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오너의 삶. ‘에스페리엔자 페라리(Esperienza Ferrari).’
페라리 로마 스파이더를 타고 서울부터 강원도 정선까지. 굉장한 기세로, 때론 느긋하게 달린 1박 2일.

지난 9월 25일과 26일, 페라리의 프라이빗 시승 프로그램 ‘에스페리엔자 페라리(Esperienza Ferrari)’에 다녀왔다. ‘에스페리엔자(Esperienza)’는 이탈리아어로 ‘경험’을 뜻하는데, 이름 그대로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된 프로그램이었다. 참가자들은 1박 2일동안 페라리를 보고 직접 운전하는 것을 넘어서 미식과 예술 그리고 공간이 어우러진 여정을 통해 ‘페라리 오너의 하루’를 경험한다.
이번 여정의 주인공 ‘페라리 로마 스파이더’는 1950~60년대 이탤리언 라이프스타일의 낭만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GT 모델이다. 상어의 코(Shark Nose)에서 영감을 받은 전면부는 볼륨감 넘치면서도 절제된 실루엣으로 완성됐다. 클래식 요트를 닮은 선체 라인, 듀얼 콕핏 디자인 인테리어, 게이트식 기어 레버의 질감은 페라리가 과거와 감성과 현대의 기술을 잇는 방식을 보여준다. 시동을 걸자, 제로백 3.4초에 달하는
8기통 터보 엔진의 620마력이 매끄러운 출력을 내뿜었다. 인상적인 건 속도보다 반응이다. 가속페달에 발끝이 닿을 즉시, 차체가 생각과 동시에 반응한다. 과장된 자극 대신 정교한 힘의 균형은 페라리가 말하는 ‘우아한 퍼포먼스’였다.
서울을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자 운전대에 전해지던 긴장감이 서서히 풀렸다. 강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커브 구간에서 로마 스파이더는 물 흐르듯 노면을 타고 달렸다. 운전석 안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스티어링 휠 끝의 감각, 손끝에 닿는 미세한 진동까지 정교했다. 트랙에서 비롯된 “눈은 도로에, 손은 스티어링 휠에(Eyes on the road, hands on the wheel)”라는 철학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HMI(Human Machine Interface) 시스템 덕분에 운전자는 스티어링 휠만으로 주행의 거의 모든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이 정밀한 조작계와 직관적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편의 장치를 넘어, 운전자와 차량이 하나의 리듬으로 호흡하게 만든다.
점심은 경기 양평군의 정통 이탤리언 레스토랑 ‘다 안토니아 Da Antonia’에서 즐겼다. 블루 리본 네 개를 받은 곳답게 섬세한 에피타이저부터 알덴테의 파스타, 스테이크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짧지만 깊은 식사를 마친 뒤, 드디어 54년 만에 부활한 페라리의 프런트 엔진 소프트톱을 열었다. 루프가 서서히 접히는 순간,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치밀었다. 페라리 프론트 엔진 소프트톱은 접이식 하드톱과 견줄 만큼 견고해 시속 60km에서도 단 13.5초면 완전히 개방된다. 루프가 걷히자 차체는 한층 자연스러워졌고, 부드러운 가을 공기가 실내로 스며들었다. 정숙한 엔진음과 함께 공기의 온도가 달라지는 순간, 평범했던 도로가 감각적인 드라이빙
경험으로 더욱 생생해졌다. 이후 방문한 강원 원주시의 명물 ‘뮤지엄산’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자연과 예술, 건축이 어우러진 공간을 천천히 거닐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곳은 자연의 흐름을 고요하게 품고 있다. 차가운 콘크리트와 따스한 빛, 잔잔한 물이 만들어내는 균형 속에서 평온함이 흐른다. 매끈한 곡선과 단단함이 느껴지는 건축물들은 페라리 로마 스파이더와 묘하게 닮아 보였다.


해가 기울 즈음, 강원도 정선군의 파크로쉬 리조트에 도착했다. 웰니스 리조트로 잘 알려진 이곳은 고요함 속에서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낮 동안의 질주가 하나의 긴 숨이었다면, 이곳은 그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창밖으로 펼쳐진 능선과 수목, 그리고 머리 위의 별빛이 천천히 긴장을 녹였다. 페라리가 말하는 ‘궁극의 드라이빙 경험’은 단지 스피드가 아니라, 이렇게 정지의 순간마저 우아하게 만드는 여정 전체였다.


다음 날, 복귀를 위해 다시 시동을 걸었다. 차가운 공기와 함께 엔진의 울림이 산속에 퍼졌다. 새벽 안개가 자욱한 강원도의 굽이진 능선을 따라, 이탈리아의 감성과 한국의 풍경이 자연스레 겹쳤다. ‘에스페리엔자 페라리’ 프로그램의 마지막에 달했을 때 페라리 로마 스파이더가 주는 건 단순한 속도의 쾌감이 아니었다. 삶의 장면을 고르고 조립할 수 있는 자유. 어디서 달리고, 어디서 머물며, 누구와 음식을 나눌지 선택하는 권한. 그 자유로움을 완성하는 순간, 비로소 페라리가 꿈꾸는 궁극의 드라이빙 세계가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