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오의 여유
유태오라는 에세이.
봄과 여름 사이 화창한 날씨에 화보 촬영을 했는데, 어땠나요?
대부분 사람들이 요즘 같은 날씨를 좋아하죠. 사실 저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날씨를 힘들어해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까르띠에와 긴밀한 인연을 이어왔죠. 특히 오늘 착용한 ‘산토스 드 까르띠에’는 메종을 대표하는 남성 워치예요. 일상에서 딱 한 제품만 착용할 수 있다면 어떤 제품을 고를 건가요?
저는 선호하는 시계만 계속 차는 편이에요. 오래전부터 산토스 드 까르띠에(이하 산토스)를 가장 좋아했어요. 남성 워치 역사가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레이싱카와 세일링 스포츠에서 비롯됐잖아요. 산토스는 세일링 워치 느낌도 있고, 밴드를 레더로 바꾸면 완전히 클래식한 느낌이 나요. 어디에나 매치하기 좋죠. 오늘은 스테인리스스틸 케이스에 골드 베젤, 앤트러사이트 그레이 다이얼 모델이 가장 예쁘더라고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가 호평받으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아카데미를 비롯해 골든 글로브, 베
를린 국제영화제까지 내로라하는 영화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됐는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점점 내가 가고자 하는 자리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전에도 영화제 출품작에 다수 출연했지만, 그때는 영화제만 다녀오면 성공할 줄 알고 김칫국도 많이 마셨거든요. 이제는 들뜨기보다 다녀와서 다음엔 뭘 해야 할지, 진짜 영화제를 즐길 수 있는 방식이 뭔지 알게 됐어요. 킬리언 머피가 연기를 너무 잘했기에 상은 그가 받는 게 당연하고, 수상할 때 저도 진심으로 기뻤어요. 20년 전부터 제가 동경해온 배우이고, 보면서 많이 배워요. 할리우드에서는 제가 신인이잖아요. 코미디나 액션 같은 화려한 장르가 아닌 데다 동양인 배우로 노미
네이트된 것만으로 의미가 크죠.
이전에도 동양인 배우가 노미네이트된 경우는 있었잖아요.
동아시아에서 드라마 장르로 인정받은 건 거의 처음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행운과도 같죠. 헨리 골딩처럼 혼혈도 아니고, 대니얼 대 킴처럼 아시안 아메리칸도 아니니까. 더구나 이번 기회에 북미와 유럽에 더 알려지고 할리우드 배우들과 친분도 쌓았어요. 수상 여부를 떠나 그냥 축제처럼 즐겼죠. 미국에서 캐스팅 제안도 많이 들어오고 있고요. 충분히 만족해요.
대중문화 안에서는 인식하기 쉽게끔 인물을 단순화하지만,
한 사람이 그렇게 단편적이지만은 않으니까요.
다채로운 내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죠. 한국에서는 최초로 주연상 후보에 오른 건데 꿈꾸던 최초의 NBA 한국 선수, 최초의 아카데미 수상 한국 배우는 되지 못했지만 하나의 ‘최초’를 이룬 셈이에요.
그건 정말 기뻤어요. 영국의 영화제는 특히 연기력 위주로 판단하고 냉정해요. 제가 런던 로열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경험도 있으니까, 거기서 인정받는다는 게 감사했죠.
뜨거운 반응을 보인 북미와 달리 국내에서는 비교적 반응이 잔잔했어요. 문화적 차이 때문일까요?
문화적 차이겠죠. 그리고 <미나리> 같은 가족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가족들끼리 커플 이야기를 잘 보러 가지도 않고요. 영화가 심심한 맛은 있어요. 보는 사람마다 반응은 다를 수 있지만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처럼 당장 주목받지 않아도 오래 갈 영화라고 생각해요.
스테디셀러처럼요. 포스터와 도입부,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맨해튼의 ‘홀리데이 칵테일 라운지’는 100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면서 과거 마돈나가 즐겨 찾던 장소로 유명해요. 그곳에서 연기한 경험은 어땠나요?
저와 그레타 리, 존 마가로, 셀린 송 감독님까지 모두 바가 위치한 이스트빌리지에서 20대를 보냈어요. 심지어 저는 8가에 살았죠. 학교 가는 길에 항상 보던 바예요. 우리가 학창 시절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고생하고, 추억이 있는 지역인데 20여 년 후 한 작품의 감독과 주인공으로 그곳에간 거죠. 우리 영화와 이름표가 붙어 있다는 것, NYPD가 와서 촬영할 수 있도록 길을 막아주는 등 여러 가지로 굉장히 뜻깊었어요.
1년간 촬영을 마친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년>이 공개 예정이에요. 촬영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형사 역을 맡았어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누명을 쓴 채 세상을 떠난 데다 남동생도 사라져 정신병원에 5년간 있다가 나와서 시작되는 이야기죠. 아직 많은 내용을 말할 순 없지만 청소년 보호법에 관한 내용도 나오고,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년>을 찍으면서 캐릭터가 처한 상황이나 스토리 때문에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호르몬 수치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그럼 모든 촬영이 끝나고 후련했겠어요.
