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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스포츠 신에서 잊을 수 없는 전율의 순간

2024년을 숨죽이게 한 N분 N초.

BOXING & MMA

1분 26초

WBC 통합 타이틀전에서 펼쳐진 올렉산드르 우식과 타이슨 퓨리의 대결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식은 9라운드 1분 26초를 남긴 시점에서부터 경기 흐름을 가져갔다. 사실 리치와 체중 차이가 많이 나는 이들 인 만큼 퓨리의 승리를 예상하는 이가 많았지만, 막상 결과는 뜻밖이었다. 차근차근 포인트를 쌓아가던 우식은 9라운드부터 폭풍 같은 연타를 날려 경기 흐름을 가져갔다. 과거 크루저급 출신의 에반더 홀리필드는 헤비급 제왕이던 레녹스 루이스를 넘지 못했지만, 우식은 퓨리를 꺾고 크루저급에 이어 헤비급에서도 제왕으로 등극했 다.

‘5분 38초’

프란시스 은가누가 난생처음 실신 KO패를 당하는 데걸린 시간이다. UFC와의 재계약 협상에 실패하고 복싱에 도전한 은가누는 실질적 ‘최강자’로 꼽히던 타이슨 퓨리를 다운시키며 복싱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주가를 한껏 끌어올린 은가누는 전 챔피언 안소니 조슈아와 격돌하게 된다. 맷집이 부실하다는 약점이 드러난 조슈아였기에, 은가누의 핵주먹에 걸리면 큰일이라는 우려도 컸다. 하지만 조슈아는 완벽한 테크닉을 과시하며 초반부터 은가누를 압도했다. 2R 중반 조슈아의 펀치가 연속으로 터졌고, 은가누는 인생 최초로 실신 KO패를 당하며 링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무리 핵주먹이더라도, UFC 챔피언 출신이더라도 복싱은 다른 무대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 한판 승부였다.

’10초’

UFC는 역사적 300번째 대회를 기념해 저스틴 게이치와 맥스 할러웨이의 ‘BMF(Baddest Motherfucker의 약자)’ 타이틀전을 열었다. 게이치는 한 체급 아래인 할러웨이에게 묵직한 압박을 걸려고 했지만 상대가 너무 부지런하고 빨랐다. 투우사에게 농락당하는 투우처럼 5라운드 내내 끌려다니던 게이치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 왔다. 종료 10초를 남기고 할러웨이가 케이지 바닥을 가리키며 “이곳에서 치고받자”고 제안한 것이다. 게이치가 마다할 리 없었다. 열화와 같은 함성 속에서 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치고받았다. 그리고 종료 1초 전 퍽 소리가 났고, 한 명이 앞으로 쓰러졌다. 수십 대 창을 맞고도 끄떡없는 투우처럼 버티던 게이치였지만, 할러웨이의 마지막 한 방에는 견디지 못했다. 할러웨이는 UFC 역사상 가장 멋진 KO승을 만들어내며 진정한 ‘BMF’로 등극했다.

김대환(tvN SPORTS UFC 전문 해설위원)

BASEBALL

‘2분 7초’

지난 6월 7일에 치른 LA다저스와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경기는 마치 일본 야구 만화 주인공과 미국 야구 영화 주인공의 맞대결을 보는 듯했다. ‘만찢남’ 오타니 쇼헤이와 ‘프링글스 수염’ 폴 스킨스의 첫 대결은 향후 10년을 수놓을 새로운 맞수의 탄생을 예고했다. 첫 타석에서 스킨스가 161km/h 광속구로 오타니를 삼진 처리할 때도 짜릿했지만,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오타니가 3점 홈런으로 되갚아준 2분 7초는 야구 만화에 나올 법한 순간이었다. 내년 시즌 오타니가 투수로 복귀하면 이 드라마는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2시간 14분 40초’

