렇게 누리기힘든 일이었다는 걸 서른일곱 살이 된 지금에야 깨닫는다. 그렇다면 이 지면은 모처럼 얻어낸 가상의 방학일 것이다. 무얼 하면 좋을까?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내 결정은 아마도 그 고생을 과감히 취하겠다는 결론.

체게바라의 꿈을 좇던 이완 맥그리거처럼, 두 달 남짓이라는 시간 동안 모터사이클 투어를 떠나고 싶다.
모두가 바라는 ‘Young And Rich’보다 나는 ‘Young and Master’를 실현하고자 한다.

유라시아, 미대륙, 남미,아프리카 어느 곳이 될지 고민했으나 첫술에 배부르랴. 다음 가상의 방학을 위해 가장 가깝고 접근이 쉬운 유라시아 횡단을 목표로 동해항에서 출항하고 싶다. 최종 목적지가 될 곳은 러시아와 몽골 그리고 유럽을 거쳐 인도를 돌아오는 루트다. 현실적으로 많은 바이커가 지나는 루트이기도 하고, 20대 시절 작가 활동을 위해 지낸 폴란드에 들러 옛 친구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 요즘 시대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다. 하지만 나는 옛 어리신들의 말씀을 여전히 믿고 실천하려 노력한다. 방학 동안 나의 육체와 체력을 소진하는 일과 휴식을 통해 충전하는 일 중 선택하라면 나는 단연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두 달의 모험이 내게 줄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는 방학이 끝난 후 내 인생에 큰 에너지원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카메라를 들고 갈 테니까.

정현우(포토그래퍼)

방학으로 말미암아

아무도 만나지 않는 자유를 누리던 때가 있었다.
방학은 이를테면 대학생에겐 여행을 위해 돈을 모으거나 못다 한 공부를 마저 해야 하는 시기일 것. 여차하면 취업을 준비하거나.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닐 때라면 그런 생각은 없었다. 비로소 아무도 만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때의 나는 방학이 되면 칩거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야말로 본격적인 디깅(digging)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열세 살 무렵부터 서브컬처, 록 밴드, 고전 영화와 B급 영화에 빠져들었다. 낮에는 온갖 비디오와 음악, 만화책을 섭렵했고, 자정이 넘으면 당시 우상이던 故 신해철 씨가 진행하는 <고스트네이션>을 들었다.
어쩌면 내 취향은 그때 완성되었을지 모른다.

안목이라는, 좋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는 능력도 그때 자리 잡혔다.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도. 그때야말로 현재에 아직도 꺼내 쓰는 나의 영감의 곳간을 비축하고 작업의 초석을 순수하게 다진 시기였다.
나의 몸뚱어리를 막론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 생기고부터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소비나 사상의 자유는 더해졌지만, 그때처럼 순수하게 디깅만을 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그것이 다른 말로 ‘레퍼런스 찾기’가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20년도 더 전에 쌓은 영감의 곳간에서 아직도 무언가를 꺼내 쓰는 것을 볼 때, 영광스러운 방학이 주어진다면 주어진 두 달 동안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을 각오를 하겠다. 어떤 것이든 디깅할 기회로 쓰는 것이 마땅하기에. 순수하며 지나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눈과 귀를 하고 말이다.

성립(작가)

식물 그리고 아내와 함께하는 방학

자영업을 하는 내게 방학이란 단어는 무섭기도 하다. 자영업은 자전거 타기와 비슷해서, 스스로 페달을 굴리지 않으면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은 방학은 현재 내게 필요하지 않지만, 두 달간 내 자전거에 전기모터가 생겨 페달을 굴리지 않고도 편한 주행이 가능하다면, 그런 방학이라면 조금 설렌다.

방학이라면 단연 여행이다. 최근 수집욕 강한 내게 새로운 취미이자 컬렉션이 생겼는데, 바로 식물이다.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괴근 식물과 미대륙의 아가베라는 괴근 식물이 그 주인공이다. 이 아름다운 식물을 보며 마다가스카르와 아가베의 성지 멕시코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현지인과 함께 대자연에 뛰어들어 야생 개체를 구경하고, 내가 사랑하는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날씨도 몸으로 직접 느끼고 싶다. 아직 상상일 뿐이다.

