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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과 음악 사이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음반으로 듣는 이유. 젠프 스튜디오가 복각한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연주, 호로비츠의 모스크바 실황 앨범, 디누 리파티가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한 마지막 리사이틀 앨범, 이 세 장의 명반이 답해줄 것이다.

지상파에서 예능을 만들며 먹고살지만, 취미 삼아 클래식 음악 관련 영상을 뜨문뜨문 만들어 올리는 ‘하꼬 유튜버’로서 다른 클래식 채널에도 관심이 지대하다. 그러다 며칠 전 바이어스 가득한 나의 알고리즘이 황당한 섬네일 로그라인을 하나 물어다 날랐다. ‘진짜 음악은 현장에 있다/음반이 절대 공연을 대체할 수 없는 5가지 이유’. 정말 그럴까?

글렌 굴드는 연주 인생의 최전성기에 무대를 영영 떠나버렸다. 그는 공연장에 찾아오는 관객을 혐오했다. “음악적 소양도 별로 없는 스놉들이 언제 내가 미스 터치를 내는지만 뚫어지게 집중하는 숨 막히는 장소”라며 공연장을 폄훼했다. 대신 굴드는 자기 시대 문명의 산물인 녹음 스튜디오 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 그는 여러 번 녹음 후 만족스러운 부분만 발췌해 편집하는 방식으로 앨범을 제작했고, 그런 무균질 완성물이 가능한 스튜디오 안에서만 예술적 아타락시아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를 두고 다니엘 바렌보임은 “모든 실수가 박멸된 비현실적 멸균 상태는 가능하겠으나, 자연스러움이 존재할 리 없다”며 굴드의 녹음 편집 행위를 공개 비난했다. 그러자 굴드는 바로 “바렌보임은 녹음실에 들어가 한두 번 치고 나오는 형편없는 대충쟁이”라며 맞받아쳤다. 바렌보임에게 녹음 편집은 ‘조작’이었을 테고, 굴드에겐 그 작업 또한 ‘연주의 일환’이었다고 보는 게 맞다. 바흐는 애당초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피아노라는 악기를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다. 바흐는 인생 말년에 이제 막 세상에 선보인 피아노 포르테라는 악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기존 하프 시코드만 진정한 건반악기로 인정했다. 일각의 주장대로라면, 레전드 음반인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사기품이다. ‘원전 악기’도, ‘실황’도, ‘원테이크’도 아니니 말이다. “현장에서 울리는 음악만이 진짜 클래식 음악이다”라고 말하는 이의 주장은 이렇다. 작곡가들이 원래 라이브 연주를 염두에 두고 곡을 썼기에 당시와 흡사한 공연장의 아날로그 앰비언스 없이는 원작자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칸타타와 오라토리오 등 모든 종교음악은 성당에서만, 쇼팽의 수많은 피아노 독주곡은 청중이 50~60명을 넘지 않는 아늑한 살롱에서만 연주되어야 그 주장이 들어 맞을 테다. 2500석이 넘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노 독주를 듣는 행위는 난센스에 가깝다. 실제로 1층 발코니 밑의 구석 자리나 2·3층 가장자리는 소리가 답답하기 그지없다. ‘최고 어쿠스틱’이란 것은 VIP석이 아니라 혼자 운전하는 차 안 카스테레오로 더 적확하게 구현 가능하다. 또 다른 주장은 디지털 수음은 진짜 소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준비가 제대로 안 된 공연보다 명반을 엄선해 집중 감상하는 게 훨씬 낫다는 입장이다. 그게 안목을 높이는 데 더 도움이 된다. 그리고 ‘콘서트고어’라면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에서도 확성을 위한 PA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다. 나도 소싯적엔 좋은 이어폰, 헤드폰을 구매하기 위해 수많은 정보와 입소문을 구걸했고, 스피커의 이상적 배치를 찾기 위해 기를 썼다. 하지만 이젠 정확히 알고 있다. 들어야 할 것은 ‘음악’이지, ‘음향’이 아니다. 그리고 현장 공연은 음악 역사의 최전선이므로 그곳에서 직접 목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클래식계의 현재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해석의 미묘한 시대적 뉘앙스에 매달리기보다는 동시대 작곡가의 새 작품을 더 많이 듣길 권한다. 사실 그 유투버의 주장에는 논리적 흠결이 없다. 결정적 실수는 ‘로그라인’을 잘못 뽑았다는 데 있다. “현장에서 울리는 음악만이 진짜 클래식 음악이다”가 아니라 “클래식 공연장에서만 느껴지는 대체 불가한 매력” 뭐 이런 뉘앙스라면 조목조목 납득됐을 거다.

예술은 포르말린에 담가놓고 노심초사 그 원형을 보전해야 하는 멸종된 개체의 사체 같은 게 전혀 아니다. 예술은 인류와 공존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그래서 시대에 맞게 진화하는 것이 어쩌면 유일한 생존 전략일 수 있다. 같은 선상에서 국악이 왜 한국 음악 시장의 메인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그 맥락을 비슷하게 짚어볼 수 있을 테다.

김영욱 SBS예능국 PD, <피아노홀릭>을 발간했으며, 유튜브 채널 ‘피아노홀릭’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피아노 실황 명반

Dinu Lipatti, The Last Recital(Live at Besançon International Festival, 1950)

지글거리는 모노인 데다 프로그램도 균형감이 전혀 없는 이 조악한 리사이틀이 피아노 음반사 중 가장 중요한 실황 음반으로 기록된 것은 서른세 살에 백혈병으로 요절한 세기의 천재 디누 리파티의 진정한 ‘백조의 노래’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순히 ‘Dying Young’이라는 감상주의에 기대 명반이 된 케이스가 결코 아니다. 공연 중간중간 불시로 대기실로 돌아가 모르핀 주사를 맞고 무대에 가까스로 돌아와 이어갈 곡의 메이저 화음을 한 번 건반 위로 아스라이 쓰다듬어보는 그 짤막한 트랙이야말로 진정한 인류 문화유산이라 하겠다.

Vladimir Horowitz, Horowitz in Moscow

1986년 여든이 넘은 만년의 호로비츠가 생을 마감 하기 전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 펼친 역사적 공연 실황. 이 리사이틀은 피아노 음악사적으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그때까지 꽁꽁 얼어붙어 있던 동서의 이데 올로기 냉전 시대가 끝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 같은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같은 해,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이사벨라 로셀리니 주연의 영화 <백야>가 개봉했다. 20세기 최고로 불리는 전설적 피아니스트의 회한에 젖은 마지막 웅혼이 느껴지는 명반 중 명반이다.

Glenn Gould, Bach: Goldberg Variations, BWV 988(Zenph Re-Performance)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첫 녹음인 1955년 모노 버전을 디지털 장비로 철저히 분석해 컴퓨터에 입력하고, 거기에 연결된 어쿠스틱 장비가 연주 홀에서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자동 연주 피아노)로 연주하게 해 녹음한 버전이다. 성의 있는 복각을 위해 아날로그, 디지털, 다시 아날로그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따라서 음질은 최신 릴리즈 음반처럼 개선되었고, 굴드 특유의 ‘웅웅’대는 허밍 소리 같은 것도 끼어들 틈이 없다. 과연 굴드가 살아 있었다면 이 앨범에 어떤 평을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추측하건대, 흥미로워하지 않았을까? 이 앨범이 좋은 반응을 보이자 젠프 스튜디오는 라흐마니노프의 살아생전 연주도 이 방식으로 말끔히 복각했다. 이런 노력이 죄다 가짜일까?

에디터 이도연 일러스트 도요(Doyo)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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