만화도 이렇게 그리면 비현실적이라고 욕먹는다. 대기록을 앞둔 선수들이 흔히 겪는 아홉수도, 고비도, 중압감도 오타니에겐 없었다. 48홈런-49도루로 시작한 경기 1회부터 바로 50도루를 채우더니 6회와 7회 연타석 홈런
으로 단숨에 50홈런을 채웠다. 약 2시간 14분 40초. 오타니는 그 시간 동안 마이애미 말린스 경기에서 50도루 달성과 50홈런을 달성했으며, 내친김에 9회 한 방을 더해 ‘51-51클럽’까지 창설했다. 최종 기록은 6타수 6안타 3홈런 10타점 2도루. 역사상 최초의 대기록을 커리어 하이로 장식한 그날, 오타니는 야구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16분 20초’

지난 10월 뉴욕 메츠의 피트 알론소가 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역전 3점 홈런을 날렸다. 메츠의 역전과 경기 종료까지 걸린 시간은 16분 20초. 그 사이에 두 팀의 운명이 바뀌었다. 메츠가 0-2로 뒤진 9회 초 공격 시점에 주자 두 명이 나갔지만 승리를 예견할 수는 없었다. 메츠는 중요한 순간마다 가장 형편없는 방식으로 지는 법을 아는 팀이고, 타석의 알론소는 최근 41타수 5안타로 슬럼프였으니까. 그가 병살타나 삼진으로 기회를 날리고 시즌이 끝나는 장면을 상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알론소는 기적 같은 역전 3점포를 날렸고, ‘메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구단 사장인 데이비드 스턴스의 말)’를 완성했다.

‘1분’

“30년 전에는 이후에 벌어질 일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3월 서울시리즈를 앞두고 기자회견장에 나온 박찬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에서 메이저리그 정규 시즌 경기가 열리는 날이 오리라고는, 양 팀 더그아웃이 아시아 선수들(오타니-야마모토-다르빗슈-고우석-김하성 등)로 채워질 줄은, MLB 스타들이 지하철을 타고 서울 시내를 관광하는 일이 생기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다. 1994년, 박찬호가 LA다저스타디움에서 처음 공을 던진 지 어느덧 30년. 그 세월을 넘어 1분간 시구자로 마운드에 선 박찬호의 모습, 시포자 김하성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장면은 야구 팬에게 전율을 일으키기기에 충분했다.

배지헌(<스포츠춘추> 기자)

SOCCER

’83분’

레알 마드리드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결승전 끝에 통산 15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골은 83분에 이뤄진 비니시우스의 왼발 로빙슛. 주드 벨링엄의 압박으로 도르트문트의 빌드업을 차단한 덕분에 이룩할 수 있었던 득점이었다. 벨링엄은 ‘가짜 9번’ 역할을 맡아 미드필드와 공격을 넘나들었으며, 비니시우스와 호드리구는 ‘윙 투톱’ 전술을 소화하며 속도와 침착함을 더했다. 안첼로티 감독은 벤제마와 호날두의 공백을 벨링엄과 비니시우스의 득점력 향상으로 채웠다. 그 결과 10년간의 침체를 넘고 레알을 다시 유럽 정상에 올려놓았다.

‘5분’

한국 축구의 현재가 손흥민, 미래가 양민혁이라면 과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한 ‘해버지’ 박지성이다. 10월 20일 열린 ‘넥슨 아이콘 매치’에서 박지성은 후반전 교체로 출전해 약 5분간 경기장을 누볐다. 85분 페널티킥을 찰 기회가 생기자 그는 과감하게 가운데로 슈팅을 시도하며 골키퍼의 움직임을 읽고 심리적으로 압박 한 뒤 득점했다. 박지성의 골은 축구 팬들의 감동을 자극했는데, 과거 그의 J1리그 교토 상가 시절 유니폼을 입고 온 팬이 눈물을 흘려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아이콘 매치에 참석했지만, 가장 빛난 건 박지성이었다.

’33분’

7월 24일, K리그1 강원FC와 전북 현대의 경기에서 양민혁의 선제골은 한국 축구의 스타 탄생을 알렸다. 전반 33분, 양민혁은 조진혁의 패스를 받아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강원의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 골은 18세의 나이에 유럽 빅 클럽의 오퍼를 받은 이유를 잘 보여줬다. 양민혁의 활약으로 강원은 구단 창단 후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거뒀으며, 전북은 2024 시즌 강원과의 세 경기에서 모두 패배해 승강 플레이오프에 떨어졌다.

