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 위의 지배자는? 골프와 테니스의 라이벌 전쟁
베이스라인에서 페어웨이까지. 잔디 위 전쟁을 조명하다.

GOLF
SCOTTIE SCHEFFLER vs RORY MCILROY
역사서에 따르면, 알렉산더 대왕은 병사들의 거부로 인도 원정이 좌절된 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타이거 우즈 또한 ‘타이거 슬램’(2년에 걸친 4개 메이저 연속 우승) 후에도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세 번이나 했고, 허리 수술로 선수 생명이 끝났다는 얘기를 들은 후에도 재기에 성공해 2019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서른여섯 살의 로리 맥길로이는 4월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마스터스 우승 전까지 맥길로이는 그리스신화의 ‘시시포스’ 같았다. 다시 굴러 내려올 바위를 산 위로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 마스터스 앞에서 번번이 주저앉던 그는 결국 그린 재킷을 입음으로써 통쾌하게 저주를 끝냈다. 다들 사람 좋은 우리의 영웅이 이제 족쇄를 풀었으니 더 멋진 신화를 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맥길로이는 우즈나 알렉산더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지, “커리어 그랜드슬램이 내 경력의 하이라이트고, 나머지는 보너스로 생각하겠다” 말했다. 그리고 이후 성적이 그리 좋지 않다. US 오픈을 앞두고 아일랜드 선수 출신의 저명한 TV 해설가 폴 맥긴리는 “맥길로이의 눈빛이 풀렸다.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스물아홉 살의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는 점점 더 타이거 우즈에 다가가고 있다. 2023년까지 ‘그린 밖 타이거 우즈’였던 그는 꼴찌에 가깝던 퍼트를 지난해 중위권으로 끌어올리더니 올해는 상위권이 됐다. 드라이버, 아이언, 그린 주위 쇼트게임, 퍼트까지 완벽에 가까운 선수가 되어가고 있다. US 오픈에서 그의 베팅 확률은 타이거 우즈 이후 가장 낮았다. 우승 가능성이 우즈급이라는 뜻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요즘 셰플러가 맥길로이를 포함한 다른 선수들에 비해 한 수 위다.
의욕을 잃은 맥길로이가 돌아올 수 있을까. 물론 디 오픈에선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6년 전인 2019년, 맥길로이의 홈인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 골프장에서 벌어진 디 오픈 챔피언십 1라운드 첫 홀에서 그는 OB를 냈다. 이 홀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했고, 이를 만회하려고 무리하다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 보기까지 나오면서 8오버파 79타로 공동 150위로 밀렸다. 맥길로이는 홈에서 벌어진 디 오픈에서 우승에 대한 기대가 컸다. 2라운드 컷 통과를 위해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올해 다시 로열 포트러시에서 대회가 열린다. 2019년 오픈은 북아일랜드에서 68년 만에 열린 대회였다. 맥길로이의 의욕이 지나쳐 실수가 나왔다. 올해는 다를 수 있다. 11년 간 그를 짓누르던 마스터스 우승에 대한 짐을 벗었으니 적당한 긴장감으로 대회에 나갈 수 있다. 맥길로이는 이 코스에서 61타를 친 기록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만약 내기를 한다면 난 셰플러 쪽에 걸겠다. _ 성호준(<중앙일보> 골프 전문 기자)
스코티 셰플러
나이 1996년 6월 21일생 (29세) | 신장 191cm | 국적 미국 | 프로 데뷔 2018 | 스코어링 평균 68.3타 | 2025 시즌 평균 타수 약 68.3타 | PGA 투어 통산 12승(2025년 6월 기준)
주요 이력
2022년 마스터스 우승
2023・2024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2024년 마스터스 우승(2회 우승)
2024년 PGA 챔피언십 우승
2025년 세계 랭킹 1위 유지 중(2022년~)
로리 맥길로이
나이 1989년 5월 4일생 (36세) | 신장 175cm | 국적 북아일랜드 | 프로 데뷔 2007 | 스코어링 평균 69타 | 2025 시즌 평균 타수 약 69.2타 | PGA 투어 통산 26승(2025년 6월 기준)
주요 이력
2011년 US 오픈 우승
2012년 PGA 챔피언십 우승
2014년 디 오픈 챔피언십, PGA 챔피언십 우승
2024년 마스터스 우승(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TENNIS
CARLOS ALCARAZ vs JANNIK SINNER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센터 코트, 푸른 잔디, 그리고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자줏빛이 어우러진 윔블던은 테니스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다. 4대 그랜드슬램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이 대회는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대표적 예가 코트 표면이다. 윔블던은 1877년 첫 대회 이후 잔디 코트를 유지하고 있으며, 공의 속도가 빠르고 바운드가 낮아 강한 서브와 네트 플레이에 유리하다. 슬라이스는 잔디 위에서 낮게 깔리며 타이밍을 무너뜨리는 공격 무기로 작용한다. 빠른 템포에 대응하기 위해선 스몰 스텝 풋워크와 간결한 백스윙이 필수다.
얼마 전 끝난 롤랑가로스 남자 단식 결승에선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가 야닉 시너(이탈리아)를 상대로 5시간 29분의 혈투 끝에 승리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윔블던에선 시너가 톱 시드, 알카라스가 2번 시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두 선수가 결승에서 다시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대회에서도 시너의 기계적 정밀함보다는 알카라스의 전략적 다양성이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알카라스는 2023년과 지난해 결승에서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를 꺾고 윔블던 2연패를 이뤘고, 시너의 최고 성적은 2023년 4강이다. 전략 측면에서도 알카라스는 잔디 코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예측이 어려운 잔디 환경에서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선수가 유리한데, 롤랑가로스 결승처럼 드롭샷과 네트 플레이 등 다양한 전술로 시너를 흔들었다.
시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백핸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슬라이스처럼 낮게 깔리는 공에 약점을 드러내며, 네트 접근 빈도 또한 낮은 편이다. 수비력과 코트 커버 능력에서도 민첩한 움직임과 탁월한 예측력을 지닌 알카라스가 한 수 위다.
두 선수가 윔블던 결승에서 재회한다면 롤랑가로스처럼 팽팽한 승부가 예상되지만, 결정적 순간엔 창의성과 유연성에서 앞선 알카라스가 우세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대결은 승패를 넘어 윔블던이라는 상징적 무대에서 차세대 양강 체제를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_ 박준용(<스포츠경향> 테니스 칼럼니스트, SPOTV 테니스 전문 해설위원)
카를로스 알카라스
나이 2003년 5월 5일생 (22세) | 신장 183cm | 국적 스페인 | 프로 데뷔 2018 | 2025 시즌 승률 85% | 최고 서브 속도 217 km/h
주요 이력
2022년 US 오픈 우승, 세계 랭킹 1위 최초 등극(최연소 기록)
2023년 윔블던 우승
2024년 윔블던 우승(2연패)
2023・2024년 롤랑가로스(프랑스 오픈) 준우승
2025년 롤랑가로스 우승(2연패)
야닉 시너
나이 2001년 8월 16일생 (24세) | 신장 188cm | 국적 이탈리아 | 프로 데뷔 2018 | 2025 시즌 승률 82% | 최고 서브 속도 221 km/h
주요 이력
2023년 윔블던 4강
2024년 호주 오픈 우승(그랜드슬램 첫 우승), 윔블던 4강, ATP 파이널 준우승, 세계 랭킹 2위 등극(이탈리아인 최초)
2025년 롤랑가로스 준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