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튕겨주오! 로다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마블 복귀가 반갑고 신선한 이유.
로다주의 복귀 선언과 함께 MCU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커진 건 분명하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의심을
부르던 분위기가 호기심으로 변했다.
“이해가 안 돼. 이제 악당인 건가?” 기네스 팰트로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하 로다주)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댓글을 남겼다. 가면을 마주 보는 로다주의 사진이었다. 사진의 정체는 샌디에이고 ‘코믹콘’ 현장에서 공개됐다.마블 스튜디오의 새로운 신작 라인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녹색 의상을 입은 이가 가면을 벗자 장내가 뒤집어졌다. 로다주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 복귀 선언을 알리는 성공적 쇼였다.
로다주의 MCU 복귀작은 2026년과 2027년 개봉이 예고된 <어벤져스: 둠스데이>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다. 하지만 아이언맨이 아니라 닥터 둠이었다. 영웅이 아니라 악당으로 돌아온 것이다. 멀티버스 사가라는 콘셉트 안에서 배우의 얼굴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지만, 로다주는 MCU의 시작점과 정점을 만든 얼굴이라는 점에서 실로 놀랍고 대담한 선택이었다. 원래 <어벤져스> 프랜차이즈 신작으로 예정된 건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 등장한 새로운 최종 빌런 정복자 ‘캉’을 앞세운 <어벤져스: 캉 다이너스티>였다. 하지만 2023년 12월 캉을 연기한 조나단 메이저스가 여자친구 폭행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후 새로운 <어벤져스>의 구심점이 사라졌다. 애초에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 압도적 능력과 매력을 설득하지 못하며 우려를 산 캐릭터이긴 했으나, 이런 식의 퇴장은 여러모로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케빈 파이기 마블 스튜디오 CEO에게는 새로운 계획이 있었다. 바로 로다주가 손가락을 튕겨주길 기대한 것.
그사이 2020년 은퇴했던 밥 아이거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 CEO로 복귀했다. 디즈니의 새로운 황금기를 이끈 그가 다시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다. 먼저 디즈니 산하의 창작자들이 스토리텔링보다 정치적 올바름의 메시지 전달을 우선으로 여기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취임 직후 디즈니 산하 스튜디오에서 제작을 밝힌 작품은 <겨울왕국 3>와 <토이 스토리 5> 그리고 <주토피아 2>였다. 지나치게 팽창한 세계관의 볼륨을 줄이고 성공적 프랜차이즈 제작에 주력하며 신뢰를 구축할 것이라 밝혔다. 마블 스튜디오는 이러한 진단과 처방을 적용할 주요 대상이었다. 밥 아이거 역시 케빈 파이기의 아이디어를 알고 있었고, 2024년 개봉을 목표로 했던 마블 스튜디오의 제작 계획도 전면 수정됐다. <데드풀과 울버린>을 제외한 세 작품을 연기했다. 그 과정에서 은밀하게 새로운 가면을 마련하며 로다주의 복귀를 모색하고 마블의 새로운 펀치라인을 구상한 것이다.
올해 마블 스튜디오의 사정은 어느 해보다 밝다.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 2>가 16억 달러 이상, <데드풀과 울버린>이 12억 달러 이상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리며 밥 아이거의 리더십에 그린 라이트를 밝혔다. 로다주의 복귀가 신속하게 결정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고 믿는 밥 아이거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디즈니와 마블의 엔드게임을 이끌며 청사진이 될 미래를 찾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 대중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프랜차이즈 제작이 꼭 성공을 담보하는 건 아니다. 로다주의 복귀가 새로운 <어벤져스>의 영광을 재현하는 핑거 스냅이 될 것이라 확언할 수도 없다. 하지만 로다주의 복귀 선언과 함께 MCU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커진 건 분명하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의심을 부르던 분위기가 호기심으로 변했다. 이처럼 되는 일을 발 빠르게 되게끔 하는 리더십의 힘이란 인피니티 스톤으로 완성된 건틀렛을 낀 손처럼 위력적이다. 로다주는 확실한 게임 체인저였다. 마블의 엔드게임이 시작됐다.
민용준
영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그리고 작가. 13인의 감독 인터뷰집 <어제의 영화. 오늘의 감독. 내일의 대화.>와 에세이집 <가을이 오면 떨어질 말들>을 집필했다.