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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데이비슨과 완성한 가장 미국적인 시승기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미국 루트 66(Route66)을 달렸다. 가장 미국적인 로드 무비를 온몸으로 만끽했다.

붉은 사암 지대가 펼쳐진 애리조나주 세도나의 도로.
미주리주 도로 위에 자리한 루트66 표지판.
샌타모니카 해변으로 달리는 길. 2 샌타모니카의 루트66 ‘엔드 오브 더 트레일’ 사인 표지판.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장장 4000km를 달리는 루트 66(Route66) 대륙 횡단입니다.” 지난봄이었다. 미국
관광청이 ‘남자라면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초대장을 보냈다. 할리 데이비슨과 함께 14박 17일간 총 8개 주
를 통과하는 모터사이클 라이딩 투어였다. ‘루트66 투어’로 불리는 이 대장정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라이더에게 ‘꿈의 일주’로 꼽히는 무대다. 그도 그럴 것이, 루트 66은 시카고에서 샌타모니카까지 잇는 미국 최초의 대륙 횡단 고속도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과거 서부 개척 시대부터 미국인에게 도전의 상징이 되어온 도로인 만큼 많은 라이더의 목적의식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미국을 대표하는 모터사이클 브랜드 할리 데이비슨은 그 목적의식을 가장 영민하고도 순수한 방식인 ‘로드 트립’으로 이어갔다. ‘미국 대륙을 오로지 모터사이클로만 횡단한다’는 자칫 비현실적인 이 여정표가 설득력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할리 데이비슨은 그저 미국의 모터사이클 제조 회사로만 보기엔 압도적 역사성을 자랑하는 브랜드다. 바이크
시장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DNA가 가장 깊고 진하게 새겨진 브랜드이기도 하다. 1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덴티티를 이어왔으며, 황량하고 혹독한 현지 자연환경을 넘어서고 그 자체의 원형이 되었다. 한편, 인천국제공항에 집결한 30명의 참가자도 한마음 한뜻 같았다. 풍성하되 정갈하게 기른 수염, 클래식한 실루엣의 보잉 선글라스, 1980년대 LA 메탈 팬을 연상시키는 두건 등 할리 데이비슨이 상징하는 미국적 아웃핏이 눈길을 끌었다. 모두 브랜드 로고가 볼드하게 프린팅된 아이템을 곁들인 건 당연지사. 이와 함께 가장 선명하게 다가온 부분은 ‘지칠 때까지 자유롭게 달릴 수 있다’는 공통된 눈빛이었다. 참가자들은 나이가 제각각 다르지만, 이 도로의 주인이 되겠다는 야망은 누구나 같았다. 이들에게는 참가를 위한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제된 도로, 자유롭게 울릴 수 있는 맹렬한 배기음,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를 수 있다는 목적성. 그것이 이들을 고산지대와 소나기, 사막, 협곡 등 변화무쌍한 현지 도로의 중심으로 이끄는 듯했다.

“모든 혼란과 헛소리를 뒤로한 채 가장 고귀하되 유일한 행위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움직였다.”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는 이 문장을 기점으로 약 1만3000km의 여정을 촘촘히 기록해나간다. 가장 미국적 작가인 그의 말처럼, 우리는 시카고를 출발점으로 1950년대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주리 도심, 대평원의 오클라호마 시티, 애리조나의 그랜드 캐니언과 일몰이 아름다운 샌타모니카 비치까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주파했다. 달리는 동안 미국의 다양한 얼굴을 접할 수 있었다. 시카고와 세인트루이스의 이국적 도심, 오클라호마 대평원의 고요함, 그리고 그랜드 캐니언의 장엄함. 속도의 전율 속에서 경험하는 이 생경함은 오로지 함께한 참가자만이 알 것이다. 안전하게 완주한다는 목표 외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필요 없는 도로 위 몰입감. 루트66 투어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즐거웠다. 아니, 즐거웠다기보다는 황홀했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샌타모니카의 루트66 ‘엔드 오브 더 트레일’ 사인 표지판.
‘붉은 생명의 땅’으로 불리는 애리조나주 세도나.
서부 개척 시대의 역사를 지닌 오트맨.

