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그리고 다섯 개 도시
재즈에 관한 5인의 이야기.
NEW YORK
김종국(재즈 드러머)
THE JAZZ GALLERY
1158 Broadway 5th floor, New York, NY 10001
맨해튼 브로드웨이 건너 소호 근처에 위치한 재즈 클럽. 이곳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미래가 현재인 곳’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재즈 갤러리에서 연주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공연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뿐 아니라 재즈 갤러리는 리오 사카이라는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가끔 미술 작품을 전시하며 예술가의 활동을 서포트하기도 한다. 재즈와 미술의 가치를 담은 일종의 ‘예술적 커뮤니티’인 셈이다. 공간적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이곳에서 모건 게린, 사이먼 물리에, 빅 유키, 렉스 코르텐과 함께한 연주가 인상 깊었다. 다양한 곡을 연주했지만, 그 중에서도 ‘Lk02’의 리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VILLAGE VANGUARD
178 7th Ave S, New York, NY 10014
그리니치 빌리지 근처에 위치한 또 다른 재즈 클럽. 오픈한 지 80년이 넘을 정도로 유서 깊은 재즈 클럽이다. 그리고 긴 역사를 이어온 만큼 마일즈 데이비스, 빌 에반스, 사라 본, 존 콜트레인 등 선구적 재즈 아티스트 대부분이 이곳을 거쳐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당시 데이나 스티븐스, 찰스 알투라, 릭 로사토와 함께한 연주는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연주하기 앞서 존 콜트레인의 ‘Chasin the Trance’를 들었는데, 60년 전 그가 같은 공간에서 그 곡을 연주했다고 생각하니 신비로운 감정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공간은 사람이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빌리지 뱅가드 자체에 많은 아티스트의 숨결이 담긴 만큼 그 공간적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음악이 흐르지 않을 때의 정적마저 재즈의 한 부분으로 느껴졌다.
SMALLS JAZZ CLUB
183 W 10th St., New York, NY 10014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재즈 클럽. 옛날부터 이 클럽에서는 동경하던 아티스트의 공연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내게는 ‘꿈의 무대’ 중 하나였던 셈이다. 7년 전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이사 간 직후부터는 이곳에서 수없이 많은 아티스트와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사진 속에 담긴 줄리어스 로드리게스, 딘 토레이, 로이 하그로브와 함께한 공연도 그중 하나다. 로이 하그로브는 제45회 그래미상에서 허비 행콕 등과 공동 작업 한 으로 재즈 부문 대상을 받은 거장이다. 트리오 공연을 하던 중 로이가 먼저 와서 즉흥으로 합주 공연을 제의한 것이 기억난다. 그가 작고하기 전 함께 공연할 수 있어 큰 영광이었다. 이렇듯 스몰즈 클럽은 우리 재즈 뮤지션 커뮤니티에 소중한 장소다. 로이 하그로브 의 ‘Never Let Me Go’를 듣다 보면 가끔 그 곡을 함께 연주했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RECOMMENDED ALBUM
김종국(재즈 드러머) 뉴욕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재즈 드러머. 줄리어스 로드리게즈, 팻 메스니, 방탄소년단 RM 등 내로라하는 아티스트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VANCOUVER
고요한(홍보대행사 ‘링크컴’ 과장)
Guilt & Co.
1 Alexander St., Underground,
Vancouver, BC V6A1B2
밴쿠버 개스타운에 위치한 길트앤코는 수준 높은 공연이 열리는 보석 같은 공간이다. 셀러 재즈 클럽이 정통적 재즈를 지향했다면, 길트앤코는 한결 모던한 재즈를 접할 수 있는 바다. 보랏빛 조명으로 물든 바 내부로 들어가면 멜로디컬한 라이브 연주가 매일 12시간 동안 이어진다.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의 ‘Black Radio(Cherish the Day)’를 듣다 보면 열정 넘치던 대학생 시절의 모습이 그려진다. 당시 밴드 음악을 하던 친구들과 이 곡을 들으며 “우리도 언젠가 이런 뮤지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되뇌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어떤 재즈 뮤지션이 더 실력 있나” 논쟁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그 열정이 이제는 다소 바래져 마음 한 구석이 저리지만, 이런 시기가 있었다는 것 자체로 큰 감사함을 느낀다.
Cellar Jazz Club
3611 Broadway W, Vancouver, British Columbia V6R 2B8
2013년에 폐업한 셀러 재즈 클럽은 캐나다의 재즈 역사를 거론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장소다. 한때 로컬 재즈 신과 북미 서부 재즈 신의 연결 고리 역할을 했을 만큼 의미 깊은 클럽이었다. 대학 시절 재즈 보컬을 공부했던 나는 여름이 찾아오면 이곳에 들르곤 했다. 스티브 칼데스타드, 코리 위즈 등 유명한 재즈 뮤지션부터 대학교수까지 많은 재즈 아티스트가 매일 셀러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언젠가 이름 모를 아티스트가 이곳에서 아비샤이 코헨 트리오의 ‘Remembering’을 연주한 적이 있는데, 듣고 나서 콘트라베이스의 매력에 푹 빠지는 계기가 됐다. 안타깝게도 셀러는 10년 전 문을 닫았지만, 아비샤이 코헨 트리오의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그 시절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RECOMMENDED ALBUM
고요한 (홍보대행사 ‘링크컴’ 과장) 홍보 대행 및 마케팅 담당자. 과거 캐나다 밴쿠버 유학 중 재즈 보컬을 전공해 냇 킹 콜 같은 뮤지션을 꿈꿨다.