자영업 햇병아리인 내게 전기모터가 생길 일은 당분간 없으리란 걸 스스로 알고 있다. 현재 내 상황에서 방학을 만든다면 출근 전 라디오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시간이자 퇴근 후 집에 들어가 하루 종일 떨어져 있던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 그리고 자기 전 식물에 물 주는 그 짧은 시간이 내게는 꿀 같은 방학이다. 물론 휴가도 방학도 좋지만, 지금의 나는 매일매일의 이 짧은 휴식에 만족한다. 자영업자로서 지금은 오르막길을 달려야 하는 시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르막길이지만 중간중간 평지 구간을 만나기도 하는데, 만족한다.

본디 방학이란 그 소중함을 방학 중에는 못 느끼는 게 아닐까.방학을 기다리는 그 간절함이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아무 생각도 걱정도 없던 학창 시절이 그립지만, 지금은 아내와 함께, 식물과 함께하는 매일매일의 짧은 방학이 더 소중하다.

권민석(자영업자)

트리니다드토바고는 남자의 미래다

트리니다드토바고는 민간인의 군복 착용을 금한다. 군복뿐 아니라 카무플라주 무늬도 안 되고, 온 나라가 광기로 뒤덮이는 카니발 시즌도 예외는 없다.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몇 달 지내볼까? 찾아보다 알았다. 1968년, ‘블랙 파워 레볼루션’이 있었다. 광범위한 노동조합, 사회집단이 참여한 반정부 시위로, 그들은 적극적 투쟁의 의미로 군복을 착용했다. 민간인과 시위자를 구분하기 위해 에릭 윌리엄스 정부가 내린 조치였다. 그리고 몇 번의 오일쇼크만큼 시간이 흘렀으나 변하지 않았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아직도 군복의 상징성을 우려한다.

올봄, 난생처음 카무플라주 무늬의 옷을 샀다. 핀란드군의 리버시블 위장복 M62 빈티지로 짙은 분홍과 초록이 뒤엉켜, 카무플라주라기보다 하나의 고유한 무늬라는 인상을 주는 팬츠였다. 그간 카무플라주를 절대적으로 거부해온 이유는 여느 한국 예비군의 심사와 다르지 않았다.

현대 남성 복식의 기본이 모두 군복에서 시작됐다는 말은 무시했다. 처음으로 야심 차게 시도한 M62 착장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더할나위 없이 나빴다. 베이프(BAPE)도 아닌 다음에야 그걸 지금 굳이 왜 입느냐는 식. 하지만 굴하지 않았고, 차라리 (카무플라주는 아니지만) 군복을 더 샀다. 미군의 507 퍼티그 팬츠와 이탤리언 아미 치노 쇼츠.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는 군복을 못 입는다는 사실을 알기 전이었다.

올해 방학 정도의 여유를 낼 수 있다면, 트리니다드토바고에 가려고 했다. 그곳에서 몇 달 쉬면서 스틸 드럼 스쿨에 다니고 싶었다. 스물 몇 살 때 그 영롱한 소리에 빠진 이래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스틸 드럼을 손에 넣었고 직접 녹음한 곡을 발표한 적도 있지만, 스틸 드럼 연주자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음을 손까지 연결하고, 또 어떤 키에서도 잘못된 음을 짚지 않는 것이 내가 정의하는 ‘최소한의 연주자’다. 여행과 악기는 보통 사람의 미래에만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언제나 꿈꾸지만 좀처럼 거리를 좁히기 힘들다.
내게는 복수의 미래가 드물게 만나는 곳, 트리나드토바고였다.