후련하기보다 무서운 마음도 들었어요. <패스트 라이브즈>를 통해 인연을 철학적으로 믿게 됐거든요. 불교에서 인연의 개념은 윤회의 주체를 ‘아(我)’가 아닌 연기적 존재 ‘무아(無我)’라고 강조해요. 내가 당신이 될 수 있고, 당신이 내가 될 수도 있고, 현재 내 몸의 실체는 존재하지만 아주 크게 보면 다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 후로는 제가 맡는 배역도 곧 멀티버스 속 나이자 전생에 내가 살았던 삶이라고 생각하게 됐으니까. 앞으로 또 무거운 역할을 맡으면 내가 어떻게 변할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넷플릭스 <더 리크루트> 시즌 2에도 합류했어요. 신도현, 이상희 등 적잖은 한국 배우들과 함께한 미국 드라마 촬영은 어땠어요? 그 외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도 있는지.
한국 배우들과 호흡할 때는 그냥 편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년> 이후 약 1년을 쉬었거든요. 전작에 워낙 고단한 캐릭터를 맡아 무게 있는 캐릭터는 아니길 바랐어요. 다행히 촬영하면서 내 페이스를 찾아갔죠. 차기작 할리우드 영화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어요. 아직 다른 역할을 캐스팅 중이라 구체적인 말씀은 못 드리겠네요. 작품을 위해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일본 사무라이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요. 이 정도는 공개해도 되겠죠.(웃음)
최소한의 정보를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웃음) 영상 인터뷰에서 진한 멜로 연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함께 호흡해보고 싶은 배우도 있나요?
전지현 배우요. <킹덤: 아신전>에 나온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그동안 보여주던 캐릭터와 달리 진지한 연기와 깊은 눈빛을 봤죠. 많은 사람이 그를 로맨틱 코미디에 나오는, 재밌는 모습으로 기억하잖아요. 그 정도 커리어를 가진 배우가 짙은 감성을 소화 못할 리 없거든요. 굉장히 잘하실 거라 기대하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와 케미도 좋을 듯해요. 그래서 함께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네요.(웃음)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두 분을 꼭 볼 수 있길 기대할게요. 연기자로서 배우는 악기, 감독은 지휘자라는 철학을 밝힌 적이 있어요. <로그 인 벨지움>은 늘 악기로 활약하다 지휘자로 활동한 작품인데,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제 삶의 한순간을 기록한 작품. 원래 이 영화를 배급할 생각은 없었어요. 팬데믹 당시 혼자 틈틈이 기록하고 만든 거라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그냥 이런 거 만들었다고 보여줬죠. 보여주는 사람마다 반응이 좋아서 상영까지 하게 된 거예요. 저한테 비디오는 에세이랑 비슷해요. 제가 글쟁이라면 글로 에세이를 썼겠지만, 주 매체가 영상이니까 에세이처럼 영상을 남긴 거죠. 한 편의 다큐픽션인 셈이에요.
주짓수 대회에도 나간다면서요. 대회까지 나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생존 본능을 자극하며 싸운다는 면에서 주짓수가 좋았어요. 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승패가 달라지거든요. 연기는 가상 세계에 극대화된 직업이잖아요. 많은 사람이 ‘배우 유태오’를 좋아해주지만 종종 그 모습과 본모습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이 생겨요. 주짓수는 기술로 승부하는 게임이라 나보다 작은 사람에게 질 수도 있어요. 태핑을 치면 내가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예요. 거기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죠. 건강한 스포츠를 홍보하고 싶어 대회 출전도 결심한 거고요. 대회에서 해설자가 선수를 소개하잖아요. 저는 소개란에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 주세요’라고 썼어요. 주짓수를 하면서 나에게 솔직해지고, 겸손해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커요.
농구 선수를 꿈꾸다 부상으로 이루지 못했어요. 꿈이 가로막혔을 때 그 좌절감이 엄청났을 텐데 후회는 없는지, 연기를 하며 어느 정도 상쇄가 됐는지 궁금해요.
미국에 갭 이어를 갔을 때 1년만 있다 돌아가 체대 물리치료 공부를 하려고 했어요. 원래 운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영화 보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러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온 학교를 우연히 찾아갔죠. 2주 정도 연기를 해봤는데, 그쪽 디렉터가 이것저것 시켜보더니 재능이 있다고 느꼈나 봐요. 운동할 때처럼 판단 없이 하라는 대로 다 해내니까 나중에 제게 묻더군요. 어디서 뭘 하다가 온 친구냐고. 그가 진지하게 연기를 생각해보라고 해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당시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것과 무대에서 연기하는 게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어요.
왜요?
부모님이 광부와 간호사였고, 예술적인 길을 볼 기회가 없는 환경이었던 거죠.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득점하고 최고가 되려 했지만 나는 운동이 아니라 스포트라이트받는 걸 좋아한 거예요. 어떤 종목이든 최고가 돼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후회는 없어요. 지금 좋아하는 걸 100%하는 거지. 미래나 과거를 생각하면서 살지는 않아요.
독일 출생이지만 항상 뿌리는 한국에 있다고 생각했고, 배우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국에서 인정받고 싶어 했죠. 어느 정도 바람을 이룬 것 같나요?
그렇진 않아요. 대중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인물을 규정하는 단어가 있는데 대중이 생각하는 나와 실제 나,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 같지는 않거든요. 물론 사람들이 저를 지금의 이미지로 바라봐주는 것에 감사하죠. 다만 어떻게 해야 다층적인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해요. 대중문화 안에서는 인식하기 쉽게끔 인물을 단순화하지만, 한 사람이 그렇게 단편적이지만은 않으니까요. 다채로운 내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