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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의 기술

‘파지티브호텔’ 정형록 대표는 낯선 땅에 리듬을 맞춘다.

그리스 사로니코스만(Saronic Gulf)에 위치한 작은 섬, 히드라. 예술가들의 은신처로 알려져 있으며, 시인 레너드 코언이 이곳에 오래 거주했다.

향으로 기억되는 히드라와 스페체스

지중해는 내게 웰니스의 전형(archetype)이다. 햇빛, 바람, 소금기 머금은 공기, 올리브와 와인…. 순수하고도 강력한 자연 에너지는 웰니스의 본질 그 자체다. 이곳 사람들에게 ‘치유(healing)’는 특별한 개념이 아니다. 일상이 치유고 회복이니까.

히드라와 스페체스섬의 향기에서 영감받아 만든 파지티브호텔의 룸스프레이.

2년 전 긴 연휴를 틈타 그리스의 섬, 히드라와 스페체스를 찾았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해 피레우스 항구에서 수상 택시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가다 보면 히드라 항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스페체스가 나온다. 두 섬은 왕복이 가능해 하루씩 나눠 머물기 좋다. 두 곳 모두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 이동 수단은 두 발과 노새, 당나귀가 전부다. 뾰족한 소음이 들릴 리 없다. 고요한 섬에 닿으면 장거리 이동의 피로와 도시에서 묵혀온 마음속 소란까지 서서히 가라앉는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마른 바람에 실려온 허브와 솔잎 향이 코끝을 스친다. 두 섬에 일렁이는 그 향은 내가 이 섬을 찾은 이유였다.

스페체스섬에서 머무른 포세이도니온 그랜드 호텔. 1914년에 지어 고풍스러운 멋이 묻어난다. 스페체스를 상류층의 휴양지로 변모시킨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테라스에 앉아 바라보는 석양이 환상적이다.
스페체스섬에서 머무른 포세이도니온 그랜드 호텔. 1914년에 지어 고풍스러운 멋이 묻어난다. 스페체스를 상류층의 휴양지로 변모시킨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테라스에 앉아 바라보는 석양이 환상적이다.

그때 파지티브호텔의 인센스를 기획 중이었는데, 향에 지중해를 담고 싶었다. 도심에서도 그곳에 머문 듯한 기운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히드라 지천에 핀 풍성한 허브, 스페체스 골목길에 널어 말리는 라벤더와 무성한 소나무 숲은 영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넓은 야외 정원을 포함한 전용 수영장이 있는 스위트룸.

여행에서 향은 늘 큰 자극이 된다. 그래서 여행지에 도착하면 의례처럼 가장 먼저 현지 허브를 찾아 나선다. 차로 우리거나 향으로 피우며 식물이 품은 그 땅의 에너지를 몸에 채운다.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며 러닝을 하기도 한다. 달리면서 바람결에 더욱 짙어지는 그곳만의 공기를 오롯이 느낀다. 그리고 로컬 마켓에서 꼭 향신료나 오일을 산다. 그곳의 기억을 봉인하기 위함이다. 향은 장소의 기억을 응축하는 가장 좋은 도구라고 믿는다. 이 일련의 루틴은 나만의 여행 의식과도 같다.

이탈리아 부티크 호텔 마세리아 모로세타 중정. 석회 토양과 하얀 석회 건물로 유명한 풀리아. 지역의 결을 살려 건물 전체를 하얀 석회로 마감했다.
이탈리아 부티크 호텔 마세리아 모로세타 중정. 석회 토양과 하얀 석회 건물로 유명한 풀리아. 지역의 결을 살려 건물 전체를 하얀 석회로 마감했다.

조율하는 여행

내가 생각하는 웰니스 여행지는 단순히 ‘쉼’만 있는 휴양지가 아니다. 나쁜 것은 비워내고, 좋은 것을 채워 넣으며 몸과 마음의 순환을 돕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늘 감각을 흔드는 장소를 찾는다. 때로는 호텔이나 리조트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까지 경험한 호텔 중 아만조에(Amanzoe)가 그랬다.

수령 500년 된 올리브나무 600여 그루를 심어놓은 올리브 농장과 그 사이에 자리한 마세리아 모로세타 호텔.

아만조에는 펠로폰네소스반도의 포르토 헬리 언덕에 자리한다. 이곳 역시 히드라, 스페체스와 마찬가지로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서 수상 택시로 이동한다. 히드라, 스페체스를 지나야 펠로폰네소스에 다다를 수 있다. 헬기로는 25분 만에 도착한다. 아만조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건축미가 시선을 압도한다. 고대 그리스 신전의 기하학적 양식과 석조 기둥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건물은 아크로폴리스처럼 위엄을 풍긴다. 웰니스 프로그램도 알차다. 요가 파빌리온에서는 일출과 일몰에 맞춰 요가 수업이 진행되고, 스파에서는 고대 그리스 허브를 활용한 트리트먼트를 제공한다.

마세리아 모로세타 호텔의 마스코트인 두 강아지.

머무는 동안 가끔 이런 상상을 했다. 언젠가 미국 서부 어딘가에 자리할, 혹은 유럽 어느 도시 중심에 세워질 파지티브호텔을 그려보았다. 현지 문화를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아만의 방식은 파지티브호텔이 지향하는 철학과 맞닿아 있다. 지금은 서울에서 그 꿈을 실현하고 있지만, 이곳에서의 쉼은 자연스레 그다음 챕터를 떠올리게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배움이 있는 곳을 여행해온 것 같다. 아니면, 떠난 곳에서 매번 배움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펠로폰네소스반도 언덕에 자리한 아만조에. 고대 아크로폴리스를 모티브로 한 건축과 에게해를 내려다보는 절경이 특징이다.
펠로폰네소스반도 언덕에 자리한 아만조에. 고대 아크로폴리스를 모티브로 한 건축과 에게해를 내려다보는 절경이 특징이다.

이탈리아 풀리아의 마세리아 모로세타도 그런 장소다. 내가 숙소를 고르는 기준은 간단하다. 그 지역의 결을 온전히 품고 있는가, 그리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가. 마세리아 모로세타는 아만조에와 마찬가지로 지중해를 끼고 있지만,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곳이다. 소박하고 단정하다. 6개 객실만 둔 이 부티크 호텔은 올리브나무 600여 그루가 서 있는 농장 한가운데 자리한다. 오래된 농가를 개조한 하얀 석회벽 건물은 마치 캔버스처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리듬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이곳에 머무는 것 자체가 웰니스 리추얼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500년 된 올리브나무 사이를 거닐고, 요가와 명상으로 숨을 고른다. 오후에는 올리브 농장을 배경으로 수영을 하고, 텃밭에서 거둔 식재료로 차린 유기농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 어느새 몸과 마음이 정돈된다. 낯선 리듬 속에서 나를 조율하는 시간, 이것이 바로 웰니스 여행이다. 그 땅의 질감과 공기, 색과 향으로 잠든 감각을 흔들어 깨우다 보면 그 사이사이로 영감과 에너지가 선물처럼 찾아올 테다.

정형록 | 파지티브호텔(Positive Hotel) CEO | @rock.jung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웰니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파지티브호텔’을 설립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축적한 웰니스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하면서 건강한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GOOD IN BAD OUT’은 브랜드를 관통하는 슬로건이다.

에디터 이도연 정형록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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