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다루는 방식
에디 슬리먼의 새로운 출발에 따른 패션계의 기대와 우려.
에디 슬리먼의 디자인은
단순한 반복이 아닌 ‘완벽한 청춘을
향한 끝없는 탐구’다.
에디 슬리먼이 7년 만에 셀린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다음 행선지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은 프랑스의 하이엔드 명품 패션 하우스 샤넬이다. 패션 신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벌써부터 에디 슬리먼이 추구하는 ‘완벽한 청춘’과 샤넬의 만남을 고대하는 상황.
소문이 사실로 이어진다면 퀼팅, 트위드 등 샤넬의 아이코닉하고 클래식한 요소가 에디 슬리먼의 입맛에 맞게 재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또 디올 옴므에서 선보인 슬림 핏 남성복부터 최근 셀린느에서의 젠더리스한 무드까지, 그의 능력을 고려할 때 남성복 라인 출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 또한 증폭된다. 사실 샤넬 외에도 에디 슬리먼의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브랜드는 더 추측해볼 수 있다. 디올 맨의 경우 에디 슬리먼이 2000년대 디올 옴므에서 정립한 자신의 유산을 재해석한다면 의미 있을 테다. 현재 킴 존스는 디올의 아카이브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다양한 협업을 이뤄내고 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디올 맨의 독자적 정체성이 다소 모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에디 슬리먼이 돌아온다면 테일러링을 중심으로 디올 맨만의 고유한 색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발렌시아가도 주목할 만하다.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는 스트리트 무드를 중심으로 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럭셔리 시장이 본질적 가치를 중요시하며 헤리티지로 회귀하는 트렌드를 보이면서 방향성에 대한 제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에디 슬리먼이라면 생 로랑에서 보여준 것처럼 발렌시아가에서도 스트리트와 고급 무드의 절묘한 균형을 구현해낼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에디 슬리먼의 차기 행선지에 대해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브랜드의 고유함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불안감 또한 꾸준히 제기된다. 기존 코어 소비자층을 고려하지 않고 에디 슬리먼만의 취향이 반복되어 ‘에디 슬리먼화’된 브랜드가 등장할 것이라는 견해다. 사실 에디 슬리먼은 디올 옴므, 생 로랑, 셀린느를 거치며 패션 하우스의 ‘파괴자’와 ‘창조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늘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현대 하이엔드 브랜드는 단순히 헤리티지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창출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는데, 에디 슬리먼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창조와 파괴를 통해 그 시대 청춘의 모습을 구현하며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재정의했다. 디올 옴므의 우아한 반항아, 생 로랑의 자유분방한 록스타, 셀린느의 퇴폐적 파리지엔 등 우리가 실제로 경험한 적 없지만 강렬하게 동경하는 ‘완벽한 청춘’에 대한 갈망을 자극했다. 그 결과 에디 슬리먼의 방식은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새로운 소비자층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누군가는 에디 슬리먼의 컬렉션을 자기 복제라 말한다. 하지만 청춘이 비슷해 보여도 시대마다 다르듯이 에디 슬리먼이 추구하는 청춘도 시대 흐름을 담아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의 디자인은 단순한 반복이 아닌 ‘완벽한 청춘을 향한 끝없는 탐구’다. 이것이 바로 에디 슬리먼이라는 디자이너가 패션계에서 매혹적인 존재로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다.
김경현
콘텐츠 마케터. 다양한 패션 매체의 객원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