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ociety 안내

<맨 노블레스>가 '디깅 커뮤니티 M.Society'를 시작합니다.
M.Society는 초대코드가 있어야만 가입 신청이 가능합니다.

자세히보기
닫기

페라리 아말피, 그 미래로의 초대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기록한 페라리 신형 모델 ‘아말피’, 그리고 전통과 미래가 결합한 설비 시스템.

이탈리아 남부 해안 도시의 이름에서 따온 신형 모델 아말피. 로마의 후속 모델로 절제된 실루엣을 자랑한다.
이탈리아 남부 해안 도시의 이름에서 따온 신형 모델 아말피. 로마의 후속 모델로 절제된 실루엣을 자랑한다.

‘자동차 명가 페라리가 그리는 미래는 무엇일까.’ 모데나에서 마라넬로로 넘어가는 왜건 안에서 든 생각이다. 이날은 페라리의 새로운 모델 ‘아말피(Amalfi, 그때까지만 해도 모델명을 알 수 없었지만)’와 비밀이 가득한 전통적 공장을 둘러보기로 한 날이었다. 이탈리아 북부 특유의 흐린 해(hazy sun)가 차창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시내로 접어들자 차량은 더디게 움직였고, 좁은 도로 양옆으로는 낮고 단정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페라리의 상징과도 같은 선명한 레드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 공장 주변을 오갔고, 길가에는 시대를 달리한 페라리 차량 몇 대가 무심히 주차돼 있었다. 곳곳에서 브랜드의 상징인 ‘카발리노’(도약하는 말) 로고가 눈에 띄는 이곳은 바로 페라리의 심장부, 마라넬로다.

마라넬로에 위치한 페라리의 E-빌딩 외관 및 내부. 식물이 공장 내부 곳곳에 위치해 있다.
마라넬로에 위치한 페라리의 E-빌딩 외관 및 내부. 식물이 공장 내부 곳곳에 위치해 있다.
마라넬로에 위치한 페라리의 E-빌딩 외관 및 내부. 식물이 공장 내부 곳곳에 위치해 있다.

붉은 심장 속, 미래를 조립하다

차에서 내리자 공장 내부와 연결된 ‘올드 게이트’가 보였다. 공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원색이었다. 노동 공간이라기엔 단정하고 강렬한, 붉은색과 노란색. 단 두 가지 패밀리 컬러만으로 공간의 질서와 정체성이 설명됐고, 그 조합은 일종의 전통처럼 기능했다. 페라리라는 이름은 회의실보다 오히려 용접실과 조립 라인 위에서 더 선명하게 빛났다. 공장은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핵심 생산 시설만 약 16만5000m2. 구역 간 이동하려면 버스를 타야 했고, 중간중간 길목에서는 오렌지빛이 감도는 로쏘 디노(rosso dino) 컬러의 로마 등 다양한 차량의 테스트 주행이 이어지고 있었다.

엔진 제작 구역에서는 붉은 작업복을 입은 테크니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엔진을 먼저 만들고, 그다음 바퀴를 달았다(I build engines and attach wheels to them).” 설립자 엔초 페라리의 말처럼, 이곳에서는 여전히 모든 엔진이 직접 설계되고 조립된다. F1 머신부터 최신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6·8·12기통 엔진이 부품별로 조립되고, 테스트 벤치를 통해 점검을 거친다. 작업장 벽면 한쪽에는 팀 단위로 촬영한 단체 사진이 걸려 있었다. ‘Roma 1팀’ 같은 이름 아래 붉은 유니폼을 맞춰 입은 이들의 모습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과장된 포즈도 설명도 없었지만, 팀워크와 책임감,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나 있었다.

차체 용접 구역에서는 ‘Lastratura(라스트라투라, 기초 프레임 조립)’, ‘Ferratura(페라투라, 보강 및 세척)’, ‘Revisione(레비지오네, 품질 검사)’라는 이탈리어가 벽에 적혀 있었다. 기본 프레임 조립부터 최종 품질 검사까지 각 단계는 숙련된 기술자의 손을 거친다. 특히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모델은 여전히 자동화 없이 정밀한 수작업으로 용접한다. 이곳에서 용접이란 차체를 하나의 완성된 존재로 만들어내는 과정에 가까웠다.

한 공장 내부 모서리에는 그 유명한 ‘페라리 월드 아부다비’ 미니어처가 정교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시속 240km의 롤러코스터 ‘포뮬러 로사’, F1 시뮬레이터, V12 엔진 전시 등 브랜드가 구축해온 감각적 세계가 하나의 축소 모형으로 구현돼 있었다.