어릴 때는 여행을 싫어했다. 말하자면,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는 왜 군복을 못 입게 하는지, 그들이 카무 플라주 무늬가 없는 군복까지 정확히 판별해낼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쓸데없는 정보를 찾는 시간이 얼마나 재밌는지 몰랐다. 자신을 찾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Pet Shop Boys – Being Boring 中에서).” 이제는 속된 말로 여유가 생겼고, 다르게 말하면 중단 없이 곧장 가는 것이 꼭 빠르고 정확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잠시나마 지금의 고민과 사정에서 손을 떼고 인생이 길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한 번 이기는 걸로는 나도 세상도 바뀌지 않는다. 세상에는 군복을 입지 않고 치르는 전투도 많다.

정우영(프리랜스 에디터)

집에서 보내는 긴 휴가에 대하여

2개월간의 방학은 루틴을 되찾기에 적절한 기간이다. 내가 잃어버린 일상은 무엇이었는지 식탁에 앉아 생활계획표를 작성해 봤다.

먼저 석양을 바라보며 달리기. 노을을 향해 달리는 것은 덜 고독한 유산소운동이다. 이는 인류의 유전자에 새겨진 오래된 습성 중 하나다. 역사를 보면 막중한 책임을 가진 전달자들은 서역으로 떠나지 않았던가. 아니면 말고. 사실 그 시간대에 사람이 많기도 하고, 경이로운 풍경이 시시각각 변해 눈이 즐겁기도 하다. 숨이 턱 끝에 차올랐을 때 상념 대신 감상에 몰두하는 것은 확실히 힘이 된다. 물론 한강에서 달리는 건 당장도 가능하지만, 요즘은 뛰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다른 활동에 체력을 소진하면 죄책감이 들어서다. 내가 가진 체력의 총량은 줄어드는데, 체력이 요하는 것은 늘어만 간다. 방학 숙제가 없는 방학이 주어진다면 체력의 대부분은 러닝에 쓰겠다고 생활계획표 옆에 메모했다.

매일 요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성 가득한 한 끼는 내가 나를 존중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요리 외 내가 나를 아끼는 행동이 뭐가 있을까? 생각나는 것은 나를 소모하는 활동뿐이다. 하지만 매번 끼니를 챙길 순 없다. 아침과 점심은 그럭저럭 효율적으로 먹는다 해도, 저녁 식사만큼은 근사해야 한다. 갈비찜도 좋고, 햄버거도 좋다. 규칙은 내가 직접 요리하는 것. 배달 음식은 안 된다. 쉽고 빠르게 자극적인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던 짓은 그만해야 한다. 배달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 마음에는 공허함이 부풀어 오른다. 숨을 쉴 때마다 부른 배 속에 공기만 찬 것처럼, 나는 더 허무한 사람이 된다. 더는 나를 절벽 끝으로 몰아붙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독서를 해야겠다. 책을 안 읽은 지 너무 오래됐다. 지난 몇 년은 휴대폰에 갇혀 있었다. 생산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변하는 환경에도 무감각한 채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기만 했다. 방송국에 갇힌 최후의 인류처럼 의미 없는 영상과 콘텐츠만 보며 지냈다.휴대폰에 집중하는 것이 인생을 낭비하는 것쯤은 알지만, 끊어내진 못했다. 방학에는 나를 잘 돌봐야 하니 짧은 글과 이미지는 멀리하겠다. 특히 유튜브는 정말 끔찍하다. 나처럼 의지가 약한 사람의 시간을 빼앗고 생각할 틈도 주지 않는다. 너무 중독이라 내 힘으로 브라우저를 닫기 어렵다. 나는 그곳에서 쓸데없이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긴 호흡의 이야기를 오래 읽고 싶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까지 책을 붙들고 있겠다. 책이 유튜브보다 어떤 점이 낫느냐고 묻는다면, 더 지루하다고 답하겠다. 남의 생각은 본래 지루한 것이다.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여행은 일탈에 가까우니 일상 회복을 위한 목록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런던이니 뉴욕이니 반짝거리는 곳에 갈 수는 없지만, 대신 시간 여행은 가능할 것 같다.

