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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은 여전히 챔피언이다

2010년대는 힙합의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이 기간 동안 힙합은 빌보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동시에 스트리밍 서비스의 최강자였다. 이 시대는 ‘한국 힙합’에도 영광을 안겼다. 래퍼가 처음으로 큰돈을 만진 시대,많은 래퍼가 성공을 누리고 꿈꾸던 시대, 축제와 행사에 래퍼가 섭외 1순위였던 시대. 우리는 막 이 시대를 지나왔다.

하지만 주요 힙합 레이블의 해체는 곧 이 시대의 종언을 의미했다. Mnet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1번째 시즌의 부진 역시 이 시대가 끝났음을 상징한다. 실은 그전부터 대중의 척도는 <쇼미더머니>였다. <쇼미더머니>의 시청률이 낮아지고, <쇼미더머니> 음원이 차트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둘 때마다 사람들은 한국 힙합에 대해 왈가왈부했다. 그리고 <쇼미더머니> 12번째 시즌이 제작되지 않자 마침내 모든 것이 확실해지는 듯했다.한 시대가 마무리된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가리켜 한국 힙합이 망했다거나 위기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나는 지금 상황이 ‘거품이 빠진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 힙합에 2010년대란 생각지 못한 것을 누린 시대다. 1990년대나 2000년대에 데뷔한 힙합 아티스트들이 2010년대의 영광을 예상했을까? 그렇지 않다.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잔뜩 가질 수 있었고, 그 시대가 끝남과 동시에 거품은 빠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 손에는 그 시대를 관통하며 새롭게 얻고 깨달은 것들이 들려 있다. 한국 힙합은 그것을 쥐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해외 힙합과 한국 힙합은 엄밀히 말하면 다르지만, 큰 궤를 같이한다.

해외에서도 힙합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돈다. 하지만 그 말이 몰락의 동의어가 아님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힙합의 패러다임 변화는 이 현상을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하다. 힙합은 오랫동안 ‘도전자’ 입장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를 지나며 오늘날에 다다른 힙합은 더 이상 도전자가 아니다. 지금의 힙합은 ‘챔피언’이고, 이제 힙합에 도전장이 몰려오고 있다. 그리고 어떤 도전자들은 힙합과 싸우기도, 힙합을 넘어서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힙합이 다시 예전처럼 도전자 입장이 되진 않는다. 아니, 힙합은 이제 아무것도 없던 시절로 돌아가기가 더 힘들어졌다.

즉 지금의 힙합이 챔피언의 입장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때 상황을 더 온전히 조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1년여간 힙합 앨범이 빌보드 1위를 좀처럼 차지하지 못했던 건 스타 래퍼들이 차트 성적보다는 실험과 시도를 위한 앨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차지할 건 다 차지해봤기 때문에 방향성을 다른 쪽으로 설정한 것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트래비스 스콧과 릴 야티의 최근 작품을 들어보면 된다. 그리고 그에 관한 평가를 읽어보면 된다. 일종의 챔피언이 부리는 여유(?)라고 할까. 또 다른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다른 음악 장르에 대해 잠깐 말해보자. 테일러 스위프트가 자신의 음악에서 전 남친들을 대놓고 디스하는 것이, 틴 아이돌이자 팝스타였던 과거와 명확히 대비되는 저스틴 비버의 최근 음악과 스타일이, 그리고 컨트리 아티스트 모건 월렌의 논란이 된 음악 스타일이 과연 힙합과 무관한가? 래퍼가 1위를 못 하거나 예전보다 1위를 덜 차지하는 것이 곧 힙합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더 나아가, 힙합은 이제 공기와도 같은 것이 되었다. 힙합이 도전자 입장에 있을 때는 하나하나가 놀랍고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이미 스며든 것, 일상에서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것이 힙합이 챔피언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식이다. <쇼미더머 니> 제작진이 티빙을 통해 신규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론칭할 예정인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에게 힙합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힙합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 수치나 통계만 보면 힙합이 예전보다 못 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이제는 그럴 때가 됐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편협한 시각으로 섣부른 해석을 해서는 곤란하다.
복합적 시각과 균형 있는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힙합은 새로운 시작점에 와 있다.

김봉현
흔히 음악평론가로 불리지만, 힙합 저널리스트라는 직함을 더 선호한다. 2003년부터 음악에 관해 글을 썼고, 19권의 책을 냈다. 좋은 문장을 쓰던 사람으로 남고 싶다. 힙합과는 평생 함께한다.

에디터 <맨 노블레스> 피처팀 일러스트 최익견 디지털 에디터 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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