PARIS
정엽(가수)
Rue Cler
75007 Paris
여행지에 가면 그곳의 시장을 꼭 방문하는 편이다. 파리의 휴 클레흐 상설 시장 거리는 예스러우면서도 활기찬 분위기로 유명하다. 아울러 미식으로 유명한 나라의 수도인 만큼 신선하고 품질 좋은 식재료가 눈길을 끌며, 파리지앵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앤티크 제품부터 책, 의상까지 접할 수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커다란 광장 위 자갈길을 걷다 보면 그간 마주하지 못했던 여유로움과 신선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자주 듣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Milestones’는 그곳에서의 상쾌한 추억을 상기시키는 뜻깊은 곡이다. 가끔 라디오에서 이 곡을 추천받아 재생할 때마다 한가로이 누비던 휴 클레흐 시장이 머릿속에 그려지곤 한다.
Nose Paris
20 Rue Bachaumont, 75002 Paris
6년 전 자유롭게 떠난 파리 여행의 기억. 평소 향에 민감한 만큼 여행지에서도 다양한 향수를 접해보는 편이다. 노즈 파리 숍은 ‘향수 편집숍’이라는 명칭이 딱 맞는 장소로, 매장에서 취향을 직접 테스트하고 그것에 맞는 향수를 추천한다는 특징이 있다. 다양한 향을 체험해보는 동안 평소 좋아하던 닐스 란드그렌의 ‘You Stole My Heart’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다. 이국적인 매장 내부와 은은한 향, 부드러운 재즈 음률이 뒤섞여 마음을 어루만졌다. 6년이나 지난 만큼 그때 구매한 향수는 기억 속에서 잊혀졌지만, 당시 매장에서 들은 닐스 란드그렌의 음악은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RECOMMENDED ALBUM
정엽(가수)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 리더. 정통 재즈 바 ‘오리올’을 운영한 바 있다.
NEW YORK
김정범(작곡가, 피아니스트)
Washington Square Park
Washington Square, New York, NY 10012
내가 다니던 학교 건물 옆에는 바로 별다방이 있었고, 그 옆으로 학교 마당 같은 워싱턴 스퀘어 파크가 이어졌다. 특히 별다방의 선곡 취향이 남달랐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 내게 “뉴욕에서 가장 멋진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려면 어디로 가야 해?”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학교 옆 별다방에 가서 음악을 들어라” 하고 조언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푸디토리움의 음악 또한 워싱턴 스퀘어 파크 벤치에서 자주 작업했다. 이곳에서 가사를 완성한 곡이 바로 ‘AVEC’다.
Tekserve
Wayne Krantz-It’s No Fun Not to Like Pop
지난 2016년 폐업한 텍서브는 과거 애플 유저의 성지였다. 뉴욕에 거주할 당시 맨해튼에서 그라도사의 헤드폰을 청음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새로운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웨인 크랜츠의 곡을 이곳에서 청음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It’s No Fun Not to Like Pop’을 듣다 보면 지금도 텍서브에서 청음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현재 내가 즐겨 쓰는 모니터 헤드폰 중 하나는 여전히 그라도사 제품이다.
Bowery Ballroom
6 Delancey St., New York, NY 10002
바워리 볼룸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이자 공연장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으로, 특히 북유럽 출신 뮤지션의 투어 장소로 유명했다. 뉴욕에서 학교 다닐 때 로익솝,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라이브 공연을 이곳에서 처음 접했다. 그중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공연은 정적인 편곡과 악기 구성임에도 전석이 스탠딩인 만큼 특히 인상 깊었다. 관객과 음악가가 공연장 안에서 한마음으로 소통하는 과정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RECOMMENDED ALBUM
김정범(작곡가, 피아니스트) 영화음악 감독. 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 <멋진 하루>, <러브 토크> 의 음악을 작곡했다.
HANOI
류희성(재즈 칼럼니스트)
Binh Minh Jazz Club
1 Tràng Tiên, Phan Chu Trinh, Hoàn Kiê
m, Hà Nô. i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Just The Two of Us’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3년 전 하노이의 밤이 떠오른다. 오페라하우스, 고급 호텔 인근에 위치한 빙 밍 재즈 클럽은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다. 벽면에는 그곳을 방문했던 허비 행콕, 웨인 쇼터의 사진이 걸려 있어 고전미를 더한다. 무대 위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학생들은 익숙한 재즈 스탠더드곡과 팝송 위주의 레퍼토리를 연주했다. 나중에 그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어 꿈을 물으니, 그저 이렇게 계속 연주하는 공간이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어쩌면 재즈란 그들에게 거창한 꿈이 아닌 그 자체로 소중한 가치가 아니었을까.
Lp Club
174 P. Kim Mã, Kim Mã, Ba Đình, Hà Nô. i
빈티지 레코드 숍은 여행지에서 꼭 방문하는 곳 중 하나다. LP를 구하기 위해 하노이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실제로 오픈한 지점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LP 클럽에 당도했다. 실내에는 음악가와 관련한 크고 작은 소품이 가득했다.음반은 대부분 일본에서 구입한 것으로, 재즈 외에도 힙합, 팝 등 다양한 장르 음반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수집욕을 자극한 음반은 아트 파머와 짐 홀의 ‘Big Blues’였다. 때마침 찾고 있던 음반을 먼 베트남 하노이 땅에서 마주하게 되어 반가웠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이 LP만 들으면 이국적인 하노이 시내를 추억하게 된다.
RECOMMENDED ALBUM
류희성(재즈 칼럼니스트) 재즈 전문지 <재즈피플> 기자. 재즈와 흑인음악을 가까이 하는 삶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