오래전 일기와 사진을 꺼내야겠다. 1998년 봄, 가족과 함께 갔던 남해 여행 사진을 보며 쓴다. 그때의 기분에 대해, 진해군항제에서 처음 들은 경상도 소녀의 사투리에 대해, 나는 왜 뿔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에 대해 쓴다.앨범을 들추다 보면 아버지의 젊은 날도 나오겠지. 나보다 더 어린 아버지와 내 아들만큼 어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쓴다. 미안함을 다정하게 편지에 담는다. 미래에서 온 편지를 앨범 책장마다 끼워 넣는다.
방학숙제처럼.

조진혁 (<비버콘텐츠> 대표)

전국 방방곡곡 해변을 누비는
DJ의 방학

이실직고한다. 아마 이 원고 청탁이 없었다면, 방학이라는 꿈같던 시간을 돌이켜볼 일은 죽어도 없었을 것 이다.

전화기 너머 대화를 마친 후 마시던 베지밀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긴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앞 글자가 바뀌고, 중학생 시절을 거쳐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서른 번 이상 방학을 지내며 내린 결론은 무계획적으로 보내는 소박한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방학 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오롯이 나 스스로에 한정되는 이야기다.

내 주변 대부분의 방학은 계획과 이동이라는 아주 철저한 목표 아래 진행되기 때문이다.SNS에 업데이트되는 많은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내 위로 에어컨 바람이 흩날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냥 행복한 건 아니지만, 불행하지도 않다.오히려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 한 대와 ‘스크류바’ 아이스크림 하나로 하나님과 부처님에게 감사드릴 수 있는 나 자신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언젠가 누가 내게 집 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문제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디든 떠나보라고. 물론 그 질문을 받은 여름방학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이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여름방학이었고, 그렇게 호텔에서 요리를 시작해 회사 구성원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비운의 자영업자’라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동시에 방학이 라는 개념과 단어가 주던 행복감은 잊은 지 오래였다.얼마 전까지는.

디스코를 즐겨 트는 DJ로서 최근 내가 음악을 플레이할 때 찾은 구릿빛 피부의 남자를 잊을 수 없다. 그의 살결에서 그가 어떤 여름과 어떠한 방학을 보내고 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한껏 웃으며 나라 잃은 백성처럼 춤추고, 온몸으로 행복을 느끼는 그를 보며 여름의 찬란한 해변과 볕을 떠올렸다. 사실 내 삶에서 근사한 여름을 잊어가던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사람 앞에서 플레이하며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나 자신을 위한 신명나는 방학은 잘 모르고 살았던 기분이다. 다시 머릿속을 정리해본다. 그러니까, 내게 두 달이라는 방학이 생긴다면 무얼 할까? 먼저 바이닐을 차곡차곡 박스에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턴테이블 두 대와 믹서, 스피커를 챙길 거다. 그런 다음 20년지기 친구를 꼬드겨 녀석의 자동차 트렁크에 짐을 싣고 조수석에 앉아 한반도 곳곳의 해변을 찾아다니며 음악을 플레이할 것 이고, 그 장면을 SNS에 포스팅할 것이다

매일 다른 해변을 찾아 신나는 음악을 틀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신이 난다. 서퍼부터 해변가에 사는 어르신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순간을 만들고 싶다. 춤을 추지 않아도 좋다. 눈앞에 보이는 파도를 바라봐도 좋고,모래사장에서 찜질을 해도 좋으며, 약간의 취기를 더해도 좋다. 노을이 질 무렵에는 비장의 무기와도 같은 포지션의 ‘Summer Time’으로 대단원의 화합을 이룬다. 어라? 서울에서 언제 달려왔는지 군중이 보인다. 그 사이에는 앞서 내게 방학을 꿈꾸게 한 구릿빛 피부의 남자도 보인다. 그의 환한 미소와 양쪽으로 벌어진 입 모양을 보며 다시 행복을 느낀다. 여름방학을 꿈꾸며.

타이거 (DJ 겸 비운의 바 사장)

에디터 양보연(프리랜서) 일러스트 최익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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