한편, 지난해 새롭게 문을 연 E-빌딩 안에서는 페라리의 현재이자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이곳은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차량은 물론, 페라리 최초의 전기차까지 생산할 예정인 전용 설비였다. 지붕 위에는 3000장이 넘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어 이곳만으로도 1.3MW의 전력을 자체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또 내부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기는 재생에너지원을 인증받은 전력으로만 운영된다. 생산공정은 페라리 전체 탄소 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하는데,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MW 규모의 고체산화물 연료전지 설비까지 공장 안에 함께 들어섰다. 이렇듯 E-빌딩은 에너지와 지속가능성이라는 명제를 가장 페라리다운 방식으로 해석한 결과물처럼 느껴졌다.

아말피의 외관과 내부. 내부에는 높은 시인성과 조작감이 편한 세로형 디스플레이, 외부에는 리어 부분을 가로지르는 바 형태의 유려한 라인을 갖췄다.
아말피의 외관과 내부. 내부에는 높은 시인성과 조작감이 편한 세로형 디스플레이, 외부에는 리어 부분을 가로지르는 바 형태의 유려한 라인을 갖췄다.

정제의 미학, 아말피의 등장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한 후에는 비공식 콘퍼런스 룸으로 향했다. 초대받은 소수만 입장할 수 있는 공간은 비밀 협약을 앞둔 듯 고요했다. 무대 한편으로 커버를 씌운 신차의 실루엣이 보였고, 프레젠테이션 직전 임원진이 등장해 커버를 천천히 걷었다. 순간, 숨죽인 객석 사이로 얇고 정제된 차체가 드러났다. 뭔가를 더 보여주겠다는 제스처가 아니라 보여줄 것만 남겨둔 상태에서 드러나는 자신감 같았다. 메인 스크린에 뜬 단어 ‘Amalfi’는 이탈리아 남부 해안 도시의 이름이자 로마의 후속 모델이 지닌 새로운 기류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이전 모델인 로마가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 근심 없는 삶)’로 1950~1960년대 이탈리아의 달콤한 삶을 노래했다면, 아말피는 이후의 정서에 가까웠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 곡선 하나, 조형 하나까지 절제된 선율처럼 느껴지던 실루엣은 바로 그런 철학의 결과로 느껴졌다.

아말피의 외관과 내부. 내부에는 높은 시인성과 조작감이 편한 세로형 디스플레이, 외부에는 리어 부분을 가로지르는 바 형태의 유려한 라인을 갖췄다.
아말피의 외관과 내부. 내부에는 높은 시인성과 조작감이 편한 세로형 디스플레이, 외부에는 리어 부분을 가로지르는 바 형태의 유려한 라인을 갖췄다.
아말피의 외관과 내부. 내부에는 높은 시인성과 조작감이 편한 세로형 디스플레이, 외부에는 리어 부분을 가로지르는 바 형태의 유려한 라인을 갖췄다.

곧이어 수석 디자이너 플라비오 만초니가 등장해 설명을 이어갔다. 아말피는 로마의 후속 모델이지만 모든 패널을 새롭게 설계했고, 논란이 된 디테일은 과감하게 제거했다. 전면부의 금속 메시 그릴과 얇은 블랙 마스크, 리어 부분을 가로지르는 바(bar) 형태 라인, 양 끝을 감싸는 4개의 시그너처 테일램프까지 모든 요소가 선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조형처럼 구성됐다. 실내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햅틱 버튼은 사라지고 손끝에 감각이 전해지는 물리 공조 버튼이 돌아왔다. 디지털 스타트 버튼도 이제는 실제 누를 수 있는 버튼이 되었고, 세로형 디스플레이는 가로형으로 바뀌어 시인성과 조작감이 함께 개선됐다. 센터 터널을 가로지르는 애노다이징 알루미늄은 공간의 여백을 조율하는 구조였다. 3.9리터 V8 엔진은 631마력. 가속은 3.3초, 속도를 올려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공력 설계는 헤드램프 덕트와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로 보완됐고, 제동은 브레이크-바이-와이어 시스템으로 약 10% 향상됐다. 아말피는 더 간결하고, 더 정제된 감각의 GT였다. 보여줄 것만 남긴 디자인, 그 안에 담긴 선택의 밀도. 페라리는 이번에도 자신감 있게 정체성을 나타냈다.

‘페라리의 미래는 정제된 가치에 있다.’ 마라넬로를 빠져나와 볼로냐 굴리엘모 마르코니 공항으로 향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모델의 진화나 디자인의 변화만은 아니었다. 공장 곳곳에서 본 기술과 철학, 그리고 커버를 벗겨내며 새로운 실루엣을 드러낸 아말피까지. 전통 명가 페라리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 움직임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방식과 달랐다. 이제는 전통을 소비하지 않고, 그 전통 위에서 새로움을 정제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신차 아말피는 그 방향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완벽한 시작점이었다.

마라넬로 본사 옆에 위치한 ‘무세오 페라리 마라넬로’ 박물관.
모데나 도심 속 설립자 엔초 페라리의 생가를 중심으로 조성된 ‘무세오 엔초 페라리’ 박물관.
에디터 박찬 사진 페라리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
LUXURIOUS BOLDNESS ARCHIVE CHIC BOLDNESS AND W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