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재즈를 만나다
재즈의 메카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염동교 기자의 도쿄 재즈 여행기.
염동교 대중음악 웹진 ‘IZM’을 중심으로 음악과 문화 예술에 관한 글을 쓴다. 라디오와 팟캐스트를 통해 세계 각국의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음악만큼 여행과 스포츠를 사랑한다.
재즈뿐 아니라 모든 음악 애호가를 만족시키는 도시, 바로 일본 도쿄다. 1920년대부터 발전해 온 일본 재즈는 탄탄한 음악 산업과 대중의 관심, 아티스트의 창작열로 문화의 토양이 단단하다. TBM(Three Blind Mice)처럼 예술성 높은 레이블이 설립되었고, 존 콜트레인과 허비 행콕 같은 서구의 재즈 명인이 일본에서 녹음 작업과 공연을 하면서 아시아 굴지의 재즈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유구한 역사 덕에 도쿄 이곳저곳에는 재즈가 녹아 있다. 대표적으로, 밖에서 보면 카페 같지만 100년 전통을 이어온 재즈 킷사가 있다. 이곳의 주인공은 커피도, 담소도 아닌 음악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LP와 오디오 시스템이 시선을 끄는데, 차분하게 책 읽는 청년과 꾸벅꾸벅 조는 회사원 등 각양각색의 군상이 어우러져 있다. 요츠야역에서 가까운 킷사 ‘이글(Eagle)’에서 레드 와인 한잔 곁들이며 들은 트럼페터 히노 테루마사와 존 콜트레인이 사랑한 드러머 엘빈 존스의 휘몰아치는 연주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외 60년 전통의 ‘더그 재즈 카페 & 바(DUG Jazz Cafe & Bar)’, 웅대한 갈색 빛 스피커를 구비한 고쿄 근처 ‘재즈 올림푸스!(Jazz Olympus!)’는 재즈 마니아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킷사다. <포트레이트 인 재즈> 저자이자 재즈광 무라카미 하루키가 다닌 와세다 대학교 부근 ‘재즈 넛티(Jazz Nutty)’도 놓치지 말 것. 입구의 델로니어스 몽크 사진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서 하이볼을 연속 두 잔 홀짝이며 웨스 몽고메리의 기타 선율을 즐겼다.
킷사가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활기 넘치는 라이브 클럽으로 향해보자. 신주쿠 근처 다카다노바바엔 ‘카페 코튼 클럽(Cafe Cotton Club)’과 ‘게이트 원(Gate One)’처럼 개성 넘치는 공연장이 밀집해 있다. 그중에서도 ‘재즈 스폿 인트로(Jazz Spot Intro)’는 세로로 기다란 3~4평 남짓 작은 공간에 연주자와 손님이 한데 섞인, 도쿄 재즈 열기로 가득한 곳이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원한다면 시부야 근처 ‘블루 노트 도쿄(Blue Note Tokyo)’를 추천한다. 파리의 어느 연회장이 떠오르는 공간, 그곳에서 마시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본뜬 칵테일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2024년 4월에는 스페인 출신 플라멩코 뮤지션 실비아 페레스 크루스의 퍼포먼스와 함께 시그너처 칵테일 ‘엉클 존’을 마시며 나름의 사치를 부렸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라인업이 1년 내내 이어
지는 블루 노트 도쿄의 2024년 12월 일정에는 재즈 피아노 거장 밥 제임스와 애시드 재즈의 주역 인코그니토의 무대가 있었다. 그래미상을 받은 재즈 보컬 신성 사마라 조이의 2025년 2월 콘서트도 자못 기대된다.
재즈 하면 역시 LP다. 약간의 잡음과 공생하는 특유의 따스한 소리가 아날로그 노스탤지어를 소환하는데, 특히 큼직한 앨범 아트가 매력적이다. 도쿄엔 재즈를 전문으로 하는 레코드 스토어도 있다. 아기자기한 빈티지 숍이 밀집한 코엔지의 ‘유니버사운드(Universounds)’는 일본 재즈 명반 리이슈 시리즈 ‘딥 재즈 리얼리티(Deep Jazz Reality)’에 관여하고 있는 대표 오가와 유스케의 존재감이 굉장하다. 방문 당시 오가와에게 “서울에도 유니버사운드 팬이 여럿 있다”는 말을 건네니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와 일본 재즈에 대해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날을 꿈꾼 순간이다. 시부야 근처 ‘헐스 레코드(Hal’s Record)’도 해박한 주인장과 독특한 음반 셀렉션 등이 흥미로운 가게다. 도쿄뿐 아니라 요코하마와 오사카, 삿포로처럼 우리가 알 만한 도시에 재즈와 관련한 킷사와 라이브 클럽, LP바가 퍼져 있다. 재즈를 사랑하는 이들이 일본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다. 여행 중 젊은 재즈 뮤지션이나 마니아와 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뉴욕이나 파리 같은 재즈 시티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접근성 높은 도쿄는 어떨까. 다양한 재즈 플레이스가 당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