미국 동서부의 정점을 누비다

루트66 투어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미국 동서부 구간의 명소를 조화롭게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단거리 여객용 기차인 암트랙이나 여객기로 들여다볼 수 없는 천혜의 자연환경, 초고층 빌딩 숲, 올드타운의 전통적 향취까지 빠짐없이 접할 기회였다. 출발점은 시카고였다. 참가자들은 초고층 건물인 존 핸콕 센터의 360 시카고 전망대에서 질주를 위한 각오를 다졌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한 게이트웨이 아치 앞에서도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게이트웨이 아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아치(192m 높이)이자 서부 영토 확장을 기념한 미국 국립 역사 기념물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미국의 대도시에서만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로움과 우아함을 끌어안았다. 도심을 벗어나 발길이 닿은 곳은 미주리주 오자크에 위치한 메러맥 동굴. 4억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형성된 이 동굴은 1870년대 악명 높은 무법자 제시 제임스의 은신처로도 유명하다. 동굴 가장자리에는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에서 본 듯 섬뜩한 제시 제임스의 동상이 자리하고, 1700년대 구축한 화약 제조용 탄광 형태를 계승하고 있었다. 텍사스주를 관통해 뉴멕시코주의 산타페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푸에블로 리바이벌 건축양식인 어도비 (Adobe) 건물이 눈에 띄었다. 스페인의 식민 지역이던 과거와 원주민인 푸에블로 인디언의 정통성이 고루 혼합된 결과다. 이곳의 스페인 시장에서는 다양한 미술 작품 전시뿐 아니라 매년 음악 축제를 개최해 스페인 전통 예술과 민속춤을 선보인다. 미국의 문화적 자산이 한 단일 민족의 정통성으로만 구성되지 않았다는 방증처럼 보이기도 했다.

미주리주 오자크에 위치한 메러맥 동굴.
뜨거운 소금 사막에 우뚝 선 로이스 모텔 & 카페.

애리조나주에 진입하니 서부 개척 시대의 잔향이 다시금 자욱하게 다가왔다. 810km2 크기를 아우르는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국립공원은 뾰족한 암석과 오래된기암괴석이 독특한 절경을 자아낸다. 굽이굽이 펼쳐진
도로와 바위투성이 트레일을 따라가다 보면 카우보이와 아메리카 원주민이 대립했던 모험의 역사가 눈앞에 펼
쳐진다. 강렬한 주황색과 붉은색 바위로 둘러싸인 세도나는 1900년대에 와서야 백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인디언은 이곳을 ‘영생의 에너지를 주는 어머니의 땅’이라 부르며 성지로 여겨왔다. 이곳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지점에는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이 자리한다. 포근한 모습으로 바위에 둘러싸인 세도나와 달리 장엄하고 위압감 있는 자태를 뽐낸다. ‘세계에서 가장 긴 협곡’인 이곳은 지역마다 고도와 기온이 달라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며, 40개에 달하는 지층을 노출하고 있어 형용할 수 없는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다.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위압감을 주다가도, 이내 광활한 자연과 하나 되는 듯 묘한 감정이 싹튼다. 금광촌 마을인 오트맨은 모하비 카운티에 위치한 작은 광산 마을이다. 서부 개척 시대에 금광이 발견되어 번성했던 곳으로, 당시 광산 개발업자들이 금을 실어 나르기 위한 목적으로 기른 당나귀가 마을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20세기 초 골드러시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올드타운이다.

한편 루트66의 말미인 캘리포니아에 접어들면 뜨거운 소금 사막 지역인 앰보이가 보인다. 이곳에 위치한 로이스 모텔 & 카페의 네온 부메랑 사인은 1938년에 설립한 긴 역사와 함께 ‘루트66의 영원한 휴게소’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애리조나주 원슬로에서 방문한 브런치 레스토랑 십 숍.
시카고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로즈버드 스테이크하우스.
거대한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선보이는 빅텍산 스테이크하우스.
포고데차오에서 맛본 브라질식 토마호크 스테이크.

아메리칸 푸드의 재발견

투어를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된 부분은 바로 음식이었다. 핫도그, 햄버거, 칠면조 요리. 미국 하면 생각나는 음식은 이게 다인데, 기나긴 모터사이클 트립에서 매일 이 음식을 먹는다는 말인가. 휴게소에서 대충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기우’였다.