’86분’

2023-2024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에서 중요한 분수령이었던 맨체스터 시티와 토트넘의 경기.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손흥민이었다. 맨시티는 엘링 홀란이 선제골을 넣으며 1-0으로 리드하고 있었다. 86분, 손흥민은 동점골을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골키퍼 오르테가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토트넘이
동점골의 기세를 그대로 이어나가 역전하면 아스널이 자력으로 우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홀란이 추가골을 넣으며 맨시티는 2-0으로 승리했고 결국 4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주전 골키퍼 에데르송의 부상으로 인해 교체 멤버였던 오르테가가 선발되었으며, 그가 일대일 상황에서 손흥민의 슈팅을 막아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빅 찬스 미스’가 나온 이 경기는 축구에서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한준(<풋볼아시안> 발행인)

BASKETBALL

‘9초’

댈러스 매버릭스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서부 결승 2차전. 종료까지 단 9초 남긴 시점에서 볼을 잡은 루카 돈치치는 루디 고베어와의 일대일 상황을 완벽하게 이겨낸 뒤 3점슛을 완성했다. 이후 댈러스는 109-108로 이기며 2-0 리드를 잡았다. 돈치치는 누구와 매치가 되든 자신의 기량을 증명해왔다. 댈러스는 콘퍼런스 결승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고, 돈치치 시대 첫 NBA 파이널 진출의 발판이 됐다.

‘3분’

파리 올림픽에서 일본과 프랑스의 예선 3쿼터가 종료되기 약 3분 전, 가드 카와무라 유키가 웸반야마(프랑스)와의 매치업 상황에서 3점슛을 시도했다. 50cm의 키 차이를 뚫고 끝내 3점슛을 성공시켰다. 비록 일본은 프랑스와의 접전 끝에 패했지만, 카와무라는 올림픽 성장세를 발판으로 NBA에서도 한 자리를 꿰찼다. ‘신장’보다 큰 ‘심장’이 이끈 성공이었다.

‘1분 52초’

3월 1일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서부 1위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를 상대로 명경기를 펼쳤다. 4쿼터 종료 1분 52초 전 빅터 웸반야마는 점프슛을 시도하던 쳇 홈그렌을 바로 앞에서 블록했으며, 그 수비 덕분에 샌안토니오는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웸반야마가 그 블록으로 얻은 건 단순한 1승이 아니었다. 일명 ‘소금쟁이’ 대전은 신인상 후보 간 대결이기도 했는데, 웸반야마의 이름을 트로피에 새긴 것이나 다름없는 블록이었다. 유력한 라이벌 홈그렌을 찍어 누름으로써 최고 유망주 자리를 굳혔다.

손대범(KBS·KBSN 농구 해설위원)

TENNIS

‘3시간 44초’

야닉 시너가 호주 오픈 결승에서 다닐 메드베데프를 꺾고 우승했다. 시너는 시즌 첫 그랜드슬램 호주 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대역전 드라마’를 쓰며 자신의 첫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간 세계를 지배한 빅 3(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바크 조코비치)가 은퇴하거나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차세대 테니스 황제의 등극을 알린 상징적 순간이었다.

‘140,160시간’

노바크 조코비치가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따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유독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던 그였지만 결국 테니스 역사상 다섯 번째로 골든슬램(4대 그랜드슬램+올림픽 금메달)을 달성하는 영광을 누렸다. 자신의 커리어에 방점을 찍어줄 ‘마지막 퍼즐’을 완성한 순간 코트에 주저앉아 손을 바들바들 떨며 오열한 조코비치의 모습은 올 시즌 테니스 최고 명장면이자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1시간 45분’

중국의 정친원이 파리 올림픽 결승에서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선수인 도나 베키치를 1시간 45분 만에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아시아 선수 최초의 올림픽 테니스 금메달이다. 정친원의 금메달은 투자에 따른 결과물 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낚싯줄로 스트링을 수리하는 등 중국 테니스의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정부 차원에서 아낌없이 투자했고, 그 결과 2011년 롤랑 가로스에서 리나가 아시아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박준용(<스포츠경향> 테니스 칼럼니스트, SPOTV 테니스 전문 해설위원)

에디터 박찬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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