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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복제 혹은 자기 세계

안판석 감독의 드라마 <졸업>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과 비슷한 드라마일까. 관점의 차이겠지만 분명 다른 드라마다.

안판석 감독의 tvN 드라마 <졸업>이 종영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대치동 학원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학원 강사들의 치열한 삶과 사랑을 담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두고 안판석 감독이 자기 복제에 빠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성공 이후 MBC 드라마 <봄밤> 그리고 <졸업>까지 비슷한 톤의 멜로를 반복해서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길해연, 오만석, 서정연, 김종태, 김정영 등 다수의 배우가 영향력있는 조연으로 연이어 출연하는가 하면, 실제로 비 내리는 밤거리에 우산을 들고 남녀가 걸어가며 로맨틱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면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이후 안판석 감독의 작품에 빠지지 않는 요소가 됐다.

사실 <졸업>은 스타 강사 서혜진(정려원)과 제자였다가 신입 강사로 나타난 이준호(위하준)의 멜로가 중심 장르인 작품이지만, 극적 긴장감을 높인 건 두 사람의 사랑을 스캔들로 몰아 학원가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욕망의 갈등과 입시 교육 속에서 진짜 교육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세태에 대한 비판 의식이었다. 그러니 동일한 멜로 장르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자기 복제라고 치부하는 건 어딘지 억울할 법하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안판석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게다. 안판석 감독은 ‘대본대로 찍던’ 드라마 연출업계에서 효율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PD’라는 호칭보다 ‘감독’이 더 어울리는 인물이 됐다. MBC 드라마 <하얀거탑> 같은 작품은 리메이크작이지만 일본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몰입도 높은 연출을 선보였고, 무엇보다 당시 ‘무늬만 의학 드라마’라는 비난을 받던 연애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넘어 치열한 의국의 경쟁을 그려낸 바 있다. JTBC 드라마 <밀회>는 최근 안판석 감독의 멜로 3부작의 토대가 되는 이른 바 ‘사회적 멜로’의 시발점이 된 작품이다. 멜로 장르를 활용하지만, 이를 통해 사회 시스템을 통찰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졸업>은 그 이야기 구조가 <밀회>에서부터 시작된 방식인, 평탄하게 살아오던 여성의 삶에 한 순수한 남성이 들어오면서 생겨나는 파열음을 그리는 방식 그대로 쓰지만, 후반부에 가면 <하얀거탑>에서 엿보이던 치열한 업계의 경쟁 요소가 더해진다. 자기 복제라기보다는 멜로라는 대중적 장르를 차용해 차츰 자기 세계를 구축해간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거장이라 불러도 될 법한 드라마 감독이 멜로에 머무는 걸 넘어 좀 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모습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혹은 멜로라 해도 기존의 장르적 클리셰를 훌쩍 넘어서는 새로운 멜로를 기대하는 건 과한 일일까. 다음엔 그가 어떤 작품으로 돌아올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이다. 저서로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

에디터 <맨 노블레스> 피처팀 일러스트 최익견 디지털 에디터 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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