가장 먼저 입맛을 돋운 음식은 지오다노스의 시카고 딥디쉬 피자. 시카고 피자 3대 맛집인 이곳은 이불처럼 풍성하게 덮인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곁들여 이색적인 피자 맛을 자랑한다. 새콤한 찹 샐러드, 부드러운 베이컨 바비큐 치킨 또한 추천할 만한 메뉴. 그런가 하면 브라질리언 스테이크하우스인 포고데차오는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등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브라질식으로 접할 수 있는 뷔페다. 웨이터들은 각 꼬치에 고기를 꽂아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접시에 놓고 간다. 계속 고기를 먹고 싶으면 녹색 카드를, 배가 부르다면 붉은색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 된다. 독특한 남미풍 분위기와 함께 풍부한 육즙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이탤리언 레스토랑 로즈버드 스테이크하우스는 입구에 들어섰을 뿐인데 영화 <대부>, <좋은 친구들>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분위기다. 웨이트에이징, 드라이에이징으로 이루어진 고급 스테이크와 함께 300 종류 이상의 와인과 다양한 종류의 스카치를 갖춘 곳. 알 카포네부터 프랭크 시나트라, 로버트 드니로 등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이 찾은 곳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긴 시간을 달려 도착한 텍사스에는 또 다른 스테이크 맛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역 명물인 빅 텍산 스테이크하우스는 하나의 미국 역사박물관처럼 각양각색의 조형물로 꾸민 것이 특징이다. 벽면에는 곰, 순록 등 머리로 제작한 헌팅 트로피가 자리해 와일드한 무드를 자아냈다. 팔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고소한 토마호크 스테이크는 ‘빅 텍산’이라는 상호의 의미를 말해주는 듯했다. 수시로 ‘1시간 동안 2kg의 스테이크를 먹는’ 챌린지를 열어 즐거움을 더한다. 애리조나주 원슬로에서 방문한 십 샵은 레트로풍 브런치 레스토랑이다. 이 레스토랑을 끼고 있는 사거리는 전설적 록 밴드 이글스의 ‘Take It Easy’란 곡에서 언급된다.

홈커밍 페스티벌 무대를 기념해 각지에서 방문한 할리 데이비슨 라이더.
할리 데이비슨 뮤지엄의 역사 전시관에서 기념비적 모델을 선보인다.

할리 데이비슨의 고향을 방문하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위치한 할리 데이비슨 뮤지엄은 모터사이클 라이더라면 꼭 한번 들러야 한다.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121년의 역사와 문화를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 모터사이클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면 1903년에 생산한 첫 번째 할리 데이비슨 모델부터 최신형 모델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디자인과 기술의 변화를 한눈에 엿볼 수 있다. 시대별로 진화한 엔진 소리와 진동을 느낄 수 있는 구동 체험도 가능하다. 역사 전시관에서는 자사의 역사적 순간, 광고캠페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자전거 제조업으로 시작한 1900년대부터 군용 사이드카 모터사이클로 활약한 제2차 세계대전 시기, 1969년에 개봉한 영화 <이지라이더>에서 남다른 스타성을 드러낸 스티브 맥퀸의 모습까지 면밀하게 기록돼 있다. 더욱이 올해는 창립자인 손자이자 전설적 모터바이크 디자이너 윌리 G. 데이비슨을 다룬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역사성을 고취시키는 듯했다. 그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에 등장한 팻보이부터 로 라이더, 헤리티지 소프테일, 스트리트 글라이드 등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모델을 디자인한 인물이다.

한편 박물관 밖으로 나오면 매년 7월에 개최하는 홈커밍 페스티벌 무대를 구경할 수 있다. 할리 데이비슨의 도전정신을 재조명하는 이 페스티벌을 위해 전 세계 라이더들이 이곳으로 모인다. 수천대의 할리 데이비슨 바이크가 일대를 가득 메운 채 하나 되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다. 페스티벌의 아티스트 라인업도 눈길을 끄는데 작년에는 그린데이가 출연했고, 올해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RHCP)가 바통을 이어받아 ‘가장 미국적인 록’을 선보였다.

에디터 박찬 사진 양현용 디지털 에디터 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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